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87화 (387/916)

387화. 일전대성(一戰大成)

석목이 수련하는 동안 심심해진 채아는 사람들을 불러서 영지에서 놀고 있었다. 이런 벌레잡이 역시 그가 최근에 발견한 놀이였다. 재미도 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

그때 멀리서부터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석목이 수련하는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채아는 깜짝 놀라서 머리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있는 곳에서 한줄기의 거대한 붉은 빛기둥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주변 하늘의 구름이 전부 흩어졌고, 강한 진기의 파동이 붉은 기둥에서 뿜어져 나왔다.

“석두! 드디어 나왔네! 이렇게 오랫동안 들어가 있다니!”

채아는 큰 소리로 웃으며 날개를 펼쳐 기둥 방향으로 날아갔다.

두 선천 무인은 먼 곳의 빛기둥을 보고는 안색이 변했다. 그들의 손에서 진기가 사라지면서 가두어 두었던 화문봉들이 날아가 버렸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석목의 동부에 있는 다른 시종들도 모두 이 기이한 현상을 보았고,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빛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취환은 영지에서 영초를 돌보고 있었는데, 먼 곳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빛기둥을 보고는 손을 멈추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붉은 빛기둥은 일 각 정도 유지되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영천 위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푸른 옷을 입은 석목이었다.

석목은 몸에서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있는 얼굴에서는 빛이 났는데, 마치 깨달음을 얻은 보살 같은 느낌이었다.

왼팔에서는 옅은 하얀 빛을 뿜고 있었고 피부색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 하얀 빛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었다.

석목이 눈을 번쩍 뜨자 차가운 빛이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치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에는 기쁨의 기색이 역력했다. 몇 달간 힘들게 수련한 끝에 드디어 구전현공 첫 단계를 무사히 마무리한 것이다.

그의 왼팔 역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에는 왼팔이 무거운 감이 있었는데 이제 그런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다. 표면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도 없어졌으며, 더 이상 가죽 장갑으로 손을 가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왼팔이 지닌 화염의 위력이 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것을 느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커진 것인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석목의 적원화경도 드디어 발전을 이루어서 지계 초기를 돌파하고 지계 중기에 도달했다. 전체적인 실력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석목은 자신의 왼쪽 팔을 한번 바라보면서 마음이 설레었다.

푹!

그의 등 뒤에서 불빛이 크게 번지더니 한 쌍의 화염 날개가 나타났다.

이어 하얀 화염이 그의 왼팔에서 올라왔다. 그러자 원래 붉은 화염이 들끓던 날개가 순식간에 몇 배나 더 커졌다. 거대한 불의 날개가 펄럭이자 석목의 몸은 순식간에 한줄기의 흰 빛으로 변하여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실력이 한 단계 상승하면서 날개를 흔드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단숨에 백 리를 가는 정도는 아직 아니었지만, 전속력을 내면 십 리 정도는 갈 수 있었다. 이 정도로도 보통 천위 무사 정도는 그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석목은 동부 영지 근처에 있는 한 황량한 산맥에 내려앉아 등 뒤에 있는 날개를 접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낮게 소리를 지르더니 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러서 앞에 있는 수백 장 높이의 산봉우리를 내리쳤다.

허공에 순식간에 붉은 빛이 번졌고 거대한 주먹의 그림자 주위로 화염이 몰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주먹인 듯 강하게 산봉우리를 쳤다.

우르릉!

산 전체가 격하게 흔들리며 표면에서 눈부신 불꽃이 튕겼다. 이어 수많은 화염으로 둘러싸인 큰 돌들이 주위로 날아갔다. 그의 주먹은 산봉우리가 무슨 종잇장이나 된 것처럼 한 주먹에 큰 동굴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는 붉고 뜨거운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한참 동안이나 기뻐했다. 적원화경을 십일 단계까지 수련한 후에는 주먹의 힘도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불 속성의 기운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가 가늠해보기로는, 만약 마지막 단계까지 전부 수련하면 한 주먹으로 산봉우리 전체를 부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운철흑도와 곤봉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칠살곤법(七杀棍法)을 시전했고, 다른 한 손의 흑도로는 십삼합일(十三合一)의 풍지도법(風地刀法)을 시전했다.

한순간에 칼과 곤봉의 빛과 그림자가 나타나 층층이 허공을 채웠다. 그것은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주위를 압박해 나갔다.

하늘을 찢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주변의 큰 돌들이 전부 박살이 났고, 바람에 의해 튕겨서 멀리까지 날아갔다. 마치 하늘에서 돌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석목은 가슴이 벅차올랐고, 몸속의 기운을 걷잡을 수 없어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손에 든 흑도와 곤봉을 거두고 하얀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왼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쾅!

왼손이 부딪힌 곳에서 하얀 화염이 하늘을 찌르는 듯 솟아났다.

