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진화진사(真火镇邪)
소유는 힘없이 땅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구경꾼들은 무대 위의 양상이 크게 바뀐 것을 보며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자릉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마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 사형, 방금 전에 노름판 근처에서 석 사형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을 만났어요. 이름이 조 뭐라고 하던데요.”
“조심뢰군요. 그 사람이 왜요?”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그가 사람들을 불러서 석 사형이 지는 쪽에 걸도록 했대요. 조심하세요.”
마옥이 말했다.
“알았어요. 나중에 누군가가 다시 도전하면 계속 부탁해요.”
석목이 말했다.
“영석을 전부 다 걸어요?”
“네, 전부 다 걸어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마옥이 답했다.
잠시 후, 무대 위에서 붉은 눈썹을 드리운 청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소유(苏柔) 도전 실패! 자릉 승!”
“제자 여러분, 또 도전할 사람이 있는가?”
그 말이 떨어지자 머리에 뾰족한 귀가 달리고 검은 얼굴에 검은 무늬가 있는 키 큰 청년이 나왔다. 그는 대열에서 걸어 나와 무대의 중앙에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십삼 위에 있는 제자 태타(呔砣)라고 합니다. 삼십칠 위의 석목 사제에게 한 수 배우겠습니다.”
석목은 그 말을 듣자 태연하게 대열에서 걸어 나와서 청년의 앞에 섰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비록 내향적인 기운을 지니긴 했지만, 분명히 천위 초기의 무인이었다.
두 사람은 각각 이름과 종족을 말했다. 태타라는 키가 큰 청년은 청장천과 마찬가지로 흑월성 출신이었다. 석목은 만법각에서 임무를 맡을 때 흑월성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
흑월성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일 년 내내 햇빛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곳의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환경에서 생활했다. 이 행성의 무인 들이 수련하는 공법과 무기는 대부분 음암(陰暗)의 것에 가까웠기에, 미양성역의 암살조직에 의해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하하, 석목. 듣자하지 네놈이 규칙을 따르지 않기로 유명하다며?”
태타는 눈썹을 치켜뜨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무슨 규칙을 말하는 겁니까?”
석목이 물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라. 돈을 빌렸으면 갚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네가 쓸데없이 끼어 들었으니 규칙을 어긴 게 아닌가?”
태타가 말했다.
“그래서요?”
석목이 되물었다.
“당연하지 않나? 부탁을 받고 너에게 규칙을 가르치러 왔다.”
태타가 말했다.
“말은 다 했습니까?”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죽어라!”
태타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허공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손에 용 모양의 단검 두 자루가 나타났다.
이어 그의 얼굴에 있는 검의 무늬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이 자세히 살피자 그 속에서 검푸른 용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석목은 여의빈철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붉은 빛을 뿜어내며 상대의 동작을 지켜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잠용결(潜龙决)!”
태타는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단검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며 앞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의 몸에서 나온 검푸른 용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두 개로 갈라지더니, 팔 부분에서부터 꿈틀거리며 단검의 가장 뾰족한 부분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
검푸른 용 그림자가 큰 소리를 내더니 꿈틀거리며 석목을 향했다.
석목이 두 눈을 치켜뜨더니 손에 든 곤봉을 빠르게 돌렸다. 그리고 하얀 기류를 이끌고 허공에서 물독 굵기만 한 하얀 회오리바람을 만들어내더니, 다시 눈 깜박할 사이에 곤봉을 거두들이고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서 곤봉을 찔렀다.
“영사출동!”
소용돌이치던 회오리바람이 하얀 교룡처럼 긴 곤봉의 끝에서 튀어나와서 두 줄기의 검푸른 용 그림자와 강하게 부딪쳤다.
쿵!
폭발음이 울리며 회오리바람과 용 그림자가 동시에 흩어졌다. 푸르고 흰 두 가지의 색이 뿜어져 나오더니 먼지가 주변으로 흩어졌고, 순식간에 무대를 뒤덮었다.
쓱!
불 그림자가 먼지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태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태타는 그 모습을 보자 몸을 희미하게 만들더니 잔영을 드리우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빠른 속도는 불 그림자와 비교하니 전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불 그림자는 태타를 눈 깜박할 사이에 따라잡았다.
“태산압정(泰山壓頂)!”
불 그림자 속에서 석목이 등 뒤의 날개를 퍼덕였다. 이어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휘두르자 촘촘한 그림자가 작은 산처럼 밀려와서 태타의 머리를 내리쳤다.
태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두 손을 용 모양의 짧은 비수로 변형시켰고, 그것을 교차하며 위로 치켜들었다.
“승용결(升龍决)!”
두 줄기의 검푸른 용 그림자가 엉키면서 올라왔고, 산처럼 밀려오는 곤봉의 그림자와 부딪혔다.
탕!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얼핏 보기에는 태타가 짧은 비수로 하늘에서 휘날리는 곤봉의 그림자를 받아내는 양상 같았다. 그러나 곧 그가 서 있던 땅 위가 갈라지며 눈에 보일정도의 빠른 속도로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석 사제, 힘이 엄청나군?”
태타가 갑자기 머리를 들더니 기이한 표정으로 웃었다.
석목이 자세히 보니 태타의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얼굴 전체는 검은 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오른쪽 몸에 드러난 피부도 거무칙칙하게 변했다.
