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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14화 (414/916)

414화. 단예(端倪)

진택목이 가슴 앞으로 주먹을 쥐자 덩굴 창은 마치 용처럼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위로 날아가서 석목의 머리 위에서 멈추었다.

석목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여의빈철곤을 몸 앞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석 사제, 이번에는 산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까?”

진택목은 자신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는 아량을 베푸는 척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여 곤봉을 휘둘렀다.

윙! 윙!

공기 중에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맹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석목이 곤봉을 돌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주변에는 하얀 기류가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기류는 엎드려 있는 맹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진택목은 석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다급하게 땅 위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움직이자 석목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덩굴 창에서도 푸른 기류가 소용돌이치더니, 석목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그때 석목의 두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는 위에서 떨어지는 덩굴 창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곤봉으로 진택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호시출합(虎兕出柙)!”

쿵!

석목의 여의빈철곤이 먼저 땅 위를 내리쳤고, 그곳에서 먼지와 부서진 돌들이 휘날렸다.

석목에 의해 묶여 있던 하얀 기류들이 마치 속박에서 벗어난 듯, 하얀 호랑이와 코뿔소로 변하여 진택목을 공격했다.

하얀 기류로 만들어진 호랑이와 코뿔소가 빠른 속도로 덩굴이 드리워진 틈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이어 하얀 홍수가 순식간에 진택목을 공격했다.

진택목은 깜짝 놀라 거대한 나무 법상으로 다급하게 앞을 막았다.

쿵!

푸른 나무가 부서지더니 진택목의 마른 몸이 마치 끊어진 연줄 마냥 휙 날아가서 땅에 처박혔다.

기세가 등등했던 긴 덩굴 창도 진택목이 쓰러지자 석목과 가까운 곳에서 터져버렸다.

붉은 눈썹 청년이 진택목의 옆으로 다가와 살펴보았다. 그는 쓰러지긴 했지만 심각한 상처는 입지 않았다.

석목의 곤봉은 다시 이쑤시개만큼 작아져서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그는 허리를 굽히고 심하게 기침을 했다. 마치 진기와 체력이 전부 소진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쉰 후 다시 천천히 상위 제자 대열로 들어갔다. 만약 채아가 옆에 있었더라면 석목의 가식적인 모습을 크게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석목이 온 힘을 다해 호시출합을 펼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진택목이 긴장을 늦춘 사이에 상대를 제압하여 간신이 이긴 걸로 판단하고 있었다. 심지어 무대 주변에서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석목 승! 진택목 도전 실패!”

붉은 눈썹을 드리운 청년이 곧바로 선포했다.

무대 밑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름판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진택목에 건 사람들의 표정은 망연자실해 있었고, 한숨을 쉬면서 후회했다.

마옥의 노름을 비웃던 옹졸한 남자는 자신이 건 것을 깡그리 잃었다. 그는 마옥이 영석들을 주워 담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채아는 마옥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영기가 가득한 영석을 바라보며 눈알이 곧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석목의 최상급 영석은 순식간에 천팔백 개로 늘어 있었다. 마옥도 크게 한 밑천을 벌었다. 그녀는 주머니 안에 있는 천 개가 넘는 최상급 영석을 바라보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채아가 난리를 치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최상급 영석을 한 개 꺼내 채아에게 던져주었다.

“와! 마 누님, 너무 예뻐!”

채아는 빠르게 영석을 물더니 두어 번 씹고 삼켜버렸다. 그리고 크게 트림을 하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상급 영석을 영총 한 마리에게 주다니, 무슨 낭비인가 싶었던 것이다.

“채아, 한 개 더 줄게!”

그러나 마옥은 오히려 영석을 흥청망청 쓰는 기분을 즐기는 듯했다. 그녀는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또 한 개의 영석을 채아에게 던져주었고, 석목에게 전음을 보냈다.

“석 사형, 방금 전 판에서 배당률이 4배였는데, 영석 수가 이천 개 가까이 됐어요!”

“수고했어요.”

