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96화 (396/916)

396화. 찾아오다

석목은 차가운 눈빛으로 조삼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조삼표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칼에 가슴이라도 찔린 듯 기세가 순식간에 꺾여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조심뢰의 뒤로 숨었다.

“내가 시종을 잘못 가르쳐 석목 사제에게 결례를 범했네.”

조심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석목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당신은 나보다 먼저 성지에 들어왔으니 규칙을 더 잘 아실 텐데요. 오늘 이렇게 사람들을 데리고 동부로 찾아와서 제 시종들까지 때렸으니,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석목의 말에 조심뢰는 담담하게 웃었다.

“허허, 석 사제. 화내지 마시게. 오늘은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오랫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내키는 대로 들어와서 앉았네. 내 부하들이 성격이 좀 급하다보니 자네의 시종들과 시비가 붙은 건 내 잘못이야.”

조심뢰는 갑자기 낯빛을 바꾸더니 시종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 각자 뺨을 세 대씩 때려라! 그리고 석 사제에게 사과해!”

순간 조삼표 무리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조심뢰가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조심뢰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안색이 변한 그들은 얼음구덩이에라도 빠진 듯 다급하게 앞으로 나오더니 석목을 향해 큰절을 했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들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세 개 때린 바람에 몇몇의 입가에서는 피까지 흘렀다.

“석 부주, 전에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조삼표 무리가 말했다.

이를 지켜보던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심뢰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수단을 쓴 만큼, 더 몰아치다가는 자신만 소인배가 될 게 뻔했다.

“잘못을 인정한다면 너희가 때린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어라. 그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석목이 손을 들어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간 조삼표의 몸이 굳어지면서, 고개를 숙인 그의 눈에서 이상한 빛이 스쳤다.

강자인 석목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건 괜찮았다. 그러나 밖에 있는 시종들은 실력이나 지위로 보아 그의 안중에도 없는 약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비는 것은 엄청난 치욕이었다.

“뭐하나? 석 부주가 말한 거 못 들었어? 빨리 가!”

조심뢰의 목소리가 또다시 크게 울렸다.

조삼표는 내키지 않아서 눈에 핏발이 섰지만, 조심뢰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지라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움직이자 따라서 나갔다.

잠시 후,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왔다.

석목은 신식을 통해 그들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한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오늘 마음대로 들어온 잘못은 넘어가주지.”

그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하, 석 사제, 아량을 베풀어주어서 감사하네.”

조심뢰의 동공이 잠시 축소되더니 웃으며 말했다.

“조 사형, 이렇게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석목이 자리에 앉더니 물었다.

“허허, 큰일은 아니네. 석 사제의 시녀 냉취환 때문에 찾아온 것이지. 석 사제도 알다시피 그녀가 내게 큰 빚을 졌지 뭔가. 그리고 석 사제의 동부에 숨어서 갚을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다네.”

조심뢰가 말했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녀에 대한 일은 지난번에 조삼표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냉취환은 성지에 의해 제 동부로 배치를 받아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녀에게 빚을 받으려면 아마도 그녀가 이곳을 떠난 뒤에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심뢰의 눈가가 떨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차분하게 말했다.

“빚을 졌으니 갚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석 사제는 계집애 하나 때문에 성지 제자 동문의 정은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석목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제가 감히 그렇겠습니까? 다만 냉취환은 이미 저희 쪽 사람이라, 제가 그녀의 일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조심뢰의 얼굴은 이제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두 눈에서 갑자기 눈부신 은빛을 뿜어냈다.

그러나 석목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금빛을 뿜어냈고, 두 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쿵!

두 빛은 맞닿는 순간 부서졌고, 허공에 파동을 일으키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이어 석목의 몸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무형의 파동을 없애버렸다. 조심뢰는 몸에서 한 층의 은빛을 뿜어내며 간신히 파동을 막아냈다.

조삼표 무리는 퍼져나간 파동에 몸이 흔들려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그들의 이목구비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들에게는 다행히 무형의 파동은 한 번으로 끝났다.

조심뢰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방금 전은 잠깐 간을 본 것이었는데, 석목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하하! 좋아. 석 사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계집애를 잠시 내버려두지. 하지만 빚은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이니, 나중에 어떻게든 받아내겠소.”

조심뢰는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석목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조삼표 등은 그를 지켜보다가 이내 따라나섰다.

떠나가는 그들을 지켜보는 석목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때 한 줄기의 빛이 날아와서 석목의 어깨 위에 앉았다. 채아였다.

“석두, 왜 그냥 보냈어? 조심뢰라는 사람은 실력도 고만고만해 보이던데. 여기로 찾아오기까지 하다니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군! 왜 그 빚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어!”

채아의 물음에 석목이 답했다.

“실력은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지만, 성지는 꽤 복잡한 곳이야. 게다가 나도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너무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아. 그냥 놔두자.”

물론 조심뢰 같은 사람들은 절대 그냥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기존 제자들과 굳이 나쁜 관계로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의 위세는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석목은 이제 막 성지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빨리 실력을 키워서 이곳에서 자리를 잡는 게 급선무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깊은 호흡을 했다. 그리고 석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석목의 영지 하늘에서 한 무리가 날고 있었다. 조심뢰 무리였다.

조심뢰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오만상을 하고 날아가다가 멈춰 섰다.

