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긴박하다
그들은 석목이 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성공 대청을 지나서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에는 원형의 공간이 있었다.
공간의 면적은 매우 넓었고 전체가 검은색이었는데, 공간 길이는 이삼십 장 정도 되고 높이도 십여 장쭘 되었다. 벽에는 부문이 줄줄이 새겨져서 현묘한 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공간에는 몇 갈래의 통로가 있었고 각각 깊은 곳까지 이어졌다. 통로마다 동부의 문이 몇 개 보였는데, 전부 석실 같았다. 백여 개의 문에는 각각 표기가 되어 있었다.
“이 돌문 안은 각각 독립된 공간이다. 표시된 번호는 별빛의 기운이 짙은 정도에 따라 나열된 것이다. 앞쪽에 있는 석실일수록 별빛의 기운이 짙은 것이지. 하지만 이곳의 석실을 빌려 수련한다 해도 규칙은 존재한다. 자네 같은 황계 제자는 칠십에서 백 번 사이의 석실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자네는 긴 시간을 빌렸으니 좋은 자리를 배정하도록 하겠다. 팔십삼 번 석실로 들어가도록.”
중년 남자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중년은 석목을 팔십삼 번 석실 문 앞까지 데려간 뒤 하얀 영패를 꺼냈다. 영패에서 한줄기 빛이 날아가 석실 문에 스며들었다.
문이 천천히 열렸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석실 안은 바깥에 있는 대청처럼 별빛을 내뿜고 있었고, 극도로 짙은 별빛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마치 별이 가득한 끝없는 하늘에 들어온 것 같았다. 게다가 천지 영기는 눈에 보이는 안개처럼 짙었다.
그밖에 석실 내부의 구조는 매우 단순했다. 석실의 바닥 가운데에만 푸른 방석이 한 개 깔려 있었고, 그 외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석 사제는 이곳에서 수련하면 된다. 석실 속의 금제는 매우 현묘해서 성계 존재의 신식으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아무런 방해도 없이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다 되면 자동으로 밖으로 전송될 것이다.”
중년 남자는 설명을 마치고 방에서 나갔다.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이런 폐쇄된 공간이 필요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석실의 주변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가서 방석 위에 앉았다.
그가 앉자 석실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사방이 거무칙칙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마치 아무도 없는 성역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변에서 별빛이 반짝이면서 멀리서부터 촘촘하게 다가왔는데, 그 수를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 손을 흔들어 청골세혼단이 들어 있는 푸른 조롱박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보조 재료들을 일일이 꺼내 앞에 줄지어 놓았다.
이어 석목은 두 눈을 감고 천천히 적원화경을 시전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하얀 별빛들이 어떤 신비스러운 힘에 이끌려 그가 있는 곳으로 흘러왔다. 바로 별빛의 기운이었다.
능풍의 말에 의하면, 이 안에 있는 별빛의 기운은 성역 세계에서 가장 원초적인 천지의 힘으로, 외부의 원기보다 훨씬 맑고 깨끗했다.
하얀빛들이 마치 저녁 하늘의 반딧불처럼 석목의 몸에 달라붙었다. 석목은 순식간에 별빛에 둘러싸였고, 그의 몸 전체가 하얀 비단옷을 걸친 듯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극도로 짙은 기운이 몸의 곳곳에서 체내로 흡수되고, 다시 몸속의 모든 경맥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경맥에서 시원한 느낌이 솟아나면서 취한 것 같은 나른함이 느껴졌다.
별빛의 기운과 석목의 몸속에 있는 진기가 점차 융합되어 근맥에서 들끓었고, 다시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별빛의 기운이 모이자 진기가 점점 농축되어 끈적끈적해졌다.
석목은 신식으로 몸속을 훑어보고 크게 기뻐했다.
진기가 농축되면서 진기로 충만했던 단전과 경맥이 텅 비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짙은 영기가 모여들어서 영해(灵海)와 경맥이 다시 천천히 차올랐다.
삼 개월이 순식간에 흘렀다.
석목은 천천히 눈을 떴고, 그의 얼굴에 맑은 빛이 충만해 있었다.
석목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삼 개월 간 고생한 끝에 체내의 진기가 크게 정련되었다. 진기의 양도 예전보다 몇 배는 더 많아졌고, 영해 속에서 끈적이는 진기는 마치 수은 같았다.
기운을 살짝 움직여보니 강력한 힘이 그의 몸에서 폭발하며 흘러나와서 석실에 격렬한 파동이 일렀다.
석목의 몸속에 있는 진기가 들끓으면서 후기의 한계를 향해 돌진했지만, 아직은 조금 모자란 것 같았다.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 푸른 조롱박에서 세혼단을 꺼내 삼켰고, 다른 보조 재료들도 함께 삼켜버렸다.
다양한 빛이 석목의 몸에서 폭발했고, 그대로 그의 몸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빛 속에서 석목의 기운이 점점 부풀었다.
* * *
또다시 삼 개월이 흘렀다.
석목이 있는 석실에서 갑자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부신 붉은 빛이 석실에서 번졌고, 그 속에서 강력한 진기의 파동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천지 영기도 갑자기 정신없이 들끓었고, 수많은 영기의 소용돌이를 형성하여 석실 밖으로 흘러나갔다.
천성전 밖에서는 칼 눈썹을 가진 중년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침상에 앉아 몸에서 푸른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마치 푸른색 누에고치처럼 보였는데, 공법을 수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눈썹을 움직이더니 눈을 번쩍 떴다.
“엄청난 영기의 파동이구나. 어떤 제자가 천위 경지를 돌파하고 있는 건가?”
