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90화 (390/916)

390화. 끝이 없는 미궁

세 시진이 지난 후 석목은 다시 한 번 통로 끝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여덟 개의 똑같은 통로를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여덟 개의 통로를 전부 확인했고, 그 뒤에 연결된 일곱 개의 통로도 전부 한 번씩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가도 다시 원점과 똑같은 상황이 나타났다.

똑같이 생긴 여덟 개의 통로. 그는 마치 기이한 순환 속에 갇힌 것 같았다.

게다가 원신이 원래의 자리에 묶여 있어서 나갈 수도 없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이 공간을 떠날 수가 없었다.

석목의 표정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원신이 몸과 분리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으면 몸의 생기가 천천히 고갈되고, 원신이 탈출을 한다 해도 다시 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었다.

순간 석목은 너무 경솔하게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숨을 가볍게 내뱉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시험을 통과하는 길밖에 없었다. 만약 두 번째 단계의 공법을 얻지 못한다면 어차피 썩어버릴 몸이었다.

잠시 후 석목은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앞에 놓인 여덟 개의 통로를 바라보다가 왼쪽 통로를 선택해서 들어갔다.

정확한 길을 알 수 없다면 그는 차라리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모든 통로의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정확한 길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새 보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회색 통로 앞에 서 있는 석목의 안색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보름 동안 강한 의지를 발휘하여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다. 심지어 지나갔던 길들의 지도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 미궁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조금도 찾아내지 못했고, 여전히 그 안에서 헤매고 있었다.

매번 통로에서 나올 때마다 그를 맞이하는 건 똑같이 생긴 일곱 개의 통로였다.

* * *

그 시간, 채아가 석실 밖의 나무에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눈이 감겨서 금방이라도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서 채아는 머리를 들었다.

체형이 뚱뚱한 공처럼 생긴 남자가 다가왔다. 머리에는 모자가 올라가 있었다. 그는 관사 제풍이었다.

“어이, 무슨 일로 왔어?”

채아가 지붕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채아 어르신, 월말이 다가와서 영지에 관한 일들을 부주님께 보고 해야 합니다. 번거롭더라도 한번 전해주시지요.”

제풍이 채아를 향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취환이 문을 닫고 수련을 시작한 이후, 시종과 관사들은 제풍이 맡아 이끌고 있었다.

“그래? 큰일이야?”

채아가 물었다.

“큰일은 아닙니다만 영지에 심어둔 약초의 일부가 곧 수확할 때가 됩니다. 그래서 부주님께 어떻게 처리할지 여쭈어보려던 참입니다.”

제풍이 물었다.

“석두는 지금 수련하느라 바빠. 이런 작은 일은 네가 알아서 결정하면 돼.”

채아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제풍은 채아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보고 곧바로 물러났다.

제풍이 돌아가자 채아는 다시 처마로 날아갔다. 그는 굳게 닫혀 있는 동부의 문을 보면서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열흘 전 석목이 문을 닫아 버린 후, 채아와 석목 사이에 연결된 시야는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보낸 정보들에 석목은 계속 묵묵무답이었다. 마치 물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전에 영천에서 수련하던 삼 개월 동안에는 석목은 최소한 답변은 꼬박꼬박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소식이 없으니 채아는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 * *

번천곤의 금제 미궁 속에서 석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눈앞에 있는 여덟 개의 통로를 바라보며 앉았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무작정 그곳으로 들어가 봤자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이십여 일이 지났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빨리 이 미궁의 비밀을 풀어야 했다.

석목은 눈을 감고 미궁 속의 상황들을 떠올렸다. 줄줄이 이어진 통로, 알 수 없는 지형……. 마치 수많은 실마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 같았다.

일 각 후, 석목은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흥분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여덟 개의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석목은 빠르지 않은 속도로 통로를 걸었다. 눈에는 금빛을 반짝이며 수시로 주변을 향해 보았다.

이번에 통로를 통과하기까지 그는 반 시진이나 걸었다. 그리고 눈앞이 반짝이더니 드디어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여덟 개의 똑같은 통로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다시 여덟 개의 통로를 바라보았다. 입으로 뭐라 중얼거리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시진이나 통로를 관찰했다. 그리고 왼쪽에서 두 번째의 통로로 향했다.

한걸음에 통로 앞으로 다가간 석목은 주위를 바라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긴 숨을 내뱉으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일 각 후, 그는 다시 한 번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앞쪽에는 변함없이 여덟 개의 통로가 나타났다.

석목의 눈에서는 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계속 무엇인가를 계산하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 그는 통로 앞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두 시진이나 지난 후 한 개의 통로를 선택해 들어갔다. 석목은 자신감이 넘치는 듯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걸었다.

똑같은 상황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는 원점에서부터 총 일곱 번의 선택을 했다.

“아직 마지막 한 개의 시험이 남았을 거야…….”

석목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각 후, 그는 마지막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거대한 공간이 나왔고, 또다시 여덟 개의 통로가 나타났다.

순간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이번에도 여덟 개의 통로가 나타나서가 아니었다.

앞쪽의 공터에 초록색 머리의 한 청년이 있었다. 몸은 야윈 편이었지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여덟 개의 통로를 마주하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고민하고 있었다.

