386화. 시녀 취환(翠环)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석실의 돌탁자 옆에 앉았다. 그리고 청란수첩을 꺼내 들고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한 번 쭉 읽어보니 청란성지의 전반적인 현황에 대해 대략 이해가 됐다.
청란성지는 동성성 외에 네 개의 부속 행성을 갖고 있었다. 이 네 개 행성은 실력이 막강한 네 장로가 지키며 모든 일을 총괄했다. 그 행성에서 생산되는 재산과 자원은 모두 청란성지의 소유였다.
청란성지의 전력을 보면, 전설적인 인물인 청란성주 밑에는 방금 전에 언급했던 네 명의 장로가 있었고, 그 외에 팔대 호법(护法)과 삼대 진종천수가 있었으며, 또 십대 성명제자(聖名弟子)가 있었다. 수첩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모두 재능이 뛰어나고 실력이 막강한 사람들이었다.
또 명예를 위해 온 사람들과 성지의 신통력을 익히기 위해 타지에서 자진해서 들어온 독행 수행자들, 다양한 목적을 위하여 시종으로 성지에 들어온 각 종족 사람들 또한 수없이 많았다. 그의 영지에 있는 삼백여 명의 시종도 이에 속했다.
‘이래서 청란성지가 미양성역의 삼대 수련 성지로 꼽히는 것이로구나.’
석목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청란수첩의 내용을 계속 읽었다. 동성성에 관련된 지식이나 각지의 위험한 장소, 요수들의 분포와 동성성의 지방 세력 등이 전부 언급되어 있었다.
한 시진이 지난 후 석목은 손에 든 책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현령벽을 꺼내들었다.
수첩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청란성지의 수련 자원 체계는 전부 현령점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령점을 발급하는 사람은 청란성지 사람이 아닌 현령탑의 영(靈)이었다.
수첩에는 이 탑의 영에 대해 많은 정보가 나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청란성지의 현령점은 전부 이 탑영을 통해 분배되는 것이며, 청란성주조차 이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석목은 잠시 침묵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이 탑의 영은 아마도 일종의 영기 같은 존재일 것이었다.
청란성지의 그 누구도 현령점의 분배에 간섭하지 못한다면, 인맥을 통해 이득을 볼 가능성이 전무하기에 절대적인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
청란성지의 모든 제자가 높은 경지의 공법을 수련하거나 희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단약을 구하려면 우선 많은 현령점을 갖고 있어야 했다. 또한 현령점은 자신의 경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실력이 강할수록 자연스럽게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석목은 자신의 조건을 감안해서 오랫동안 고민하며 앞으로의 수련 계획을 세웠다. 성역 세계든 동성성이든 청란성지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실력이었다.
그는 우선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다음에 구전현공의 다음 단계를 수련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동시에 높은 경지의 무기를 하나 수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 강해지면 만법각에서 각종 임무를 맡아서 충분한 현령점을 얻고, 구전현공의 나머지 공법을 수련할 계획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마음속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깊게 호흡을 하고 신식을 써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 후, 그의 안색이 밝아지며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곳의 천지 영기는 매우 짙었다. 창원왕의 말에 따르면 이곳의 영기는 그가 구전현공의 첫 번째 단계를 수련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석목은 바로 수련에 들어가지 않고 일단은 누워서 눈을 감고 쉬었다. 얼마 전까지 시험을 치르느라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 비록 휴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긴장의 끈을 조금도 놓지 못했던 것이다.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석목은 빠르게 잠에 빠졌다.
석목은 이튿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지난밤에 푹 쉬어서 정신이 맑았고, 체력과 정신력도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그는 일어서서 주실의 대청으로 나갔다.
대청 문앞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시녀 취환이었다. 그녀는 석목이 나오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
“부주님, 동부의 영지는 전부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둘러보시겠습니까?”
취환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석목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잠시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취환이 대답했다.
“문중의 기존 제자들이 동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고 있는가?”
석목이 물었다.
“부주님께 아뢰옵니다. 문중에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준 동부는 전부 일 등급 영맥이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이 공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오래된 상위 제자들의 동부에 있는 영맥의 품질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오래 거주한 제자들은 보통 이곳에서 영초나 약재를 재배하거나 영수를 사육합니다. 그렇게 해서 종문이나 다른 제자들에게 팔아 영석으로 바꾸지요. 종문은 이런 일에 대해 별다른 제제는 하지 않습니다. 수확한 모든 것은 전부 본인 소유입니다.”
“그런 좋은 방법이 있군. 그럼 이 동부의 전 주인도 그렇게 한 것인가?”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물었다.
“네.”
취환이 아무런 표정 없이 답했다.
“그럼 그는 어떤 영초나 약재를 심었느냐? 혹시 목록이 있나?”
석목이 물었다. 그러자 취환은 이미 준비했다는 듯 옥간을 하나 꺼내 석목에게 전했다.
석목은 그것을 받아들고 신식으로 살펴보았다. 몇 가지 영초가 있었는데 딱히 희귀한 물건은 아니었다. 전부 재배하기 수월한 품종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목록대로 영약을 재배하도록. 그곳에서 얻은 영석은 너희가 가져가도 된다.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네가 결정해라.”