석목이 말했다.

그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속으로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최상급 영석이 있으면 충분히 부자였다. 무려 이천 점의 현령점으로 바꿀 수 있는 만큼, 십 년 동안 성지에서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때 무대가 재정비되었고, 청년이 구경꾼들을 살피더니 말했다.

“또 도전할 사람이 있는가?”

무대 위는 한참 동안 조용했다. 그때 머리에 소뿔이 자라나 있고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오십 일 위의 제자 곽순(霍盾), 사십구 위의 여사제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마른 체형에 얼굴이 창백한, 잘생긴 남자가 걸어 나왔다.

둘은 규칙에 따라 이름과 종족을 밝힌 후, 각자의 법상을 만들어 싸웠다.

수염 남자의 법상은 삼 장 정도 되는, 붉은 화염 갑옷을 두른 소였다. 콧구멍에서 뜨거운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엄청났다.

그리고 잘생긴 남자의 법상은 한 장 정도 되는 여섯 개의 꼬리를 가진 푸른 여우였다. 여섯 개의 꼬리 위에 신의 빛이 어렸고, 보기에 매우 기이하고 영민했다.

양쪽은 각각 강인함과 유연함을 내세워 수 차례 맞붙었다. 여섯 꼬리 여우의 연이은 공격으로 수염 남자는 힘이 전부 빠졌고, 결국 마지막에 무대 위에서 떨어지며 패했다.

이 대결이 끝난 후 구경꾼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바로 다음 대결이 이어졌다.

석목의 오른쪽에서 자태가 요염하고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 여자가 허리를 뒤틀며 대열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무대 중앙에서 자릉을 가리키며 말했다.

“삽십팔 위의 제자 소유(苏柔)입니다. 십구 위에 있는 자릉 사매에 도전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릉의 작은 몸으로 이동했다.

자릉은 전혀 놀라지 않고 활짝 웃으며 대열에서 걸어 나와 소유의 앞에 섰다.

“소유, 적린성(赤鳞星) 출신의 어요족(鱼妖族).”

빨간 피부의 여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릉, 영성에서 온 인족입니다.”

자릉이 말했다.

“자릉 사매, 이 언니가 널 고른 걸 원망하지는 마. 석목이라는 사람이 바로 내 위에 있어서 이긴다고 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 그리고 기존 제자들은 전부 냄새나는 남자들이라 언니는 네가 가장 마음에 들어. 살살 할 테니 걱정 하지는 마.”

소유는 깔깔 웃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타고난 매력이 어려 있었다. 자릉 같은 어린아이마저 그녀를 바라보며 얼굴이 붉어졌다.

“소 언니, 별말씀을요. 시작하시죠.”

자릉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동생. 조심해야 한다.”

소유가 말하며 몸에서 붉은빛을 뿜어냈다. 한 장 정도 되는 붉은 비늘의 비단잉어 법상이 그녀의 뒤에 나타났다.

자릉은 웃음을 거두고 몸에서 자색 빛을 크게 뿜어냈다. 그리고 가슴 앞에서 팔짱을 끼고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소유의 부드러운 손이 움직이자 등 뒤의 비단잉어 법상이 빛을 뿜어내며 두 개의 허영을 만들었다.

비단잉어의 허영은 나타나자마자 위아래로 꿈틀거리며 소유의 몸 옆을 스쳐가서 자릉을 공격했다. 허공에는 두 갈래의 붉은 흔적만 남겨졌다.

자릉은 두 손바닥을 겹쳤다가 펼쳤다. 그곳에서 자색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짧은 칼이 나타났다.

자릉이 한 손으로 짧은 칼을 쥐고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일고여덟 갈래의 반달 모양 칼날이 나타나 자색 기운을 풍기며 두 마리의 허영을 향해 날아갔다.

허영은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부딪쳤다.

퍽퍽!

가벼운 소리가 들리면서 허영이 자색 칼날에 의해 어두워지며 터져버렸다.

