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16화 (416/916)

416화. 일 위에 도전하다

그때 석목의 얼굴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좋아!”

그의 머리 위에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에 나타난 태타가 검은 인영 법상을 만들어서 긴 낫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석목이 공격을 피하자 낫의 방향을 바꾸더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하지만 석목은 낫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듯, 혼원진화에 둘러싸인 긴 곤을 아래쪽에서부터 위쪽으로 치켜들었다.

펑!

묵직한 소리가 울리며 태타가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는 몸에서 푸른빛을 번쩍이며 곧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

쿵!

거센 힘을 머금고 있는 긴 낫은 곤봉의 표면에서 타고 있는 혼원진화에 닿았다. 그러자 낫은 마치 실이 풀린 누에처럼 녹아버렸다.

이어 석목은 원유반원을 시전하며 빠르게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가 손에 든 곤봉을 좌우로 흔들며 유성간월(流星赶月)을 시전하자 곤봉 그림자가 교차로 나타났다. 양쪽에서 날아오던 날이 태타의 몸에 떨어지면서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태타를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여러 번 번쩍이더니 그 힘을 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 석목은 휘어진 활처럼 몸을 뒤로 젖히더니, 두 손으로 꽉 쥔 곤봉을 뒤에서부터 앞으로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창응개정을 선보인 것이다. 곤봉은 태타의 복부를 강하게 내리쳤다.

이 모든 동작은 물 흐르듯 유려하게, 그러면서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났다.

“아악!”

태타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속에서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태타는 복부가 움푹 패고 몸통이 구부러진 채 떨어져버렸다.

쿵!

태타의 몸이 무대 위에 떨어지자 주변으로 부서진 돌들이 튀었다. 그는 입에서 붉은 피를 뿜으며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전세가 역전되었고, 당하기만 하던 석목이 단번에 상대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석목은 허공에서 한 번 돌더니 태타와 멀지 않은 곳에 착지했다. 그는 다시 몸의 비늘을 거두더니 덤덤한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태타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썹을 드리운 청년이 내려와서 태타의 상태를 살피더니, 석목의 승리를 선포했다.

무대 밑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모두 각양각색의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청년을 향해 손을 모아 인사했다. 그리고 여의곤을 거두지 않고 어깨에 짊어진 채, 당당한 걸음으로 원래 서 있던 삼십칠 번 자리로 돌아갔다.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이런저런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석목이 지금까지 진정한 실력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석목의 실력이 태타보다 못하지만, 단지 운이 좋아 이긴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었다.

석목은 무대에 서서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싸움에서 이기긴 했지만 체력과 진기가 많이 소진되어 한동안 휴식을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마옥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석 사형, 또 이기셨군요. 축하해요!”

“아, 이번 배당률은 어땠나요?”

“앞서 두 번의 대결보다는 높지 않았어요. 일 대 이입니다. 석 사형의 최상급 영석은 지금 총 오천사백 개예요. 참, 석 사형이 이겼을 때 조심뢰의 표정을 보셨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꼭 파리를 씹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의 말에 따라 태타가 이기는 쪽에 건 사람들은 지금 조심뢰를 죽이고 싶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네!”

노름판에서 마옥은 단목광이 건넨 영석 주머니를 챙겼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 판에서 영석을 거는 것을 한참 망설였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던 일천여 개의 영석을 전부 걸지 않고 예의상 이백 개만 걸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사백 개의 영석을 벌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한편 무대 왼쪽에 있던 석목은 이미 채아의 시야를 통해 노름판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입가를 살짝 올리더니 채아와의 시야 공유를 끊어버렸다.

그때 관람석 위에 있는 세 명의 호법 뒤에 서 있는, 푸른 머리카락에 하얀 눈썹을 가진 노인이 말했다.

“석목이라는 제자는 육체를 단단하게 강화하는 여러 가지 공법을 수련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인족의 몸으로 통천곤법을 저렇게까지 능숙하게 익히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허허, 저 자가 치른 두 차례 대결을 놓고 보면, 그는 아직도 어느 정도 힘을 남겨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뒤로 갈수록 우리를 놀라게 할 성과를 보여줄지도 모르지요.”

피부가 붉고 수염이 하얀 또 다른 노인이 말했다.

* * *

석목의 연기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그 뒤로 아무도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덕분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어진 대결은 전부 기존 제자 간의 대결이었다. 대결 상대끼리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여주기 식으로 몇 번 맞붙더니 적당히 마무리됐다. 그 때문에 재미가 크게 반감됐고 노름판의 분위기도 썰렁해졌다.

무대 분위기가 늘어질 즈음 상위 제자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는데, 그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제자 조극, 구 위입니다. 일 위의 용전야 사형과 대결하고 싶습니다.”

조극이 꼿꼿하게 서서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전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허허, 꽤 재미있어지겠군!”

“실력이 대단한 건 인정하는데, 몇 번 이겼다고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아니야?”

조극이 걸어나오자 무대 주변이 다시 웅성웅성했다.

노름판에서 노름을 주도하던 단목광도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주 재미있는 판입니다. 흔하게 오지 않을 기회지요. 빨리 이쪽으로 모이시오!”

금색 옷을 입고 있는 용전야가 대열의 가장 왼쪽에 있다가 조극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에게 도전장을 내민 건 네가 처음이다.”

용전야가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이 무대에서 백 년 만에 사형을 이긴 첫 번째 사람이 되겠군요.”

조극이 담담하게 받아쳤다.

“흥! 큰 소리 치기는. 그럼 내가 네 구전현공을 꺾어주마!”

