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곧 십 년
청란성지에 있는 석목의 영지.
선천 무인인 두 시종이 약초밭에서 영초를 돌보고 있었다.
“휴우, 부주님이 떠난 지 오 년이나 흘렀어요.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네요.”
푸른 옷을 두른 청년이 석목의 동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꼭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지. 청란성지의 제자들은 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여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람이잖아. 자칫 잘못하면 죽어버린다고. 매년 성혼전에 있는 철혼등이 수도 없이 꺼지는 걸 보면, 그런 제자들보다는 우리 같은 시종의 명줄이 더 길다니까.”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석 부주님은 우리에게 잘해줬잖아요. 별일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중년 남자는 그 말을 듣더니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부주님의 앵무새 영총도 며칠 동안 안 나온 것 같더라고요. 부주님의 동부에서 문을 닫고 수련을 한다는데, 사실일까요?”
푸른 옷을 두른 남자는 오지랖이 넓은 듯 계속 말을 이었다.
“나야 모르지. 그런데 그 앵무새가 요즘 나타나지 않은 건 맞아.”
중년 남자가 말했다.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눈알을 굴리며 무엇인가 말하려 할 때, 먼 곳에서 하얀 빛기둥이 날아올랐다. 이어서 강한 위압감이 빛기둥의 주변으로 퍼졌다.
밭에 있던 몇몇 시종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빛기둥은 일 각이 지난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다.
“저곳은 취환이 수련하는 곳인데. 보아하니 이번에 무엇인가 돌파한 모양이군.”
중년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줄기의 하얀 빛이 밭과 가까운 곳으로 날와왔고, 취환의 모습이 나타났다.
“냉 관사!”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다급하게 취환을 향해 손을 굽혀 인사했다.
“예의 차릴 필요 없다. 석 부주님은 지금 동부에 계신가?”
취환이 물었다.
“부주님은 동부를 떠나신 지 몇 년이나 지났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가셨는데 오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답했다.
“뭐? 석 부주님이 떠나셨다고? 그것도 오 년이나?”
취환은 그 말을 듣더니 의아해하며 말했다.
“알았다.”
취환은 잠깐 침묵하더니 두 사람에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석목과 다음 청란성지의 입문에 대해 의논할 것이 있었는데, 지금 이곳에 없다는 말을 듣자 그녀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한편으로 그녀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석목은 십 년간 그녀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취환은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다. 혹시 석목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녀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가 없다면 조심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 뻔했다.
취환은 불안한 기색으로 몸을 돌렸고, 다시 수련하던 곳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겹겹이 법진을 만들어 그곳을 막아버렸다.
* * *
한편 석목 영지의 화영천이 있는 동부 근처.
채아가 몸에서 붉은빛을 반짝이며 빛 뭉치를 만들어냈다.
붉은 화염이 모여 들더니 다시 빛 뭉치에 스며들었다.
“망할 놈의 석두, 나를 이곳에 가둬두다니! 내가 얼마나 심심했으면 수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채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입을 벌려 화염의 힘을 삼켰다.
* * *
세월이 빠르게 흘러 또 몇 년이 순식간이 지나갔다.
석목이 수련하고 있는 얼음 동굴 입구의 무너진 절벽 위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펑!
갑자기 산봉우리 전체가 강하게 흔들리더니 동굴 입구의 돌들이 튕겨서 주위로 날아갔다. 돌들은 다른 절벽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막혔던 동굴이 다시 터지더니 푸른 옷을 두른 사람이 걸어 나왔다. 석목이었다.
그는 낡은 옷을 걸치고 턱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라 있었지만, 눈빛은 맑았다.
석목이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올렸고, 그의 오른팔에 하얀색이 은은하게 나타났다.
그가 힘을 조금 주자 이번에는 오른팔에서 검은빛이 옅게 나타나면서,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주변에서 휘날리던 눈꽃들이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했다.
