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성지대결
한편 석목은 동부의 석실 안에 있었다.
“석두, 조극도 너처럼 구전현공을 수련했을 뿐만 아니라 대성의 경지까지 다다랐어. 신기한 건 너희 둘 다 인족이라는 거야!”
채아가 짖어댔다.
“응, 그게 왜?”
석목이 말했다.
“지금 조극의 명성이 자자해! 성지에서뿐만 아니라 동성성의 일부 세력들도 조극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석두,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너는 그 조극보다 반년이나 앞서갔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이도 아마 더 어릴 걸.”
채아가 계속 재잘댔다.
“그게 좋은 거잖아. 채아, 너도 봤지? 조극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난 후부터 더 많은 사람이 그를 암살하려 들잖아?”
석목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채아가 무엇인가 깨달은 듯 말했다.
“구전현공은 언급되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수련자들은 쉽게 티를 내려 하지 않을 거야. 그건 화를 부르는 일이거든. 어쨌든 두 번째 단계를 끝냈다고 해도 구전까지 가려면 머나먼 여정이 될 거야.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어쨌든 대결이 코앞이니 나도 준비를 좀 해야겠다. 영지를 잘 부탁해.”
석목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 석두!”
채아는 대답하고 나서 날개를 펼쳐 동부 밖으로 날아갔다.
“조극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군…….”
석목은 석실 입구 쪽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아의 전음이 들려왔다.
“석두, 취환이 널 만나겠대. 동부 입구에 있어.”
“들어오라고 해.”
석목이 대답했다.
잠시 후, 석목은 동부의 대청에서 취환을 맞았다.
“석 부주님, 부주님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십 년간 보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취환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눈에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어려 있었다.
“괜찮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이건 접인 영패와 나의 담보다. 잘 챙기도록 해라. 그밖에 저장 반지에 영석과 부적도 넣어두었다. 시험에서 필요할지도 몰라.”
석목이 손을 흔들며 푸른 영패 한 개와 저장 반지를 건넸다.
이 영패는 그가 청란성 호연각의 황진에게서 사온 것이었다. 영석이 좀 들긴 했지만, 지금의 그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감……감사합니다, 부주님!”
취환은 영패와 저장 반지를 건네받으며 놀란 표정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됐다. 별일 없으면 물러가거라.”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무리한 부탁이 한 가지 더 있는데, 혹시…….”
취환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네 선조의 상급 영기를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는 거냐?”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오해는 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부주님과 약속을 했고, 그 상급 영기는 당연히 부주님의 물건입니다. 저는 그 물건에 대해 조금의 미련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이 무너진 건 전부 그 물건 때문이라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부주님께서 불편하시다면 더는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겠습니다.”
취환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실은 몇 년 전에 그 용촉대사를 찾아가서 신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렇지만 않았다면 너에게 보여주는 건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석목은 용촉이 이미 그 영기를 다른 사람한테 팔았으며, 자신에게 두 개의 선택지를 준 사실 등을 취환에게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취환은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 석목에게 인사를 올린 후 동부 밖으로 나갔다.
* * *
두 달이 순식간에 흘렀다.
십 년에 한 번씩 있는 청란성지 백년 제자들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횡계 구역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동부의 상공에서는 빛들이 삼삼오오 하늘로 날아올라서 현영탑으로 향했다.
석목은 아침 일찍 현영탑에 도착했는데, 탑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시종들을 데리고 온 제자도 몇 있었다.
성지 제자 외의 관사와 시종들은 원칙상 현영탑에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부주인 제자들의 허락을 받으면 일부 구역을 드나들 수 있었다. 통류방 및 경기장도 이런 장소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석목은 차분히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현영제 안으로 들어갔다.
현영제의 문이 다시 열리자 익숙한 숲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석목은 사람들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지난번 에 능풍을 따라와서 이곳의 풍경을 지켜보던 기억이 눈에 선했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지만 벌써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숲을 지난 석목은 다시 한 번 광활한 초원에 도착했다. 그 위에 수십 개의 정방형 연무대가 있었다. 연무대 밑은 사람들로 붐비면서 시끌벅적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대결에 참여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석목은 마음이 벅차올랐다.
석목은 인파를 뚫고 여러 연무대를 우회해서 평원의 중심 구역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십 장 정도 되는 푸른 석비가 세워져 있었다.
석비 위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비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글씨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푸른 석비의 중앙에 청란방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밑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석목은 가장 위에 있는 이름을 보았다. 용전야(龙战野)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 요족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을 성지에서 맞이한 능풍의 이름이 바로 그 아래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 훑어보니 또 다른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일전에 청란성 북부에서 여경과 함께 음의 기운을 빼앗으려 했던 요용이었다. 그때 여경이 말했던 것처럼 그의 이름은 서른일곱 번째에 있었다.
그 찬란한 이름들은 횡계 구역의 상위 제자 백팔 명이고, 그 밑으로 서른 두 명의 임시 상위 제자의 이름이 있었다.
임시 상위 제자 중 조극의 이름이 가장 위에 있었고, 석목은 뒤에서 두 번째에 있었다. 계속 아래를 보니 이름은 전부 자주색이었고, 전부 천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석목이 석비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누군가 옆에서 그를 불렀다.
“석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석목이 머리를 돌려보니 마옥이 손을 모으고 공경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여덟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마 사매와 자릉이구나. 오랜만이네요.”
석목은 그녀들에게 인사하는 한편으로 의아했다. 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자릉은 전혀 자라지 않은 채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석 오라버니, 채아는 왜 보이지 않나요?”
마옥이 석목의 어깨 쪽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아, 그 녀석은 먹는 것 말고는 별 관심이 없어서, 오늘 대결에는 데려오지 않았어요.”
