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화. 등불이 꺼지면 파란이 인다
하얀 궁전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검은 천을 두른 중년이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사각형 얼굴에 하얀 천을 두른 청년이 앉아 있었다.
하얀 천을 두른 청년은 온 몸이 터질 듯한 근육질이었고, 머리에는 사슴뿔이 자라나 있었다. 일부러 풍기지는 않았지만 몸에서 극도로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육신을 극한의 경지까지 수련한 듯했다.
“정말입니까? 그가 정말 완전히 죽어버렸답니까?”
사슴뿔을 한 청년의 얼굴에서 기쁨의 기색이 나타났다.
“내가 직접 본 것이다. 철혼등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검은 천을 두른 중년이 말했다.
“잘됐습니다!”
사슴뿔 청년이 일어서며 말했다.
“이건 기회다. 너는 백택혈맥(白澤血脉)을 가지고 있어서 구전현공을 수련하는데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라.”
검은 천을 두른 중년이 말했다.
“스승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제자,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슴 청년이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 * *
금빛 찬란한 동부에 생김새가 가지각색인 여덟 명의 청년이 모여 있었다.
“들었어? 구전현공의 금령이 드디어 풀린다는군. 우리도 이제 이 최고의 공법을 수련할 수 있게 됐어.”
매의 눈을 가지고 코가 높은 청년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게 진짜야? 어디서 들은 거야?”
“당연히 진짜지. 확실한 정보야. 오늘 일어난 일이라고.”
매의 눈 청년이 말했다.
“잘됐군!”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도 흥분의 기색이 떠올랐다.
“흥, 우리처럼 직예혈맥(直裔血脉)이 아닌 사람들은 구전현공을 수련한다 해도 다른 사람 좋은 일만 시킬 거야. 하지만 고(古) 사형이라면 가능성이 있겠지요.”
칼 같은 눈썹이 길게 자라 있는 청년이 말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의 눈길이 옆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향했다.
그는 얼핏 보기에는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올라와 있었다. 눈빛은 희미해서 빛이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두 개의 깊은 못처럼 사람의 영혼마저 빨아들일 것 같았다.
“사제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겁니다. 구전현공은 아무나 수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키가 큰 소년이 담담하게 웃더니 말했다.
“고 사형, 구전현공을 수련하시지 않을 건가요?”
한 청년이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나 고예(古翳)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상대가 너무 강한데, 구전현공이 저에게는 유일한 기회이니 당연히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알기로는 이 공법을 익히려면 적지 않은 현영점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키가 큰 소년이 눈에서 두 갈래의 빛을 내뿜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눈빛과 마주치자 안색이 변하여 바로 머리를 숙였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함께 수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수련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모두에게 기회가 있고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습니다.”
키가 큰 소년은 눈빛을 거두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도 빛이 반짝였다. 그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청란성지의 깊은 산 속.
누런빛을 뿜어내는 청년이 손에 고동색 군도(軍刀)를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휘두르는 군도에서 줄기줄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칼날에서 나온 빛이 앞쪽의 매끄러운 암벽에 부딪히자 돌이 여기저기 날았다.
잠시 후, 누런빛의 청년이 동작을 멈추었다.
암벽에서 먼지가 휘날리더니 다시 흩어졌다. 암벽에는 칼자국들로 한 폭의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뚝 선 산봉우리에 강물이 흐르는, 생동감 있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칼날로 암벽에 그림을 그리다니, 청년의 도법은 정말 대단한 경지였다. 힘을 장악하는 능력 또한 대단했다.
청년은 암벽을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더니 다시 손목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줄기의 빛이 나타나더니 산봉우리를 잘라냈다.
우르릉!
거대한 산봉우리가 마치 종잇장처럼 두 개로 갈라지더니 무너져버렸다.
청년은 몸을 움직이며 허공으로 올라가서 휘날리는 먼지를 피했다.
이어서 그는 하얀 영패를 꺼내들었고, 영패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몇 줄의 글씨가 나타났다.
청년의 눈이 반짝이며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드디어 해제되었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한줄기의 노란빛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백원왕의 등이 꺼졌다는 소식은 이미 흘러나가서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사방에서 적지 않은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성지에서는 구전현공과 관련된 단약이나 영물의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았다.
반 년이 지났다.
청란성지 황계 구역 가장 서쪽의 황량한 산 위, 푸른 옷을 입은 인족 청년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서 있었다.
그의 몸은 우뚝 솟은 게 마치 하늘을 찌르는 투창 같았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얼굴선이 선명했다.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의 옆에는 그의 키와 비슷한 길이에 굵기가 팔뚝만 한 검은 여의빈철곤이 세워져 있었다.
잠시 후, 석목이 눈을 번쩍 뜨자 그의 눈에서 옅은 금빛이 은은하게 비추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사라지고, 있는 듯 없는 듯한 기류의 소용돌이가 그 주위에 형성되었다.
석목은 한쪽 팔을 내밀어 여의곤을 잡더니 발끝으로 밑단을 살짝 쳤다. 곤봉이 위로 날아오르자 그는 다른쪽 팔을 들어 그것을 가로로 쥐었다.
이어 그는 두 손으로 곤봉을 잡고 팔을 흔들며 허공에 원을 그렸다. 맨눈으로도 확인되는 하얀 기류가 그 원에서 뿜어져 나왔다.
초반에는 그 기류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의 손이 빨라질수록 기류도 함께 빠르게 돌아갔고, 잠시 후 물독만 한 하얀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회오리바람이 만들어지자 석목의 발 주변에서 모래알이 날아오르며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석목이 갑자기 곤봉을 거두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 곤봉을 휘둘렀다.
훅!