그가 갑자기 멈추자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도 따라서 멈췄다.

“조삼표, 이리와.”

조심뢰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조삼표는 겁에 질렸지만, 명을 거역할 수는 없어서 천천히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부주님.”

그가 인사를 올리는 순간, 조심뢰가 손을 들어 조삼표의 뺨을 때렸다.

조삼표의 몸은 마치 찢어진 천조각처럼 멀리까지 날아갔다. 그의 몸은 땅에 떨어지더니 몇 바퀴를 굴렀다. 입에서는 피가 뿜어 나왔고, 이빨도 몇 개 부러져나갔다.

그가 일어서기도 전에 이번에는 발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얼굴을 짓밟았다.

“저게 바로 네가 말한 석목이냐? 이제 막 선천 중기 수련을 끝낸 인족 쓰레기라고?”

조심뢰가 흉악한 얼굴로 발에 힘을 주었다. 조삼표의 머리가 땅 속으로 박히며 뼈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부주님……. 살려주세요…….”

조삼표가 처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다른 사람들도 머리를 숙이며 숨을 죽였다.

“지난번에 냉취환을 내놓으라고 했다니, 그건 무슨 소리냐?”

조심뢰는 화가 나서 몇 번 더 짓밟은 뒤 조삼표를 놓아주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삼표는 벌떡 일어서더니 조심뢰의 발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지난번 냉취환을 찾으러 왔다가 전원이 석목에 의해 밖으로 내던져진 일을 사실대로 고했다.

조심뢰의 눈에 분노가 번졌다.

“내 앞에서 꺼져!”

그는 그대로 조삼표를 걷어찼다. 조삼표는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버렸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서 벌벌 떨고 있었다.

조삼표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다시 한 번 땅 위에 내팽개쳐졌다. 그는 몇 번 뒹굴더니 천천히 땅을 짚고 일어섰고, 갈비뼈 부위를 손으로 감쌌다.

조삼표를 걷어찬 뒤 조심뢰의 안색은 점점 평온해졌다. 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몇 번 반짝였다.

“가자!”

잠시 후, 그는 옷자락을 흔들며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조삼표도 다급하게 일어서더니 무리와 함께 멀리 사라졌다.

* * *

석목과 조심뢰가 옥식각신하고 있을 즈음, 청란성지 깊숙한 곳에서는 큰 사건이 소리도 없이 터졌다.

성혼전(星魂殿)은 청란성지의 깊은 곳에 있는 외아전당(巍峨殿堂)이었다.

그곳 앞쪽의 대청을 지나면 긴 복도가 나타났는데, 좌우에 방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방의 구조는 거의 똑같았다. 제사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는 푸른 등이 놓여 있었다. 목패도 한 개 있었는데 거기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청란성지에서도 매우 중요한 장소였고, 이 푸른 등은 철혼등(彻魂燈)이라 불렸다. 즉, 영혼의 등이라는 의미였다.

대전 밖에서 세 줄기의 빛이 멀리서부터 날아왔다. 그 빛 속에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푸른 옷을 입은 노인, 검은 천을 두르고 있는 중년,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세 사람 모두 뿜어내는 기운이 엄청났다.

“장로님들께 인사드립니다!”

곱슬머리의 중년 남자가 대전에서 달려 나와서 세 사람에게 절을 했다.

“일어 나거라.”

푸른 옷의 노인이 손을 흔들자 중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서 경외의 빛이 스치더니 한쪽으로 비켜섰다.

세 사람은 다급한 얼굴로 성혼전 안쪽을 향해 걸어갔고, 잠시 후 긴 복도끝에 있는 어느 방에 들어섰다. 그 방은 다른 방보다 훨씬 컸는데, 다른 소박한 방들과 여러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의 눈에서 기이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에는 기쁜 기색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 한탄과 슬픔도 어려 있었다.

“언제 일어난 일이냐?”

노인은 머리를 돌려서 뒤를 따라온 들어온 곱슬머리 중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전입니다. 소인은 매번 그랬듯 순찰을 돌고 있었고, 등이 꺼진 것을 보고 지체하지 않고 세 분께 보고했습니다.”

곱슬머리 중년이 다급하게 말했다.

노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곱슬머리 중년은 죄를 사면받기라도 한 듯 물러났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곱슬머리 중년이 나간 뒤, 푸른 옷을 입은 늙은이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물었다.

“철혼등이 꺼진 걸 보니 드디어 그놈의 혼까지 사라진 듯합니다. 흥, 잘 죽었죠. 철혼등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 청란성지에서는 누구도 구전현공을 수련할 수 없습니다. 이제 구전현공의 금령을 드디어 풀 수 있겠네요.”

검은 천을 두른 중년 남자가 말했다.

“천 년 전부터 그 자의 철혼등은 계속 어두워진 채였다. 현공 등 조화신통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변수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갑자기 불이 꺼진 걸 보니 아마도 무슨 일이 생긴 듯하구나.”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말했다.

“청(青) 장로님,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물었다.

“이 일은 잘 조사해보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우선 성조께 알려야 할 것 같다. 나머지 일들은 둘이서 알아서 해결하게.”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은 소매를 흔들더니 밖으로 나갔고, 젊은 여자와 중년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백원왕의 철혼등이 꺼졌다는 소식은 반나절 만에 퍼져나갔고, 청란성지에는 한차례 소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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