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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07화 (407/916)

407화. 실력을 뽐내다

석목은 비골의 말을 듣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구전현공의 공법 뒷부분을 수련하려면 반드시 많은 현영점이 필요했다.

“세 차례 대결의 규칙과 포상에 대해 전부 설명했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습니까?”

비골 장로가 아래를 향해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참이 지났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십 년 대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청란방 석비에서 대진 순번을 확인하세요.”

비골 장로의 말에 석목을 포함한 사람들은 푸른 석비 쪽으로 향했다.

그때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음흉한 청년이 석목 앞에 나타났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석 사제,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석목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당신은…… 조 사형?”

그 음흉한 청년은 바로 조심뢰였다. 보아하니 석목은 그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듯,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웃어보였다.

“석 사제, 저를 잊어버리다니요.”

조심뢰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 사형,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석목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듯 물었다.

“별일 아니예요. 그저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석 사제도 대결에서 꼭 좋은 성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조심뢰가 말했다.

“네, 그 덕담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석목은 조심뢰를 더 바라보지 않고 마옥, 자릉과 함께 석비 쪽으로 향했다.

조심뢰는 그 자리에 서서 석목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석목과 마옥, 자릉은 청란방의 푸르스름한 빛이 드리워진 석비를 바라보았다. 대진 정보는 이미 그 위에 올라와 있었다.

삼 번 연무대 제 삼 회, 자릉 대 여천풍(余天风).

구 번 연무대 제 이 회, 마옥 대 노연무(路沿武).

육십사 번 연무대 제 일 회, 이오(狸伍) 대 석목.

* * *

그들은 석비 위를 몇 번 훑으며 각자의 대결 상대를 확인했다.

석목은 조극의 정보도 보았다. 그는 삼십사 번 연무대였으며, 상대는 호신(虎臣)이라는 기존 제자였다.

“석 오라버니, 자릉. 꼭 이기세요.”

마옥이 석목을 향해 말했다.

“언니도 꼭 이길 거예요! 석 오라버니, 나중에 봐요!”

자릉이 말했다.

석목은 두 여자를 향해 머리를 끄덕인 후 다른 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순번을 확인한 제자들은 모두 각자의 연무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석목이 대결을 펼칠 연무대는 평원의 서쪽에 있었는데, 청란방 가까이에 있었다.

그가 연무대에 도착했을 때 석대 위에는 이미 누군가가 그를 등지고 서 있었다. 마른 체형에 등이 굽은 남자였다.

석대 주변에는 아직 대결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기존 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석목이 가까이 다가가자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다.

“하하, 난 또 누구라고. 그냥 인족이네. 이번 대결은 별 볼일 없겠구먼!”

연무대 옆에 서 있던 여우 얼굴을 한 청년이 석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족이면 이 사형이 법상을 부릴 필요도 없지. 세 번 이내에 해결할 거야!”

그의 옆에 있는, 키가 작고 옹졸한 인상을 가진 청년 남자가 덧붙였다.

무대 위에 서 있던 등 굽은 남자는 이런 말들을 듣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사람들의 아부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석목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는 쓸데없는 말들은 듣지 않고 연무대로 걸어 올라갔고, 허리가 굽은 남자와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남자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기에, 석목은 코앞까지 다가가서야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둥그스름한 얼굴에 눈썹은 짙고 짧았으며, 동그란 눈에서는 노란빛이 반짝였다. 낮고 짧은 코는 살짝 위로 뒤집혀 있었고, 그 밑에는 세 방향으로 찢어진 토끼 입술이 있었는데 모양새가 아주 흉했다.

허리는 굽어 있었지만 체격은 당당해서 석목보다 훨씬 컸다. 얼굴을 포함해 노출되어 있는 피부는 노란색과 검은색, 회색 세 종류의 털로 뒤덮여 있었고, 체형은 얇고 길쭉한 사향고양이 같았다.

그는 석목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눈꺼풀을 드리운 채 위아래로 흩어보았다. 하지만 정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불만이 가득한 곁눈질로 째려보고 있었다.

석목과 이오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연무대에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푸르스름한 사람 형체가 그들 사이에 나타났다.

“대결에는 승부만 있을 뿐 생사는 없다. 한쪽이 무너져서 더 이상 대결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 패하는 것이다. 일부러 상대를 추격하거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자는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수 있다. 이 규칙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는가?”

푸른 사람의 형체가 물었다.

“없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흐흐, 없습니다.”

등이 굽은 남자는 석목을 보고 음흉하게 웃더니 대답했다.

“각자 이름과 종족을 말하고 나서 바로 대결을 시작한다.”

푸른 사람의 형체는 말을 마친 후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고개를 숙여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름은 석목. 남해성 출신 인족입니다.”

석목이 자세를 바르게 잡더니 말했다.

“남해성? 처음 들어보는데? 새가 똥도 싸지 않는 비천한 곳이겠지?”

등이 굽은 남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를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들었다. 먼저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하하, 저 자는 정말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이오 사형에게 곱게 절이나 하고 패배를 인정하시지?”

여우 얼굴의 청년이 무대 밑에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석목을 향해 소리쳤다.

“이름은 이오. 풍리성(风离星) 출신의 이요족(狸妖族).”

남자는 실눈을 뜨고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형, 아주 혼쭐을 내주세요!”

