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40화 (440/916)

440화. 초대

뎅! 뎅!

석목이 빛으로 만들어진 문을 뚫고 나오는 순간 종이 울렸다. 그 소리는 청란성지 일 층의 사방으로 흩어져서 수만 리까지 전해졌다.

“무슨 일이지?”

“이 소리는……. 설마?”

“누군가가 환마도를 뚫고 나왔어!”

“석목이 성공한 건가?”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오랜 시간 동안 환마도에 도전한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고, 성공한 사람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래서 이 종이 울리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몇몇 백년 제자와 종문의 고위 인사뿐이었다.

하지만 종에 대해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곧 석목의 소식을 알게 되었고, 모두 깜짝 놀랐다.

* * *

석목의 눈앞이 밝아졌다. 그는 하얀 대전에 있었다.

주위를 보니 이곳은 그가 처음에 들어갔던 환마전이 아니었다.

대전은 기둥만 몇 개 서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청량한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대가 석목인가? 환마도를 뚫고 나오다니, 심성이 꽤 강인한 것 같구나.”

석목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푸른빛에 둘러싸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제자 석목이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석목은 신식을 통해 상대의 수련 경지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하게 인사를 올렸다.

“인사는 됐다.”

푸른 사람의 그림자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무형의 힘이 석목의 몸을 위로 받쳐 올렸다.

사람의 그림자는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석목은 놀라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 종문에서는 천 년째 환마도를 통과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 오랜만에 한 명 만나게 되었구나.”

사람의 그림자가 말했다.

“운이 따른 덕분입니다.”

석목이 겸손하게 말했다.

“초조해하지도 다급해하지도 않는구나. 그러니 그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할 수 있었겠지. 이제 환마도를 통과했으니 너는 종문의 규칙에 따라 천년 제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일련의 절차를 거쳐야 정식으로 천년 제자가 될 수 있다.”

푸른 사람의 그림자가 말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그럼 우선 너를 돌려보내주마. 원기의 소모가 큰 것 같으니 우선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그 뒤의 일들은 사람을 보내서 처리하도록 할 것이다.”

사람의 그림자가 손에 든 먼지 털이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자 하얀빛이 석목의 몸을 감쌌다.

석목은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어느 높은 언덕에 떨어졌고, 그 주변에는 온통 커다란 나무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다시 일 층으로 돌아와 있었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현영탑을 발견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방금 전 푸른 사람의 그림자의 언행, 그리고 수련 경지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볼 때, 그는 청란성지에서 상당히 높은 신분인 것 같았다. 팔대 호법일 수도 있고 사대 장로 중 한 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런 실마리도 없자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한줄기 빛으로 변하여 자신의 동부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이 환마도를 통과했다고? 말도 안 돼! 정말이야?”

어느 동부에서 여경이 시종의 보고를 들으며 놀라고 있었다.

“정말입니다. 기존 제자 밑에서 일하는 시종과 관사들에게 확인해봤는데, 얼마 전에 울렸던 종소리는 환마석에서 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환마도를 통과했다는 뜻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종이 다급하게 말했다.

“알았다. 내려가 봐라.”

여경이 짜증스럽게 손을 흔들자 시종이 빠르게 물러났다.

시종이 자리를 뜨자 여경은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을 부숴버렸다. 그의 안색은 어두웠고, 두 눈에서는 악독함이 스쳐갔다.

* * *

“정말 통과를 했다고? 복이 될 것인지 화가 될 것인지는 모르겠구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락의 동부 안에서, 능풍은 창가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다른 동부의 비밀 석실 안에서는 용전야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한참 뒤 복잡한 표정으로 깊은숨을 내뱉었다.

* * *

일반 제자들이 있는 동부에 마옥과 마열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마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사매, 이 석목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대단하다고요?”

마열은 신입 제자 선발 시험에서 마지막까지 버텼지만 백 팔 명 안에는 들지 못했고, 구 년 전의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옥이 석목 덕분에 적지 않은 영석을 벌어들인 후 그를 영지 동부로 불렀고, 관사를 도맡도록 했다.

“내가 전부터 이야기했잖아. 석 사형의 실력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이야. 마 사제도 앞으로 그를 만나면 반드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해.”

마옥이 말했다.

“네, 사매.”

마열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이었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어. 새로운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몇 년간 경지가 꽤 많이 올랐으니, 제대로 된 영기를 고르기만 하면 기회는 또 있을 거야.”

마옥이 그를 위로했다.

“감사합니다! 참, 석목은 이제 곧 천년 제자가 되는데 저희가 계획한 대로 될까요?”

마열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물었다.

마옥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상황을 보자.”

마열이 고분고분 머리를 끄덕였다.

