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95화 (395/916)

395화. 통천십팔곤(通天十八棍)

석목은 바로 동부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성전각에 들렀다.

그동안 석목은 현영탑에 있는 여러 공간의 위치를 파악해놓았다. 그리고 성전각을 다시 찾은 그는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서책의 바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청란성지는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이렇게 많은 서책을 모은 걸까?’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잡생각을 떨쳐버린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평대를 향해 날아갔다.

평대 위에는 돌로 만든 하얀 벽이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촘촘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석목은 그림을 몇 번 훑어보고 그것이 성전각의 지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전각의 공간은 끝없이 넓었다. 지도의 분류에 따르면 총 스물두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구역마다 저장돼 있는 서책의 종류는 전부 달랐다. 공법도 있고 무기도 있었으며, 그밖에도 약전(药典), 의술, 인문, 지리……. 그것들을 보는 내내 석목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성전각에는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았다. 그러니 찾고 싶은 물건은 직접 찾아야 했다. 이 규칙은 청란성주가 만든 것이었는데, 무엇이든 강제로 얻어내지 않고 인연에 맡기자는 취지라고 했다.

석목은 지도를 자세히 둘러본 뒤, 반 시진이나 날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많은 무기 전집이 저장되어 있는 성전각 십구 구역이었다.

석목은 고상하고 현명한 무기를 찾아 여의빈철곤과 결합하고 싶었다.

이 십구 구역의 면적은 엄청나게 컸다. 혼자서 천천히 고르면 아마 일 년이 넘어도 다 보지 못할 것이다.

구역은 다시 세부적으로 서른 두개의 대로 나누어져 있는데, 어느 곳이 권법 무기이고 도법 무기인지 등등 대마다 자세한 소개가 있었다. 석목은 지도의 표시에 따라 곤법 무기에 대해 저장된 곳을 찾아냈다.

석목은 한 묘(畝:넓이의 단위, 약30평) 정도 되는 푸른 석대 위로 날아올랐다. 그곳에는 백 개가 넘는 책장이 있었고 책장마다 수백 권이나 되는 서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석목이 서 있는 석대만 해도 수만 권이 있었다.

석목은 흥분된 얼굴로 첫 책장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책장은 금제가 쳐져 있어서 서책을 마음대로 꺼내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무기 전집 밑에는 여러 개의 표시가 있었고, 무기의 특징이 쓰여 있어서 참고할 수 있었다.

“번룡곤법(翻龍棍法): 지계무기(地阶武技). 대성경(大成境)까지 수련 가능. 용 모양의 기력으로 만들 수 있다. 백 리 밖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환영팔괘곤(幻影八卦棍): 선천무기. 곤법이 환상적이다. 구별하기 어렵다…….”

“무영 곤술(無影棍术): 지계무기. 속도가 빠르다. 보이지 않게 적을 물리친다…….”

석목은 보면 볼수록 결정하기가 어려워졌다. 이곳에는 무기가 많기도 했지만 각각의 특색이 있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 책장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두세 시진이 지난 후, 석목은 머리를 들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성역 세계에서 떠돌아다니는 전집이 청란성지에 전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성전각이 공법전집이 많기로 유명한 것은 맞았지만, 실제로는 상상 이상이었다.

심지어 석목은 이곳에서 칠살곤법에 대한 것도 보았다. 펼쳐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곤법의 특징에 대한 설명은 그가 수련한 것과 똑같았다. 아마도 남해성의 칠살곤법이 맞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찾았어도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곤법을 찾지 못했다.

그때 머뭇거리는 석목의 눈에 한 전집이 들어왔다.

“통천십팔곤: 지계무기. 육신이 강해지기를 원하는 자는 전부 수련 가능. 육신이 강할수록 곤법의 위력이 더 커지고, 가장 높은 단계까지 수련했을 시 주변 천지 원기를 끌어올 수 있으며, 천지개벽…….”

석목은 작은 소리로 아래 적혀 있는 소개를 읽었다. 그의 눈빛이 점점 맑아졌다.

이 곤법은 마치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운철흑도와 융합한 후의 여의빈철곤에는 천지 영기를 흡수하는 신묘한 기능이 더해졌는데, 이 곤법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리고 통천십팔곤은 그의 몸 안에 있는 번천곤과 이름이 비슷했다. 그래서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목은 전집의 위쪽에 표시되어 있는 현영점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몸이 굳었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구십오 점!’

이곳에서 한참을 살펴본 바로는 선천 무기도 현영점 십 점 이하였고, 지계 무기는 보통 오십 현영점 아래로 충분했다. 그런데 이 무기는 보통 지계 무기보다 두 배나 비쌌다.

석목은 다시 현영벽을 꺼내서 흔들었다. 한줄기의 하얀 빛이 날아가서 책장 표면의 금제 위에 떨어졌다.

백 점이었던 현영점은 일 점이 줄어들어 구십구 점으로 변했다. 석목은 속이 쓰려서 입이 벌어졌다.

펑!

금제의 빛의 막에서 순식간에 한 층의 하얀 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커다란 사람 얼굴 모양으로 변했다.

“네가 나를 찾았느냐?”

커다란 얼굴이 석목을 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면서도 크게 울렸다.

“네, 탑영 선배님.”

석목은 거대한 얼굴을 향해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다.

사실 이 성전각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어찌됐든 성전각 전체는 탑영의 통제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성전각의 비석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현영점 일 점을 쓰면 탑영을 소환해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물론 물어볼 수 있는 문제는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규정에 어긋난 질문이 나오면 탑영은 답을 하지 않을 것이고, 현영점 또한 돌려받지 못할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

탑영이 물었다.

