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화. 막을 내리다
석목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날개를 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푸른 검빛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위를 향하더니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석목의 몸속에서 진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빨라졌다. 그는 두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푸른빛의 검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영사출동(靈蛇出洞)!”
“창응개정(蒼鷹蓋頂)!”
“벽교번강(擘蛟翻江)!”
“광용난무(狂龍亂舞)!”
“잠용등연(潜龍腾淵)!”
석목은 단숨에 다섯 개의 초식을 연속으로 사용했다.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검은 곤봉의 그림자와 교차하며 거대한 검은 망을 이루어 아래를 뒤덮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른빛 검은 망 속에 묶여 드디어 움직임을 멈췄다. 검은색과 푸른색의 기류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하늘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의 무대 바닥은 촘촘한 기류의 충격으로 이미 형체를 잃어버렸다. 드리워진 푸른 막도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곤영과 검빛이 전부 사라지기도 전에 능풍이 발을 움직여 하늘 위로 떠올랐다.
눈 깜박할 사이 능풍은 귀신같이 석목의 오른쪽에 나타났다. 그리고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삼 치 정도의 되는 푸른 검을 번쩍이더니 석목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석목은 깜짝 놀라 곤봉을 들어 몸을 막았다. 그러나 강한 힘 때문에 뒤로 튕겨 날아갔다.
석목은 등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방금 전 능풍 사형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타와 청장천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석목은 바닥에 내려서며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능풍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검이 천천히 멈추었다. 검 끝은 이미 석목의 눈썹 가까이까지 다가와 있었다.
“능풍 사형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더 이상 대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석목이 능풍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석 사제, 입문 십 년 만에 이렇게 좋은 성과를 거두다니, 제가 첫 대결을 했을 때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십 위 이내에 반드시 석 사제의 자리가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능풍이 검빛을 거두며 말했다.
“덕담 감사합니다.”
석목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대 위의 온화한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무대 밑에서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벌어졌었다. 근사한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고, 누군가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노름판에서는 석목에게 걸었던 사람들이 화가 나서 날뛰고 있었다.
“비열한 놈, 그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해? 내가 널 얼마나 좋게 봤는데! 빌려온 영석 열 개를 전부 날려버렸어!”
일전에 나타났던 옹졸한 남자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내 영석!”
“너무 억울해…….”
한쪽에서는 슬피 울부짖는 소리와 욕을 퍼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옥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채아는 참지 못하고 석목에게 전음을 보냈다.
“석두, 왜 그렇게 빨리 패배를 인정했어?”
석목이 물었다.
“왜? 뭔가 시원치 않아 보여?”
“영석을 잃은 노름꾼들이 너를 욕하잖아. 그게 듣기 싫단 말이야.”
채아가 말했다.
“마음대로들 지껄이라고 해. 내가 건 것도 아니잖아? 이번 대결에서는 내 실력을 가늠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데 구전현공을 시전하지 않으면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겠더라. 그래서 그만둔 거야.”
석목이 설명했다.
“그럼 그렇지! 석두는 겁쟁이가 아니지!”
채아의 말에 석목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능풍과 석목이 각자 자리로 돌아가자 붉은 눈썹 청년이 다른 도전자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청년은 관람대에 있는 종문의 고위직 인물들에게 무언가 물었고, 곧바로 황계 구역의 십 년 대결이 종료되었음을 선포했다. 이로써 이번 대결은 막을 내렸다.
광장 중앙에는 청란방의 순위가 새롭게 나타났다.
대결 전과 비교했을 때, 십 위 이내는 9위가 조극으로 바뀐 걸 제외하면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자릉은 여전히 십구 위에 있었고 석목도 삼십칠 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 외에 함께 입문한 임시 상위 제자들은 전부 하위 제자로 전락했다.
* * *
대결이 끝나자 석목은 곧바로 자신의 동부로 돌아왔다.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제풍 등 관사들은 삼백 명의 시종을 전부 소집하여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석목이 나타나자 그들은 흥분한 기색으로 인사를 올렸다.
“부주님, 정식으로 상위 제자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석목이 정식으로 상위 제자가 되면 시종들의 지위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는 혜택도 전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었다.
“됐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도 각자 자리를 잘 지키면 된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잠시 후 주실의 한 객실에는 제풍의 안내를 받은 마옥이 와 있었다.
“마 사매 오셨군요. 앉으십시오.”
석목이 중간에 앉아서 한쪽에 있는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석 사형, 채아는요?”
마옥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 먹보는 오후에 시종 몇을 데리고 영천에 화정백을 잡아먹으러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석목이 말했다.
“하하, 채아는 그런 영재를 엄청 좋아하는군요. 여기 석 사형의 영석이 있으니 확인해보세요.”
말을 마친 마옥은 손가락에서 저장 반지를 빼더니 석목의 앞에 놓았다.
석목은 반지를 건네받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수백 개의 영석을 꺼내 마옥에게 주었다.
