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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00화 (400/916)

400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거미는 두 눈에 붉은 실핏줄이 생겨서 흉악한 이빨을 부득 갈고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게 분명했다.

이어 하얀빛이 번지더니 거미의 몸통이 크게 부풀었고, 눈 깜박할 사이에 두 배나 커졌다. 뿜어내는 기운도 더욱 강력해져서 천위 초기의 정상에 도달한 듯했다.

거미의 앞발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바퀴가 달린 듯 석목을 향해 덮쳐왔다.

거미가 입에서 굵은 빛기둥을 뿜어내자 그것들은 다시 흩어져 수많은 고드름으로 변했고, 동굴 전부를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우며 석목을 공격했다.

“흥!”

석목은 코웃음을 치더니 여의곤을 그대로 던졌고, 여의곤은 검은빛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열 배나 커졌다.

석목이 팔을 흔들자 여의곤이 순식간에 여러 개의 검은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이는 통천십팔곤의 전팔식 중 하나인 벽교번강이었다.

주위의 천지 원기가 곤봉의 그림자에 의해 움직이며 공기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날아오던 고드름들은 그 흉흉한 공기에 부서졌고, 얼음 부스러기가 주위로 날렸다. 얼음 거미의 공격을 한 방에 막아낸 것이다.

거미의 눈은 놀란 기색을 띠더니 빛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리고 멈칫하더니 또다시 땅으로 향했다. 얼음 속으로 숨어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때 거미의 눈앞에 사람 그림자가 희미하게 번졌고, 석목이 그 앞을 막아섰다.

“망할 놈, 어딜 도망가느냐!”

속도만 놓고 보자면 날개를 편 석목의 속도가 거미보다는 훨씬 빨랐다.

“창응개정!”

석목이 큰소리로 외치자 손에 든 여의곤이 강한 빛을 뿜어내며 다시 한 번 얼음 거미를 내리쳤고, 곤봉 그림자 주위에서 천지 원기가 소용돌이를 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얼음 거미의 눈에 두려운 기색이 어렸고, 거미가 입을 크게 벌리자 그 속에서 하얀 수정 한 알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점점 부풀더니 한 장 정도까지 커져서 곤봉의 그림자와 강하게 부딪쳤다.

쿵!

굉음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찢어지며 검은 공간 균열이 만들어졌고, 다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동굴이 세차게 흔들리며 얼음덩어리들이 떨어져 내렸다.

검은 곤봉은 다시 뒤로 튕겼고, 동시에 하얀 수정도 땅 위에 떨어지면서 균열이 생겼다.

요단이 손상된 얼음 거미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그것을 다시 빨아들이려 했다. 하얀 수정이 허공에 날아올라 순식간에 작아졌고, 다시 거미의 입으로 향했다.

그때 바늘처럼 얇은 검은 그림자 한줄기가 하얀 수정과 함께 거미의 입으로 날아들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거미는 당황하고 있던 참이라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음 거미의 앞에 석목이 나타났다.

거미가 두 눈에서 빨간빛을 반짝이며 두 앞다리를 위로 들어서 칼자루 두 개를 만들어 석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목이 머리를 흔들고, 그가 얼굴에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두 손으로 법결을 만들어 크게 소리쳤다.

“커져라!”

거미의 몸통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두 발도 석목의 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허공에서 그대로 멈추어버렸다.

이어 거미의 배가 불룩해지더니, 마치 몸이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듯 양쪽으로 튀어나왔다.

얼음 거미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땅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퍽!

얼음 거미의 배에 드디어 두 개의 큰 구멍이 생기더니 굵은 곤봉이 뚫고 나왔다. 여의곤이였다.

석목은 얼음 거미의 머리 위로 올라가서 하얀 화염을 뿜어내는 왼손으로 거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거미의 머리는 힘없이 터져버렸고, 푸른 액체가 주위로 가득 튀었다. 거미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휴우!”

