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28화 (428/916)

428화. 연마하다

두 달 동안 석목은 연나의 지시로 이곳 산골짜기에서 수련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 온 뒤 연나는 취선대에서 무형의 힘을 뽑아서 그의 몸에 스며들게 했다. 그리고 나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그와 신식으로 연결을 시도해보았지만, 응답이 없었다.

무형의 힘이 스며들자 그는 이곳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고, 사령의 기운에 침식당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아마도 연나가 취선대를 이용해 무엇인가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그 사이 채아가 석목과 신식으로 연결됐고, 그는 석목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기도 따라오겠다며 야단법석을 했다.

하지만 석목이 사령계의 황량한 풍경에 대해 설명해주자, 채아는 자기는 석목을 위해 집을 지키고 관리해야 하니 죽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석목이 손에 든 여의곤을 거두고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맑은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이 한 수는 괜찮군. 평범한 것들을 상대하는데 간신히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석목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골짜기에서 은색 그림자가 날아왔다. 연나였다.

그녀는 다시 전투를 위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은빛의 반짝이는 갑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별다른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을 높이 묶어서 미모는 다소 가려진 대신 용맹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내가 곧 마주해야 할 상대는 절대 평범한 자가 아니야. 최소 천위 중기 이상의 경지일 테고, 현공을 시전하지 않으면 이길 가능성이 없어.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던 거야?”

석목이 자신을 향해 오는 연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따라와.”

연나는 석목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한줄기 은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석목도 어쩔 수 없이 붉은 빛으로 변하여 연나를 따라갔다.

연나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가는 도중 만난 사령생물들은 연나가 풍기는 기운에 놀라서 전부 숨어버렸다.

반 시진 후, 연나와 석목은 어느 커다란 웅덩이에 내려섰다.

이 거대한 웅덩이 속에는 자색 안개가 자욱해서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뾰족하게 올라와 있는 거대한 돌들만 희미하게 보였다.

“이곳은…….”

석목이 물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등 뒤에서 엄청난 힘이 몰려왔다. 순간 석목의 몸은 허공으로 올라가서 웅덩이에 빠져버렸다. 뒤이어 연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사견귀왕(蛇犬鬼王)의 소굴이야.”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고, 그는 손에 여의곤을 들고 등 뒤로 날개를 펼쳤다.

연나가 강하게 떠미는 바람에 그는 이 웅덩이의 바닥과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그가 등 뒤의 날개를 펄럭이자 주변의 자색 안개가 살짝 흩어졌다.

하지만 안개는 곧바로 몰려와서 또다시 시야가 가려졌다.

자색 안개가 피어오르자 석목은 피부가 마비되면서 간지러움을 느꼈다. 그는 손을 뻗어 몸을 긁으려 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급하게 손을 움츠렸다.

그가 몸에서 빛을 번쩍이자 붉은 화염이 왼쪽 팔에서 감돌더니 몸 전체를 감쌌고, 동시에 금빛이 크게 번지며 금색 비늘이 몸을 뒤덮었다.

자색 안개는 화염에 닿자 타는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그때 석목은 왼쪽 앞에서 영력의 파동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쪽을 바라보니 자색 안개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큰일이다!’

이어 한줄기의 커다란 청자색 그림자가 그 속에서 뛰쳐나오더니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몸 크기가 삼십 장 정도는 되어 보이는 기괴한 모습의 개였다.

그 개는 두 눈에서 혼탁한 하얀색을 뿜고 있었고, 몸은 청자색이었는데 그 위에 손바닥만 한 썩은 상처가 있었다. 상처에서 거무스름한 진액이 끈적이며 땅에 떨어질 때마다 소리를 냈다.

“사견귀왕!”

석목은 연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견귀왕은 네 다리를 들어서 앞발 두 개를 뻗으며, 입을 크게 벌린 채 석목을 덮쳐왔다.

순간 석목은 개의 배 아래쪽으로 다가가서 위를 향해 여의곤을 찔렀다.

후욱!

하얀 회오리바람 한 개가 나타나서 곧바로 개의 복부를 공격했고, 개는 그 힘에 의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석목이 막 몸을 일으켜 다시 한 번 공격하려는 순간, 커다란 개의 엉덩이에서 물통 굵기만 한 꼬리가 튀어나와 그를 향해 날아왔다.

석몪이 곧바로 곤봉을 들어 공격하려 하자 꼬리는 영리하게 피했고, 다시 석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당황한 석목은 곤봉을 몸 앞으로 끌어당겨 꼬리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퍽!

굵은 꼬리가 곧바로 여의빈철곤을 강타했다. 거대한 힘이 곤봉에서 전해지면서 석목은 두 팔이 저릿해져서 무기를 놓칠 뻔했다.

이어 석목은 곤봉을 강하게 휘둘러 굵은 꼬리를 공격했다.

그러자 꼬리는 마치 뼈가 부러진 듯 가운데가 꺾이더니, 다시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퍽!

가벼운 소리가 들리면서 꼬리의 끝에서 자색 빛이 번졌다. 이어서 그 아랫부분이 찢어지면서 자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굵고 튼실한 구렁이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석목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자색 안개를 얼굴에 덮어쓰고 말았다. 얼굴이 불에 타는 듯 따가웠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두 눈을 감고 화염으로 얼굴을 감싸서 독 안개의 대부분을 막아낼 수 있었다.

석목은 두 팔을 움직여 여의곤에서 검은 빛을 뿜어냈다. 그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의곤을 힘차게 휘두르자 줄기의 검은 그림자가 허공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횡소천군(横掃千軍)!”