석목은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여의빈철곤 아래를 바라보았다. 곤봉 밑에 있던 태타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퍽!
이어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오른쪽 갈비뼈 쪽에서 엄청난 힘이 밀려왔다. 어느새 태타가 귀신처럼 석목의 뒤에 나타났고, 그의 몸을 강하게 걷어찬 것이었다.
석목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바닥에서 몇 번 뒹굴었다. 그의 갈비뼈 쪽에 있는 금색 비늘이 찢겨 있었다. 석목은 허공에서 비칠거리더니 간신히 추락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가 몸을 제대로 세우기도 전에 귓가에서 바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비수가 위아래로 날아오며 그의 머리와 다리 부위를 찌르려 했다.
석목은 다급하게 두 팔을 당겨 여의곤으로 몸 앞을 가로막았다.
탱! 탱!
두 번의 소리가 울리고 나서 또다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퍽!
석목은 날아오는 두 비수를 곤봉으로 막아냈지만, 그의 복부를 향한 강한 주먹 공격은 피하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날아온 한 방에 석목은 바로 무대 위에 쓰러졌다.
한편 노름판 주위에서는 조심뢰가 세 남녀와 나란히 서서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 사형, 저 태타라는 사람은 흑혼당(黑魂堂)에서도 십 위 안에 드는 자객이라고 했는데, 정말인가요?”
체구가 큰 검은색 피부 사나이가 물었다.
“그렇고말고. 내가 알기로 저 사람은 원수에 쫓겨서 청란성지로 들어온 거야.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지.”
조심뢰가 말하기도 전에 부채를 들고 옆에 서 있던 청년 남자가 말했다.
“석목이라는 자가 고생 좀 하겠군. 조 사형이 미리 저희에게 말씀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세 사람 중 유일한 여자가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조 사형, 감사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괜찮습니다. 저와 태타는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입니다. 그리고 혼자 즐기는 것보다야 다 같이 즐기는 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조심뢰가 뒷짐을 지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마옥이 그들을 등진 채 안절부절못하며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두둑한 영석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 * *
무대 위에서는 석목이 다시 한 번 주먹을 맞고 바닥에 굴렀다.
그는 곧바로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태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석목의 몸에 있는 금색 비늘은 찢겨 있었고 그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며, 안색은 창백했다.
그는 눈을 금빛으로 번쩍이며 영목신통을 시전하였지만, 극도로 희미한 검은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태타는 맨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빠른속도로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석목이 그의 동선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것만 보일 뿐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석목은 몇 번이나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허점만 드러내며 상대에게 기회를 허용했다.
다행히 석목은 탈태결을 완성한 뒤로 같은 경지에 있는 무인들보다는 육신이 훨씬 단단해졌다. 그리고 금빛 비늘이 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체력과 진기는 떨어지더라도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그 자리에 멈추더니 그의 옆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석목은 날렵하게 피하면서 여의곤을 휘둘렀다.
상대의 동선을 파악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 서서 기회를 노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여러 차례 공격을 당한 덕분에 석목도 그의 공격 방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여의곤이 날아오자 검은 그림자는 그것에 닿기 전에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석목과 멀지 않은 범위에서 이리저리 번쩍였다.
태타가 변신한 검은 그림자는 또 한동안 수 차례의 공격을 가했다. 그 간격은 점점 짧아졌고 공격의 각도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석목은 매번 공격을 받을 때마다 미리 감지하고 익숙한 곤법으로 막아냈다.
석목은 그림자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바라보았다.
태타는 한 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 비수를 꽉 쥐고 있었는데,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로 인해 움직임도 많이 느려진 듯했다.
그 순간 석목은 등 뒤에서 날개를 펼치고 태타의 앞으로 날아갔고, 곤봉을 휘두르며 그의 머리를 공격했다.
그러나 태타의 얼굴에는 이를 예상했다는 듯 교활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그가 가슴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세우더니 낮게 소리를 질렀다.
“영용결(影龍决)!”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땅과 분리되어 수십 갈래의 검은 용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석목의 두 발에서부터 꿈틀거리며 허리까지 꽉 묶어버렸다.
석목은 놀라서 날개를 펼쳐 도망치려 했지만, 하반신이 완전히 묶인 채라 움직일 수 없었다.
“하하, 죽어라!”
태타가 손으로 법결을 시전했다. 이어 그의 뒤에서 몇 장 정도 되는 검은 사람의 법상이 나타났다. 법상은 손에 든 긴 낫으로 석목의 머리를 가르려 했다.
그때 석목 뒤에서 붉은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날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화염으로 둘러싸인 붉은 원숭이 법상이 나타났다.
법상은 형태를 갖추자마자 입을 크게 벌려서 태타의 사람 법상을 향하여 하얀 화염을 뿜어냈다.
“혼원진화!”
태타는 그 화염을 보더니 낮게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두려운 듯 몸을 번쩍이더니 뒤로 물러났고, 허공에서 사람 법상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기뻐하며 법결을 바꾸었다. 혼원진화가 그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그를 묶고 있던 검은 용 그림자는 진화에 닿자 비명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풀려난 석목은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등 뒤의 붉은 원숭이 법상이 입을 크게 벌리고 곤봉 위로 혼원진화를 뿜어냈다.
훅!
이어 맑고 깨끗한 하얀 화염이 활활 타오르더니 곤봉을 그대로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