석목은 한숨을 길게 내뱉고 왼손 주먹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흔들자 여의곤이 거미의 몸통에서 나와 그의 손에서 다시 손가락 크기로 작아졌다.

그는 손에서 붉은 화염을 만들어 여의곤에 묻은 피를 전부 태워버렸다.

석목은 손에 든 검은 곤봉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크기 조절이 가능한 여의빈철곤과 통천십팔곤법이 합쳐지니 그 위력은 엄청났다. 그뿐만 아니라 작게 만들어서 눈속임까지 할 수 있으니, 정말 다양한 쓰임새가 있었다. 석목은 여의곤이 점점 더 사랑스러워졌다.

그는 손을 흔들어 여의곤을 거둔 후, 얼음 거미의 시체 옆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 얼음 거미는 천위의 요수인 만큼 몸 전체가 보물이었다. 특히 요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금전검을 꺼내 얼음 거미의 다리 여덟 개를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거미의 다리는 단단하기 그지없어서 좋은 재료로 쓰일 수 있었다.

이어 석목은 얼음 거미의 몸통을 갈랐고,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수정 구슬이 땅에 떨어졌다. 얼음 거미의 요단이었다.

석목은 기뻐하며 그것을 챙겼고, 하얀 요단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요단만 해도 수백 개의 상급 영석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여의곤의 공격으로 균열이 조금 생겨서 가치가 하락하긴 했을 것이다.

석목은 거미의 사체를 이곳저곳 뒤졌다. 돈이 되는 것이 더 있는지 모조리 찾아볼 속셈이었다.

“응?”

석목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손에는 사람 머리만 한 누에 모양의 물건이 들려 있었다.

“이건 뭐지?”

석목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얀 물체는 거미줄로 휘감겨 있었고 뼈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심지어 요단보다도 훨씬 차가웠다.

“얼음 거미 몸속에서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물건인가?”

석목은 이리저리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는 거미류의 요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석목은 눈빛이 반짝이며 금전검을 들어 그 누에 모양의 물건을 내리쳤다.

펑!

금전검은 그대로 튕겨 나갔고 거미줄은 한 가닥도 잘리지 않았다.

“참, 이 거미줄은 원래 단단했지.”

석목은 턱을 매만지더니 왼손에서 하얀빛을 뿜어내며 양의 기운을 금전검에 불어넣자 금전검이 곧 하얀 화염에 휩싸였다.

이어 석목이 팔을 흔들자 금전검이 한줄기의 하얀 검 그림자로 변신하여 그 물건을 내리쳤다.

퍽!

그 누에 모양의 물건이 가볍게 두 덩어리로 갈라졌다.

한줄기의 얇고 투명한 기체가 그 안에서 흘러나왔고,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음의 기운!”

석목은 극도의 차가운 기운을 느끼면서 입이 찢어질 듯 좋아했다.

이 음의 기운 한줄기는 전에 수집했던 몇 줄기보다 질이 훨씬 좋았다. 게다가 기운이 강해서 중상급은 되어보였다.

그는 빠르게 옥병을 꺼내들었고, 투명한 기체가 빨려 들어가자 병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석목은 너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 있는 천위 요수를 죽였을 뿐인데, 그 체내에 이렇게 질이 좋은 음의 기운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그가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를 수련하는데 충분했다. 이제 천수의 혈액만 있으면 된다.

석목은 한참 동안 옥병을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두 덩어리로 갈라진 누에 모양의 물건도 챙겼다.

그는 다시 얼음 거미의 몸속을 뒤졌지만, 더 이상 가치 있는 물건은 없었다. 석목은 몸을 일으켜 거미 사체를 땅의 균열 속에 묻어두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석목은 더 지체하지 않았고, 화염의 힘을 펼쳐 입구를 막고 있던 거미줄을 찢어버린 뒤 밖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얼음 동굴에서 나오자 눈은 그쳐 있었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따뜻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는 햇빛 아래 서서 천천히 몸을 녹였다.