화염은 마치 영성이라도 있는 듯, 땅에 닿는 순간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흰색 영문으로 변해서 주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석목을 중심으로 주변의 땅이 전부 한 층의 하얀색으로 뒤덮였다.

이곳의 땅에는 초목이 많았는데, 하얀 화염이 닿자 순식간에 불타오르더니 땅과 같이 녹기 시작했다. 주변의 수 묘(*畝:넓이의 단위(약 30평))나 되는 땅이 전부 들끓으며 어느새 용암의 바다로 변해버렸다.

이를 바라보는 석목의 표정은 평온해보였으나, 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수련하면서 왼쪽 팔에 있는 화염의 위력이 크게 증가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도달할 거라고는 석목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다.

석목은 한 번의 타격에서 힘을 어느 정도 남겨두었다. 온 힘을 다했다가는 아마도 지각(地角)마저 뚫어버릴 것 같았다.

석목이 팔을 움직이자 하얀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면의 용암도 천천히 굳더니 곧 검은색 암석이 되었다.

이어서 석목은 다시 오른손에 운철흑도를 꺼내들었다.

방금 전 공격할 때 부주의로 인해 운철흑도의 칼끝에 한줄기 하얀 화염이 묻었는데, 그 부분이 녹아 있었다.

“하얀 화염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는 운철흑도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며 흑도와 곤봉을 등 뒤에 꽂았다.

그의 왼쪽 팔이 엄청난 위력을 가진 만큼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했다. 일전에 하얀 옷을 입은 늙은 원숭이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면 백원왕이 청란성지에 남겨둔 혼의 등이 꺼질 것이고, 청란성지에서 구전현공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흘러나가면 아마도 큰일이 닥칠 것이다.

석목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익비차를 불렀고, 한줄기 푸른빛이 되어 부저(府邸)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이 부저 근처까지 왔을 때 안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비차 위에서 두 눈에 금빛을 반짝였다. 검은 옷을 입은 십여 명의 사람이 부저에 있는 몇몇 관사와 시종을 둘러싸고는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그 태도를 보니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관사와 시종들의 얼굴에는 화난 기색이 어려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고 없었다. 화를 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제풍은 그의 비대한 몸집 뒤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비뚜름하게 쓰고 있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며 청익비차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온 몸에서 기운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내뿜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쏠렸다.

오만한 태도였던 사람들은 석목의 복장과 풍기는 기운으로 그의 신분을 알아보았는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반면 관사와 시종들은 석목이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했고, 모두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냐?”

석목이 다가서며 차갑게 물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모양새는 그의 시종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석목의 눈을 피하며 두려워했다. 다만 우두머리로 보이는, 표범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이족만이 가슴을 펴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

“부주님, 취환이 이 사람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풍이 통통한 손으로 머리 위의 모자를 바로 세우더니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취환은 이곳에 없었고, 채아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채아는 어디에 있어?”

석목이 물었다.

“그게……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는데, 없어졌…….”

제풍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석목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채아는 상황이 심각해진 것을 보고 먼저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석목은 더 이상 제풍을 난감하게 하지 않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석목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그들은 뒤로 몇 발짝 물러났고, 그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내 동부에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석목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자 표범 머리를 한 이족이 앞으로 나오더니 인사를 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조삼표(赵三豹)라고 합니다. 저희는 전부 조심뢰(赵沉雷) 부주님의 시종입니다. 귀부의 시종인 취환의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저희 부주님에게 거액의 빚을 졌습니다. 부모의 빚을 자식이 갚는 것이 도리이니,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취환은 몸을 팔아서 내 시종이 되었으니, 생전의 부모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빛 또한 자연스럽게 그녀와는 상관이 없어졌을 것이고. 그러니 이제 내 영지에서 떠나도록 해라.”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석목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돌아가려했다. 하지만 표범 머리를 한 이족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몰래 석목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 다시 한 번 말해줘야 하나?”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부주님은 청란성지 내의 백년제자 중 한 분입니다. 어르신보다 먼저 성지에 입성하셨지요. 황계 구역에서도 명망이 높으신 분입니다. 어르신이 너그러움을 베풀어 저희가 취환을 데려가게 해주시면, 소인은 반드시 저희 부주님에게 어르신에 대한 좋은 말을 아낌없이 전하겠습니다. 저희 부주님도 어르신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표범 머리를 한 이족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는 말끝마다 자신의 부주를 들먹이고 있었다. 얼핏 들으면 석목이 조심뢰(赵沉雷)의 체면을 지켜주기를 부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만한 말투를 보아하니, 자신의 주인이 석목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 오히려 석목에게 영광이 될 것이라는 투였다.

“꺼져라.”

석목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

표범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그 이족은 석목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이제 새로 입문한 제자가 부주의 체면을 전혀 생각하지 않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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