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37화 (437/916)

437화. 삼베옷 청년

사람들은 빙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하늘이 새까맣게 되자 그제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석목도 종수를 따라서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종수가 사는 곳이었다.

“석 오라버니, 오늘 저녁은 이곳에서 주무세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그러시면 안 되어요…….”

종수는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석목은 종수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바로 종수가 사는 곳 옆에 작은 움막을 짓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석목은 이 마을에서 열흘이 넘게 머물렀다.

마을에는 총 이십여 명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중년과 노인이었고, 젊은 사람과 아이들은 적은 편이었다.

마을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근처의 강물에서 낚시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간혹 근처의 산에서 사냥을 하기도 했다.

석목은 지금 수련 경지를 전부 잃어버렸지만, 그동안 잘 다져진 몸으로 낚시도 하고 사냥도 했다.

처음 산에 들어갔을 때는 단번에 늑대 세 마리와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전부 합치면 무게가 천 근 정도 되었는데, 등나무 줄기로 꽁꽁 묶어 마을까지 끌고 들어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종수는 석목의 모습을 보고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이렇게 많은 포획물은 둘이서 전부 먹지 못했기에, 조금만 남기고 전부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마을사람들도 점차 석목에게 친절해졌다.

다만 삼베옷을 입은 청년은 여전히 못마땅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질투와 원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석목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석목은 점점 이 마을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사냥하고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남는 시간은 집에서 수련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단전에는 진기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하루는 그가 산에 사냥을 하러 갔다가 커다란 흑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사람 세 명을 합친 정도의 크기였다. 석목은 그 곰을 끌고 마을로 돌아왔다.

“석 아우는 정말 대단하군. 흑곰까지 사냥해오다니.”

범 씨 성을 가진 중년 남자가 놀라며 말했다.

“범 숙부, 과찬이십니다. 제가 밖에 있을 때 몸을 단단히 하는 공법을 수련했었습니다. 이제 수련의 경지는 사라졌지만 다행히 힘은 남아 있어서, 곰 한 마리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 아우, 이 흑곰은 우리가 요리하지. 집에 돌아가서 종수와 시간을 보내도록 하게. 이 흑곰의 가장 맛있는 부위는 사람을 시켜서 보내주겠네.”

범 씨 성의 남자가 말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집 앞에 도착하자 종수의 방문은 닫혀 있었는데, 안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놓아줘! 설의(薛義),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제 곧 석 오라버니가 돌아올 거야!”

소리치는 종수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흥! 그 석목이라는 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보다 키가 크고 잘생겨서? 내가 널 그렇게 좋아해도 쳐다보지도 않더니, 저런 놈의 품에 안겨?”

남자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 목소리는 삼베옷을 입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석 오라버니는 내 약혼자라고!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어! 오라버니 말고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꿈 깨!”

종수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삼베옷 청년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감정이 격해진 것 같았다.

“나에게는 그렇게 차갑게 굴다니. 그럼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강제로라도 너를 가져야겠다!”

삼베옷 청년이 흉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악!”

삼베옷 청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종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순간 크게 분노해서 문을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종수는 옷이 흐트러진 채 방 한쪽 구석에서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녀는 석목이 나타나자 기뻐하며 달려와 그의 뒤에 숨었다.

삼베옷 청년의 얼굴이 굳어졌다. 실눈을 뜨고 석목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차가운 빛이 스쳤다.

“수아에게 손을 대다니.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 내가 깔끔하게 보내주지.”

석목이 청년을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그의 팔에서 울퉁불퉁한 근육이 튀어나왔다.

삼베옷 청년은 그 모습을 보더니 동공이 작아지며 차갑게 웃었다. 그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는데, 특히 두 손은 마치 광석 같았다.

“기다렸다가 천천히 혼을 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오늘 죽여주마.”

청년이 낮게 소리를 지르더니 석목을 덮쳤다.

마치 큰 칼자루 같은 그의 붉은 손바닥이 석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석목은 삼베옷 청년의 공격에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다가올 때쯤 몸을 좌우로 흔들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삼베옷 청년의 안색이 변했다. 순간 그의 등 뒤에 석목이 나타나서 청년의 등 뒤쪽 심장 부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청년도 움직임이 빨랐다. 그는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돌더니 팔을 휘둘렀고, 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펑!

석목의 주먹과 삼베옷 청년의 팔이 부딪혔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삼베옷 청년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는 놀란 표정으로 밖으로 도망가 버렸다.

