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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91화 (391/916)

391화. 수강신뢰(水罡神雷)

석목은 몸을 한 번 굴리더니 다시 일어섰고, 그의 몸에서 금빛이 번지며 금색 뱀 비늘이 나타났다.

“응? 야만족의 토템 비술? 이건 좀 재미있군.”

강북도가 작게 중얼거렸고, 낯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의 하반신은 이미 뱀의 몸으로 변해 있었다. 굵고 단단한 뱀 꼬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엄청난 속도로 석목을 향해 다가왔다.

그때 석목의 몸 전체는 금빛 비늘로 덮였고, 토템 변신이 완성되어 기운이 폭발하고 있었다.

“목숨은 살려두려 했는데 야만족의 후손이라니, 죽일 수밖에!”

강북도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초록 머리카락을 꼿꼿이 세웠고, 그 위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졌다.

이어 초록색 머리카락들은 전부 살아 움직이는 초록 구렁이로 변하여 석목을 향했다. 물통 굵기만한 구렁이들이 큰 뱀의 산을 이루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석목은 흠칫 놀랐다. 그의 머릿속에서 강수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도 청산비경에서 똑같은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 위세는 눈앞의 이 청년보다는 많이 약했었다.

그 사이 구렁이들이 파도처럼 석목의 눈앞으로 밀려왔고, 미친 듯이 입을 벌려 그를 물어뜯으려 했다.

석목은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그의 왼쪽 팔에서 큰 소리와 함께 하얀 빛이 나타나더니 주변에서 물결이 일렁였다.

“깨버려라!”

석목은 큰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쥐고 구렁이 산을 공격했다. 빛은 흉흉하게 밀려나가서 하얀 불의 파도처럼 들끓었다.

구전현공이 만들어내는 하얀 화염의 빛은 너무 강해 운철흑도마저 녹아버렸고, 구렁이들은 그 빛에 조금 스쳤을 뿐인데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걸 보자 강북도는 마치 하얀 머리의 미친 짐승처럼 날뛰었다.

“구전현공 첫 단계를 끝냈어? 흥,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지!”

강북도는 차갑게 말한 뒤 왼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쿵!

그의 팔에도 하얀 화염이 나타났고, 석목의 손과 똑같았다.

강북도가 주먹을 날렸다. 하얀 빛이 거대한 빛의 바다를 형성하여 날아오며 석목의 하얀 화염과 부딪쳤다.

우르릉!

두 갈래의 하얀 빛이 부딪치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결이 주변으로 퍼지더니 공간이 흔들렸고, 맹렬한 진동 때문에 전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두 갈래의 하얀 빛이 부딪쳤고, 그 힘의 크기는 비슷해서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저 자도 구전현공을!”

석목의 얼굴에서 놀란 기색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번천곤의 금제 시련은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수련한 사람만이 겪을 수 있었다. 강북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그 또한 첫 단계의 수련을 끝마쳤다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상대의 실력은 누가 봐도 자신보다 강했다. 구전현공의 위력으로 전세를 뒤집어보려 했지만, 상대 또한 구전현공의 첫 단계를 완성한 자였다. 이제 이길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석목은 일단 도망을 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북도가 비틀거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초록빛이 어두워지더니 왼팔의 흉흉한 하얀 빛도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얇은 하얀 빛만이 팔 표면을 감싸고 있었다.

“왜 이러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강북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네 실력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이 미궁에서 천 년이나 배회하느라 원신의 힘이 거의 소진돼버린 것이다.”

석목은 웃으며 강북도를 향해 다시 주먹을 날렸고, 그의 왼쪽 팔에서 하얀 빛이 크게 번졌다.

하얀 빛은 한 마리의 하얀 화룡으로 변해 이를 드러내며 강북도를 덮쳤다.

이어 석목의 몸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붉은 원숭이 법상이 나타났고, 붉은 빛과 하얀 빛이 번갈아가며 번쩍였다. 석목이 그 안에 현공의 힘을 불어넣은 것이다.