석목은 자신이 꼬리를 제대로 공격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뒤로 다급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신식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얼굴에 돋아난 금색 비늘이 살짝 부식된 흔적이 있긴 했지만, 온전히 뚫리지는 않은 걸 보고 석목은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는 눈을 뜨고 상대를 볼 수도 없었다. 신식을 통해서 사견귀왕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감히 내 땅에 쳐들어오다니! 죽어라!”

사견귀왕이 갑자기 사람의 말을 내뱉었다.

석목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기류가 끊임없이 사견귀왕 쪽으로 몰려드는 것이 감지됐다. 뭔가를 시전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석목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가 검은 곤봉을 휘두르자 하얀 기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곤봉의 그림자가 층층이 드리워지더니 강한 기류가 주위로 모여들었고, 흉악한 짐승들이 석목의 빈철곤 안에 갇혔다.

바로 앞에서 수많은 자색 안개가 모여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고, 사견귀왕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서 자색 안개의 공이 만들어졌다.

석목은 여의곤을 돌리며 주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순간 거대한 자색 안개가 사라지더니 사견귀왕의 입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다. 안개가 사라지자 땅 위에 널브러져 있던 수많은 백골이 나타났다.

그때 사견귀왕의 혼탁한 눈에서 자색 빛이 번졌다. 그의 입에서 맴돌고 있던 자색 안개가 튕겨 나와 석목에게 묵직한 공격을 가했다.

“좋아!”

석목이 작은 소리로 외치며 손에 든 검은 곤봉을 위아래로 흔들며 통천곤법 팔식을 시전했다.

쿵!

천둥 같은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하얀 기류의 덩어리들이 포효하는 짐승이 되어 홍수처럼 몰려갔고, 자색 안개로 만들어진 공을 공격했다.

펑!

다시 한 번 폭발음이 울렸다. 가장 앞에서 날아가던 호랑이 기류가 안개 공에 부딪히며 이내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안개 공의 위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쾅!

다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개 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갑옷을 두른 코뿔소 한 마리가 흩어졌다.

펑! 펑!

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고, 수많은 맹수 기류가 안개 공과 부딪히며 순식간에 흩어졌다.

자색 안개 공이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안개의 줄기들이 퍼졌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때 또 한줄기의 회오리바람이 맹수의 밀물 사이에서 튕겨나가더니 안개 공과 강하게 부딪쳤다.

쿵!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커다란 웅덩이가 격하게 흔들렸다.

자색 안개 공이 부서지며 수많은 안개가 흩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전진하는 맹수들에 의해 흩어져버렸다.

파도 같은 하얀 기류가 사견귀왕을 파묻어버렸다. 사견귀왕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져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고, 영혼의 화염마저 그대로 흩어질 뻔했다.

그때 석목의 옆으로 한줄기의 은색 빛이 스쳤다. 연나였다.

그녀가 손을 가볍게 들어올리자 한줄기 은빛이 날아가서 사견귀왕의 혼화를 감쌌다.

석목은 웅덩이 안에 서서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견귀왕이 죽어버리자 주변에 자욱하게 피어올라 있던 독 안개도 사라졌고, 얼굴의 따가운 느낌도 줄어들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석목은 웅덩이의 본래 모습을 둘러보았다. 웅덩이는 타원형으로 변형되어 있었고, 가운데 부위는 처음의 깊이보다 십여 장이나 더 깊어졌다.

석목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연나가 말했다.

“강적을 만났다고 너무 조심스러워하다가는 오히려 상대에게 기회만 주는 꼴이 되지. 이 사견귀왕은 고작 천위 초기야. 다음에는 이렇게 운이 따르지 않을지도 몰라.”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한줄기 빛이 되어 웅덩이 밖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그녀의 말을 듣고 아래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의 싸움에서 그가 과하게 신중한 자세를 취한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백수진황을 시전했더라면 사견귀왕은 자신을 공격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석목은 머리를 돌려 연나가 날아간 쪽을 바라보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시 황량한 산골짜기에 돌아온 뒤, 연나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떠나갔다.

석목은 그녀의 행보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방금 전의 격전에서 통천곤법과 멸선곤법에 대해 어느 정도 깨우침을 얻었고, 계속해서 수련을 이어갔다.

그 뒤로 연나는 더욱 빈번하게 나타났다.

그녀는 짧으면 칠팔 일, 길면 십여 일만에 갑자기 나타났고, 석목을 데리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들이 간 곳은 전부 천위 경지의 사령생물이 사는 소굴이거나, 많은 수의 지계 사령생물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주인들은 침입자들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화살은 전부 석목에게로 향했다.

연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는 석목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거나, 심지어 심한 상처를 입어도 절대로 끼어들지 않았다.

석목의 의지력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강했고, 연나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그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싸울수록 용맹해졌고, 위기에 맞닥뜨릴 때마다 잠재력이 폭발하여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이런 싸움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석목도 이런 훈련 방식에 점차 적응이 되었다. 적당한 상대가 끊임없이 나오니 사투를 벌이면서 실력을 연마할 수 있었고, 그것은 결코 흔한 기회는 아니었다. 이런 방식은 폐관 수련만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초반에 나타났던 사견귀왕은 천위 경지의 사령이었지만, 그 뒤에 나타난 상대들에 비해서는 훨씬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투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석목은 여의빈철곤과 통천곤법의 응용에 더욱 익숙해졌다. 심지어 멸선곤법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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