“이번에 정말 감사했어요. 이건 수고비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 사형,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은 석 사형의 몫을 걸 때 제 것도 적지 않게 걸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영석을 벌게 되었어요.”
마옥이 연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녀가 진심으로 사양하는 것 같아서 더는 채근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요. 그럼 혹시 나중에 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꼭 돕겠습니다.”
“석 사형, 정말입니까?”
마옥은 석목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마옥이 돌아간 후 석목은 저장 반지를 손에 들고 매만져보았다. 그리고 신식을 통해 그 안의 영기 가득한 최상급 영석 오천 개를 보면서 뿌듯해했다.
이번 대결에서 구전현공을 숨기느라 최종 순위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수확이 있었다. 이 정도 많은 영석을 벌게 되었으니 대결의 포상금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석목은 저장 반지를 넣어두고 동부의 내실로 돌아가서 잠이 들었다. 며칠 동안 연속으로 대결을 치르느라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석목은 사흘을 내내 잤고, 나흘째가 되었을 무렵에야 맑은 정신으로 깨어났다.
그가 막 방에서 나가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두, 이제야 일어나다니! 냉취환이 널 사흘이나 기다렸어. 할 말이 있대.”
“그래, 거실에서 기다리라고 해.”
석목이 말했다.
잠시 후, 거실에서 석목은 취환과 마주앉았다.
“보아하니 이번 입문 시험 성과가 좋은 것 같구나.”
석목은 취환을 위아래로 흩어보며 물었다.
“부주님 덕분입니다. 서른여섯 명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성지에는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취환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항상 차갑기만 하던 그녀의 표정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훨씬 여자답게 아름다웠다. 원래도 평범하지 않은 자태에 분위기가 더해지니 마치 딴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 영지에서 성지 제자가 나오다니 나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되면 조심뢰도 너를 더 이상 건들지 못하겠지.”
석목이 말했다.
취환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족의 일을 떠올리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석목이 입을 열며 화제를 돌렸다.
“참, 이번 입문 시험에서 수천청산 비경의 깊은 곳에 들어갔었나?”
취환은 그 말을 듣고 잠깐 멍해 있더니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비경에 들어가기 전에 길을 안내해주신 장로님이 비경의 중심은 매우 위험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 비경 중심에 대해 따로 소식을 들은 건 없느냐?”
석목이 물었다.
취환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중심 구역에 있는 요수들이 강하다고만 들었을 뿐, 별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석목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주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다. 그냥 물어보는 거다. 참, 이제 동문이니 앞으로는 부주님이라고 할 필요 없다. 내 이름을 부르면 된다.”
석목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취환은 방긋 웃더니 기뻐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취환이 떠나자, 석목은 비밀 석실로 돌아와서 푸른색 나뭇가지 한 토막을 꺼냈다. 이 나무토막은 비경 중심의 수령 왕에게서 가져온 것이었다.
십 년이나 지났지만 나뭇가지의 외관은 그대로였다.
“이 나뭇가지는 대체 뭘까?”
석목은 신식으로 나무토막을 관찰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일 각이 지나도록 살펴보았지만, 나뭇가지가 원래 머금고 있는 옅은 향기와 순도 높은 나무 속성 영기 외에는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다시 나뭇가지를 거두어들였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한참 침묵하더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석두, 나갈 거야? 나도 데려가!”
채아가 날아와서 그의 어깨에 앉았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청익비차를 불러서 현영탑 쪽으로 날아갔다.
* * *
일 각이 지난 후 석목은 커다란 대전 앞에 있었다.
대전은 엄청나게 커서 만법각의 몇 배나 됐고, 오가는 사람도 많아서 시끌벅적했다.
대전 앞에는 돌로 만든 편액이 걸려 있었고 그 위에 선약재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두, 단약 사려고?”
채아가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양의 기운 단약은 전부 먹어버려서 남은 게 없었다.
이제 정식 상위 제자가 된 석목은 이번 대결을 통해 다른 상위 제자들의 막강한 실력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의 실력도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수련 경지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서둘러 끌어올려야 했다.
석목은 선약재로 들어갔다. 그 안은 엄청나게 넓었고 방이 이삼십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실내는 다른 단약 상점과 별다른 점은 없었다. 커다란 진열대 위에 다양한 단약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전당 전체에서 향기로운 약 냄새가 풍겼다.
각종 단약의 분류도 잘 되어 있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 근본을 튼튼하게 다져주는 고본배원(固本培元) 단약, 해독 단약, 그리고 다른 용도의 단약도 있었다. 심지어 독약도 있었는데, 그것은 진열대 앞에 잘 보이도록 표시되어 있었다.
진열대마다 푸른색 옷을 입은 남녀가 서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남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양한 문의에 대응하고 있었다.
석목은 이곳에 여러 번 와봤기에 익숙했지만 채아는 처음이라 흥분되어 소리를 질러댔고, 석목이 한마디 하자 그제야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