하얀 영사(靈蛇)의 공격에 작은 산이 터져버렸다. 하얀 영사는 수많은 파도를 일구며 날아다니는 돌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영사출동(靈蛇出洞)이라는 것이었다. 곤봉의 끝에 진기를 모은 뒤 순간적인 힘으로 날려 보내서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일종의 기폭술(气爆术) 같은 것이었다.
곤봉을 거둔 석목은 멈추지 않고 다시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곤봉 끝으로 앞을 찌르면서 큰 보폭으로 전진했고, 순식간에 허공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어서 몸 뒤편에서부터 앞을 향해 큰 원을 그리며 등 뒤의 여의곤을 내리쳤다. 그 모습은 하얀 원숭이가 번천곤으로 금색 교룡을 공격하던 모습과 매우 흡사했는데, 다만 기세는 훨씬 약했다.
석목은 곤봉을 바닥까지 내리치지 않고 허공을 공격했다.
펑!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고, 석목의 몸은 그 반동에 의해 하늘을 향해 십 장 정도 올라갔다.
수십 장 높이의 허공에서 금빛이 다시 한 번 반짝였다. 석목의 몸이 뒤로 활처럼 구부러지더니, 여의곤을 꽉 붙잡고 다시 뒤에서부터 앞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석목의 귓가에 울렸고, 여의곤은 공기 속에서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키더니, 땅과 십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불길에 휩싸였다.
콰지직!
천 근은 되어 보이는 여의곤이 땅을 내리쳤다. 발밑의 땅이 크게 흔들리며 먼지가 하늘로 휘날려서 주위를 희미하게 덮어버렸다.
쩍!
땅에 수많은 균열이 생기더니 거미줄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졌고, 이어서 으깨진 두부처럼 그대로 꺼져버렸다.
석목은 땅이 꺼지기 직전 몸을 일으켰고, 발밑에 하얀 구름이 나타나서 그의 몸을 받쳤다.
잠시 후 먼지가 사라지자 석목은 아래를 둘러보았다. 울퉁불퉁하던 산봉우리가 수 리 정도 꺼져버리면서 중앙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고, 수많은 돌이 그 안으로 굴러들어가고 있었다.
석목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원노반암(猿猱攀岩)과 창응개정(蒼鷹蓋頂)을 함께 사용했는데, 이정도로 강한 파괴력이 나올 거라고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그의 육체가 더 강해진다면 원노반암을 연속으로 두 번 시전할 수 있을 것이고, 창응개정의 위력 또한 두 배 정도는 증가할 것이다. 반 년 동안 열심히 수련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통천십팔곤은 전팔식(前八式)과 후십식(后十式)으로 나뉘는데,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매 움직임마다 상당한 기세가 필요했다. 석목은 지금 전팔식만 숙련된 상태였고, 후십식은 아직 서툴렀다.
전팔식은 방금 전의 영사출동, 원노반암과 창응개정 외에도 권조지반(倦鸟知返), 호시출합(虎兕出柙), 벽교번강(擘蛟翻江), 광용난무(狂龙乱舞) 등이 있었다. 전부 위력이 무엇과도 비할 바 없으며, 기개가 드높은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중 권조지반은 창법의 회마창(回马枪)과 비슷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긴 공봉을 회전시켜 던져 적의 등 뒤로 가게 하여 갑자기 끌어오는 것인데 짐작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 보이지 않게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여의곤봉의 무게와 크기는 전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서 쥐도 새도 모르게 숨겼다가 원하는 무게로 되돌릴 수 있어서, 적과 대치 상태일 때 뜻밖의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리고 “벽교번강”은 곤봉의 무게와 시전자의 힘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며 주변의 천지원기를 끌어모아 교룡처럼 사납게 다가가 닿는 곳마다 전부 무너뜨릴 수 있다.
다른 것도 전부 각각의 특징이 있었다. 수련을 계속해서 숙련되고 나면 생각지 못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석두, 큰일이야! 큰일났어!”
여의빈철곤을 거두어들인 석목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채아가 다급하게 날아와서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천천히 얘기해. 무슨 일이야?”
석목이 물었다.
“석두, 네가 나한테 극음의 기운의 영재와 관련된 소식을 늘 확인하라고 했잖아. 오늘 제풍 그 뚱보가 그러는데, 극음의 기운 영재의 가격이 올랐대!”
채아가 말했다.
“얼마나 올랐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것까지는 물어보지 않았어. 뚱보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바로 너에게 알려주려고 온 거야. 그런데 내가 그 뚱보에 대해 좀 아는데, 아마 그 녀석도 자세히는 모를 거야.”
채아가 설명했다.
“잠시 나갔다 올게.”
채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석목이 등 뒤에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한줄기의 붉은 빛으로 변해서 현영탑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잠시 후, 석목은 천보각으로 들어섰다. 예전의 뚱뚱한 인족 관사가 그를 보고 마중을 나왔다.
석목이 말하려는 순간, 관사가 그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 석목은 급히 입을 닫았다.
“손님, 내실로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뚱뚱한 관사는 인사를 한 뒤 석목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머뭇거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근에 극음의 기운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뚱뚱한 관사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극음의 기운을 지닌 영재들의 가격이 두 배는 넘게 올랐어요.”
석목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인가요? 그런 기운이 필요한 공법이 많지는 않은 걸로 아는데요. 왜 갑자기 서로 사들이려 하는 거죠?”
관사는 기이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건……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듣기로는 성지의 중요한 등 하나가 꺼졌다고 합니다. 아마 그와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석목은 이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차렸다.
‘백원왕의 혼등이 꺼졌고, 그 소문이 전부 퍼진 것이다.’
성지에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래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극음의 기운은 구전현공의 두 번째 단계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격이 올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