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화. 두 번째 단계를 수련하다
뚱뚱한 관사는 급히 옥합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주먹만 한 하얀 요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손에서 푸른빛을 발하더니 조심스럽게 요단을 들고 자세히 훑어보았다.
잠시 후, 뚱뚱한 관사는 옥합을 닫으며 말했다.
“이건 천위 경지인 빙정설주(冰晶雪蛛)의 요단이 맞습니다. 짙은 영기를 품고 있네요. 다만 요단에 균열이 조금 생겨서 가치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관사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다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석목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더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재료들을 얼마에 사주실 수 있나요? 괜찮은 가격이라면 전부 팔겠습니다.”
뚱뚱한 관사는 옥합을 내려놓고 탁자 위의 다른 재료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가격을 제시했다.
“이 재료들의 상태는 매우 좋군요. 이렇게 합시다. 음의 기운까지 포함해서 우리 천보각이 최상급 영석 일천오백 개에 사들이지요. 석 도우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석목은 눈을 빛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뚱뚱한 관사도 침착하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난번 이곳에서 천수의 정혈을 파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천수인 백택(白澤)의 정혈 두 방울도 있던데, 혹시 그게 아직 있나요?”
석목이 갑자기 물었다.
“있습니다.”
뚱뚱한 관사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 물건들은 전부 가져가시고 영석은 안 주셔도 됩니다. 그 대신 백택의 정혈 두 방울만 주십시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구전현공의 두 번째 단계를 수련하려면 천수 정혈이 필요했다. 특히 음의 기운이 주로 필요했는데, 차가운 음 속성의 천수인 백택의 정혈은 거기에 아주 적합했다.
뚱뚱한 관사는 안색이 변하더니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석 도우, 정말 예리하십니다. 다만 그 두 방울의 백택 정혈은 지금 최상급 영석 칠천칠백 개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장사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 상점에서는 모든 물건에 먼저 비싼 가격을 붙여서 흥정의 여지를 둔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는 한 개를 팔고 또 한 개를 사들이는 거라 동시에 두 건의 거래가 성사되는 것인데, 그 이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뚱뚱한 관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침묵했다.
석목은 관사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이 거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다른 가게에 가서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석목은 천천히 일어서며 탁자 위의 재료들을 다시 넣으려 했다.
“좋습니다. 저희 단골이신데, 거래합시다.”
뚱뚱한 관사는 다급하게 일어서서 석목을 말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석목은 관사를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석 도우,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백택의 정혈 두 방울을 가져오겠습니다.”
뚱뚱한 관사는 마음이 급해진 듯 빠르게 몸을 돌려 나갔다.
“석두, 저 뚱보는 지금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 속으로는 이 거래를 엄청나게 하고 싶어 하면서도, 마치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말이야. 네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면 확 들통이 나게 만들어버리려고 했어!”
뚱뚱한 관사가 나가자 채아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인지상정이야.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법이지. 아무리 많이 벌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궁상맞은 표정을 하고 있잖아.”
석목이 말했다.
“너희 인간은 정말 교활해. 조금도 솔직하지 않잖아.”
채아가 아니꼬운 듯 말했다. 석목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고 뚱뚱한 관사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부문으로 봉인된 하얀 옥병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석목은 그 물건을 보자 눈을 반짝였다.
“석 도우, 천수 백택의 정혈 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뚱뚱한 관사는 손에 든 옥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석목은 바로 옥병을 들고 가차 없이 부문을 찢은 뒤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차가운 음의 기운이 그 속에서 흘러나오며 실내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의 기운은 석목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병 입구를 통해 안쪽을 바라보았다.
옥병 속에는 푸른 액체가 한 방울 있었다. 그 액체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해보였는데, 얼음 거미의 요단보다도 훨씬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였다. 비록 흰 원숭이의 정혈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푸른 액체의 기운과 순도를 보니 천수의 정혈이 확실했다.
그는 옥병을 잘 봉하고 또 다른 병을 들어 안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건은 아무 문제없군요.”
석목이 병 두 개를 챙겨 넣었다. 뚱뚱한 관사도 웃으며 옷자락을 흔들더니 탁자 위의 물건을 챙겼다.
이로써 양쪽 모두 만족스러운 거래를 한 셈이었다.
석목은 뚱뚱한 관사와 잡담을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천보각을 나섰고, 통류방을 떠났다.
동부에 돌아온 후 그는 제풍에게 분부를 내려서 관사와 시종들을 전부 소집했다.
잠시 후, 그가 있는 동부 앞의 광장에 취환을 제외한 사람이 삼백 명 가까이 모였다. 그들은 모두 임시로 만들어진 높은 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대 위에는 석목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채아가 그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석목으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 꽤 많았다. 그가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일 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동안 폐관수련을 하거나 멀리 나갈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곳의 일은 전부 채아와 제풍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석목은 영지의 수확 십 분의 일을 모든 시종에게 나누어주었고, 그로 인해 상당한 인심을 얻었다. 그 덕분에 영초와 영화를 심는 시종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오히려 연도에 제한을 받지 않는 영초들의 수확이 크게 늘어서 수입도 지난 어느 해보다 훨씬 많았다. 물론 이런 사실도 제풍이 말해줘서 알게 된 것이다.
“부주님, 전부 모였습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제풍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오더니 석목을 향해 손을 모으며 말했다.
