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08화 (408/916)

408화. 노름판

이후 승자전은 횟수가 너무 많았기에 며칠 동안이나 진행됐다.

마지막 날 석목은 푸른 옷을 두르고 칠 번 연무대 위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는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 도우, 오랜만입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푸른 피풍으로 몸을 감싸고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화난 눈으로 석목을 노려보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여경이었다.

“지난번에는 네가 도망쳐버렸지만, 오늘은 그렇게 운이 좋지는 않을 거다.”

여경이 말했다.

“그런가요? 여 도우야말로 저를 만난 건 최악의 상황인 것 같은데요?”

석목이 말했다.

“그럼 덤벼봐!”

여경이 큰소리를 질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경이 짙은 안개를 뿜어내며 석목을 공격했다.

훅!

그러자 석목의 주위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고, 그는 화염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푸른 안개는 석목을 둘러싼 화염에 닿는 순간 하얀 연기로 변해서 흩어져버렸다.

“흥!”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여경은 코웃음을 치며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등 뒤의 짙은 안개가 들끓으며 소용돌이쳤다.

잠시 후 푸른 안개가 십 장 높이까지 피어오르더니, 푸른 갑옷을 입고, 손에 커다란 도끼를 쥔 전사가 나타났다.

그 전사는 고개를 들어 울부짖으며 석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석목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입을 벌려서 입안에서 검은 곤봉을 꺼내들었다.

곤봉은 그의 손에 닿자 순식간에 열 배나 커져서 아이 팔뚝만 한 굵기가 되었다.

석목은 두 손으로 곤봉을 머리 위로 들고 날아오는 도끼를 막았다.

쾅!

충돌음이 울려 퍼졌고, 석목은 무릎을 살짝 구부린 자세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이어 석목이 여의빈철곤으로 앞을 가리키자 화염이 그의 손목에서 부터 퍼졌고, 곤봉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둘러싸였다.

석목은 앞으로 크게 한 발 내딛더니 원노반암(猿猱攀岩)을 시전, 순식간에 수십 장 높이의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화염에 둘러싸인 그의 몸 전체가 활처럼 구부러졌고, 석목은 힘을 잔뜩 모아서 곤봉을 뒤에서 앞으로 끌어당기며 휘둘렀다. 이어 곤봉에서 놀라운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경은 깜짝 놀라 법결을 펼쳤다. 그러자 법상의 손에 들린 도끼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더니. 아래에서 위쪽으로 석목을 공격했다.

쿵!

폭음이 진동하면서, 연무대에 자욱하게 피어 있던 짙은 안개가 흩어졌고, 부서진 돌들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석목의 화염 곤봉은 여경의 도끼를 부숴버렸고, 다시 여경을 공격해서 땅에 그대로 내팽개쳤다.

잠시 후 먼지가 흩어졌다. 구경꾼들은 놀란 표정으로 연무대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땅이 움푹 패여 구덩이가 한 개 생겨 있었다. 그리고 여경은 간신히 숨이 붙은 채로 그 구덩이에 쓰러져 있었다.

석목은 구덩이 옆에 서서 곤봉으로 여경을 가리키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자신에게 복종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때 여경이 두르고 있던 초록색 두건이 찢어지면서 독창이 가득한 여경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패배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는데, 예전의 독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요란한 대결이 끝나면서 첫 번째 승자전의 결과가 나왔다. 석목의 순위는 상위 서른여섯 번째였다.

이 결과 역시 석목이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두 번째 대결 준비를 위해 지계 정상에 있는 기존 제자와의 대결에서 기권했다.

신입 제자 중에서 조극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그는 기존 제자 몇 명을 꺾고 당당하게 일 위를 차지했다. 다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전현공을 단 한 번도 시전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자릉은 신의 경지에 달한 술법으로 십일 위를 차지했다.

그 외에 석목이 아는 사람중에는 청장천이 이십칠 위, 강수수가 사십 위, 적예자가 팔십칠 위에 올랐다.

오 씨 형제는 의외로 백오 위와 백칠 위에 간신히 턱걸이해서 백팔 명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 형제는 지금껏 늘 함께 싸워왔다. 둘의 실력을 합치면 천위의 강자 수준이었지만, 이번 대결에서는 연합해서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순위가 뒤로 밀린 것 같았다.

실력으로만 따지자면 여경이야말로 백팔 명 안에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운이 나빠서 석목과 대결을 하는 통에 백이십 위로 밀려났고, 두 번째 대결에 나설 자격을 잃었다.

마옥의 불운은 그보다 더했다. 처음부터 실력이 막강한 기존 제자와 맞붙게 되어 처참하게 패했고, 이후 몇 차례의 대결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녀는 구백십이 위에 이름을 올려서 간신히 성지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대결 일정은 빡빡하게 짜여 있었기에, 첫 번째가 끝난 뒤 하루만 쉬고 바로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됐다.

두 번째 대결은 첫 번째 대결에서 백팔 명 안에 포함된 사람들이 기존 상위 제자의 자리를 빼앗는 구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대결이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다.

청란방 앞에 있던 수많은 연무대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이전의 연무대보다 몇 배나 더 큰 임시 무대와 관전용 석대가 세워졌다.

대결이 시작되기까지 반 시진이 남았다. 광장은 사람들로 붐볐는데, 전부 푸른 연무대 주위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연무대 뒤의 관전용 석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승자전에서 앞 순위를 차지한 몇몇 제자가 미리 와서 투지를 다지고 있었다.

