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화. 부음포양(負陰抱陽)
세월은 빠르게 흘러서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석목은 여전히 동부에서 폐관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서 두 갈래의 희고 검은 기이한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삼 년의 시간을 들여서 드디어 멸선곤법에 겨우 입문하여 시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일식밖에 없는 이 곤법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는 빨리 이 곤법을 시전해보고 싶어서 흥분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석두, 드디어 나왔구나!”
석목이 문을 열고 나오자 채아가 허공에서 날아와서 그의 어깨에 앉았다.
석목은 머리만 끄덕일 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 자꾸 폐관 수련만 하는 거야? 정말 그렇게 급해?”
채아는 석목이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물었다.
“너도 긴박한 상황이라는 걸 잘 알잖아.”
석목이 말했다.
“그럼 지금은 또 어디 가는 거야? 나갈 거야?”
채아가 물었다.
“청란성지를 나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나도 따라갈래. 계속 청란성지에만 있었더니 답답해 죽을 것 같아.”
채아가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가볍게 웃으며 청익비차를 불렀다. 중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채아를 데려가도 상관없었다.
그들은 한줄기 푸른빛이 되어 현영탑으로 날아갔다.
* * *
닷새 후, 청란성지와 수만 리 떨어진 황량한 산맥에 푸른빛이 떨어졌다. 그 안에서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의 산맥은 매우 황량했는데, 몇 종의 광석이 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산 속에 있는 요수들도 약한 편이었고, 희소한 종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은 청란성지와 가까운 데도 불구하고 성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석두, 새가 둥지를 틀지도 않는 이런 곳에는 왜 온 거야? 요수를 사냥하러?”
채아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의 시력은 이제 수백 리 이내는 전부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였다.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그가 한 손을 들자 검은 빛이 반짝이며 여의곤이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곤법 하나를 익히고 있었는데, 성과를 조금 봤거든. 그래서 이곳에서 그 위력을 확인하고 싶어.”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여의봉에서 빛을 뿜어냈다.
“뭐 하러 귀찮게 여기까지 와? 영지에서 하면 안 되는 거야?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거야?”
채아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물어보았다.
석목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 멸선곤법은 청란성지에서는 절대 시전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구전현공이 그렇듯, 누군가는 이 곤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백원왕은 성지의 모두가 지켜보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여의곤의 검은 빛이 점점 밝아졌다.
“석두, 잠깐만.”
그때 채아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눈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어디론가를 바라보았다.
석목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왜?”
“저쪽에 기운이 매우 강한 요수 두 마리가 있어. 아마 천위 경지는 되는 것 같아. 그 곤법의 위력을 보려면 이런 허허벌판에서 하는 것보다 요수를 상대로 하는 게 좋지 않아?”
채아가 말했다.
“좋아, 그럼 해보자!”
석목은 채아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그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석목은 수백 리 밖의 거대한 산봉우리 앞에 나타났다.
산봉우리 아랫부분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었는데, 칠흑같이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요수의 기운이 그 안에서 뿜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석목은 채아의 시야를 통해 안쪽 상황을 파악했다.
동굴은 매우 깊었고 가장 깊은 곳에 노란색 요수 두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사자 같은 외형에 머리에 갈기가 있었고 몸집은 칠팔 장 정도 되어 보였으며, 등에 노란 가시가 한 줄 돋아 있었다.
그들의 몸 주위에서는 짙은 요수의 기운이 맴돌았다. 채아가 말한 것처럼 천위 경지의 요수들이었다.
“황풍후왕(黄風犼王) 두 마리로군.”
석목은 혼잣말을 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강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두 손으로 여의곤을 꽉 쥐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면서, 손에 든 곤봉을 강하게 휘둘렀다.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곤봉 그림자 한 개가 여의곤에서 튕겨져 나왔다. 그 그림자는 백 장이 넘는 거리를 지나 동굴 안쪽으로 날아갔다.
이어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굴이 한참 동안이나 격하게 흔들리더니 수많은 돌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입구를 막아버렸다.
“허엉!”
동굴 안쪽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구에서 바람이 휘날리더니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커다란 돌들이 무형의 힘에 튕겨나갔다. 동굴에는 다시 통로가 생겼다.
석목은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면서 곤봉을 겨누고 있기만 할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날아오는 거대한 돌들은 곤봉의 표면에 닿자 가루로 부서져 버렸다.
그때 동굴 안에서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노란 회오리바람이 석목의 앞까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노란빛이 사라지자 몸집이 거대한 요수 두 마리가 나타났다.
요수들은 노란 갈기를 드리우고 흉악한 눈으로 석목을 향해 포효했다.
하지만 석목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하!”
석목은 두 마리의 요수를 훑어보며 기합을 넣었다.
이어서 그의 왼팔과 오른팔에서 각각 하얀빛과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들은 점점 밝아지더니 하늘까지 높이 솟아올랐다.
석목의 작은 몸집이 거대한 봉우리처럼 하늘 높이 떠올랐고, 엄청난 위압감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서 요수들을 압박했다.
요수들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동시에 입을 크게 벌렸다. 그들의 몸에서 노란빛이 크게 번지더니 바람기둥 두 개로 변해서 석목에게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땅 위에 자라난 식물들마저 빨려 들어가서 소용돌이를 쳤다. 처음에는 이삼십 장 정도였던 두 갈래의 바람기둥은 석목의 눈앞에 다가왔을 때는 이미 백 장까지 커져 있었다.
바람기둥은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 주변의 공기를 휘감았다.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면서 마치 멸망의 날이 온 것 같았다.