석목은 차갑게 콧소리를 내며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설의, 너 여기서 뭐하는 거냐?”

그때 범 씨가 밖에 나타났다. 그는 손에 고깃덩어리를 들고 있었는데, 오늘 석목이 잡아온 곰의 고기 같았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삼베옷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범 씨의 옆을 스쳐지나 마을 밖으로 도망갔다.

석목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청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품속에서 검은색 단도가 나타났다.

쓱!

검은 그림자가 날아가더니 삼베옷 청년의 등 뒤에 꽂혔다.

“아악!”

처절한 비명이 들리면서 청년이 땅에 굴렀다. 짧은 칼이 그의 가슴을 뚫고 빠져나와 있었고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청년은 입을 벌리고 헉헉거렸다. 이윽고 그의 동공이 풀리더니 숨이 멈추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마을사람들이 전부 몰려들었다. 모두 놀라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설의를 죽인 거지?”

설의와 가깝게 지내던 몇몇이 석목에게 따져 물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버려진 입장이기에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머리가 붉은 청년이 말했다.

“저 사람이 그럴 만한 짓을 했습니다.”

석목은 그들에게 말한 뒤 집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거기 서라! 제대로 된 설명 없이는 움직일 생각은 하지도 마!”

붉은 머리 청년이 손을 내밀어 석목을 막아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멈춰라. 이 일은 석목을 탓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범 씨 성을 가진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설의가 종수를 강제로 범하려는 악독한 행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했다. 설의와 사이가 좋았던 몇몇 사람도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때 곱슬머리 소년이 석목에게 달려와서 큰 소리로 말했다.

“석 형! 빨리 집에 가보세요. 종수 누나가 이상해요.”

“뭐?”

석목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는 다급하게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문을 덜컥 열어보니 종수가 문을 등지고 앉아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수아, 왜 그래?”

석목은 아무 일 없는 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종수를 안아주며 물었다.

종수는 석목의 목소리를 듣자 몸을 돌렸고, 그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석목은 마음이 아파서 따뜻한 말로 위로했다.

“석 오라버니, 설의가 저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오라버니가 혹시 오해를…….”

한참 뒤, 종수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오해는 당치도 않아! 그리고 설의라는 자는 내가 죽였어. 앞으로 너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석목이 바로 대답하며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말을 듣자 종수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웃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범 씨 성을 가진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종수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다급하게 석목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범 숙부.”

석목이 몸을 일으켜 범 씨에게 인사를 올렸다.

“석목, 마을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은 전부 촌장인 내 탓이다. 너희에게 미안하구나…….”

범 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범 숙부, 이 일은 숙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 설의라는 놈의 인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뿐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굳어 있던 범 씨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석목, 너와 수아는 이미 약혼을 한 사이기도 하고, 또 오래 전부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으니 빨리 혼사를 치르는 것은 어떠냐? 불미스러운 일로 마을사람들이 괜한 소리를 할 수 있으니 그게 좋을 것 같다.”

석목과 종수는 그 말을 듣더니 전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종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부끄러운 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하, 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받아들인 걸로 알겠다. 석목 너는 수아를 잘 보듬어주어라. 이 일은 걱정하지 말고 전부 나에게 맡기면 된다.”

범 씨는 큰 소리로 웃더니 석목이 말을 하기도 전에 나가 버렸다.

석목과 수아가 혼사를 치른다는 소식은 마을 전체에 퍼졌다.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과 용맹한 영웅이 혼인을 한다니, 모두의 축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전통에 따라 범 씨의 주도 하에 이 작은 마을에서 부부가 되었다.

신혼 첫날밤이 되었고, 석목은 방에서 종수의 머리에 씌워진 붉은 천을 걷어 올렸다.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수아…….”

석목은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상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그녀를 덥석 안았다.

“서방님…….”

종수는 석목의 품에 안겨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수아, 너를 내 처로 들일 수 있으니 내 생에 여한이 없다…….”

석목이 말했다.

“서방님, 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이곳에서 평생 조용히 살아요. 더 이상 외부의 혹독한 현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요? 서방님, 앞으로 수련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종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석목이 흔쾌히 답했다.

종수는 그의 말을 듣더니 기뻐서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 순간, 여전히 웃고 있는 그녀의 등을 뚫고 검은 단도가 튀어나왔다. 칼날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서방님, 왜…….”

종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는 온통 놀란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검은 칼자루가 박혀 있었고, 그곳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서 입고 있는 옷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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