그 얼음은 눈꽃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표면에 하얀 얼음 막이 생겨서 비처럼 쏟아졌다. 눈을 다시 얼려버리다니, 누가 보면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었다.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주먹을 날렸다.
오른팔에서 물통만 한 검은 빛기둥이 뻗어나가 백 장 정도 밖에 있는 검 모양의 산봉우리를 내리쳤다.
쿵!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 모양의 산봉우리 표면에 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두꺼운 얼음이 덮였다. 산봉우리에는 깊은 균열이 몇 개 생겨서 곧 뚫려버릴 것만 같았다.
석목이 다시 오른팔을 흔들자 검은빛이 흩어졌고, 그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팔 년간 고생한 끝에 그는 천수의 혈맥을 완전히 흡수했다. 그리고 상급 음의 기운을 빌려서 드디어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의 대성 경지까지 수련하는데 성공했다.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는 음의 힘이었고, 대성의 경지는 왼팔의 양의 힘과 비슷했다. 그는 여유 있게 기운을 발산했을 뿐인데, 주변 수십 리가 얼음으로 덮여버렸다.
석목이 몸속의 진기를 움직이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붉은빛이 몸을 감쌌다.
구전현공을 두 번째 단계까지 수련했지만 실력은 그다지 많이 늘지 않았다.
잠시 후 붉은빛이 사라지며 석목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낡은 옷을 새 것으로 갈아입은 뒤, 더 지체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청익비차를 불러냈다. 그리고 청란성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보름 뒤, 청란성지의 일 층 구역에 멀리서 날아온 한줄기의 푸른빛이 도착했다.
“야, 석두! 드디어 돌아왔구나!”
석목이 동부에 모습을 드러내자 채아가 날아와서 앉으며 재잘대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몇 년 동안 어땠어?”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채아의 깃털을 쓰다듬었다.
“내가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어? 조심뢰라는 그놈이 두어 번 찾아오긴 했는데, 내가 제풍을 시켜 돌려보냈어!”
채아가 불평하듯 말했다.
“그래, 그리고 또 누가 찾아오지는 않았어?”
석목이 말했다.
“음, 마옥과 자릉, 청장천이 다녀갔어. 아, 그리고 못생긴 여경도 왔었고.”
채아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가서 제풍 좀 불러와.”
석목은 알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동부를 향해 걸었다.
잠시 후, 그는 동부 내부에 있었다.
“부주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제풍이 석목을 격앙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눈을 돌려 그 옆을 보았다. 제풍의 옆에는 취환이 있었다.
“부주님, 부르시지 않았는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취환이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석목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괜찮다. 너도 수련이 끝났구나. 몇 년 사이에 지계 중기의 경지까지 수련하다니, 대단하군.”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께서 저에게 하사해주신 수련 환경 덕분입니다. 그리고 수련 자원들도……. 참, 부주님은 혹시 다시 나가실 건가요?”
취환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다 말고 조금 망설이더니 물었다.
“당분간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을 거다. 제풍, 그동안 영지의 수확은 어땠는지 알려다오.”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이것은 지난 몇 년간 영지에서 나온 영초의 수지 장부와 영석 수입입니다. 살펴보십시오.”
제풍이 품속에서 옥간과 저장반지를 꺼내 들어 두 손으로 건넸다.
석목은 그것들을 건네받더니 한번 훑어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지난 구 년간, 시종들에게 지급된 포상 외에 총수입은 최상급 영석 칠십삼 개였다. 황량한 하급의 영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간힘을 써가며 청란성지에 들어오려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풍이 말했다.
“말해보아라.”
석목이 답했다.
“십 년 대결의 기한이 이제 일 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부주님께서 이번 대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자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성지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규정대로 대결에 참여하려면 십 년 동안 열 건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부주님께서 만법각을 계속 찾지 않으셔서 얼마 전에 종문에서 재촉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제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았다. 이번에 돌아온 이유가 바로 그 대결 때문이다. 잡다한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별일 없으면 물러가도록 해라.”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풍은 그 말을 듣고는 이내 안색이 밝아지며 물러났다.