또 다른 요족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요족이 다 같이 떠들어댔다.

“석 사제라고 했나? 이 사형이 충고 하나 하지. 규칙상 네 목숨을 앗아갈 수는 없지만, 뼈라도 부러지면 엄청 아플 거야. 그리고 만에 하나 의식 세계가 상하기라도 하면 좋을 게 없다.”

이오의 말에 석목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물었다.

“할 겁니까, 말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똑똑히 들었다.

“죽어라!”

이오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푸른 갑주를 두른 커다란 사향고양이 법상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법상이 나타나자 이오는 쪼그리고 앉아서 두 손을 땅에 짚고, 들짐승이 기어가는 자세를 취했다.

쓱!

순간 석목의 눈앞이 희미해졌고, 이오가 두 발을 내딛고 몸에서 빛을 발산하면서 날아올랐다. 그의 모습이 푸른 형체가 되었다.

이오가 빠르게 날아오르자 주위의 기류가 움직이며, 회오리바람이 순식간에 석목을 둘러쌌다.

한순간에 연무대 위에서 기류가 난무했고, 먼지가 휘날렸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당연히 석목이 패할 거라 생각한 찰나,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쿵!

기세가 범상치 않던 회오리바람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그 사이에서 붉은 주먹이 나타났다.

주먹이 회오리바람의 안쪽 벽을 강타하자 푸른빛은 번쩍거리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난잡한 기류가 곳곳으로 퍼지더니, 사람의 형체 하나가 그 속에서 튕겨 나와서 연무대 위로 추락했다.

회오리바람은 곧 사라져버렸고, 석목은 같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마치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무대 밑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연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굽어 있던 이오의 등이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두어 번 경련을 일으키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말……말도 안 돼. 고작 인족 놈이 저렇게 엄청난 힘을 가졌다고?”

회색 피부의 요족이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단 한 주먹에…….”

여우 얼굴의 청년은 어안이 벙벙해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구경하던 다른 요족들도 전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큰일이다. 이 사형이 죽었어!”

그때 누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인족이 규칙을 위반하고 사람을 죽였다!”

또 다른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석목의 눈빛은 차가웠고,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푸른 형체가 이오 옆으로 날아오더니 이마에 손을 대고 살펴보았다.

“죽지 않았다. 심한 상처를 입어 뼈가 부러졌고, 의식 세계도 충격을 입어서 혼수상태가 된 거다. 회복하려면 반년은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푸른 사람의 형체가 말했다.

구경꾼들은 그 말을 듣더니 찬바람을 들이마시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방금 전과는 달리 무시하는 기색이 싹 사라져 있었다.

“승자는 석목!”

푸른 사람의 형체가 선포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손을 모아 푸른 사람의 형체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연무대에서 내려와서 어디론가 향했다.

다음 대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석목은 다른 사람들의 대결을 구경하러 갔다.

몇 걸음 걸어갔을 즈음, 앞쪽에 있는 한 연무대에서 뜨거운 박수 소리가 들렸다.

석목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곳에서는 조극이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연무대 주위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빼곡했다.

조극과 대결하는 사람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존 제자였다. 그는 대도 영기 한 자루를 익숙하게 다루고 있었지만, 조극의 연이은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기만 할 뿐 반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석목을 불렀다.

“석 사제.”

석목이 고개를 돌려보니 청장천과 적예자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의 사이는 이제 좋아진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연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조극이라는 놈의 실력이라면 이미 끝났어야 할 텐데?”

적예자가 말했다.

“이번 대결은 이 연무대의 두 번째 대결이고, 상대는 지계 후기의 기존 제자입니다.”

“그렇군.”

석목의 말에 적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 도우, 대결은 어떻게 됐습니까?”

청장천이 물었다.

“첫 대결에서 이겼습니다. 두 분도 모두 승리한 건가요?”

석목이 물었다.

“하하, 그렇습니다. 운이 좋아서 이겼죠.”

청장천이 웃으며 답했다.

그때 연무대 쪽에서 다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이 그쪽을 바라보니 조극이 이제 막 왼손의 푸른빛을 거두고 있었다. 그와 대결하던 기존 제자는 연무대 한쪽에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조극은 깔끔하게 승리를 거두었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흩어졌다. 석목은 청장천과 적예자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 * *

그 후 석목은 연속으로 두 차례의 대결을 치렀다.

그와 대결한 사람들은 전부 방어력이 뛰어난 요족 제자였다. 그중 한 사람은 몽마거상(猛獁巨象)의 혈맥을 가졌고, 다른 한 사람은 피갑거서(披甲巨犀) 법상을 불러낼 수 있었는데, 둘 모두 지계 후기의 경지였다.

하지만 석목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데다, 그의 두 팔은 구전현공으로 단련되어 만 근이 넘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다.

석목은 주먹을 두어 번 휘둘러서 두 요족이 자랑하는 방어를 뚫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구경하던 제자들은 그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누구보다도 이목을 끄는 사람은 역시 조극이었다. 몇 차례의 대결에서 내로라하는 기존 제자들도 전부 그의 칼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극은 아직까지는 구전현공을 시전할 필요도 없었다.

입문 시험에서 높은 순위를 다투던 자릉, 청장천, 적예자, 강수수, 여경, 오 씨 형제 등도 전부 연승을 거두며 이번 대결에서 실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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