자릉도 이렇게 가볍게 터져버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소유의 얼굴에 두려운 빛이 떠올랐고, 그녀는 몸을 비칠거리며 간신히 칼날들을 피해냈다.

쿵!

칼날이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지면서 부서진 돌들이 주변으로 튕겼다.

소유는 옷자락을 흔들며 튕겨오는 돌들을 막아내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자릉이 법결을 펼치며 다른 공격을 시전하려고 할 때, 이변이 발생했다.

그녀의 발밑에서 이상한 파동이 일렁였다. 그녀가 머리를 숙여 바라보니 붉은 물결이 발밑에서 퍼지고 있었다.

이어 크기가 한 장 정도 되는 붉은 비단잉어의 허영이 그 속에서 튀어나왔고, 자릉을 허공으로 밀어냈다.

자릉이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허공에서도 붉은 물결이 일렁였고, 다른 한 마리의 허영이 그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입을 크게 벌리더니 자릉을 향해 붉은 빛기둥을 뿜어냈다.

쿵!

자릉의 작은 몸이 붉은빛의 공격에 땅에 떨어졌다.

두 마리 허영은 위아래로 꿀렁이며 여러 갈래의 빛기둥을 뿜어냈다. 무대 위에서 붉은빛이 주변으로 날면서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의 눈앞에서 빛이 번지는 바람에 안쪽의 상황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작고 어린 자릉을 향해 측은지심을 내비쳤다.

“저 여자아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소유 저 년은 보기에는 약해보여도 아주 독종이란 말이지!”

“아이고, 신입이라 기존 제자들과 비교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

그러나 먼지가 휘날리는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는 석목의 표정은 평온했다.

“까르르……. 소유 언니, 힘이 너무 세잖아!”

갑자기 먼지 속에서 자릉의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이어 자색의 고리가 놀라운 속도로 밖으로 퍼졌고, 두 마리의 비단잉어 허영은 그것에 닿자마자 터져버렸다.

먼지가 가라앉으며 자릉의 모습이 나타났다.

석목은 자릉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하…….”

자릉은 몸 주변으로 빛을 발하며 강한 기세를 내뿜더니 주변의 먼지를 전부 날려버렸다.

자릉의 뒤통수에 둥근 달의 허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만월술사(满月術士)! 하하, 재미있네!”

소유는 멈칫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관람대 위에서 지켜보던 연꽃 선자는 무대 위의 자릉을 보며 눈썹을 찌푸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체쌍혼(一體双魂)…….”

자릉의 몸집이 순식간에 허공에 떠올랐다. 그녀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교차하더니 복잡한 법결을 펼쳤다.

그녀의 머리 뒤로 떠올랐던 달 허영이 사라지더니 수많은 달빛이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그녀가 앞을 가리키자 아이 팔뚝만 한 자색 화살 한줄기가 튕겨 나와 소유의 가슴으로 향했다.

자색 화살이 지나간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더니 찢는 듯한 엄청난 힘이 화살 주변에 자색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땅 위의 돌들이 그 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다급하게 두 손을 뒤로 보냈다. 그러자 등 뒤의 법상이 다시 한 번 허영을 만들어내며 양쪽에서 소용돌이를 향해 공격했다.

하지만 허영은 소용돌이에 닿자 단번에 빨려들어가 여기저기 찢기더니 희미한 빛으로 변했고, 순식간에 소용돌이에 의해 삼켜졌다.

소유는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가슴 앞에서 법결을 펼쳤다. 그녀의 등 뒤에서 법상이 다시 한 번 빛을 뿜어내며 나타났다. 법상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굵직한 빛을 뿜어내며 자색 화살을 막아냈다.

콰르르!

허공의 빛이 순식간에 터졌다. 자색 화살 주변에 있던 소용돌이도 터져버리면서 아이 팔뚝만 했던 화살은 엄지손가락 크기가 되었다.

하지만 손가락만 한 화살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고, 그대로 소유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그녀의 등 뒤로 화살이 튕겨 나오며 핏줄기를 길게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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