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정상의 대결
무대 전체가 흔들리면서 구경꾼들은 발밑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석목은 곤봉의 반동에 뒤로 다급하게 몇 걸음 물러났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깊은 숨을 뱉으며 손으로 법결을 펼쳤다.
검은 곤봉이 빠르게 작아지면서 원래의 크기가 되었고, 땅에서 솟아 나와서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허공에 있는 능풍은 조금 낭패를 본 듯한 표정이었지만, 안색은 여전히 차분했다.
“석 사제, 실력이 대단하네요. 저의 가장 강한 검을 맛볼 자격이 있습니다.”
능풍은 천천히 말하며 손에 든 장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쿵!
촘촘한 푸른 검의 기운이 나타나자, 무대 위에서 눈이 닿는 곳까지 순식간에 파랗게 변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검의 기운이 흩어지면서 광장 전체에 드리워졌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구경꾼들은 등 뒤를 검에 찔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련의 경지가 약한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뒤로 물러났다.
석목은 이미 검의 기운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령계에서 삼 년간이나 실전을 거듭해온 사람이었다. 이런 검의 기운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에서 금빛을 발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완성한 뒤 손에 든 여의빈철곤에서 빛을 뿜어냈다.
이때 허공에서 능풍의 장검이 뿜어내는 빛이 점점 커지면서 그의 몸 전체를 감쌌다.
“궁우검식(穹宇剑式)!”
능풍이 크게 소리를 지르자 허공에서 수많은 검의 빛이 크게 번졌다. 그 빛들은 하늘의 별까지 휩쓸어버릴 듯한 강한 힘으로 석목을 공격했다.
줄줄이 이어진 검의 기운이 날아들자 그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천을 그대로 갈라버릴 만한 기운이었다. 방금 전의 창하검결과 비교했을 때 그 위력과 기세가 몇 배는 더 강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뱉으며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빛이 그의 주변에 나타났다.
콰르르!
몇 백 마리의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순식간에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검의 소리를 덮어버렸다.
이어 수많은 하얀 짐승이 우렁찬 포효와 함께 그 빛에서 뛰어나와 홍수를 이루었다.
공기가 마치 끓는 물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쾅!
두 개의 강한 기류가 부딪히며 밝고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무대 주위에 드리워진 빛의 막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허공에 서 있던 외뿔 노인이 깜짝 놀라서 검지를 바퀴처럼 빠르게 돌리며 빛의 막을 안정시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빛의 막이 깨지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칠 수 있었다.
무대 위에는 눈부신 빛이 드리워져서 안쪽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귀에는 쿵쿵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소리는 일 각이 지속한 뒤에야 멈추었다. 눈부신 빛이 흩어지면서 무대 위의 상황이 드러났다.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은 전부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석목과 능풍은 몇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석목의 토템 변신은 이미 사라진 채였고, 두 사람의 옷은 전부 찢겨서 피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꼿꼿이 서 있어서 누가 승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능풍이 비틀거리더니 입에서 피를 토해냈고,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었다.
“석 사제의 실력은 정말 대단하네요. 제가 졌습니다.”
능풍이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무대 아래가 조용해졌다
석목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곧바로 손을 모아 예를 갖추며 말했다.
“능풍 사형,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그날 저녁, 석목은 동부에서 가부좌를 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된다.’
마지막 남은 한 차례 대결에서 이기면 그는 환마도에 도전할 수 있었고, 이 층으로 들어가서 백원왕의 보장을 찾을 수 있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단약 한 개를 꺼내 삼킨 뒤, 손에 영석 두 개를 쥐고 빠르게 진기를 회복했다.
* * *
이튿날 무대 위의 허공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고 섰다.
그중 한 사람은 하얀 구름을 밟고 칠흑 같은 곤봉을 어깨에 올려놓고 있었다. 바로 석목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용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을 걸치고 손에 금빛이 찬란한 용수대도를 들고, 오만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는 청란방 일 위 자리에 있는 용전야였다.
무대 주변에는 이틀 전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들은 최근 화두에 오른 백년 제자와 몇 백 년 동안 청란방 일 위를 지킨 두 실력자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능풍과 운예가 너한테 지다니. 정말 놀랍군.”
용전야가 말했다.
“그 놀라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웃기고 있군. 네가 한 미친 짓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용전야가 차갑게 말했다.
“크아악!”
무대에서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용전야의 손에 있는 용수금도가 한 장 정도 되는 금색의 긴 용으로 변신하더니, 몸을 위아래로 꿈틀대며 살기를 가득 품은 채 석목을 공격했다.
석목은 손에 든 곤봉을 흔들었다. 하얀 회오리바람이 금용을 향해 뿜어져나갔다.
쿵!
충돌음이 울려 퍼졌고, 금색 용이 하얀 회오리를 부숴버리더니 놀라운 기세로 석목에게 향했다.
그러나 석목은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는 공격에도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여의빈철곤을 두 손으로 강하게 휘두르자 검은 곤봉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
석목이 허공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동시에 곤봉을 꽉 쥔 채 다가오는 금색 용을 공격했다.
검은 곤봉 그림자가 순식간에 하늘을 가릴 만큼 커지더니 웅장한 산처럼 용을 향해 밀려갔다.
콰르르!
무대가 심하게 흔들리며 바람이 휘몰아쳤고, 먼지가 흩날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가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무대가 드러났다. 용수대도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무대 위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그때 용전야가 크게 한 걸음 내디디며 왼손가락을 구부려 허공을 한 번 긁었다.
“반용조!”
