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398화 (398/916)

398화. 땅속으로 들어가다

석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얼음 봉황의 정혈은…….”

“실은 그 얼음 봉황의 정혈은 이틀 전에 누군가가 두 배나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사갔습니다.”

관사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네? 그게 누구죠?”

석목은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상대로 뚱뚱한 관사는 송구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고객의 정보를 노출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석목도 더 이상 그를 난감하게 만들지 않고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참을 망설이던 뚱뚱한 관사는 잠시 후 손가락 하나를 세워 위쪽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위층의 상급 제자 누군가가 얼음 봉황의 정혈을 사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가게에는 영재 외에 정보도 거래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극음의 기운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석목은 한참 동안 침묵에 잠겼다가 물었다.

뚱뚱한 관사는 잠깐 멈칫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극음의 기운은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나오는 곳은 매우 험합니다. 당신은 성지의 제자이니 조금 시간을 들인다면 자원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려는…….”

“혹시 알고 계신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뚱뚱한 관사의 말을 중간에서 끊으며 말했다. 그리고 진묘계에서 작은 영석 주머니를 꺼내 상대의 손에 쥐어주었다.

석목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구전현공과 관련된 영재를 상점에서 구매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의심을 받거나 뒷조사의 대상이 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충분한 영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모든 게 풍족한 상급 제자들과는 경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직접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

“좋습니다. 우리 모두 인족이니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다만 그곳은 위험하니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뚱뚱한 관사는 영석 주머니를 챙기더니 어딘가에서 푸른 지도를 가져와서 석목에게 주였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지도를 받아들고 손을 모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참, 만약 그곳에서 다른 희귀한 영재를 찾게 된다면 가져와서 저에게 파셔도 됩니다. 값은 제대로 쳐드리지요.”

뚱뚱한 관사가 말했다.

* * *

한 달 뒤, 청란성에서 북쪽으로 만 리 밖에 있는 어느 산맥.

사방이 얼음으로 뒤덮이고 눈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석목은 어느 검은 동굴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몸에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겉옷을 두르고, 눈에서는 반짝이는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손에는 너덜너덜해진 푸른 지도가 들려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휘날리는 지도 위에는 예닐곱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x’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고, 이제 남은 것은 한 개였다.

앞쪽 동굴에서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석목은 차가운 기운이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잠깐 사이에 머리카락과 눈썹에 두꺼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석목은 푸른 지도를 집어넣고 큰 걸음으로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두르고 있는 가죽옷은 통류방에서 영석 십만 개를 주고 산, 하급 영기에 버금가는 귀한 옷이었다. 실질적인 방어기능은 없었지만 한기와 얼음 속성의 술법을 막는 데는 제법 효과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극단적인 자연환경에 딱 맞는 옷이었다.

석목이 동굴로 들어가자 하늘에서 휘날리며 내려온 눈이 그의 발자국을 덮어버렸다.

동굴 속은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고, 바깥보다도 더 차가웠다. 다행히 석목은 가죽옷을 입고 있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동굴은 길게 뻗은 한 개의 통로로 되어 있었는데, 공간은 넓지 않았으며 벽은 전부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간신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옆으로 걸어서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동굴의 통로로 일 리 정도 걸어 들어가자 십 장 정도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동굴은 전체적으로 타원형이었고, 주변은 전부 얼음으로 뒤덮여서 거울처럼 매끈했다. 석목이 방금 들어온 입구 말고 다른 출구는 없었다.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번쩍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주변의 얼음은 두께가 십 장은 되었고, 바닥은 전부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석목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앞을 바라보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향했다.

“그런 거였군.”

석목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주먹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땅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발밑의 단단한 얼음이 깨졌다. 석목은 중심을 잃고 얼음과 함께 그대로 빠져버렸다.

석목은 허공에서 한 손으로 법결을 펼쳤다. 그러자 하얀 구름이 그의 발밑에 나타나서 추락을 막아주었다.

이어 석목은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여전히 두꺼운 얼음들이 커다란 거울처럼 서 있었고, 아래의 땅에 닿기까지는 아직도 적지 않은 거리가 남아 있었다.

석목은 머리를 들어 자신이 빠지면서 생긴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법결을 만들며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후 굉음이 들려왔다.

흔들림 없이 바닥에 내려선 석목은 자신이 거대한 수정 동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의 지면은 아래를 향해 가파르게 뻗어 있었고, 끝없이 넓은 공간에는 얼음 돌기둥이 서 있었다.

석목은 그 자리에서 잠깐 망설인 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가슴이 떨려왔다. 그는 얼음과 눈이 전부인 이곳에서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길은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었고, 공기 중의 차가운 기운은 더욱 짙어졌다. 뼈를 찌르는 듯한 찬 기운이 두꺼운 가죽옷을 뚫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석목은 진기를 펼쳐 몸을 보호했지만, 그럼에도 덜덜 떨릴 정도였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갔다.

반 시진 후, 땅이 좀 더 평탄해지고 기온은 점점 낮아졌지만, 그 외에는 주변의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가죽옷과 몸을 보호하는 진기는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했다.

석목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어엿한 지계 중기의 무인인데, 이러다가는 얼어죽을 것 같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법력을 사용했고, 날개를 펼쳐서 몸을 감싼 뒤 계속 걸었다.