석목이 나타나자 청년은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누구야? 어떻게 이곳을 찾아온 거지?”

“당신이야말로 누구지?”

석목은 바로 답하지 않고 차분하게 되물었다.

초록색 머리카락의 청년은 그 말을 듣자 실눈을 뜨더니 동공에서 초록빛을 반짝였다. 순간 그의 눈에서 두 줄기 칼날 같은 초록빛이 뿜어져 나와서 몇 장 거리에 있는 석목의 가슴으로 향했다.

석목은 흠칫 놀라더니 몸을 돌려 한쪽으로 피했다. 하지만 조금 늦어버리는 바람에 빛이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러나오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통증이었고, 일반 상처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아팠다. 석목은 참을성이 강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몸을 움직이며 상대와 십 장 정도 떨어진 구석으로 다가가서 급하게 진혼주(鎭魂咒)를 시전했다. 그제야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며 안색이 회복되었다.

초록색 머리카락 청년의 눈빛에서 의아함이 스쳤다.

석목은 심호흡을 깊게 했다. 그리고 등에 꽂혀 있는 운철흑도와 곤봉을 꺼내들고 상대를 노려보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진혼주라니……. 당신, 백원의 후계자인 건가? 몇 천 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더니, 이곳을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어.”

초록색 머리카락 청년이 눈에서 적막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몇 천 년?”

청년의 말을 들은 석목은 놀라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하, 저런.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청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설마, 백원왕과 내기를 했다는 사람?”

석목이 눈을 반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침착했지만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다. 청원의 말에 의하면 그 내기는 천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원신은 이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회했다는 말인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원신이 몸에서 빠져나온 뒤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하하, 맞아. 바로 나야. 나는 강북도(江北岛)라고 한다. 당신 이름은 뭐지?”

청년은 석목의 손에 쥐어진 운철흑도와 곤봉을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알 필요 없다.”

석목이 차갑게 말했다.

“됐어.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런데 앞에 있는 일곱 개 층의 금제는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거지?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하긴 하군.”

강북도의 눈빛이 독사처럼 차가워지며 물었다. 석목은 등골에 소름이 돋았고, 마치 구렁이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실은 석목도 미궁의 금제 통로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 결과 선천 팔괘(八卦) 진위가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궁 금제를 통과하려면 반드시 한 번에 여덟 개의 진도(阵图)를 통과해야 했다. 중간에 어떠한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만약 중간에 어떤 착오가 생긴다면 원신은 수많은 변화 속에 갇혀서 천천히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영목신통을 통해 미궁 통로의 허와 실을 알게 되었다. 여덟 개의 통로는 얼핏 보면 똑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는 예전에 통천선교의 한 장로가 말해준 통천어령결을 떠올렸고, 이 영기를 제련(祭煉)하는 법결에서 선천 팔괘의 오묘한 변화를 기록했다.

그리고 영목신통까지 결합하고 나서야 미궁의 금제를 풀 수 있었고, 단번에 일곱 개 층의 금제를 풀어 이곳까지 왔다.

눈앞에 서 있는 강북도라는 푸른 머리 남자는 석목만큼 운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어떻게 원신 상태로 이곳에 수천 년 동안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이곳의 금제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 역시 강한 의지력으로 일곱 개의 진도를 뚫고 이 마지막 금제까지 온 것이다.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사람은 다시 또 난관에 봉착해 있었고, 석목에게서 답을 구하려고 했다.

석목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차갑게 답했다.

“내가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는가 또한 알 필요 없다.”

“이놈이 사리 분별을 못 하는군! 좋아, 말하기 싫으면 널 잡아서 수혼지술(搜魂之術)로 알아낼 수밖에!”

강북도의 눈에서 흉악함이 스쳤고, 그가 주먹을 쥐더니 초록빛을 뿜어냈다. 마치 초록색 구렁이처럼 흉흉한 빛을 뿜어내는 초록색 칼이 한 자루 나타났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석목을 공격했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칼자루가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석목의 목을 내리쳤다.

석목의 눈에서 금빛이 떠올랐고, 그는 칼의 그림자를 또렷이 바라보며 왼손으로 운철흑도를 들어 막아냈다.

탕!

두 자루의 칼이 서로 부딪치면서 귀가 찢어질 듯한 충돌음이 울렸고, 둘은 그렇게 허공에서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석목은 왼손의 흑도로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오른손의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가더니 그림자를 층층이 만들어 강북도를 향해 날아갔다. 강북도의 앞으로 곤봉의 그림자가 층층이 산을 이루며 드리웠다.

강북도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의 눈빛에서 기이한 빛이 번지더니 초록색 빛을 뿜어냈다.

빛 속에서 물독만한 구렁이의 꼬리가 나타나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쾅!

곤봉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석목은 크게 놀라서 뒤로 날아 물러섰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구렁이 꼬리가 그림자를 뚫고 나와서 석목의 가슴을 강하게 후려쳤다.

펑!

석목은 강한 힘에 밀려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는 허공에서 몇 번 구르더니 땅 위에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고, 가슴 부위의 옷이 찢어져 그 사이로 금색 비늘이 드러났는데, 군데군데 찢겨 있었다.

다행히 석목은 마지막 순간에 토템 변신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원신은 크게 손상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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