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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26화 (426/916)

426화. 환마도(幻魔道)

일주일 뒤, 석목은 다시 동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풍에게 몇 년간 종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를 받고 다시 산으로 향했다.

이후 며칠 동안 석목은 비밀 석실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는 멸선곤법을 더 깨우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어렵게 입문한 참이었지만, 이 곤법은 너무 어려워서 폐관 수련만 해서는 실력을 향상시킬 수가 없었다.

석목이 가늠해보니 십 년을 공들인다 해도 큰 발전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시간이 긴박했기에 멸선곤법에 더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신혼지력을 시전해서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의 공법 구결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이미 세 번째 단계의 구결을 수도 없이 훑은 뒤였다.

첫 번째 단계의 양의 힘,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의 음의 힘과 달리 세 번째 단계의 핵심은 음양합일이었다. 왼손과 오른손으로 두 가지 기운이 충돌하지 않도록 잘 조화시켜야 했다. 음양의 힘을 완벽하게 혼연일체로 만들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은 끝나는 것이었다.

세 번째 단계의 공법은 보기에는 내용이 많지 않았지만, 구절마다 주옥같은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었다.

석목은 반복적으로 그 내용을 읽었고, 칠 일 밤낮이 지나서야 조금 깨우칠 수 있게 되어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도해보았다.

두 갈래의 검고 햐안 빛이 석목의 양쪽 팔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오더니, 다시 그의 몸으로 퍼져서 빠르게 합쳐졌다.

석목은 심각한 표정으로 몸이 굳어버린 채 천천히 세 번째 단계의 공법 구결을 시전했다. 그는 음양의 두 가지 힘을 단전에서 합치려 하는 중이었다.

세월이 흘러 눈 깜박할 사이에 삼 개월이 지났다.

석목은 비밀 석실에서 가부좌를 튼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다. 흑백이 선명하게 갈라진 빛이 그의 몸에 드리우고 있었는데, 경계가 뚜렷해서 전혀 섞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이러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생긴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석목은 눈을 뜨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계속 시도를 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어서 마음만 초조해지고 있었다.

왼손에 있는 양의 기운과 오른손에 있는 음의 기운을 각각 시전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둘을 합치려고 하면 서로 충돌하면서 전혀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섞을 수도 없었다. 두 기운이 충돌하면 그 폭발력이 너무 강해서 그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석목은 눈살을 찌푸렸다.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를 수련하려면 각각 천수의 정혈, 양의 기운과 불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언급되지 않아서 기뻐했는데, 막상시도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원래는 수련 도중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스승이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맞지만, 그는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처지였다.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다.

“그렇지. 백원왕의 보장 세 개…….”

그의 머릿속에는 백원왕이 남긴 보장 세 개에 관한 정보가 있었다. 아직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몰랐다.

백원왕이 아무 이유 없이 보장 세 개를 남겨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법을 전하는 동시에 이를 남겨놓은 것을 보니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석목은 곧바로 눈을 감고 보장들을 찾아보았다. 한참을 뒤진 후에야 그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백원왕은 청란성지 이 층에 있는 보장 속에 음양의 균형을 조절하는 물건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그것은 석목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정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석목은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 보장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우선 청란성지의 이 층으로 가야 했다.

청란성지는 각 층간의 이동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었다. 백년 제자의 신분으로 이 층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서 이 층으로 가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천년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지의 규정대로 천년 제자가 되려면 일 층에서 천 년을 수련해야 했다. 또 수련 경지가 천위에 도달해야 신청할 자격이 주어졌다.

석목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천란성지에 들어온 지 고작 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곳에 가려면 천 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만약 그걸 버텨낼 끈기를 가졌다 한들, 구전현공을 수련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 긴 시간을 기다려줄 것인가?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예전에 읽었던 종문에 관한 전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관례를 깨뜨리고 이 층에 몰래 들어갈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방법은 없었다.

“안 돼. 나는 종문의 규칙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 사람을 찾아서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할 거야.”

석목은 무모한 노력을 빠르게 포기하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종문에서 딱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있다 해도 대부분은 그와 함께 청란성지에 들어온 사람들이라, 물어본다 해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후 석목은 능풍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능풍은 그가 입문했을 때 곳곳을 안내해준 사형이었고, 인품도 좋아서 물어보기 편할 것이었다. 그는 청란성지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인만큼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석목은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 좋을 듯해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한 시진 뒤, 그는 맑고 깨끗한 산봉우리 근처에 도착했다.

