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두 번째 대결의 첫 교전
어느새 청장천이 석목의 옆에 다가와서 중얼거렸다.
“저 세 분은 대단한 인물인가요? 저는 수련만 하느라 성지의 일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있었네요. 청 사형이 좀 알려주십시오.”
석목이 물었다.
“저 분들은 성지 팔대 호법 중 세 명으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은 성이 남궁으로, 성지에서 유명한 연단대사(炼丹大师)입니다. 저 분이 만든 건곤조화단(乾坤造化丹)은 수련의 응결정도를 크게 높일 수 있어서 미양성역에서도 이름이 자자합니다.
중간에 있는 파란 피풍의 중년은 계율당(戒律堂)의 악호법(岳护法)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형벌을 집행하는 사람인데 아주 공정하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저 소녀는 성이 하 씨인데 청란성지에서 가장 어린 호법입니다. 수련한 시간이 오백 년도 되지 않았는데, 용모가 빼어나서 연꽃 선자(仙子)라는 호칭이 붙어 있습니다.”
청장천이 가문의 보물을 헤아리듯 일일이 소개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숨을 들이마셨다. 두 사람은 그렇다 쳐도 소녀의 수련 기간이 오백 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말에 놀랐다. 실로 놀라운 자질이었다.
붉은 눈썹을 드리운 청년이 세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올린 후, 연무대로 날아왔다.
“여러분, 나는 계율당 집사인 제자 팽도(彭涛)다. 백년 제자 대결 두 번째, 경쟁 대결은 내가 진행을 맡게 되었다. 그럼 어제 승리를 거둔 백팔 명의 제자와 기존 상위 백팔 명은 무대 위로 올라오도록.”
붉은 눈썹 청년은 우렁찬 목소리로 선포하며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향하여 자세를 취했다.
그 말이 끝나자 청란방을 중심으로 무대 양쪽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타나면서 무대를 세 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그중 중간이 가장 넓었는데, 무대의 오분의 삼 정도를 차지했다.
석목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사람들 속에서 무대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순위대로 청란방의 왼쪽에 줄을 섰다.
이어 무대의 다른 한편에서 빛이 반짝였다.
잠시 후, 무대 양쪽에 각각 백팔 명의 제자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석목의 눈길이 맞은편을 향했다. 그는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금색 옷을 입고 가느다란 눈썹에 길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부 표면에서는 황금빛이 반짝였으며, 몸은 마르고 훤칠한 것이 긴 창처럼 꼿꼿했다. 그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내버릴 것 같은 무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상위 제자 일 위, 용전야…….’
석목은 실눈을 뜨고 속으로 생각했다.
석목의 신식과 실력으로는 그 사람의 수련 경지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다만 직감적으로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가 지금껏 싸워본 모든 사람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 같았다.
용전야 옆에는 푸른 옷을 걸치고 용모가 준수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십 년 전 입문한 제자들을 안내했던 능풍이었다. 그는 십 년 전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입가에 온화한 웃음을 띠고 있어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종족이 각자 달랐지만, 하나같이 대단해보였다.
청장천의 말에 의하면 상위 제자 십 위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위치에 최소 삼십 년 동안 있었다. 그중에는 백 년 이상을 머무른 사람도 있다고 했다.
석목은 상위 제자들을 쭉 훑어보며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보았다.
앞에 서 있는 백팔 명 중 천위 무인은 소수였고, 몇몇 월계술사를 제외한 대부분은 지계 후기나 지계 정상까지 수련한 사람이었다.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 전부 비술이나 혈맥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눈길을 돌려 서른일곱 번째에 서 있는 요용을 바라보았다. 마침 상대도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어려 있었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웃으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상위 제자들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 다른 도전자와 구경꾼들도 전부 상위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백년 제자 중에서도 빼어난 사람들이다보니, 임무를 수행할 때가 아니면 문밖을 잘 나서지 않아서 얼굴을 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상위 제자 중 몇몇은 오만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그 외에는 다들 도전자를 바라보며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거나,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자, 양쪽 모두 모인 것 같으니 두 번째 대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결 규칙은 비골 장로님이 이미 설명해주셨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 백팔 명의 도전자들은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상위 제자를 선택해 대결에서 이기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다만 한 명의 상위 제자는 최대 세 번까지만 도전을 받을 수 있으며, 연속 도전은 불허한다. 다들 알겠는가?”
붉은 눈썹 청년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두 번째 대결을 시작한다!”
붉은 눈썹 청년은 그렇게 선포한 뒤 다시 높은 관람대로 날아갔다.
시끌벅적하던 연무대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석목 등 백팔 명의 제자 중 바로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상대를 바라보며 상위 제자들을 관찰했고,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일 각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청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육십 식(息:호흡하다) 동안 아무도 도전을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상위 제자에 도전할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지금부터 시간을 잴 것이다!”
곧이어 청년의 손에 모래시계 한 개가 나타났다. 그 안에서 얇은 모래알이 천천히 아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붉은 형체가 왼쪽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곧바로 푸른빛을 뚫고 연무대 중간으로 향했다.
일 장 정도의 키에 대추색 피부를 가진 그는 바로 적예자였다.
“다들 이렇게 사양하시니 저 적예자가 먼저 선택하겠습니다. 저는 백 위에 있는 방회(方回) 사형에게 도전하겠습니다.”