붉은 원숭이 법상이 두 손을 휘날리며 불빛을 번쩍이자, 화염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칼자루가 만들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와 강북도를 향해 날아갔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는 석목은 한 번에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강북도의 눈에서 절망의 기색이 어렸고, 그는 다시 미친 듯 날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 북도요왕이 이렇게 비천한 야만족에게 질 수는 없다!”

강북도의 몸에서 초록색이 번쩍이더니 사오십 장은 되어 보이는 초록색 구렁이로 변했다. 머리에는 산호 모양의 뿔이 자랐고, 복부의 네 곳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푸른 구렁이의 몸집은 컸지만 기세가 약했다. 겉보기에만 강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강북도가 막 구렁이 본체로 변신한 순간, 하얀 화룡이 덮쳐 와서 그의 배를 들이받았다.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푸른 구렁이의 복부에 구멍이 뚫렸고, 화룡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구렁이는 고통스러워하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차가운 빛을 반짝이던 눈이 고통을 누르며 머리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거대한 몸집이 허공을 가르며 덮쳐왔다.

하지만 구렁이는 붉은 원숭이 법상의 광기 어린 공격을 받았다.

두 개의 거대한 불의 검이 푸른 구렁이의 몸을 강타했다. 그리고 검에서 하얀색과 붉은색의 두 가지 화염이 나와서 그의 몸을 갈라놓으려 했다.

쿵!

이어서 혼원진화도 구렁이의 몸을 강하게 내리쳤다.

푸른 구렁이의 머리가 미친 듯이 흔들리더니, 마치 날아오는 운석에 맞은 듯 땅에 떨어졌다. 머리는 비늘이 찢어지고 한쪽 뿔도 부러져서 까맣게 타버렸다.

곧이어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석목이 푸른 구렁이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의 왼쪽 팔에서 하얀 빛이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이어서 한줄기의 하얀 그림자가 구렁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쿵!

머리가 터진 구렁이는 몸을 몇 번 꿈틀대더니 잠잠해졌다.

석목은 천천히 땅에 내려와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붉은 원숭이 법상, 그리고 구렁이의 뱃속에 있던 하얀 화룡이 다시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구렁이의 사체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곧 실체가 사라지며 수많은 초록색 빛으로 변했고, 빛들은 한데 모여서 사람 머리만 한 빛 뭉치가 되었다.

빛 뭉치에는 푸른 구렁이의 작은 허영이 박혀 있었다.

“이것이 원신의 마지막 힘이겠군…….”

석목은 푸른 빛의 뭉치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입으로 법결을 외우며 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등 뒤로 거대한 칠수망사(七首蟒蛇)의 허영이 나타나서 푸른 빛 뭉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푸른 빛 뭉치는 조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일곱 마리의 뱀에 의해 삼켜졌다.

석목은 두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등 뒤에서는 뱀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또 한 개의 뱀 허영이 나타날 기세였다. 하지만 윤곽만 나타난 채로 멈추어버렸다.

그는 다시 천천히 눈을 뜨며 머리를 흔들자 몸의 금빛이 흩어졌다. 일곱 마리의 뱀 허영도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토템 변신이 해제되었다.

강북도는 천위 경지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 미궁 속을 헤매다보니 원신의 힘이 전부 고갈되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구전현공을 펼치다가 마지막 기운마저 소진해버린 것이었다.

석목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평정심을 찾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여덟 개의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더니 입으로 무엇인가를 외우면서 꼼꼼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반나절이 지나자 석목의 눈에서 희열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가장 왼쪽에 있는 통로를 향해 다가갔다.

주변에 빛이 뿜어져 금빛 세계가 되었고, 한줄기 금빛이 통로를 지나 앞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석목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이번의 선택은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큰 보폭으로 걸어갔다.

반 시진이 지나자 앞쪽에 검은색 출구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가 앞으로 가려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앞쪽의 통로에 수많은 빛이 나타나며 반짝였다. 이어 그것들은 금빛 찬란한 칼날로 변했다.

스윽!

