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32화 (432/916)

432화. 기세가 하늘을 찌르다

운예는 무대의 한구석에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안정을 찾았고, 멍하니 서 있는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환상 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든 곤봉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의식 세계에서 강력한 진기의 파동이 퍼져나갔고, 그것은 다시 무형의 속박에 부딪히며 돌아왔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막아보려 하다니, 정말로 간이 부었군!”

운예가 손에서 자색의 빛을 번쩍이며 원강선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럼 이만 끝내주마!”

운예가 작게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원강선에서 빛을 크게 뿜어내서 석목을 향해 휘둘렀다.

거센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짙은 자색의 회오리가 부채에서 날아갔고, 그것은 순식간에 수십 장까지 커져서 석목을 공격했다.

그때 석목의 몸에서 붉은빛이 번지더니 갑자기 화염이 타올랐다.

콰르르!

화염의 보호막에 둘러싸인 석목의 몸속에서 진기가 들끓으며 파도 같은 소리를 냈다. 그것은 보통 때보다 열 배나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그의 심장도 빠르게 뛰고 있었고, 마치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석목이 온 힘을 다해 환술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그의 머릿속에서 두 번이나 번천곤의 환상 속에 빠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환상 속에서 겪은 일이 빠르게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석목의 머릿속에서는 신혼지력이 기이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를 둘러싼 화염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맞아! 바로 이 느낌……. 깨버려라!”

석목이 큰소리로 외치며 두 눈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그의 눈앞이 밝아지면서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스쳤고, 순간 그는 불의 환술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과 땅을 잇는 자색의 회오리바람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바람이 석목의 몸에 막 닿으려고 하는 순간 그의 여의빈철곤이 움직였다. 곤봉은 수많은 검은 그림자로 작은 산을 만들어 회오리를 막아냈다.

허공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곤봉의 그림자가 회오리바람과 부딪치며 번쩍거리자 강한 압력이 무대를 감싸고 있는 푸른 막을 격하게 흔들었다. 양쪽의 힘은 엇비슷한 것 같았다.

석목은 몸이 크게 흔들리며 뒤로 두 걸음 밀려났다. 하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화염의 보호막은 심하게 흔들렸을 뿐 터지지는 않았다.

“말도 안 돼! 그걸 벗어났다고?”

운예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운 사형을 실망시켜드렸군요!”

석목이 말했다. 그의 눈빛은 흐릿한 기색이 전혀 없이 또렷했다.

그 사이에 검은 빛이 운예의 등 뒤에서 나타나더니 그의 허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 검은 빛은 바로 길이가 늘어난 여의빈철곤이었다.

펑!

운예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대로 부채와 함께 튕겨서 칠팔 장 정도를 날아가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운예는 쓰러진 채 두어 번 허우적댔으나 결국 일어서지 못했다.

“너는…….”

그는 입에 피를 잔뜩 머금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을 거두어들였다. 사실 그는 공격하는 순간 힘을 조절한 것이었다.

석목이 조금만 더 힘을 썼다면 운예는 갈비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파열됐을 것이다. 그 정도 중상을 입는다면 아무리 좋은 단약을 먹는다 해도 오랫동안 회복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석목은 운예에게 악감정은 없었기에 필요 이상의 타격을 입힐 필요는 없었다.

광장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무대 위의 상황이라는 것은 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방금 전만 해도 석목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눈 깜박할 사이에 바닥에 누워 있는 건 운예였다. 사람들은 이를 목격하고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시끌벅적해지면서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예가 졌어…….”

“석목이라는 사람, 너무 강하잖아! 삼 위의 운예 사형을 이기다니 말이야. 저 여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직 실력을 전부 발휘하지 않은 것 같아. 정말 무섭다.”

그중 몇몇은 무대 한쪽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놈 정말 만만치 않군.”

능풍이 눈빛을 반짝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흥, 내일은 네 차례야!”

용전야가 석목을 바라보며 눈에서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때 석목이 무대 위에서 갑자기 몸을 돌렸고, 용전야의 눈과 마주쳤다. 허공에서 한참 동안 불꽃이 튕기는 듯했다.

용전야는 석목을 한참 바라보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줄기 금빛으로 변하여 멀리 날아가버렸다.

“오늘은 석목이 도전에 성공했다. 내일 두 번째 도전이 이어진다.”

외뿔 노인이 날아오더니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무대 주변이 다시 시끌벅적해졌고, 이어 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크게 다친 운예를 부축해 내려갔다.

석목은 가볍게 숨은 내뱉고 무대 밑으로 향했다. 그는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어디론가 멀리 날아갔다.

사실 석목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빨리 회복해서 내일의 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 * *

이튿날 무대 주변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석목이 운예를 이겼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는 석목과 능풍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십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석 사제의 수련이 엄청나게 큰 성과를 가져왔군요. 보아하니 정말 고생스럽게 수련을 한 듯합니다.”

능풍이 말했다.

“사형, 과찬이십니다. 조금 늘었을 뿐이지요. 오늘 사형의 가르침을 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나보다 실력이 아래는 아닐 것 같아서 가르침은 못 드리겠군요.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능풍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대결에서 능풍 사형에게 졌던 터라, 저도 이번에는 단단히 이를 갈고 나왔습니다.”

석목도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좋아요!”

능풍이 크게 웃으며 손에서 푸른빛을 반짝였고, 그 위에 장검 한 개가 나타났다.