석목이 청익비차를 타고 돌아가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쿵!

석목은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백 장 정도 거리에 있는 산봉우리에서 눈덩이가 우르르 굴러 떨어졌다. 이어 산 중턱이 폭발하더니 구멍이 한 개 나타났고, 두 갈래의 빛이 그 안에서 날아왔다.

그중 한 사람은 초록색 피풍을 두르고 푸른 천으로 얼굴을 절반을 가린 채, 초롱초롱한 두 눈만 내놓고 있었다. 여경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옷을 입고 새우등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의 왼쪽 얼굴은 칠흑같이 검었는데 오른쪽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어서 매우 추한 생김새였다.

여경과 못생긴 남자의 옷에는 전부 얼음이 묻어 있고 모양새가 초췌해보였다.

그들은 석목과 눈이 마주치자 이내 빛을 반짝이며 그를 향해 날아왔다.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군.’

석목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석목! 네놈이 여기서 뭐하는 거냐?”

여경은 의아한 눈초리를 하고 차갑게 물었다.

“내가 어디서 뭘 하든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텐데?.”

석목은 그와 더 엮이기 싫어서 싸늘하게 답했다.

여경은 그 말을 듣자 표정이 굳었다. 그가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고 할 때, 옆에 있던 못생긴 남자가 물었다.

“여 사제, 아는 사람인가?”

“요 사형, 이 석목이라는 사람은 얼마 전에 성지에 입문한 신입 제자입니다. 저희는 입문 시험에서 잠시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여경이 대답했다.

“동문이로군.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못생긴 남자는 여경의 말을 듣더니 아니꼬운 눈빛으로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청익비차를 부르며 말했다. 방금 전 얼음 거미와 싸우느라 진기와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기에,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잠깐!”

그때 못생긴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석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허허, 석 사제는 엄청난 분이었군요. 우리 두 사람이 이 얼음 동굴에서 보름을 찾아도 찾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니.”

못생긴 남자가 웄으며 말했다.

“뭐라구요?”

여경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석목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석목은 모르는 척을 했다. 그러나 가슴이 내려앉으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가진 이 보물은 다른 능력은 없지만, 음의 기운을 가진 물건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지요. 저장 공간에 숨겨져 있다 해도 귀신같이 찾아냅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감지능력은 더욱 강력해지지요.”

못생긴 남자가 느긋하게 말하며 왼쪽 팔을 들어보였다. 그의 왼쪽 엄지에 끼워진 반지가 푸르스름한 빛을 뿜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겁니까?”

석목이 차갑게 물었다.

석목을 보는 여경의 눈빛은 더 어두워졌다.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닙니다. 나는 다만 석 사제와 거래를 하고 싶은 것이니 너무 긴장하지는 마세요.”

못생긴 남자가 말했다.

“무슨 거래죠?”

석목이 차분하게 물었다.

“허허, 석 사제가 이 험한 곳까지 와서 음의 기운을 채집하는 것을 보니, 성지에서 음의 기운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기회로 삼아 돈을 벌고 싶은 것이겠지요?”

못생긴 남자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사제가 이번에 운이 좋아 음의 기운을 찾아내서 판다 해도, 그렇게 해서 바꾼 자원으로는 잠깐의 수련만 할 수 있을 뿐이죠. 다음에도 운이 따르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 음의 기운 물건에 대한 대가는 두둑하게 챙겨 드릴 테니 나에게 팔고, 앞으로 성지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찾아 오시요.”

“석목, 이분은 황계 구역 청란방에서 삼십칠 등인 요용(廖勇) 사형이시다. 이렇게 스스로를 낮추고 너에게 공정한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니, 기회를 줄 때 분수를 알도록 해.”

석목이 말하기도 전에 여경이 턱을 치켜들며 말했고, 그는 공정한 거래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주었다.

못생긴 남자가 활짝 웃는 걸 보니 여경의 아첨이 먹힌 듯했다. 다만 그 웃음이 너무 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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