석목은 옥간을 취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취환은 석목의 말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시종일 뿐이고, 이렇게 영기가 짙은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그러니 석목은 그들에게 아무런 보수를 주지 않아도 되었다. 예전 주인 또한 그랬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취환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석목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는 원래 영석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곳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외진 곳이라 조용했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제자들이 동부의 영지에서 수확한 것들에 대해서는 청란성지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성지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좋은 수련 환경을 제공하고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제자들은 종문을 위해 일해야 했고, 그것은 바로 만법전에서 임무를 맡는 것이었다. 청란수첩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석목 등 백년제자는 십 년 동안 만법전에서 열 개의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임무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해당 임무를 끝내면 똑같이 보수를 받았다. 다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질책과 징계를 받아야 했고, 심할 경우 제자 신분을 박탈당해 성지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석목은 몇몇 사항을 더 물어봤고, 취환은 전부 사실대로 답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않았다. 다른 시종들처럼 아부하는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이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대로 전부 답했다.
석목은 취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원래 성격이 소탈한 데다 사람을 밑에 두고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자신에게 일부러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태도를 보이니 오히려 번거로움이 줄어든 것 같았다.
석목은 채아를 불렀다. 그리고 취환의 수행 하에 자신의 영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동부는 약 백 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잠깐 사이에 전부 돌아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취환은 석목을 데리고 영지의 영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영천은 어느 산맥의 골짜기에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짙은 불 속성의 원기야. 서미군도의 화산 입구와 비슷해.”
채아가 재잘댔다.
석목도 크게 기뻐했다. 그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 중 일부는 이 불 속성의 영천 때문이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그가 산골짜기로 들어가니 도처에 붉은 안개가 떠다녔다. 암벽도 빨간색이었고, 산골짜기와 근처의 산봉우리에서는 약간의 녹색 식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산골짜기 중앙에는 몇 장 크기의 붉은 영천이 있었는데, 밖으로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영성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석목은 그 영천 옆으로 걸어가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영천 안쪽에는 수많은 붉은색 용암이 들끓고 있었고, 그것은 간간이 위로 솟아났다. 그럴 때마다 영천에는 한줄기 붉은 빛이 나타나서 그 용암을 막아버렸다.
“화정백(火精魄)!”
채아가 영천에 내려앉더니 아래쪽을 보고 큰 소리를 질렀다.
영천 안에는 수많은 불의 물고기와 불뱀 등이 있었다. 채아는 군침을 흘리며 빨리 몇 마리 잡아달라고 석목을 졸랐다.
석목은 그것을 두어 마리 잡아주고 채아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살짝 감고 주위의 짙은 불의 기운을 감지했고, 곧 얼굴에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이곳의 환경은 그가 전에 머물렀던 불의 속성을 가진 어떤 곳보다도 좋았다. 그는 잠시 고민한 뒤 이곳에서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영화진을 추가로 한 개 더 설치하면 이곳의 불 속성 기운은 더욱 짙어질 것이고, 그럼 적원화경과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수련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게 틀림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바로 행동에 옮겼다. 먼저 영화법진을 설치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적어 취환에게 사오도록 지시했다. 전부 흔한 물건이라 청란성지에 다 있을 것이었다.
이어 석목은 다른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새로운 동부가 영천 옆에 나타났다.
석목은 취환을 포함한 모든 관사들을 불러 간단하게 몇 마디 분부하고, 모두 채아의 말을 따르라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동부 속으로 들어가서 수련을 시작했다.
새 동부의 밀실에 붉은 빛이 짙게 번졌다. 곧 붉은 화염이 될 것 같았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서 천천히 구전현공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 팔이 점점 더 칠흑 같은 색으로 변하면서 하얀 화염이 타올랐고, 그 속에는 한 줄기의 붉은 화염이 고집스럽게 섞여 있었다.
그는 왼손의 붉은 화염을 한번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밀실의 붉은 빛, 농후한 불의 기운, 그리고 주위의 짙은 천지 영기가 석목의 몸에 모여들었다.
거대한 영기의 소용돌이가 생겼고, 그 중심에는 석목이 있었다.
* * *
시간이 조금씩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에 석 달이 지나갔다.
석목이 수련하는 곳과 멀지 않은 산봉우리에서 두 명의 선천 초기 무인이 두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두 줄기의 빛이 흘러나왔는데, 한 개는 타원형 보호막을 형성하여 붉은 꿀벌 같은 벌레들을 막고 있었다.
벌레들은 온 힘을 다해 보호막에 부딪쳤다. 그들의 수는 많았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없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막아내면 돼. 너무 과하게 해서 죽여 버리지는 마. 그러면 맛이 없어.”
그중 한 명의 선천 무인의 머리 위에 알록달록한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바로 채아였다.
두 선천 무인은 야단법석을 떠는 채아의 말을 어쩔 수 없이 듣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진기를 조종하고 있는 참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 붉은 벌레들은 점점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보호막에 부딪히지 않았다.
“지금이야! 틈을 만들어!”
채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발로 아래에 있는 선천 무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 선천 무인은 흰자위를 번득이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타원형 보호막에 순식간에 틈이 생겼다. 채아는 그곳으로 다가가서 몸을 보호막에 붙이더니 그 틈 사이로 입만 집어넣었다. 한 입에 빨간 벌레 한 마리를 물고 이내 삼켜버린 채아의 눈에는 취한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화문봉(火纹蜂)은 정말 너무 맛있단 말이야.”
그는 머리를 흔들며 몽롱하게 말했다.
두 선천 무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보호막을 유지하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둘 다 수고했어. 먹어볼래?”
채아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감……감사합니다, 채아 어르신. 저희는 괜찮으니 많이 즐기십시오.”
두 선천 무인은 다급하게 말했다.
“이 맛을 모르다니. 그럼 나 혼자 먹을게.”
채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머리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