석목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그동안 영지의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고, 영초와 영재의 수확도 풍성해서 제 마음에 큰 위안이 됩니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앞으로 한동안 밖에 나가 있을 텐데, 늘 그래왔던 것처럼 동부의 일은 제풍과 여러 관사가 책임질 것입니다.”
“네!”
제풍과 관사들이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밖에 더 전달할 것이 있습니다. 전에 약속했던 수확의 일 할 외에, 앞으로 매년 거두어들이는 수입이 전년도를 넘어설 경우, 초과한 수입의 이 할을 장려금으로 지급할 것입니다. 어떻게 분배할지는 제풍과 채아가 함께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모든 사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사람들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채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석목을 보며 물었다.
“석두, 이번에는 뭐 하러 가는 거야? 나는 또 안 데려가려고?”
“그곳은 워낙 환경이 열악하고 추운 곳이라 먹을 것도 없어. 네가 따라간다 해도 오랜 시간 영수주머니에 있어야 할 거야. 그래도 갈래?”
석목이 말했다.
“그래? 석두, 마음 편히 다녀와. 이곳은 나랑 제풍 뚱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채아는 석목의 말을 듣자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 *
보름 뒤 청란성 북부.
석목은 일전에 음의 기운을 찾으러 갔던 동굴 앞에 있었다.
그는 가죽옷을 두르고 언덕 위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여전히 사방천지가 얼음 세계였고 하얀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여경, 요용과 싸웠던 흔적도 이미 하얀 눈에 덮여 사라졌다.
석목은 다시 두 눈을 감고 신식을 통해 주변 수십 리를 관찰해보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떠올랐다.
신식의 범위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경과 요용은 이미 이곳을 떠난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돌리며 얼음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동굴 입구 쪽을 향해 몸을 몇 번 번쩍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왼손에서 하얀빛을 강하게 내뿜으며 동굴 벽을 내리쳤다.
콰르르!
동굴 절벽의 절반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입구를 막아버렸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안쪽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는 지난번에 찾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얼음 거미와 싸웠던 동굴을 빠르게 찾아냈고, 싸움의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석목이 두 손을 흔들자 한줄기의 푸른빛이 흘러나와서 푸른 진법의 빛의 막을 만들어냈다.
그는 만족해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은 그가 특별히 사들인 물 속성의 진법인데, 기운을 막을 수도 있어서 방어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반나절이 지나고 석목은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은은하게 빛났고, 마음과 정신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서 백택의 정혈을 담은 옥병의 부문을 찢어버리고 병뚜껑을 열었다. 으슥하고 차가운 기운이 병 속에서 흘러나왔고, 원래부터 낮았던 주변의 온도가 더 낮아졌다.
석목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뱉으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작고 푸른 액체가 병 속에서 날아 나와서 사슴을 닮은 꼬마 요수로 변해 그의 왼손에 떨어졌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실체가 있는 짐승을 바라보듯 그것을 훑어보았다.
꼬마 요수는 몸을 한번 파르르 떨더니 머리를 들었고,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짖는 동작을 취하다가 다시 사라졌다. 이어 석목의 오른쪽 손바닥에 푸른 얼음 수정 한 층이 나타나더니 이내 그의 팔 쪽으로 퍼졌다.
석목은 긴장한 얼굴로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 공법을 펼쳐보았다.
그의 오른손에서 희미한 빛이 나타나며 푸른 액체가 서서히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얼음 수정도 조금씩 사라졌다.
석목은 그것을 바라보며 긴장을 조금 풀고 계속해서 공법을 펼쳤다.
사흘이 흐르자 그의 오른쪽 손바닥에 있는 푸른 얼음 수정은 완전히 사라졌고, 천수 백택의 혈액도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이어 석목은 땅에 놓인 옥병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흔들자 또 한 방울의 푸른 혈액이 그의 오른손에 놓였다.
* * *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천수 백택의 정혈 두 방울은 석목의 몸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석목의 오른팔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한 마리의 기이한 짐승 허영이 비스듬히 나타났다.
그 짐승은 몸통 전체에 푸른 털이 자라 있었다. 몸집은 사슴과 비슷했는데 머리에는 산호 같은 붉은 뿔이 자라 있었다. 등 뒤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모습이 매우 웅장하고 강인하게 보였다.
팔의 푸른빛이 사라지자 석목은 또 다른 옥병을 꺼내들었다. 그 안에는 얼음 거미 요단에서 채취한 상급 음의 기운이 들어 있었다.
석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음의 기운이 병 속에서 날아올라 천천히 그의 오른손 위에 떨어지더니 뱀처럼 손을 휘감았다.
석목의 오른손은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버렸고,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듯 몸을 떨었다.
음의 기운은 차가운 정도가 백택의 정혈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그가 백택 정혈을 흡수해서 차가운 기운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그의 손은 아마도 음의 기운에 의해 완전히 얼어붙어서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물론 백택 정혈을 흡수했다 해도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고, 석목은 이를 악물고 묵묵히 진혼주를 펼쳐서 통증을 짓누른 후에야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이어 석목은 다시 눈을 감고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의 공법을 펼쳤다.
잠시 후, 그의 오른손에서 옅은 검은 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음의 기운이 변신한 하얀 얼음이 그 검은 빛에 의해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석목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의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계속해서 공법을 펼쳤다.
세월이 유수처럼 덧없이 흘렀고, 눈 깜박할 사이에 오 년이 지났다.
석목은 동굴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몸에는 하얀 서리가 겹겹이 쌓여서 마치 얼음 조각상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