그때 또 다른 도전자 두 명이 몸을 내밀며 무대 중앙으로 향하려 했으나, 적예자보다 조금 늦어서 푸른빛에 의해 막혀버렸다.
무대 아래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맞은편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 그는 머리 위에 얹힌 철갑모가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 주변도 거무칙칙했다.
그는 멀리서부터 뛰어올라 푸른빛을 뚫고 묵직하게 연무대에 착지했다. 그의 무게로 인해 무대가 진동했다.
“나 방회에 도전장을 내밀다니. 후후, 좋다. 내 검도 꽤 오랫동안 피를 보지 못했으니 오늘 제사 한번 지내지.”
검은 철갑모 밑으로 붉은 점 두 개가 반짝이며 남자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나이는 많지 않은 듯했다.
방회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흔들자 길고 넓은 검이 나타났고, 그 위에서 핏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럼 덤벼보시지요!”
적예자가 실눈을 뜨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표면에서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긴 창이 나타났다.
석목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둘이 내뿜는 기운으로 보니 양쪽 모두 지계 정상으로 보였다. 대결이 끝나야 그들의 진정한 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석목은 눈을 돌려 멀지 않은 곳의 노름판을 바라보았다. 그는 높은 위치에 서 있어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첫 대결이 이제 곧 시작됩니다. 적예자 대 상위 백 순위 제자 방회! 영석을 걸 사람들은 서두르세요. 정했으면 손을 떼도록 하시구요. 기다리지 않습니다!”
노름판 탁자 뒤에서 단목정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분주하게 영석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탁자 위의 배당율을 확인했다. 적예자 2배, 방회 3할3푼이었다. 방회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대결 시작!”
그때 붉은 눈썹의 청년이 허공에서 낮은 소리로 외쳤고, 손을 흔들어 푸른빛을 만들어냈다.
연무대 양쪽의 푸른빛이 번쩍거리더니 반원형 막을 만들어냈다고, 그 빛은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무대를 덮었다.
석목은 서둘러 눈길을 돌렸다.
적예자의 몸에서 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금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가 손에 든 긴 창의 표면에 있는 화염도 붉은 금색으로 변했다.
뜨거운 열기가 주위로 퍼졌다. 푸른 막으로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에 서 있는 사람들마저 열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적예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긴 창을 흔들었다. 그러자 창이 순식간에 희미해지더니 수많은 창 그림자가 나타나 방회를 공격했다.
창의 그림자들은 금빛 화룡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는데, 그 소리와 위세가 엄청났다.
흔들리는 공기 속에 드리워진 푸른 막도 흔들렸다. 한 개의 창이 날아갔을 뿐인데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적예자의 실력은 청란의 비경에 있을 때보다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게다가 아마도 첫 번째 대결이라 실력을 어느 정도 숨겼을 것이었다.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실속 있는 사람이군.’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수많은 창 그림자를 마주한 방회의 표정은 담담했고, 그는 경멸하는 듯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든 검에서 핏빛을 더 밝게 뿜어냈다.
넓은 검은 순식간에 칠팔 장 크기로 거대하게 변했다.
방회는 거대한 검을 들고 휘날리는 그림자를 향해 가로로 휘둘렀다.
한줄기의 핏빛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창의 그림자들이 바람 속의 촛불처럼 가볍게 사라져버렸다.
쿵!
핏빛 검이 적예자의 손에 쥐여진 긴 창과 부딪치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예자의 몸이 흔들리더니 멀리 튕겨나갔고, 그는 뒤쪽의 푸른 막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적예자는 입에서 피를 뿜어냈고, 창을 들고 있는 손도 찢겨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게다가 그는 몸의 상처보다도 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방회와 맞붙은 순간 그는 마치 날아오는 큰 산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순간 주제넘은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적예자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섰다.
“흥!”
그의 입에서 야수의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몸에서 금색 화염이 다시 한 번 타올랐다. 이어 그의 몸통이 빠르게 부풀면서 머리와 몸 표면에 금색의 털이 돋아났고, 날카로운 손발톱도 나왔다.
순식간에 금색 사자로 변한 적예자의 몸에서 금색 화염이 들끓자 주위의 허공도 함께 흔들렸다.
적예자가 빠르게 방회를 공격했고, 마치 한줄기의 별똥별이 무대 위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석목은 비경에서 적예자가 이 수법을 썼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 그 위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석목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회의 몸이 희미해지더니 핏빛의 거대한 검으로 날아오는 별똥별을 받았다.
그의 몸에서 핏빛이 뿜어 나오더니 검과 합쳐졌고, 순식간에 뼈가 드러난 팔로 변했다.
쿵!
두 그림자가 번쩍이며 스쳐 지나면서 무대 위에서 핏빛과 금색 빛이 번쩍였고,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부신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대의 한쪽에서 적예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몸에 두르고 있던 화염이 사라진 채 입에서 피를 잔뜩 뿜어냈고, 가슴의 깊은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심하게 흔들었고, 무릎을 꿇고 긴 창으로 무너지지 않게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무대의 다른 한쪽에 있는 방회의 몸에서도 핏빛이 사라졌다. 그의 머리 위의 철갑모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고, 뺨에 화상 자국이 있는 괴상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검을 등에 다시 꽂아 넣은 뒤 천천히 몸을 돌려서 적예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 실력은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기회가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를 골랐군.”
방회의 차가운 말에 적예자는 입가를 파르르 떨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