무대 허공에 한줄기 금빛이 생기더니 커다란 구름이 빠르게 소용돌이쳤다. 그 속에서 금색 용의 발이 튀어나와서 석목의 정수리로 향했다.
그러자 석목의 등 뒤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그는 날개를 펄럭이며 간신히 용의 공격을 피해냈다.
퍽!
쟁기 같은 용의 발이 무대에 깊은 자국 세 개를 만들었다. 그 자국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석목이 착지했을 즈음 등 뒤에서 강력한 영기의 파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피할 새도 없이 그의 몸은 망치에 맞은 것처럼 앞으로 튕겨 나가서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한쪽 발이 그의 뒤에서 공격한 것이다.
“고작 이 정도라고? 재미없잖아!”
용전야가 오른손에서 빛나는 금빛을 거두며 교만하게 말했다.
석목은 몸을 돌리더니 땅을 짚고 일어서서서 몇 장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피를 한 번 뱉어내고는 다시 여의빈철곤을 몸 앞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하얀 기류가 그 위에서 맴돌더니 검은 곤봉 그림자가 주변에 드리워졌다.
잠시 후 석목의 주변은 이미 하얀 기류로 둘러싸였고, 그 속에서 맹수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밀려오는 엄청난 압력을 느끼며 용전야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 좀 재미있어지는군!”
그때 석목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곤봉을 가로로 들고 앞을 향해 힘껏 밀었다.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백 마리의 짐승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이어 석목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기류가 들끓으며 용솟음쳤다.
무대 주변이 울리며 땅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 주변에 서 있던 제자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어서 당황한 기색으로 뒤로 물러났다.
소용돌이치는 하얀 기류 속에서 수많은 맹수가 앞 다투어 뛰어나왔다. 맹수 대군은 홍수를 이루어 용전야를 향해 밀려갔다.
석목은 백수진황을 시전한 후 그는 다시 한 번 뒤로 물러났다. 그는 손동작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빠르게 휘둘렀다.
용전야는 파죽지세로 달려드는 맹수들을 차갑게 바라보며 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십 장 정도 되는 금색 용의 허영이 나타났다.
인족과 흡사했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커다란 금색 용의 얼굴로 변했다.
사람 몸에 용 머리가 자라나자 용전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더 강해졌다. 금색의 물결이 주변으로 퍼져서 순식간에 무대 전체에 드리워졌다.
맹수들로 이루어진 홍수는 금색 물결에 밀려 한동안 달려들지 못했고, 기세도 많이 꺾였다.
“아……!”
용전야가 큰소리를 지르며 두 다리를 굽혔다가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달려드는 맹수들과 부딪쳤다.
그의 등 뒤에서 울부짖던 금색 용도 함께 홍수 속으로 달려들었다.
쿵!
큰 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색과 하얀색 기류가 들끓더니 부서진 돌들이 곳곳으로 튀어서 무대 주변에 있는 빛의 막을 찢어버렸다.
금색 용이 다리를 휘두르며 수많은 맹수의 기류를 하나하나 부숴버리면서 홍수 속을 뚫고 나왔다.
용전야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붉은 회오리바람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의 표정은 또다시 굳어버렸다.
붉은 회오리바람 안에는 석목이 화염을 몸에 두른 채 서 있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곤봉을 하늘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천지무극!”
회오리바람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붉은 기류도 주변으로 흩어졌다.
쿠쿵!
용전야는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쩌억!
용전야의 주변에 수많은 번개가 떨어졌다.
그가 밟고 있던 땅이 갑자기 쩍 갈라지더니 검은 불의 공으로 변하여 그를 공격했다.
번개가 땅 위의 불들과 연결되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고, 마치 하늘과 땅을 하얗고 검은 두 가지 색으로 물들여서 이어놓은 것 같았다.
무대 주변에서 지켜보던 제자들은 하얗고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무대에 드리워진 푸른빛의 막이 강한 압력에 의해 부서졌고, 번개와 돌들이 튕겨서 무대 주변으로 날아갔다.
구경꾼들이 한쪽으로 피하자 관람대에 있던 남궁 호법이 푸른빛을 번지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팔각형의 청동거울이 무대 위의 허공에 나타났다.
이어 거울에서 두꺼운 빛의 막이 떨어지며, 무대 위에서 터지는 번개와 함께 무대를 감쌌다.
“팔척건곤경(八尺乾坤镜)! 이것은 남궁 호법의 결계 법보 팔척건곤경이다!”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바로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무대 중앙에 있는 하얗고 검은 두 갈래의 번개 속에서 눈부신 금색 빛이 터져 나왔다.
퍽!
엄청난 기류가 몰려와서 팔척건곤경의 결계마저 심하게 흔들어놓았고, 구경하던 제자들이 놀라 소스쳤다.
다행히 빛의 막은 한참 흔들리더니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결계 속에서 금빛이 석목의 가슴을 공격했고, 허공에 서 있던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금빛은 무대 위의 햐얗고 검은 번개와 어우러져 점점 어두워졌다. 처음의 검은색 무대는 이미 사라져버렸고, 그곳에는 부서진 돌이 깔린 타버린 웅덩이가 나타났다.
석목은 웅덩이 속에서 여의빈철곤으로 땅을 짚고 한쪽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몸의 금색 비늘은 거의 다 찢겨 있었다.
그는 천지무극으로 진기를 많이 소모한 데다 금빛의 공격까지 받아서 원기가 크게 상해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용전야가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고, 두르고 있는 갑옷도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찢어진 갑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온통 까맣게 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