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큰 풍파를 불러일으키다
석목은 청익비차를 불러 현영탑으로 날아갔고, 잠시 후 검은 대전 앞에 도착했다.
대전 위에는 검은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 환마전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이곳이구나.”
석목은 혼잣말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의 실내 장식은 매우 단조로웠다. 긴 돌 탁자 한 개만 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탁자 뒤에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는 석목이 들어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은 대전 안쪽을 여기저기 바라보더니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석목이라고 합니다. 집사님께 인사드립니다.”
석목이 큰 소리로 말했다.
회색 옷의 노인은 지계 초기 정도로 보였고, 옷차림을 보니 이곳에 배치 받은 신분 낮은 집사 같았다.
노인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는 졸린 눈으로 석목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일어서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야?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지?”
“저는 석목이라고 합니다. 환마도에 도전하러 왔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뭐라고?”
노인은 귀신이라고 본 것처럼 자신의 두 눈을 비비더니 다시 석목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제자 석목, 환마도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석목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자……자네가 환마도에 도전한다고? 정말인가?”
노인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집사님께서 종문에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석목은 현영벽을 꺼내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그에게 건넸다.
노인은 석목의 표정을 보고서야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손을 내밀어 현영벽을 받았다.
그는 검은색 영패를 꺼내들고 석목의 현영벽 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현영벽에서 뻗어 나오더니 검은색 영패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곧 검은 영패에 석목의 이름이 나타났다.
“좋아, 이제 접수됐네. 우선 돌아가게, 사흘 후 도전이 시작될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따로 기별이 갈 것이야.”
노인이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현영벽을 거두어들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허허, 이곳에서 당직을 선지 백 년도 안됐는데 벌써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다니!”
노인은 멀어져가는 석목을 바라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청란성지는 백년 제자들을 위해 환마도를 만들었지만, 이후 지금까지 환마도에 도전한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그런 이후로 환마전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온 상태였고, 현영탑에서도 사람이 제일 뜸하게 드나드는 곳이었다. 심지어 일 층에서 천 년의 세월을 보낸 사람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을 지키는 노인도 예전에는 백년 제자였다. 하지만 종문의 규칙을 어겨 집사로 전락했고, 이곳을 지키게 된지 곧 백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환마도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노인은 계속 혀를 차더니 몸을 돌려서 대전 안쪽에 있는 또 다른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텅텅 비어 있었고 깊은 곳에 검은 비석만 한 개 세워져 있었다. 검은 빛이 맴돌고 있는 비석 위에서는 얇고 작은 부문이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노인은 검은 영패를 꺼내들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손에 든 영패가 점점 밝아졌다.
잠시 후 영패에서 검은 빛 한줄기가 나와서 비석으로 들어갔다. 비석에 빛이 환하게 번지더니 그 위에 석목의 이름이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청란성지의 어느 곳에 있는 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비석 근처에는 큰 자색 종이 걸려 있었는데, 종이 빛을 뿜어내며 소리를 냈다.
땡! 땡!
“뭐야? 환마종이 울렸잖아? 이건 백년 제자가 환마도에 도전 신청을 했다는 뜻인데?”
“그래? 신기하네. 이번에는 어떤 제자일까?”
종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기 시작했다.
석목이 환마도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하루도 되지 않아서 청란성지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환마도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사람들도 현영탑 안에 이런 특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환마도 도전에 필요한 조건에 대해 들은 사람들은 더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백년 제자 앞 순위에 있는 세 명에게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대부분의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환마도에 도전한다는 것은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석목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또 기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제 곧 시작되는 백년제자 대결보다도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왜냐하면 대결은 십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지만, 누군가 환마도에 도전하는 것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 층의 어느 영지에서 한 청년이 하얀 옷을 입고 푸른 돌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돌 밑에서 시종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그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석목? 그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지난 대결에서 상위 제자로 승급한 사람이지? 그런데 환마도에 도전한다고? 간이 부었군.”
하얀 옷을 두른 청년은 시종의 말을 듣고 얼굴에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이름은 운예로 상위 제자 삼 위였다. 그는 얇은 눈썹과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눈에는 매우 밝은 검은 빛이 돌고 있었다. 무언가 비술을 수련한 것 같았다.
시종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머리도 감히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 알았으니까 내려가봐.”
잠시 후 운예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소인 물러가보겠습니다.”
시종은 다급하게 일어서서 뒷걸질로 그곳에서 나왔다.
“정말 무서운 게 없는 놈이구나! 그래, 그럼 내가 신입에게 아량을 베풀지. 환마도에 들어가면 죽을 것이 뻔하니까.”
운예는 혼잣말로 한마디 하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 * *
능풍은 대나무 숲의 다락에서 소식을 전하는 영패를 매만지고 있었다.
영패 위에는 작은 글씨로 석목이 환마도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삼 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어서 도전을 포기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끈질길 줄이야.”