석목이 대답했다.
그때 앞쪽에 있는 무리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석목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바라보았다. 조극이 차가운 얼굴로 무리를 돌아 중앙의 푸른 석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자 사람들은 전부 한쪽으로 비켜서서 길을 내주었다.
새로 입성한 제자들 외에 몇몇 기존 제자도 손을 모아 조극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조극은 앞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의 얼굴에는 뼛속까지 차가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으며, 사람들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새로 입성한 제자들은 그를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기존 제자들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몇몇 기존 제자는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그를 하찮게 생각했고, 진정한 상위 제자를 만나면 얻어터질 게 분명하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조극은 그들 옆을 지나칠 뿐 잡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석목이 눈을 돌려 조극을 바라보는 순간, 조극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면서 서로 눈이 마주쳤다.
석목은 조극의 눈길에 흠칫 놀랐다. 그러면서 십 년 전에도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 한 번 몰려왔다.
하지만 조극의 눈길은 석목을 스치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석목은 정말 그가 자신을 바라본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하, 십 년 사이에 석 형의 공력이 상당히 높아졌네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장천이 석목의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하하, 천 형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이번 대결에서 빛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석목이 말에 청장천이 웃었다. 그는 마옥과 자릉 등 여러 신입 제자와 인사를 나누고 잡담을 몇 마디 주고받고는 다시 사라졌다.
“조용히!”
허공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크지는 않았지만 선명하게 들렸고, 위엄이 가득했다.
석목은 익숙한 목소리에 머리를 들어 푸른 석비를 바라보았다. 한줄기의 푸른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그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하얀 머리에 눈썹을 밑으로 드리우고 있었는데, 얼굴은 아이처럼 불그스름했다. 바로 천수청산 시험 때 만났던 비골 장로였다.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조용해지면서 모든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다.
“제자 여러분, 지난번 백년 제자 대결을 치르고 또 십 년이 흘렀습니다. 십 년이면 검 하나를 간다고 하지요. 오늘이 바로 잘 갈린 보검을 꺼내들고 뽐내는 날입니다. 성지의 제자들은 전부 능력자인데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비골 장로가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있습니다!”
조용해졌던 현장이 그의 몇 마디 말에 다시 들끓었다.
비골 장로는 만족한 듯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길 준비가 되었다면 싸움에 응해야 하는 거지요. 관례대로 이번 대결의 규칙을 선포하겠습니다.”
그 순간, 석목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경이 멀지 않은 곳에서 흉악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얼굴 반쪽은 까맣고 반쪽은 하얀 요용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석목을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속닥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석목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담담하게 웃고는 다시 눈길을 돌렸다.
“……이번 대결은 총 세 번에 걸쳐 진행됩니다. 첫 번째는 승자전입니다. 구백사십 명의 하위 제자와 서른여섯 명의 임시 상위 제자가 동시에 참여하고, 제비뽑기로 순서와 대결 상대를 정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순위가 정해지면 하위 백팔 명은 청란 제자의 신분이 박탈되어 성지에서 나가게 됩니다.”
비골 장로가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하는 기색이 어렸다. 특히 십 년 전에 막 입성한 새로운 제자들은 더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각축을 벌이다니. 어려운 싸움이 되겠구나.”
마옥이 걱정하는 듯 말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참여하니 탈락할 확률은 십 분의 일밖에 안 돼요. 그렇게 운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석 오라버니, 제 말이 맞죠?”
자릉이 웃으며 말했다.
“규칙에 따르면 한 번만 이기면 탈락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석목의 말에 마옥은 위로가 되는 듯 머리를 끄덕이었다.
“……두 번째는 순위 경쟁입니다. 승자전에서 이긴 백팔 명의 제자는 기존 상위 제자 백팔 명의 위치에 도전할 자격이 있습니다. 승리한 자는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며, 새로운 상위 제자가 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비골 장로는 잠시 숨 돌리고 계속 말했다.
마옥이 비골을 바라보는 사이에 석목은 자릉 쪽으로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지금은 자릉인가요? 아니면 자하인가요?”
양 갈래 머리를 한 소녀는 그를 향해 눈을 깜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비골 장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지막 세 번째는 도전 시합니다. 백팔 명의 상위 제자에게 전부 한 번씩 기회가 주어지는데, 앞 순위의 사람에게 도전을 신청할 수 있고 이기면 그 사람과 순위를 바꾸게 됩니다. 물론 도전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지만, 선택을 받게 되면 거절할 수 없고 대결에 응해야 합니다. 또한 형평성을 위해 한 사람은 최대 세 번의 도전만 받을 수 있으며, 횟수가 초과 되면 다시 대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비골 장로는 계속 설명했다.
“최종 상위 제자 중 일 등을 한 자는 현영점 일천 점을 받을 수 있고, 이등은 오백 점, 삼 등은 삼백 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십 등까지 각각 이백 점이 주어집니다. 그밖에 오십 등 안에 든 사람은 각각 백 점, 그리고 나머지 상위 제자는 오십 점씩 받게 됩니다. 성지에서 현영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또 일 등은 신병각에서 최상급 영기 한 개를 고를 수 있고, 이등과 삼등은 각각 상급 영기 한 개씩을 고를 수 있습니다.”
새로 입성한 제자들은 놀라서 웅성거렸다.
“포상이 엄청나군!”
“이번 포상이 지난번보다 훨씬 두둑한 것 같아. 전에는 상급 영기를 주는 일은 없었는데!”
기존 제자 한 명이 좋아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어느새 열의로 넘쳤고, 풍성한 포상에 전부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