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임무의 달인
석목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고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 사매군요. 오랜만이에요.”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마옥이었다.
석목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어려 있었다.
“마 사매, 둘이 아는 사이인가?”
후통은 마옥을 바라보고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풀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 석 사형과는 입문 시험에서 알게 된 사이입니다.”
마옥이 말했다.
“하하, 알고 지내는 사이라니 그럼 더 잘됐네요. 석 사제, 함께 하는 건 어떻습니까?”
후통이 웃으며 말했다.
“석 형, 저희는 방금 전에 오붕취왕(烏鵬鷲王)을 사냥하는 임무를 받았어요. 이것을 끝내면 현영점 십 점의 보수가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 딱 한 사람이 부족해요. 임무를 완수하면 보수는 똑같이 나눠가질 것입니다.”
마옥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만 저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익숙해서요. 실례하겠습니다.”
석목은 손을 모아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서 푸른 석벽을 향해 걸어갔다.
마옥은 그렇다 쳐도, 후통은 웃는 얼굴이지만 눈에 간사한 기색이 어려 있는 게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석목도 좋은 말투로 답하지 않았다.
마옥은 실망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통의 안색은 아주 어두워졌다.
“분수를 모르는군. 청란성지에 들어온 지 십 년도 안됐는데 혼자서 임무를 맡으려 하다니. 죽지 못해 환장했구나.”
후통의 뒤에서 말상의 얼굴을 한 청년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이 전부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전혀 개의치 않고 현영벽을 꺼내 푸른 석벽을 마주하고 흔들었다. 한줄기의 빛이 빠르게 날아와 그의 현영벽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현영벽에는 한 줄의 글이 떠올랐다.
“지계 요수 화마랑(火魔狼)을 스무 마리 사냥하여 요단과 뿔을 획득하십시오. 보수는 현영점 오 점이며, 수를 초과했을 경우 네 마리당 현영점 일 점이 추가됩니다.”
현영벽의 다른 한쪽에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화마랑에 대한 설명과 습성 등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화마랑은 청란성 서부의 거대한 화산 군락에 서식하고 있다고 했다.
석목은 그것을 몇 번 훑어보더니 현영벽을 거두고 곧바로 만법각에서 나갔다. 그는 옆에 서 있던 후통 등의 무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채아는 참지 못하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들 쪽으로 엉덩이를 몇 번 흔들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화마랑을 사냥하는 임무는 나온 지 꽤 됐지. 보수도 좋지만 혼자 가기에는 위험하고 무리 지어서 가기에는 아쉬운 일인데.”
“맞아! 화마랑은 떼를 지어서 사는 희소한 요수이고, 낙조(落日) 화산 구역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상위 제자들도 감히 혼자서는 받지 못하는 임무인데.”
“방금 전에 후통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막 입문한 신입인가 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잖아.”
“흥, 무서운 줄 모르긴. 잘난 척하는 무식한 놈인 거지!”
주변의 백년 제자들은 멀어져가는 석목의 등 뒤에 대고 손가락질을 했다. 대부분은 석목을 얕잡아보는 말투였다.
긴 돌 탁자 뒤에 앉아 있던 눈썹이 긴 집사도 그 말을 듣더니 눈을 떴다. 그는 석목의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 * *
칠 일 뒤 청란성 서부의 낙조 화산 군락 근처.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멀리서 날아왔다. 그는 등 뒤로 한 쌍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바로 석목이었다.
“멋있다!”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아 소리를 질렀다.
눈앞의 거대한 화산 군락은 희미한 회색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간간이 굵은 용암이 화산 입구에서 뿜어져 나와 주변으로 튀었다. 굉음이 울려 퍼지는 광경이 남해성의 심만 화산 구역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야. 빨리 화마랑을 찾아서 임무를 끝내야지.”
석목은 날개를 펄럭이더니 바로 화산 구역을 향해 날아갔다.
“석두, 나를 믿어. 네가 없는 몇 년 동안 너무 심심해서 수련했는데, 지금 시력이 그때보다 두 배는 좋아졌어!”
채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반짝이며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좋아, 그럼 나는 속도를 더 내겠어. 찾는 건 너에게 맡길게.”
석목의 몸에서 붉은빛이 번지더니 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 나절 뒤, 화산 구역의 한 골짜기에서 한줄기의 흑색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고 주변 수십 리 내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골짜기 주변의 땅 위에는 하얀 서리가 한 층 덮여 있었으며, 허공에서 눈꽃이 휘날렸다.
골짜기에 뒤덮인 하얀 얼음은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두꺼워져서 바닥까지 깔려 있었다. 그곳에는 몸집이 거대한 붉은 늑대 요수들이 있었는데, 몸 절반이 얼음에 끼어 있었다.
늑대 요수들의 몸통은 붉은색이었고 이마에는 한 치 정도 되는 구부러진 외뿔이 자라나 있었다. 내뿜는 기운은 전부 지계 경지였으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요수의 몸 중 얼음에 박혀 있지 않은 부분에서는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얼음을 녹이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얼음은 단단하기 그지없어서 화염의 열기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의 허공에서 석목은 오른팔의 검은빛을 서서히 거두었다. 이어 그가 입을 벌리자 금빛이 반짝이며 금전검이 날아올랐다.
금전검은 금빛의 무지개로 변하더니 늑대 요수들을 공격했다.
검이 몇 차례 번쩍이자 열 몇 마리나 되는 늑대 요수의 머리와 몸통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석두, 너 전보다 훨씬 강해졌잖아? 응빙지술(凝冰之術)이라는 건 정말대단한 걸. 그런데 이건 무슨 비술이야?”