그 검은 전체가 푸른색이었는데, 그 위에 올챙이 같은 부문이 수도 없이 새겨져 있었다. 아직 시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놀라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게, 운예의 원강선보다 위세가 강해보였다. 능풍의 검 역시 매우 뛰어난 법보였다.

석목도 눈을 번쩍이더니 검은 빛을 뿜어내며 여의빈철곤을 손에 들었다.

“받으십시오!”

능풍이 낮게 소리를 치며 손에 든 푸른 장검을 흔들자 허공에 푸른 검의 기운이 서렸다. 그 길이는 칠팔 장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뼈까지 시린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검이 도착하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엄습해서 석목은 몸속의 피까지 얼어버릴 것 같았고, 그 바람에 단전의 기의 흐름이 많이 느려졌다.

‘굉장하군!’

석목은 속으로 감탄했다. 능풍의 실력도 지난 대결과 비교해 많이 늘어 있었다. 지난 구 년 동안 그도 상당한 노력을 한 것 같았다.

석목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여의빈철곤이 갑자기 몇 배나 불어나더니 세 갈래의 곤봉 그림자로 변신했고, 하얀 기류를 내뿜으며 검의 기운을 맞이했다.

챙!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푸른 검의 기운이 끊임없는 하얀 기류에 의해 부서졌다. 여의빈철곤은 순식간에 능풍의 손에 있는 푸른 검에 닿았다.

능풍의 검도 빛을 뿜어내며 강하게 부딪쳐왔다.

챙!

검과 곤봉이 흔들리며 다시 튕겨나갔다.

순간 능풍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의 입에서 외마디 글자가 튀어나왔다.

“음?”

능풍은 칼카로운 검으로 석목의 곤봉을 토막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능풍이 생각하기에 석목이 사용하는 검은색 곤봉은 재질이나 등급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상급 영기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의 법보와 비교하면 훨씬 떨어지는 물건이었다.

땅을 짚으며 물러난 석목은 여의빈철곤에 아무런 흠집도 없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여의빈철곤은 능풍의 생각대로 상급 영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용촉 대사는 탁월한 실력으로 운철을 녹여서 이 곤봉을 매우 단단한 최상급 영기로 변신시켰다. 법보라 해도 쉽게 부러뜨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때 능풍이 다시 한 번 공격해왔다.

그가 눈에서 빛을 뿜어내며 장검을 휘두르자 푸른 검의 기운이 폭발했고, 그 기운은 각 줄기가 이삼 장은 되어 보였는데, 겹겹이 쌓여서 푸른빛이 반짝이는 검망이 되어 석목을 덮쳤다.

석목도 여의빈철곤에서 빛을 크게 뿜어냈다. 그러자 촘촘한 곤봉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이미 통천십팔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서 다양한 조합을 시전하는 게 가능했는데, 그 기세가 엄청났다.

한동안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푸른 검망은 석목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서는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의 기운과 곤봉의 그림자가 주변에서 날아다니면서 무대 바닥에 깊은 자국이 줄줄이 나타났다. 푸른 빛의 막도 가끔씩 격렬하게 흔들렸다.

능풍은 미간을 찌푸리며 연속 두 번의 공격을 가했지만 석목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석목의 실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석 사제, 잘 받아요!”

그가 크게 외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능풍이 손에 든 장검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 그림자의 사이사이에서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으며, 푸른 강의 허영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가 장검을 위아래로 휘두르자 푸른 강이 파도소리를 내며 석목을 향해 밀려들었다.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이건 진짜 강물이 아니라 수많은 검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방울방울마다 검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는 차가운 기운이었다.

그 즈음 무대 근처의 작은 산 위에 여러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그중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대결 광경을 바라보더니 긴 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풍이 천위 경지의 무기인 창하검법(蒼河劍法)을 벌써 어느 정도 파악했구나. 좋아.”

“능풍은 정말 검의 천재입니다. 다만 이 위에 오른 뒤로는 밖으로 자주 나가서 보기가 힘들었지요.”

또 다른 노인이 말했다.

* * *

무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능풍의 기묘한 검법에 모두 감탄하는 표정이 되어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석목은 그들처럼 감상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의 기운이 그를 묻어버렸고, 곧 그대로 찔러버릴 것 같았다.

석목의 동공이 축소되더니 순간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그가 손에 든 여의빈철곤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가서 하늘을 찔렀다.

검은 빛 속에서 여의빈철곤이 점점 커지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칠팔 장까지 자랐다. 그것은 어느새 맷돌만 한 굵기의 거대한 곤봉으로 변했다.

검은 빛이 곤봉에서 넓게 퍼져나가면서 하늘을 갈라놓았다.

“와!”

구경꾼들은 놀라서 일제히 소리쳤고, 처음 보는 광경을 기이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석목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의 팔에서 금빛이 맴돌았고, 그는 두 배 정도로 커진 곤봉을 휘둘렀다.

“역발산하!”

“반산월령!”

“역진팔방!”

석목이 삼식을 시전하자 검은 곤봉은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를 내며 푸른 강을 막아섰다.

쿵! 쿠쿵!

두 기운이 부딪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공기마저 진동했다.

양쪽은 잠깐 동안 대치상태를 이루었다. 이어 푸른 검의 강이 부서져버리면서 그 기운이 주변으로 흩어졌고, 심지어 일부는 다시 역류하여 능풍에게 향했다.

하지만 검은 곤봉도 반동 때문에 뒤로 튕겼다. 곤봉은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더니 절반가량이나 땅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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