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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392화 (392/916)

392화. 극음의 기운

일 각 후, 통나무들이 전부 사라지자 통로의 초록빛도 흩어졌다.

석목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러나 초록빛이 이제 막 사라져서 숨을 돌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통로에 노란색 빛이 크게 번졌다.

이번에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난 것은 노란 구름이었다.

우르릉!

구름 속에서 눈부신 노란빛이 나타나더니, 맷돌만 한 돌덩어리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석목의 진기는 이제 거의 바닥나 있었다. 진기가 소진되면 원신으로 변한 몸은 아까의 강북도처럼 흩어져버릴 것이 뻔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휘둘러서 붉은 원숭이 법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포효하며 등 뒤의 운철흑도와 곤봉을 꺼내들었다.

법상이 두 팔을 흔들자 검의 그림자가 나타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을 부수었고, 더러는 몸으로 막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통로의 노란빛과 노란 구름도 다시 사라졌다.

석목의 몰골은 매우 처참했다. 몸의 비늘은 찢어졌고 얼굴도 이곳저곳 멍들고 부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맑았다.

그는 이번에는 육신으로 돌덩이들을 막아냈고, 진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의 금제는 오행으로 이루어졌을 거야. 이제 마지막 하나…….”

그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붉은 빛이 나타났고, 앞쪽에서 무언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앞에서는 검붉은 밀물이 빠르게 밀려오고 있었고, 밀물이 통로를 빈틈없이 막아버려서 도망갈 틈도 없었다.

“아니야, 이건 밀물이 아니야!”

석목은 단번에 검붉은 밀물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것은 용암 같은 것이었는데, 물속에서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서 붉은 고리를 만들어내더니 왼손을 몸 앞에 세우자 손에서 하얀 빛이 피어올라 붉은 빛과 섞였다.

쿵!

검붉은 밀물이 석목을 묻어버리는 순간, 붉은 고리는 불타는 물을 그의 몸 앞에서 막아냈고, 검붉은 밀물은 붉은 고리에 줄줄이 부딪혔다.

석목의 왼쪽 팔에서 나온 하얀 빛과 섞인 붉은 고리는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부풀었고, 뜨거운 기운이 고리를 뚫고 흘러나왔다.

뜨거움은 참을 수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몸속의 진기가 빠르게 소진되는 바람에, 석목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석목의 안색이 일그러졌고, 그의 붉은 낯빛은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파렇게 바뀌었다.

그의 몸을 보호하던 붉은 빛의 고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이제 얇은 층만 남아 곧 깨지기 직전이었다.

순간 통로 속의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하얗게 변했고, 검붉은 밀물도 사라졌다.

석목은 몸에 힘이 풀려서 땅에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방금 전의 밀물이 반각만 더 지속됐다면 아마도 그는 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밀물 속에서 원신이 소멸됐을 게 분명했다.

잠시 숨을 고른 석목은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앞의 길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백 장 정도의 끝자락에 출구가 있었는데,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어서 밖이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잠시 멈칫하더니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생각대로 오행의 시련을 겪고 나자 통로는 안전해졌고, 더 이상의 급습은 없었다.

석목은 빠르게 출구에 도착했고, 그의 신식이 그 앞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 걸음 다가갔다.

곧이어 주위의 경치가 빠르게 변했고, 그는 넓은 대전에 있었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중앙에는 하얀색의 구름이 둥둥 떠 있었고, 옅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을 자세히 훑어보고 나서 기뻐했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그는 백원왕이 만든 미궁 금제의 시련을 통과하고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듯했다.

석목은 하얀 구름 쪽으로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 빛을 만지려는 순간, 그 빛은 영성이라도 있는 듯 빙빙 돌기 시작했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뒤로 몇 장 정도 물러났다.

그때 위엄 있는 목소리가 하얀 구름에서 흘러나왔다.

“강북도, 네가 여덟 개의 동천진(洞天阵)과 오행천벌진(五行天罚阵)을 통과했다니, 나 또한 약속을 지켜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의 구결을 알려주마. 다만 이 공법이 너에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너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살짝 변했다. 이것은 백원왕이 남긴 것으로 본래는 강북도와의 약속을 위해 준비한 것인데,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시련을 통과한 것이다.

백원왕의 말이 끝나자 하얀 빛 덩어리가 반짝이더니, 수많은 빛의 점이 날아와서 허공에서 한참을 반짝였다. 빛들은 곧 글자로 변해서 허공에 줄줄이 떠올랐다.

석목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눈에서 금빛을 내뿜으며 허공에 나타난 글자들을 빠르게 외웠다.

반 각 후, 그는 눈을 감고 하얀 글자들을 전부 기억해냈다. 구전현공 첫 단계의 공법과 맞춰보니, 바로 그 뒤로 이어지는 두 번째 단계의 공법이 확실했다.

“청원은 번천곤 금제 안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공법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두 번째 단계의 공법 구결만 있는 거지? 그렇다면…….”

석목은 무엇인가를 알아챈 듯했다.

그 순간 하얀색 글씨가 사라지더니 대전에 수많은 빛이 나타났다. 석목은 눈앞이 하얗게 되었고, 그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며 의식을 잃었다.

* * *

한참 후 석목은 정신을 차렸다.

주위는 옅은 붉은 빛을 뿜어내는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석목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번천곤 속에 원신이 한 달간 갇혀 있다가 드디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다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몸속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달 전보다 원기가 많이 소모되긴 했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만약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생길 뻔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를 빨리 깨우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석목은 두 눈을 떴는데, 그의 얼굴에는 놀라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미궁 속에서는 급하게 외우기만 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니 구전현공의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는 과정 자체가 전혀 달랐다.