능풍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일어서서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산꼭대기가 소용돌이치는 구름위로 솟아 있는 어느 높은 산봉우리.
그 위에 금색 옷을 입은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상위 제자 일 위의 용전야였다.
용전야는 대결 때보다 훨씬 강해진 듯 놀라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변의 구름이 그에게로 다가오다가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백 장이 넘는 거리까지 밀려날 정도였다.
용전야가 몸에서 하얀빛을 뿜어내더니 눈을 번쩍 떴다. 이어서 품에서 하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으음? 환마도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지? 재미있네…….”
옥패에 떠오른 작은 글씨를 본 용전야의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입가에는 웃음이 어렸다.
용전야가 백년 제자가 된 지는 벌써 오백 년이나 되었다. 그는 진즉에 빠르게 천년 제자로 승급하여 성지의 이 층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년 제자 중에서도 일 위의 자리에 있는 그는 당연히 환마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 가늠해본 끝에 결국 도전을 시도하지 않았다.
환마도는 단순히 수련한 실력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도 시험하는 곳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에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
“석목……. 이 자는 새로 입성한 상위 제자잖아? 지난번에 두 차례 대결을 놓고 보면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지. 그렇지만 나와 대결할 기회가 주어질지는 모르겠군.”
용전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한줄기의 금빛이 되어 멀리 날아갔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장천, 적예자, 자릉, 여경, 강수수, 마옥 등 도 석목이 환마도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크게 좋아하며 석목이 환마도에서 죽어버리기를 바랐고, 또 누군가는 석목을 걱정해주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옥, 청장천 등 석목과 사이가 좋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접한 후 다급하게 석목의 동부로 찾아왔고, 그에게 도전을 포기할 것을 권유했다.
석목은 당연히 그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을 설득해도 석목이 전혀 동요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갔다.
자릉은 사흘이라는 기한의 마지막 날에 갑자기 찾아왔다. 석목을 만난 그녀는 도전을 포기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게다가 석목이 먼저 도전하면 그녀도 따라서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서, 석목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사흘이 지나갔다.
현영탑 안의 어느 광장 중앙에 검은색 무대가 있었다. 석목이 도착했을 때 그 주변에는 이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거나, 귓속말을 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 광경은 대결 때보다도 시끌벅적했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직접 대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관람자의 신분으로 이곳에 모인 것이라, 다들 기분이 가벼워보였다. 게다가 오늘 출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상위 제자인 만큼, 어찌됐든 대결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마침내 석목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앞 다투어 목을 빼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성지에 입성한 후 늘 조용하게 지냈고, 대결에서도 크게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눈에는 신비로운 존재로 보였다.
최근에는 동부의 문을 닫고 몇몇 아는 사람만 만났을 뿐, 그 외의 교류는 전부 거절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사람들은 더 궁금해 하고 있는 참이었다. 대체 누구기에 단번에 상위 세 명의 제자에게 도전한단 말인가?
석목은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몇 번 번쩍이더니 무대 중간으로 올라갔다.
무대에는 머리에 외뿔이 자라난 천위 후기 경지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니 요족 같았다.
“자네가 석목인가?”
외뿔 노인은 석목을 잠깐 훑어보더니 자상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 제가 제자 석목입니다.”
석목이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좋아, 심성이 괜찮아 보이는군. 여기까지 왔으니 더는 말하지 않겠다. 환마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이미 알고 있겠지?”
외뿔 노인이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그럼 됐다. 다들 올라오거라!”
외뿔 노인이 한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세 개의 그림자가 반짝이며 무대 위에 나타났다.
용전야와 능풍, 운예였다.
가운데에는 용전야가 서 있었고, 능풍과 운예는 각각 양쪽에 있었다.
세 사람이 나타나자 구경하러 온 제자들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현장의 분위기도 달아올랐다. 석목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 사람은 전부 백년 제자 청란방의 상위 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여기저기서 세 사람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용전야와 운예는 석목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 무대 위로 올라오자 궁금한 듯 그를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반면 능풍은 석목을 바라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석목은 그들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능풍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백년 제자 석목이 환마도 도전을 신청했다. 종문의 규칙에 따라 우선 청란방 앞 순위 제자 세 명과의 대결에서 이겨야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내 이름은 금도(金滔)다. 종문의 명을 받고 이번 대결을 주도하게 되었다.”
외뿔 노인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선포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시끄럽던 현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결은 총 사흘에 걸쳐 진행될 것이다. 오늘은 그 첫날로, 석목과 운예만 남고 용전야와 능풍 두 사람은 무대를 내려가도록 한다.”
금도가 말했다.
“이틀 뒤에도 네가 이곳에 서 있었으면 좋겠군.”
용전야는 석목을 향해 한마디 던지고는 몸을 번쩍이며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능풍은 석목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고는 무대 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