채아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건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인 음의 기운이야.”
석목이 말했다.
“이 공법은 진짜 대단해!”
채아는 머리를 연신 끄덕이며 좋아했다.
그 사이 석목은 골짜기 사이로 날아갔다. 그는 요수들의 요단을 꺼내고 외뿔도 잘라냈다. 이미 두 번째의 화마랑 무리 사냥이었고, 임무 할당량은 이미 초과 완수한지 오래였다.
석목은 몸을 번쩍이더니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화산 구역 밖으로 날아갔다.
골짜기 사이의 얼음층은 단단한 편이었지만 주변의 뜨거운 열기에 천천히 녹아버렸다. 그리고 반 시진 만에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 * *
며칠 뒤, 석목은 다시 만법각에 나타났다.
그는 급하게 돌아다니느라 얼굴에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응? 화마랑 임무를 받았던 신인이잖아? 이렇게 빨리 돌아왔다고?”
“흥, 온통 먼지투성이인 걸 보니, 아마 고생 좀 한 다음에 임무를 바꾸러 온 건가 보지.”
“운이 좋은 거지. 낙조 화산 군락에서 화마랑의 먹잇감이 되지 않은 걸 보니 말이야.”
만법각에는 며칠 전에 본 백년 제자 몇몇이 있었다. 그들은 석목이 나타난 것을 보고 또다시 비아냥거렸다.
사람들 속에는 후통도 있었는데, 그는 가장 큰 목소리로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전 안에 있는 긴 돌 탁자로 다가갔다.
“석목입니다. 임무를 완수해서 결과를 제출하러 왔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한 뒤 현영벽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석목이 손을 휘두르자 한줄기의 붉은 빛이 탁자 위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붉은 요단과 구부러진 외뿔들이 나타났다.
돌 탁자 뒤에 있던 집사는 긴 눈썹을 드리운 노인이었다. 그는 탁자 위의 요단과 외뿔을 보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석목이 내놓은 것들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화마랑의 요단과 외뿔이 맞군요. 총 스물여덟 쌍. 기본 보상 현영점 오 점에 이 점을 추가해서 총 칠 점을 지급합니다.”
대전에서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굳어졌고, 나무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후통 일행도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서 마치 누군가에게 뺨이라도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며 석목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석목은 눈썹이 긴 노인을 향해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고, 다시 푸른 석벽 앞으로 다가갔다. 채아는 그의 어깨 위에서 우쭐대고 있었다.
주변의 제자들은 석목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양쪽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석목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석벽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몇 번 바라보더니 다시 현영벽을 흔들었다. 한줄기 빛이 석벽에서 현영벽으로 들어갔다.
임무를 받은 후, 그는 곧바로 만법각을 나가서 빠르게 사라졌다.
“저 사람, 화마랑의 임무를 완수했어. 그것도 열흘도 안 되는 시간 안에 할당량을 초과해서 말이야. 그런데 낙조 화산에 갔다 오는 데만 칠팔 일은 족히 걸리는 걸로 아는데?”
“신입 중에 저렇게 대단한 인물이 있었나?”
“그건 모르지. 정말로 임무를 혼자서 완수했을까? 아마 다른 일행들이 도왔을 지도 몰라.”
“이번에는 무슨 임무를 받았는지 보자.”
“응? 백빙화(白冰花)를 채집하는 임무야. 이 임무도 꽤 난도가 있는 건데. 벽락(碧落)의 깊은 곳에 있는 설산의 지하 백 장에 있는 얼음 동굴에 들어가야 해. 그곳의 환경은 열악할 뿐만 아니라 빙둔술을 부리는 얼음 요수들이 쥐도 새로 모르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니 쉽지 않을 텐데.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기존 제자 셋이 힘을 합쳐 이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왔다고 했어.”
만법각에 있던 청란 제자들이 수군거렸다.
후통의 표정은 불안해보였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몇 마디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열흘이 넘어서 푸른 그림자가 다시 만법각에 나타났다. 석목이었다.
그가 혼자서 화마랑 임무를 완수했다는 소문은 만법각을 자주 드나드는 백년 제자들 사이에 이미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대전에 석목이 나타나기만 하면 수군거렸다. 무슨 일인지 몰라서궁금한 이들은 주위에 물었고, 설명을 들은 뒤에는 석목을 다시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석목은 여전히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긴 돌 탁자로 다가가서 손을 흔들자 손바닥만 한 하얀 꽃 서른 송이 정도가 나타났다. 그 꽃들은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석목이라고 합니다. 임무 완수 결과를 제출하러 왔습니다.”
그는 현영벽을 꺼내 집사 노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와!”
대전이 술렁이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렇게소문이 나는 것은 석목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만법각에서는 매번 한 가지의 임무만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열 개의 임무를 한꺼번에 받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석목은 임무를 제출하고 다시 석벽 옆으로 다가가 새로운 임무를 받았다. 그리고 재빨리 만법각을 나가버렸다.
서너 달 동안 석목은 만법각을 드나들며 놀라운 속도로 임무들을 완수해냈다.
그는 최대한 눈에띄지 않게 조용히 임무만 받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제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상위 제자도 한 명도 임무 수행의 달인으로 소문이 난 석목에 대해 전해듣고는 구경하러 왔다. 그러나 석목은 열 건의 임무를 완수한 뒤에는 더 이상 만법각에 나타나지 않았고, 재미있게 구경하던 사람들은 실망했다.
대결 날짜가 다가오자 제자들의 화두는 차차 대결로 옮겨졌고, 석목에 관한 관심도 점점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