“방금 전 통천십팔곤이라는 곤법 무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 곤법에 구십오 현영점이나 필요한 것인지요?”

석목이 물었다.

“이 곤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비전이다. 현묘한 기운이 있어서 인연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탑영의 목소리가 석목의 귀 옆에서 울렸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멍해졌다. 답변이 너무 막연했다.

“물음에 답했으니 다른 궁금한 사항이 없다면 나는 돌아가겠다.”

탑영이 점점 희미해졌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탑영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구전현공은 어디에 있나요? 구전현공의 세 번째 단계 이후 공법을 수련하려면 현영점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구전현공 전집은 성지의 삼 대 조화신통 중 하나로, 나에게 와서 구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의 구결에는 일 만 현영점이 필요하다…….”

탑영은 계속 희미해지며 사라지기 직전에 석목의 물음에 답했다.

“일만 점…….”

탑영의 말에 석목은 정신이 멍해졌다. 그의 이마에서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바람에 네 번째 단계에는 현영점이 얼마나 필요한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의 석목에게는 알아도 큰 의미가 없었다.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얼굴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놀라긴 했지만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세 번째 단계의 구결만 해도 이렇게 많은 현영점이 필요하니, 일반 제자들은 바꿀 능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천년 제자 정도 되어야 간신히 바꿀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석목은 통천십팔곤 전집을 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현영벽을 흔들었다.

한줄기의 하얀 빛이 뻗어 나오더니 금제를 뚫고 통천곤법 전집 위에 떨어졌다. 현영벽의 하얀 빛이 흐려지더니 현영점이 순식간에 구십오 점이나 날아갔다.

이윽고 통천십팔곤이 들어 있는 옥간이 반짝이더니 금제 속에서 날아와서 석목의 손에 놓였다.

석목은 손에 들린 옥간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심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옥간을 바로 펼쳐보지 않고 출구가 있는 쪽을 향해 날아갔다.

현영탑을 떠난 석목은 채아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청익비차를 불러내 자신의 동부를 향해 날아갔다.

“음?”

동부에 도착한 순간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동부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의 시종이 문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어서 수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누구에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몇몇 시종이 석목이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하며 다가왔다. 사람들 속에서 제풍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부주님! 채아 어르신! 드디어 오셨군요! 방금 전 어느 무리가 아무 기별도 없이 동부로 쳐들어왔습니다!”

“어느 미친놈이 간이 부어서 동부로 들어온…….”

채아가 소리를 지르다 말고 석목이 노려보는 것을 보고 뒷말을 삼켜버렸다.

“천천히 말해라. 누가 온 것이냐?”

석목이 실눈을 뜨고 물었다. 성지에서 주인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남의 동부에 드나드는 것은 엄청난 도발 행위였다.

“일전에 취환을 찾던 사람들입니다. 이번에는 그 조심뢰가 직접 왔습니다.”

제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동부의 대문으로 들어섰다.

제풍 일행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서로 한 번씩 마주보고 그대로 입구를 지켰다.

동부의 대청에 있는 돌의자에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남자의 나이는 스물 대여섯 살쯤으로 보였다. 매부리코에 두 눈이 깊게 패여 있었으며, 차가운 빛이 간간이 스치는 게 상당히 음흉해보였다.

그 청년 옆에는 몇몇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조삼표였다. 그는 아부의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삼표, 너 제대로 알아본 것 맞아?”

음흉한 청년이 입을 열었다.

“부주님, 사실입니다. 제가 그 석목이라는 사람과 함께 성지에 입문한 제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지계 초기의 실력으로 최근 입문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삼표가 말했다.

“지계 초기의 경지로 입문 시험을 통과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군.”

음흉한 청년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이 석목이라는 자는 입문 시험 과정에서 큰 행운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십오 등으로 간신히 상위 제자에 끼어들었지요. 하지만 이놈은 인족이라 부주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조삼표가 아부하며 말했다.

“흥, 그걸 말이라고! 그런데 삼표, 네 경지도 지계 초기는 되지 않느냐? 또 비표(飛豹)일족이기도 하니 그 인족 놈보다 약하지 않을 텐데, 왜 나까지 움직이게 하는 거냐?”

음흉한 청년이 말했다.

“어찌됐든 명목상으로는 성지의 상위 제자 아닙니까? 제가 예를 다해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으나, 전혀 체면을 봐주지도 않고 언행이 난폭했습니다. 부주님께 폐라도 끼칠까 싶어서 싸우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번에는 직접 오셨으니 몇 마디만 하시면 아마도 냉취환을 고분고분 내놓을 것입니다.”

조삼표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는 지난번에 석목에 의해 내던져진 사실은 조심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또 조심뢰를 직접 나서게 해서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조심뢰는 코웃음을 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무거운 발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땅까지 가볍게 흔들릴 정도의 발걸음이었다.

쿵쿵…….

음흉한 청년은 안색이 변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밖을 쳐다보았다.

석목의 모습이 대청에 나타났다. 그의 몸이 밖의 모든 빛을 가려버리는 통에, 대청 안의 사람들은 순간 그가 하늘을 막아버렸다는 착각을 했다.

음흉한 청년의 동공이 축소되었고,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아하니 당신이 조심뢰군요. 이렇게 제 동부에 마음대로 드나들다니, 정말 위세가 대단합니다.”

석목이 조심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이놈! 네가 지금 감히 우리 부주님의 이름을 입에 담아?”

조심뢰의 권세를 등에 업은 조삼표가 큰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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