석목은 구석자리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서 있었다.

채아는 그의 어깨 위에서 시끌벅적한 광경을 보고 흥분되어 재잘댔다.

“석두, 이 무대 정말 크다! 와, 저기 여자들 너무 예쁘잖아! 그런데 석두, 너는 누구와 싸울 거야?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절대 나를 망신시키면 안 돼!”

“계속 떠들 거면 영수주머니에 들어가.”

석목이 채아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채아는 몸을 파르르 떨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채아를 데려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채아가 죽을힘을 다해 앙탈을 부리며 어떻게든 따라오겠다고 난리를 쳐서 하는 수 없이 데려왔다.

그때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 사형, 이곳에 있었군요. 한참을 찾았잖아요!”

석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마옥이 활짝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 사매, 대결을 통과한 것 축하해요.”

석목이 말했다.

“석 사형과 비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참, 오늘 상위 제자에게 도전하는 날인데, 석 사형의 실력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마옥이 석목 어깨에 앉아 있는 채아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위 제자들은 전부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꼭 이길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두, 저기 엄청 재미있어 보여. 누가 노름을 하는 것 같아. 우리 가서 구경할까?”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채아가 석목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석목과 마옥은 채아의 말을 듣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은 곳에 있는 공터에 네모난 탁자 몇 개가 있었는데, 그 위에 노름할 때 쓰이는 종이가 두껍게 놓여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 몇몇이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청란성지는 정통성 있는 문파인데 저렇게 공공연하게 노름판이 허용되는 겁니까?”

석목이 말했다.

“허허, 석 사형은 잘 모르고 있었군요. 청란성지는 제자들의 관리에 있어서 그 마음에 무게를 둘 뿐, 형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저런 작은 노름판을 벌였다고 해서 품위를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기를 북돋울 수 있기에 장로들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 같아요.”

청장천이 그들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청 사형은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군요. 누가 당신과 원수 관계가 된다면 문을 잠그고 수련해도 조마조마할 겁니다.”

석목은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석 사형, 편안한 표정을 보아하니 이길 자신이 있는 거지요?”

청장천이 마옥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고 이내 웃으며 말했다.

“청 사형,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제가 알기로는 상위 제자는 전부 성지에서 백 년 이상 머물렀답니다. 첫 번째 대결과는 비교도 안 되지요. 저도 제 실력에 대해 자부하는 편이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석두, 저기 노름판 꽤 재미있는 것 같아. 우리 가서 구경하자.”

채아가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이 앵무새가 바로 석 사형의 영총이군요. 영지가 이렇게 높다니, 흔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청장천이 채아를 보며 말했다.

채아는 청장천을 한 번 흘겨보더니 실룩거리며 눈길을 돌렸다.

“이 앵무새는 말이 많고 잘 먹는 것 외에는 별 재주도 없는 놈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노름에 관심이 있으면 같이 가봅시다. 저도 마침 손이 근질근질하니 운이나 한 번 시험해보고 현령점이나 좀 따볼까 합니다. 아, 저기서 노름판을 벌인 사람은 노름을 좋아하는 천년 제자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청장천이 말하며 그쪽으로 향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그를 따라갔고, 채아는 환호했다. 마옥도 그들을 따라갔다.

노름판 주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아직 노름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청장천은 두 사람을 그쪽으로 끌고 가더니 혼자 사람들 속을 헤집고 들어갔고,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여러분, 오늘은 대결이 펼쳐지는 날입니다. 며칠 전처럼 사전에 판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 후 누군가 대결을 신청하면, 그와 동시에 이곳에서 판을 열 것입니다. 대결마다 판이 열리니 여러분의 재미는 보장될 겁니다.”

“좋습니다!”

“단목광(端木光) 사형이 장담한 이상, 당연히 믿고 따르겠습니다.”

구경꾼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전에 알릴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 판에서는 최상급 영석만 받습니다. 다만 다른 보물을 내놓는다면 저희가 가격을 측정하여 최상급 영석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이에 동의할 수 없을 경우 참가하지 마세요. 서로 분쟁만 생깁니다.”

단목광이 말했다.

석목은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갑자기 마옥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을 했고, 천으로 만든 주머니를 그녀에게 건넸다.

마옥은 그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몇 갈래의 밝은 빛이 먼 곳에서부터 날아왔고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무대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석목도 그쪽을 바라보더니 마옥을 향해 말했다.

“마 사매, 제가 말한 대로 하세요. 부탁해요.”

“석 사형,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석목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영총은 무대에 함께 올라갈 수 없으니, 채아를 좀 부탁해요.”

“네!”

마옥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석목이 어깨를 흔들자 채아는 마지못해 마옥의 어깨로 날아가 앉으며 말했다.

“석두, 나 망신시키면 안 돼!”

석목은 마옥을 향해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연무대로 향했다.

몇 줄기의 빛이 높은 관람대에 떨어지면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대춧빛 얼굴을 한 하얀 수염의 노인, 장검을 등에 꽂고 파란 피풍을 두른 중년이었다. 중년은 네모난 얼굴에 수염이 한 가닥도 없는 게 상당히 고지식해보였다.

나머지 한 명은 궁중의상을 입은 스무 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녀였다. 그녀는 용모가 매우 뛰어났고,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몸에서는 강력한 기운이 풍겼다. 천위 경지를 넘어서 성계에 들어선 존재 같았다.

그들 외에 높은 관람대에는 십여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그들은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올렸다.

“이번 황계 구역의 대결에 저 세 분까지 오시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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