산봉우리 근처는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고 매우 조용했다. 안쪽에 다락 건물 몇 채가 있었는데, 대부분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고 매우 소박했다.

석목이 가까이 다가가자 한 건물 안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피리 소리는 마치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우아했으며,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석목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뒤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능풍 사형 계신가요? 석목입니다. 혹시 뵐 수 있을까요?”

석목이 말했다.

“허허, 석 사제가 오셨군요. 미처 마중을 나가지 못했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청아한 목소리가 다락방에서 흘러나오면서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석목은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는 푸른 옷의 남자가 손에 옥으로 만든 피리를 들고, 긴 머리를 끈으로 곱게 묶고 앉아 있었다. 능풍이었다.

능풍은 일어서서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음, 몇 년 보지 못한 사이에 사제의 수련 경지가 한층 더 깊어졌군요. 이미 지계 후기까지 도달했네요. 축하합니다.”

“옅은 수련으로 어떻게 감히 사형과 비교하겠습니까.”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서로 치켜세우는 건 그만합시다. 오늘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저와 담소나 나누기 위해서인 건 아니겠지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보세요.”

능풍이 말했다.

“그럼 저도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형에게 성지와 관련된 일을 물어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석목이 손을 모아 인사를 하며 말했다.

능풍은 그 말을 듣더니 계속 말해보라는 듯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저 같은 백년 제자가 성지의 이 층에 들어갈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요?”

석목이 물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잠깐 머무르려는 건가요?”

능풍이 물었다.

“잠깐 머물게 되면 얼마 동안 머물 수 있습니까?”

“그러려면 천년 제자의 초대가 필요합니다. 기간은 최대 칠 일을 초과할 수 없고, 그 제자의 영지 안에서만 체류할 수 있으며, 밖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능풍이 대답했다.

“그럼 오래 거주하려면요?”

석목이 또 물었다.

“허허, 오래 있으려면 당연히 천년 제자가 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입니다. 천년 제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천위 경지까지 수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제는 지금 지계 후기인데,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종문에서 관례를 깨뜨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능풍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인가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석 사제, 청란성지에 들어온 지 이제 십 년이 조금 넘었지요? 왜 이리 급한 건가요? 혹시 천년 제자가 받는 혜택과 자원 때문입니까?”

능풍이 물었다.

석목은 입가를 살짝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천년 제자의 자원 때문이라면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사제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물론 천년 제자가 종문의 풍부한 자원을 지원받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 백년 제자와 마찬가지로 매년 종문의 임무를 어느 정도 완수해야 합니다.

그 임무는 천위의 존재라 해도 매우 위험한 일들이죠. 우리 같은 백년 제자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석 사제, 좀 더 기다리면서 실력을 다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능풍이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 청란성지는 진정한 무인의 길을 받듭니다. 무인이 수련을 하는데 있어서는 그 실력만큼이나 마음의 수련도 중요합니다. 청란의 성조는 심성이 부족하면 그 사람의 실력이 아무리 신통하다 해도 정의로운 길을 걷지 못하고, 끝내 잘못된 방식으로 도를 닦아 마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천 년의 기한이라는 것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천 년이 지나서 충분한 심성의 수련을 거쳐야만 이 층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침묵하더니 머리를 들어 손을 모으며 말했다.

“사형의 깊은 배려는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성지의 이 층 공간에 가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만약 사형이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능풍은 그 말을 듣고 석목을 바라보더니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제가 집요하게 그 방법을 알고 싶어 하니 알려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사형.”

석목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백년 제자가 성지의 이 층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영탑 속의 환마도(幻魔道)를 통하는 것입니다.”

능풍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석목이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환마도(幻魔道)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환마도는 종문의 특별한 공간입니다. 저도 전해듣기만 했을 뿐입니다. 이 통로에 들어가게 되면 진실인 듯 아닌 듯한 환상을 접하게 된다고 해요. 잠깐 정신을 팔기만 해도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곳의 환마(幻魔)에게 죽임을 당해서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천년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꼭 그 환마도의 시험을 거쳐서, 심성과 실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능풍의 얼굴은 심각했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지며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에 확고한 결심의 빛이 스쳐 지났다.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그리고 환마도에 들어가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백년 제자라고 해서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능풍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떤 조건입니까?”

석목은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환마도가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면, 종문도 모든 백년 제자가 그곳에 가서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진입 장벽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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