구전현공의 첫 단계는 지강지양(至刚至阳)을 추구했고, 그 결과 석목의 왼손은 극양의 진화 지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공법은 극음을 추구했다. 그래서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습하고 차가운 곳이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초기에는 대량의 극음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했다.

“극음의 기운이라면…….”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석목은 그동안 계속 양화(阳火)와 관련된 공법을 수련해왔다. 그래서 대력마원탈태결 때 음산의 기운을 조금 접한 것 외에는, 극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석목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영탑의 방시(坊市)에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극음의 기운과 관련된 영기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석실을 나서자마자 작은 그림자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석목은 잠시 멍해 있다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석두,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지 않을 거면 말이라도 해줘야지! 내가 걱정 했잖아!”

채아가 불만과 억울함이 섞인 투로 말했다.

“이번에는 문제가 좀 생겼거든.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지.”

석목이 말했다.

“그러게. 네 신식과의 연결이 이어졌다 끊겼다 하더라. 다음에는 이러면 안 돼. 내 작은 심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더니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참, 내가 수련하는 동안 동부에 별 일 없었지?”

석목이 물었다.

“내가 관리하고 있잖아. 동부의 일은 다 깔끔하게 처리해놓았…….”

채아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이 없다는 듯한 석목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알아, 네가 궁금해 하는 거. 취환이라는 그 여자애가 문을 닫고 수련하고 있는데, 조삼표 그놈이 또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었어. 너를 만나겠다고 했는데, 나와 그 뚱보 제풍이 두어 마디 해서 보냈어. 그런데 가면서 마구 소리를 지르더라. 다음에는 조심뢰가 직접 찾아올 거라나 뭐라나.”

채아는 화가 난 듯 말했다.

“그래, 오게 되면 알려줘.”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두, 내가 봤을 때 취환이라는 그 아이,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종수 누님 같은 사람보다는 못하긴 하지만. 네가 그 애를 이렇게 챙기는 걸 보니 후처로 들이려는 거지?”

퍽!

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목이 꿀밤을 때렸다.

“아야, 아파! 석두, 너 이 배은망덕한 놈. 내가……..”

채아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석목이 던진 영석 두 개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영석을 받아 두어 번 씹더니 바로 삼켜버렸다.

“채아, 나 현영탑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

석목이 말했다.

“좋아! 네가 걱정되어서 동부를 나가지도 못했어.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채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가자.”

석목은 청익비차를 불러서 채아를 데리고 날아갔다.

그는 현영탑에 도착한 후 탑 속에 있는 원형 빛기둥으로 들어갔고, 몸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잠시 후 그의 앞에 거대한 원형 문이 나타났는데 문 안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그 문으로 들어가서 수백 걸음을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돌이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에 통류방(通流坊)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돌을 우회해서 가보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석목의 눈앞에 푸른 돌길이 쭉 뻗어 있는 게 보였고, 돌길의 양쪽으로는 수많은 길이 뻗어 있었다.

옆길들은 전부 청석길과 넓이가 똑같았고, 그중 소수의 몇 갈래 길만 좁은 편이었다. 또 길 양쪽으로는 수많은 상점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영기와 영재를 판매하는 상점 외에 술집, 찻집, 객잔 등 다양했는데, 청란성과 흡사한 풍경이었다.

길에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오가고 있었고, 물건을 파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몇몇 상점 앞에는 호객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꽤나 떠들썩했다.

“보세요. 와서 한번 보세요. 화원성에서 새로 들여온 화원정(火元晶)입니다…….”

“놓치지 말고 들어오세요. 뇌급성(雷极星)에서 나온 최상급 뇌심목(雷沉木)이 오늘 도착했습니다!”

“청독성의 독소액(毒沼液)입니다. 독성 영기를 제련하는 분들은 놓치지 마세요…….”

* * *

“석두, 네가 아니었으면 성지에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을 거야. 와아, 이렇게 번화한 곳이 있다니.”

채아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질렀다.

석목도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예전에 능풍이 새로운 제자들을 안내할 때 이곳으로 데려오지는 않았지만, 두어 번 언급한 적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직접 보니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석목은 발길이 가는 대로 걸으며 몇 개의 거리를 관찰했다. 이곳의 적지 않은 행인과 상점 주인들은 청란성지 제자들의 시종이었고, 또 일부는 다른 경로를 통해 청란성에서 들어온 것 같았다.

일 각 후, 석목은 천보각(天宝閣)이라는 영재 상점 앞에 다다랐다. 그는 인족으로 보이는 뚱뚱한 관사가 상점 앞에 비스듬히 걸터앉아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귀한 분이 오신 줄도 모르고 결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어서 오세요.”

관사는 석목이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서 말했다.

그 관사는 쉰 살 정도 돼 보였고 자색 옷를 입고 있었는데, 옷에는 사각형 구멍이 뚫린 동전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머리에는 챙 없는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부유한 시골 노인 같았다.

석목은 그를 잠시 바라다가 인사치레 없이 대뜸 물었다.

“혹시 극음의 기운이 들어 있는 영기가 있나요?”

그러자 그 뚱뚱한 관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찾으시는 게 극음 공법을 수련하는데 필요한 극음의 기운 맞습니까?”

“맞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뚱뚱한 관사는 일꾼을 불러 가게를 보게 한 다음, 석목을 데리고 상점 뒤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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