용전야가 차갑게 말했다.

이어 그의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더니, 엄지손톱만 한 금색 비늘이 자라나며 몸 곳곳을 뒤덮었다.

금색 비늘은 그가 걸치고 있는 금색 옷과 매우 잘 어울렸고, 숨길 수 없는 강력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금색 갑옷을 두른 전투의 신처럼 으리으리했다.

비늘이 전부 나타나자 용전야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금빛 찬란한 용수대도(龙首大刀)가 나타났다.

그는 한 손으로 대도를 몸 앞에 세워들고 다른 한 손으로 법결을 몇 개 펼쳤다. 그리고 입으로는 복잡한 주문을 외우며 칼자루를 꽉 잡았다.

금빛이 일그러지더니 칼이 순식간에 여섯 치 정도 되는 작은 금색 용으로 변했다.

금색 용은 네 발을 허공에서 휘갈기며 엄청난 기세로 조극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조극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는 도끼를 꺼내들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석목은 그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조극의 동공은 이미 푸른색으로 변하였고 그 앞에서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물결에 닿자 금색 용의 몸이 굳어졌다. 마치 순식간에 얼어버린 듯 허공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금색 용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던 용전야도 표정이 굳은 채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용전야 옆으로 하얀 실이 수없이 떠다니면서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강한 압력을 느꼈지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때 조극이 한 손에 도끼를 쥐고 순식간에 금색 용 앞에 나타났다.

그는 곁눈질로 금색 용을 바라보더니, 별다른 움직임 없이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 용전야 옆에 섰다.

이어 용전야의 목을 바라보더니 자색 도끼를 들어 내리쳤다.

무대 밑에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전부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붉은 눈썹의 청년은 한쪽에 가만히 서 있을 뿐 말리려 하지 않았다.

그때 용전야의 눈에서 금빛이 크게 번졌고, 허공에 금제되어 있던 금색 용의 눈동자도 갑자기 움직였다. 이어 금제에서 벗어난 용이 입을 벌리더니 금색 화염을 내뿜으며 조극의 등 뒤를 공격했다.

조극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도끼를 든 손을 빠르게 거두었고, 금색 화염을 막았다. 하지만 그의 몸은 화염의 강한 위력에 그대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금색 용은 조극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허공에서 몸을 돌려 다시 용전야를 향해 날아갔다.

용전야의 몸은 활활 타오르며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자 금색 용이 고개를 들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몸을 꿈틀거리더니 다시 눈부신 금빛을 향해 날아갔다.

쿵!

무대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빛이 번지자 그 주위에 떠 있던 하얀 실들이 여러 토막으로 끊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아!”

하늘을 울리는 용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이어 금색 비늘에 촘촘하게 둘러싸인 발이 금빛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몸을 구불구불 서리고 있는 십 장 정도의 금색 용이 나타나더니 허공을 빙빙 맴돌았다.

금색 용은 붉은 두 눈에서 차가운 빛을 뿜으며 조극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살기가 무대 위를 뒤덮었다.

발이 다섯 개나 달린 금색 용으로 변신한 후 용전야는 천위 중기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무대 밑에 서 있던 구경꾼들은 그걸 보고 모두 놀라 소리쳤다.

십 위 안에 드는 제자 중에서도 능풍만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놀라거나 어안이 벙벙해졌다.

석목의 시선이 다시 조극을 향했다. 그는 고민에 빠진 듯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극은 미간만 살짝 찌푸렸을 뿐 여전히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도끼를 천천히 몸 앞으로 움직이며 공격에 대응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금색 용은 코웃음을 치며 두 개의 숨결을 내뱉더니 입을 크게 벌려서 금색 화염을 내뿜었다. 나선형의 굵은 불기둥이 조극을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불기둥은 눈 깜박할 사이에 조극의 코앞까지 날아왔다.

그러자 조극은 한 손으로 도끼를 들고 다른 한 손을 도끼날에 갖다 대더니 방패처럼 몸 앞을 막았다.

날아오던 화염에 맞자 도끼날은 온통 붉게 달아올랐는데, 가운데 부위가 타오르다 못해 투명한 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 영기는 용의 불길 때문에 곧 쓰레기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조극의 오른쪽 팔에서 빛이 뿜어내더니 빠르게 퍼져나가서 자색 도끼를 감쌌다.

그러자 자색 도끼의 붉은 색이 사라지더니 금색 화염도 줄어들었다. 무대 주변의 온도도 다시 내려갔다.

허공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금색 용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꼬리로 조극을 공격했다.

조극은 급작스러운 공격에 그대로 허공에서 꼬리에 휘감겼다. 그의 두 팔은 용의 꼬리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고, 자색 도끼도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금색 반용은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지르더니 꼬리를 더 강하게 조였다.

꼬리에 자라난 비늘들이 서로 부딪히며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극은 마치 큰 산에 눌리는 듯한 같은 느낌이었다.

강한 압력으로 인해 그의 몸 곳곳에서 뼈마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하얗던 조극의 얼굴은 붉게 부풀어서 금세 피가 튀길 것 같았다.

허공에서 지켜보던 붉은 눈썹 청년은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짓눌려서 몸통이 일그러지다시피 한 조극이 고개를 들어서 큰 소리를 지른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부풀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두 눈에서는 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어 조극의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더니 울퉁불퉁한 근육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온몸에 길고 굵은 은색 털이 촘촘하게 자라났다.

그의 입 안에는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이 자라났고, 그중 가장 긴 이빨 두 개가 입술 사이로 뻗어 나왔다. 그 다음에는 긴 손톱이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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