수많은 금빛 칼날이 날아다니며 마치 빗방울처럼 석목의 머리로 떨어졌다.

석목은 깜짝 놀라 물러섰고, 통로에서 이런 이변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혹시 마지막 판단이 틀린 걸까?’

석목은 속으로 생각하며 몸에서 빠르게 금빛을 뿜어냈다. 다시 한 번 토템 변신이 발동되면서 그의 온 몸이 금색 비늘로 덮였고, 동시에 수많은 칼날이 날아와서 그의 몸에 떨어졌다.

소나기가 퍼붓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석목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금빛 칼날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금색 비늘을 뚫지는 못했지만 석목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석목의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반짝였고, 그는 왼쪽 팔을 움직여 다시 한 번 하얀 빛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순식간에 엄청난 열기를 발산하는 하얀 빛의 벽으로 변신하여 그의 머리 앞을 막았다.

금색 칼날들이 하얀 빛의 벽에 닿자 그 뜨거운 열기에 의해 녹아버렸다.

그제야 석목은 한숨을 돌렸고, 빛의 벽을 드리운 채 걷기 시작했다.

통로 안의 금빛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허공을 날아다니던 칼날들도 곧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로에서 파란빛이 크게 번졌다.

우르릉!

앞쪽에서 커다란 파도가 나타나더니 굉음과 함께 석목을 향해 밀려왔다. 그리고 석목의 앞을 막고 있던 하얀 벽까지 무너뜨렸다.

파도 속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수많은 수강신뢰(水罡神雷)가 석목의 얼굴에 떨어졌다.

콰광!

마치 천둥번개가 여기저기서 터지는 것 같았다.

하얀 빛의 벽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주위에 물안개를 자욱하게 만들어냈다.

석목은 얼굴이 굳어지며 이를 악물고 하얀 빛을 거두었고, 그의 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두꺼운 계란형의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석목은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손을 흔들어 법결을 펼치자 계란형 보호막에 비늘 모양의 꽃무늬가 나타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굉음이 계속 울려 퍼졌고, 수강신뢰가 부딪히면서 보호막이 심하게 흔들렸다.

석목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그는 두 손을 보호막에 붙이고 계속해서 진기를 불어넣으며 온 힘을 다해 안정시켰다.

수강신뢰의 힘이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당분간은 보호막을 깰 수 없을 것이었다.

일 각이 지난 후에야 파도와 수강신뢰가 사라졌다.

하지만 석목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방금 전에 강북도와 싸우고 또 이렇게 연속으로 공격을 막아내다 보니, 어느새 진기를 절반 이상이나 소진해버렸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이번에는 통로 앞쪽에서 초록빛이 크게 번졌다.

표면에 초록빛을 두른 굵은 통나무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의 얼굴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진기의 소진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가 한 손을 휘두르자 금전검이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십 장 크기의 거대한 검이 되었다.

그는 두 손을 흔들어 법결을 외웠다.

금전검에서 눈부신 금빛이 번지며 번쩍이더니, 똑같이 생긴 검이 열 자루가 나타나서 통나무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검은 빛이 모여서 하나의 검망(剑网)을 만들어냈다.

초록색 통나무들이 그 검망에 잘려 부서지며 나무 부스러기가 허공에 날렸다.

“금계 검날, 그 다음에는 파도 공격, 이번에는 나무…….”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허공의 통나무는 점점 많아졌고, 굵기도 더 굵어졌다. 금색 검망은 압박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었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찢어질 것 같았다.

석목은 이를 악물며 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 붉은 원숭이 법상을 만들어냈다.

이어 붉은 원숭이 법상이 낮게 소리를 지르더니 두 주먹으로 붉은 빛을 끌어 모았고, 두 덩어리의 붉은 화염을 만들어냈다.

원숭이 법상이 팔을 흔들자 커다란 주먹 두 개가 연속으로 날아갔고, 붉은 주먹의 그림자는 허공에 있는 통나무들을 공격했다.

통나무들이 주먹의 그림자에 의해 부서지자 검망에 가해지는 압력도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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