남자는 일어서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으음? 이 방향은 팔십삼 번 석실인데……. 그렇다면 그 백년 제자? 그는 분명히 지계 중기의 정상이었는데, 지계 후기를 돌파하면서 이런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말인가?”
남자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감지해보더니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기이한 현상은 잠시 지속되다가 점차 사라졌다.
중년 남자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수련을 이어갔다.
* * *
석목이 석실을 대여한 기간인 육 개월이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갔다.
천성전의 한 구석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법진이 형성됐고, 이어서 석목이 그 법진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몸에서는 반딧불 같은 빛이 반짝였고, 기운은 마치 깊은 바다 같았다. 드디어 적원화경의 열한 번째 단계를 넘어서서 지계 후기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사실 석목은 이미 며칠 전에 돌파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계속해서 수련을 거듭한 것이었다.
천성전은 영기가 극도로 짙은 데다, 강력한 별빛의 기운으로 진기를 정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칠팔 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석목은 수련의 경지를 더 단단하게 다졌고, 이로 인해 꽤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석목은 기분이 좋아서 입가에 웃음을 띠었고, 그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밖으로 나가서 천성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중년 남자는 입구 부근에 서서 석목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석목은 중년 남자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 뒤, 등 뒤에서 붉은빛을 뿜으며 한줄기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재미있군. 지계 후기가 저런 실력을 갖추고 있다니. 몇몇 천년 제자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실력이야!”
중년 남자는 멀어져가는 석목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 *
석목의 동부 앞에서 채아가 원형 모자를 쓰고 몸이 비대한 중년 남자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뚱보, 석목이 나왔다고?”
채아가 다급하게 물었다.
“채아 어르신, 소식이 정말 빠르네요. 부주님께서 아침 일찍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뒷산으로 가더니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지요.”
제풍이 대답했다.
“석두 이놈, 정말 너무하네. 나왔으면서 나를 먼저 만나지 않고!”
채아가 불만이 많은 듯 말했다.
그가 재잘대는 동안 하늘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제풍의 앞에 떨어졌다.
“부주님!”
제풍이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다.
석목이 그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석두, 너 왜 이제야…….”
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목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채아, 따라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목이 옷자락을 흔들자 무형의 힘이 채아를 그의 어깨로 끌어당겼다. 그들은 순식간에 동부의 문을 지나서 주실로 들어갔다.
“채아, 나는 앞으로 수련을 좀 더 해야 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석목이 말했다.
“이제 막 나왔는데 또 들어간다고? 나 통류방에 가고 싶어서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채아가 말했다.
“종문에 현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을 거야. 내가 듣기로 청란성주가 조극을 직속 제자로 받아들였대. 그러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천년 제자나 만년 제자도 수두룩할지 몰라.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구전현공의 세 번째 단계를 완성해야 할 것 같아.”
석목이 말했다.
“그 하얀 원숭이 노인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닐 거야. 두 번째 단계의 구결도 어렵게 구했잖아. 세 번째 단계에서는 또 무슨 해괴망측한 요구를 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어렵게 구하지 말고 현영점을 충분히 모아서 만법각에서 바꾸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채아가 말했다.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야. 다만 그렇게 하면 수련 시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만여 개의 현영점을 모으는 것도 쉽지가 않아. 그리고 네 번째 단계에서는 더 많은 현영점이 필요할 거야. 또 천위의 경지에 들어서려면 새로운 공법이 필요해. 성전각에는 진귀한 공법들이 많은데 전부 많은 현영점이 필요한 것이고.”
석목이 말했다.
“아이고, 성지는 다 좋은데 그게 제일 불편해. 뭐든 현영점이 필요하잖아! 석두 너는 걱정하지 말고 수련이나 잘해. 동부의 일은 나와 제풍 뚱보가 알아서 할게.”
채아가 날개를 들어 가슴을 치며 말했다.
* * *
채아가 떠난 뒤, 석목은 혼자 뒷산의 석실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의식의 세계로 신식을 보냈다.
신식 속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작은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작은 사람은 나타나자마자 눈을 번쩍 뜨며 일어서서, 의식 세계의 중심에 둥둥 떠 있는 금색 곤봉 앞으로 갔다.
그가 곤봉을 잠시 훑어본 뒤 두 손을 들어 법결을 펼치자 가느다란 실이 곤봉의 표면을 감쌌다.
곧 금색 곤봉 표면의 금색 부문이 밝아지면서 흔들렸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작은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두 손으로 법결을 바꿔가며 펼쳤고, 신식은 얇은 실로 변하여 곤봉을 층층이 감쌌다.
잠시 뒤 곤봉 표면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옅은 금색 물결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작은 사람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기뻐했다.
하지만 물결은 잠깐 사이 사라졌고, 곤봉의 표면에 있던 금빛 부문도 어두워졌다. 흔들림도 가라앉아서 움직임이 없었다.
작은 사람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에 첫 단계의 수련을 마친 뒤에는 이런 방식으로 곤봉의 금제를 풀었었다. 이제는 두 번째 단계도 수련을 마쳤고 경지도 한 단계 올랐기에 조건은 충분할 터였다.
석목은 포기하지 않고 금색 곤봉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다양한 위치에서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가끔 물결만 일어날 뿐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두세 시진이 흐르는 동안 연구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작은 사람은 크게 실망했다. 그는 곤봉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머리를 숙여 고민하더니,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급하게 일어섰다.
그는 두 손에서 검은빛과 하얀빛을 뿜어내면서 동시에 곤봉 위를 짚었다.
그러자 곤봉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잉!
이어 곤봉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며 한줄기의 옅은 회색빛이 소용돌이치며 나타났고, 회색 안개가 흘러나와서 작은 사람을 그 속으로 빨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