석목은 눈을 번쩍 뜨더니 두 갈래의 굵은 바람기둥을 마주하고 차갑게 콧바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서 여의곤이 검은 빛을 뿜어냈다.
이어서 그의 몸이 팽이처럼 돌더니 손에 들린 곤봉이 희미해지면서 가로세로로 수많은 잔영을 만들어냈다.
하얗고 검은 두 가지 빛이 그의 몸에 묻혀버리면서 마치 흑백의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멸선곤법!”
석목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커다란 곤봉의 그림자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노란 회오리바람의 기둥을 강하게 내리쳤다.
곤봉의 그림자에 닿자 회오리바람은 종잇장처럼 가볍게 갈라지더니 흩어져버렸다.
천위의 요수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곤봉 그림자가 빛을 뿜어내며 주위 몇 리까지 드리워졌고, 그들까지 덮어버렸다.
요수들은 네 발을 들더니 다시 노란 회오리바람을 만들려고 허덕였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더니 두 갈래의 빛이 단번에 갈라졌다.
하얀빛은 위로, 검은 빛은 아래로 갈라졌는데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고, 맑은 기운과 혼탁한 기운을 분리해놓은 것 같기도 했다.
두 마리 요수의 몸은 공중에 떠올라서 흑백의 공간 사이에서 멈춰 있었다. 그 공간은 마치 중력이 사라진 특수한 곳 같았다.
공간의 힘이 점점 가운데를 향해 압박해 들어갔다.
두 마리의 요수는 놀란 나머지 몸에서 노란빛을 뿜어냈다. 그들은 입에서 바람기둥을 끊임없이 내뱉었고 칼바람의 공격도 시도하는 등, 온 힘을 다해 흑백의 공간을 깨트리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몸부림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공간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콰르르!
곧이어 흑백의 공간이 변하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나뉘어 있던 하얗고 검은 빛이 순식간에 뭉쳐졌고, 한 개는 검고 한 개는 하얀 거대한 맷돌로 변해 빙빙 돌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공간은 가운데를 향해 점점 좁혀졌다.
요수들의 눈에서 절망의 기색이 어렸다. 그들은 분노에 겨워 울부짖으며 몸을 점점 부풀렸다. 마치 이 공간과 함께 사라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흥!”
그때 흑백의 공간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맷돌이 더 빠른 속도로 조여지며 요수들을 그 안에 끼워 넣었다.
“돌아라!”
허공에서 또다시 큰 소리가 울리며 맷돌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두 마리 요수의 거대한 몸집은 공간의 압박에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퍽! 퍽!
피와 살덩이가 하늘에 날았고, 마치 발에 밟힌 과일처럼 주변에 육즙이 뿌려졌다. 두 요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어버렸으며, 혼마저 그대로 뭉개져버렸다.
순식간에 하늘과 땅 사이에 흑백의 두 가지 색만 남겨졌고 여전히 놀라운 기세로 돌고 있었는데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잠시 후 흑백의 공간이 한참 흔들리더니 다시 사라졌다.
이어서 허공에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비틀거렸다.
땅 위에는 요수 두 마리의 찢어진 사체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핏덩이 속에서 주먹만 한 노란색 요단 두 개가 날아올라 그의 손에 떨어졌다.
이 요단들은 천 년 동안 수련해온 천위 요수의 것인 만큼 최고의 단약 재료였다. 당연하게도 값도 매우 비쌌다.
석목은 요단을 대충 살펴보고 챙겨 넣은 뒤 서둘러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단약 몇 개를 꺼내 삼키고 나서야 안색이 회복됐다.
석목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멸선곤법과 구전현공을 결합하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단 한 번의 공격을 했을 뿐인데 천위 요수 두 마리가 가볍게 죽어버린 것이다.
이 곤법은 이미 평범한 곤법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공간의 힘이 내재되어 있어서 천지의 힘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다행히 석목은 공간 감응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이 정도까지 수련할 수 있었다.
물론 뛰어난 곤법인 건 맞지만 진기의 소모도 굉장했다. 그래서 석목의 수련 경지로는 겨우 한 번만 시전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을 시전했을 뿐인데 몸 안의 진기가 전부 고갈된 것 같았다.
“석두, 이건 무슨 곤법이야? 이렇게 대단하다니!”
채아가 멀리서 날아오며 큰 소리로 재잘댔다.
멸선곤법을 시전하기 전, 석목은 채아가 곤법의 위력에 영향을 받을까봐 미리 멀리 날려 보냈다.
“이건 멸선곤법이야. 얼마 전에 번천곤 안에서 깨우친 거야.”
석목은 채아에게 한마디 하고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상급 영석을 손에 쥐고 영력을 흡수하여 빠르게 진기를 회복했다.
채아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석목이 회복하는 동안 누군가에게 들킬까 싶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최상급 영석에 들어 있는 영기의 순도는 상급 영석이 절대 따라오지 못할 만큼 짙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뜬 석목의 눈에서는 맑은 빛이 감돌았다. 몸속의 진기가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가자.”
석목이 일어서며 말했다.
“석두, 그냥 이렇게 돌아간다고?”
채아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은 가볍게 웃었다. 그는 이 곤법의 위력을 검증하려고 나온 것이었고, 목적을 달성했으니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석두, 오랜만에 나왔는데 근처에서 좀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들어가자. 매일 동부에만 처박혀 있어서 너무 답답했어.”
채아가 말했다.
“그래, 이 근처에 주점 한 곳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곳에 이슬 영초로 만든 맛있는 술이 있대. 가서 한 단지 사줄게.”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채아가 흥분되어 큰 소리로 재잘댔다.
석목은 채아와 함께 다시 한줄기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