그렇게 일 각 정도를 걷던 석목이 다시 멈췄고, 아래쪽의 얼음벽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천보각 주인의 정보와 그가 준 지도에 따르면, 극음의 기운은 극도로 차갑고 습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땅 속 깊은 곳에만 존재하며, 이 산맥의 일곱 곳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석목은 그중 여섯 곳을 다녀왔지만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한 곳을 찾아왔는데, 이곳은 차가운 기운이 가장 강했다. 앞서 들어간 곳 중 가장 깊은 곳이 이삼 리 정도였지만, 지금은 벌써 땅 속으로 십 리나 들어왔다. 정황상 이곳은 극음의 기운이 있을 만한 가장 유력한 장소였다. 그러나 석목은 아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눈앞에 놓인 얼음벽을 훑어보았다.

얼음벽은 전체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높이는 백 장 정도 되어 보였는데, 옆으로 끝도 없이 뻗어 있어서 길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쿵쿵!

석목은 앞으로 다가가 얼음벽을 강하게 몇 번 두드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그 위에 가져다 댔지만, 뼈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기운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곳의 온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다행히 석목은 적원화경을 수련했고, 구전현공 첫 단계의 극양의 기운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지계 무인이었다면 가죽옷이 추위를 막아준다 해도 이미 사람 모양의 얼음 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몸을 보호하는 날개 때문에 진기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석목은 잠시 고민하더니 신식을 사용해 얼음벽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목신통도 펼쳐서 겹겹이 쌓인 얼음층을 뚫고 안쪽을 훑었다. 지금으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전부 두꺼운 얼음뿐이었고, 극음의 기운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어쩔 수 없이 한 방향을 선택했고, 그쪽 얼음벽을 따라 걸어가면서 다시 찾아보았다. 이곳을 전부 뒤져야 한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을 걸어가자 앞쪽에 또 다른 넓은 동굴이 나타났다. 얼음벽은 길게 뻗어서 이 동굴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석목은 다시 답답해졌다. 동굴 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온도만 더 낮아진 것 같았다.

이런 극한의 환경에 극음의 기운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혹독한 곳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식으로 찾다가는 몸속의 진기와 체력을 소모해버려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석목은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그 순간 무엇인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석목은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빠르게 앞을 향해 걸어갔다. 얼음벽의 가장 깊은 곳에 조금 뛰어나온 부분이 있었는데,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석목은 깊게 호흡을 했고, 그의 눈에 기쁨의 기색이 어렸다.

주변의 모든 차가운 기운이 어떤 흡입력에 의해 이 동굴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우연히 발견한, 조금 튀어나온 이곳으로 다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석목은 곧바로 영목신통을 시전했다. 그의 두 눈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살짝 튀어나온 얼음벽을 뚫고 들어갔다.

이 얼음벽의 두께는 십 장 정도 되는 듯했다. 양쪽에 있는 얼음벽보다 훨씬 두꺼웠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그 중심에는 머리카락 열 가닥 정도 되는 얇은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투명에 가까운 기운이 마치 영사처럼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보자 석목의 마음에서 기이한 직감이 떠올랐다. 그 직감은 점점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가 얼음 봉황 정혈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매우 흡사한, 본능적으로 생긴 깊은 갈망 같은 것이었다.

“극음의 기운!”

석목은 기뻐서 소리쳤다. 그는 이 얼음벽 안에 숨겨진 것이 그가 찾는 극음의 기운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다시 평정심을 찾은 그는 어이가 없었다. 얼음벽이 너무 두터워서 깨려면 꽤나 애를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석목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 속에서 이쑤시개만 한 작은 곤봉을 꺼냈다.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그 작은 곤봉은 그의 손 안에서 순식간에 커졌다. 바로 여의빈철곤이었다.

운성현철을 녹여 넣은 여의곤은 운철흑도처럼 더 이상 진묘계에 넣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기에, 석목은 그것을 작게 만들어서 입 안에 넣어두었다.

석목은 두 손으로 여의곤을 들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얼음벽과 간격을 두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힘을 모아 두 손으로 쥔 곤봉을 힘차게 내리쳤다.

쿵!

얼음벽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오더니 수많은 얼음 가루가 주위로 흩어졌다.

여의봉은 강한 힘의 반동으로 뒤로 날아갔다. 석목도 여의봉을 잡은 채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몸의 균형을 잡은 그는 자신이 공격한 곳을 바라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거대한 얼음벽 위에 한 장 정도 되는 원형의 구멍이 나타났고, 그 위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나 있었다.

균열은 얼핏 보기에는 촘촘하게 보였으나, 얼음 표면에만 나 있었다. 안쪽은 깨지지 않아서 두꺼운 얼음벽은 여전했다.

석목은 그 구멍을 몇 번 바라보더니 손에 든 곤봉을 작게 만들어서 다시 입 속에 집어넣었다.

훅!

석목의 몸을 감싸고 있던 날개가 갑자기 펼쳐졌다. 이어서 한줄기의 하얀 화염이 그의 왼쪽 팔에서 맴돌았고, 줄기줄기 붉은 무늬가 나타났다.

날개를 걷었지만 석목은 조금의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뜨거운 기운이 주위를 감돌아서 따뜻하고 편안했다. 게다가 왼팔의 하얀 화염이 밝게 타오르면서 주변의 온도가 꽤나 올라갔다.

그때 석목은 얼음벽을 통해 몇 가닥의 극음의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들은 마치 석목의 극양의 기운에 자극을 받은 듯 더 빠르게 움직였고, 계속해서 얼음벽에 부딪치며 석목을 향해 다가오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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