“취환, 무슨 일인지 말해보아라.”
석목은 눈길을 돌려 취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주님, 십 년 약속의 끝이 보입니다. 입문 시험에 참여할 계획인데, 부주님께서 보증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취환이 말했다.
“알았다. 그리고 그동안 조심뢰가 찾아오거든 언제든 나에게 알려다오.”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취환은 석목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석목은 동부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석두, 이제 대결까지 일 년도 남지 않았어. 너 정말 임무를 전부 완수할 수 있겠어? 내가 듣기로는 그 임무들은 수행이 쉽지 않다고 하던데.”
채아가 물었다.
“왜? 너는 나를 믿지 못하겠어?”
석목이 채아를 슬쩍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연히 믿지. 그런데 팔 년 동안이나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채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 일은 나중에 말해줄게.”
석목은 웃으며 동부를 떠나 현영탑으로 날아갔다.
* * *
반 시진 후, 석목은 성지의 만법각에 있었다.
이곳은 입성할 때 딱 한 번 와본 곳이었다.
만법각은 상당히 넓은 대 전당이었는데, 내부의 공간이 광장만큼이나 컸다.
전당 내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었고 양쪽에 푸른 돌기둥만 한 개씩 놓여 있었다. 돌기둥 위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있어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대전 중앙에는 푸른 석벽이 한 개 있었다. 그 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작은 글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한 줄의 글이 한 건의 임무 내용에 해당했다. 즉, 이 석벽은 만법각의 임무 공고판이었다.
주변에는 푸른 옷을 입은 성지 제자 수십 명이 머리를 들고 석벽을 바라보며, 무리를 지어 작은 소리로 무엇인가 의논하고 있었다. 가슴에 푸른 잎이 그려진 백년 제자 외에 잎이 두 개 그려져 있는 천년 제자도 여러 명 있었다. 하지만 천년 제자들은 전부 혼자인 것 같았다.
푸른 석벽 근처에는 석대가 한 개 놓여 있었고 천란성지의 몇몇 집사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눈을 반쯤 감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석목은 석벽 아래로 다가가 머리를 들고 위쪽을 바라보았다.
석벽 위에서 임무를 설명하는 글자가 계속 반짝였는데, 몇 백 개는 되는 것 같았다. 내용은 높은 경지의 요수를 사냥하거나 희귀한 광석을 채굴하거나, 영초 또는 제부, 단약을 제련하는 임무 등 다양했다. 어쨌든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현영벽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석벽에 마주 대고 흔들었다.
그러자 석벽 위에 떠 있던 임무 한 건이 한줄기 빛이 되어 그의 현영벽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가자 멀지 않은 곳에서 몇몇 청란성지의 제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목은 그들 무리가 만법각에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전의 청란성지 제자들은 전부 여기저기 무리를 짓고 있었다.
그때 입이 뾰족하고 원숭이 얼굴을 한 청년 남자가 걸어와서 석목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 사제도 임무를 받으러 왔나요? 뵌 적은 없는 듯한데, 저는 후통(侯通)이라고 합니다. 사제의 성함은 어떻게 되나요?”
그 제자도 의상을 보니 백년 제자 같았다.
“석목입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답했다.
“석 사제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후통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석목이 몸에 걸치고 있는 상위 제자의 표식을 훑어보더니 기뻐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허허, 사제도 보아하니 임무를 받으러 오셨지요? 석 사제는 상위 제자지만 만법각의 임무를 완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사제 혼자서는 어려울 텐데, 괜찮으시다면 제 무리에 들어오시지요. 여러 명이 모이면 임무를 완수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후통이 말했다. 그의 뒤에는 사람들이 여럿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여자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 사형!”
초록색 옷을 입은 소녀가 기뻐하며 석목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