* * *

석목이 환마도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고, 며칠 동안이나 성지를 들끓게 했다.

이번 기회에 환마도도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환마도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 까다로운 조건을 떠올리며 생각을 접었다.

* * *

눈 깜박할 사이에 보름이 지났다.

비밀 석실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련을 하던 석목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일어서서 옷자락을 휘날리며 돌문을 열자 제풍이 그 앞에 공손하게 서 있었다. 그가 석목을 향해 손을 모으며 말했다.

“부주님, 능풍 부주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석목은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능 사형이? 대실로 모시고 좋은 차를 올리거라. 곧 가겠다.”

“이미 모셨습니다.”

제풍이 대답했다.

“그래, 먼저 물러가거라.”

“네.”

제풍은 석목에게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잠시 후, 석목은 새 옷을 갈아입고 위풍당당하게 대실로 들어갔다.

대실에서는 푸른 옷을 입은 능풍이 앉아서 한손에 찻잔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 찻잎을 건지고 있었다.

그의 언행은 늘 그랬듯 차분했고 표정도 평화로워서 세속에서 벗어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능 사형, 여러 번 동부로 모시려고 했는데, 오늘 드디어 오셨군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능풍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석목을 바라보더니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석 사제가 오랜 시간의 수련을 거쳐 오늘날의 성과를 거둔 것인데, 방해가 될까 싶어서 머뭇거렸습니다.”

“저를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시다니. 그런데 오늘은 어떤 일로 찾아주셨습니까?”

석목이 웃으며 물었다.

“그야 물론 좋은 일이지요.”

능풍이 말했다.

“좋은 일이요?”

석목이 의아한 듯 물었다.

“실은 오늘 사제를 청황전(青黄殿)으로 데려오라는 묵란(墨澜) 장로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능풍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묵란 장로님? 청황전이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청황전은 황계 구역의 총전입니다. 그곳을 총괄하시는 묵란 장로님이 백년 제자의 모든 일을 처리하십니다.”

능풍이 설명했다.

“총전이요?”

석목이 물었다.

“석 사제는 모르고 있었나요? 백년 제자와 천년 제자가 생활하고 수련하는 이 두 층에는 각각 총전이 있는데, 일 층은 청황전, 이 층은 청현전(青玄殿)이라고 합니다.”

능풍이 다시 설명했다.

“아, 그렇군요. 장로님이 부르셨으니 빨리 가봐야겠네요.”

석목이 말하자 능풍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동부를 나가서 현영탑으로 향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붉은색 대전 앞에 나타났다.

대전에는 붉은 바탕의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 금색으로 청황전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묵란 장로님, 제자 석목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오거라.”

온화한 목소리가 안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이 능풍을 따라 대전으로 들어가자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눈앞에는 우아한 정원이 있었고, 그곳에는 기이한 화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석목은 정신을 가다듬고 사람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검은 피풍을 두른 백발의 노인이 그들과 마주한 채, 손에 든 검은 도자기로 탁자 위의 청란에 물을 주고 있었다.

“묵란 장로님, 인사드립니다.”

석목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허허, 왔구나. 자리에 앉아라.”

백발의 노인이 자상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능풍이 대전의 오른쪽에 있는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자신도 대범하게 그 밑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네가 석목이구나. 아마도 나를 처음 볼 것이다. 나는 성주의 명을 받아서 백년 제자들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다.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능풍이나 다른 집사들이 많이 돕고 있지. 그래서 참 다행이긴 하지만, 그 덕분에 너희를 자주 볼 수가 없구나.”

묵란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허허, 본론으로 들어가자꾸나. 너는 지난 천 년 동안 환마도의 시험을 통과한 유일한 사람으로, 이제 천년 제자로 승급하게 되었다. 오늘 너를 이 자리로 부른 이유는 성지의 이 층으로 들어가기 전 알려야 할 일들이 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빼어난 후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해서다.”

묵란이 말했다.

“장로님, 과찬이십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허허, 환마도의 시험을 통과한 건 대단한 것이다.”

묵란이 말하며 손을 흔들자 한줄기 파란빛이 나타나서 천천히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은 다급하게 두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았다. 파란빛이 사라지자 푸른 옷이 한 벌 나타났다.

그 옷을 훑어보니 왼쪽 가슴 부위에 푸른 잎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백년 제자들의 옷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이 천년 제자의 옷이다. 잘 챙기거라. 오늘부터 너는 정식으로 천년 제자가 된다.”

묵란이 말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석목이 말했다.

“현영벽을 이리 다오.”

묵란이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은 곧바로 현영벽을 꺼내 묵란에게 건넸다.

묵란은 현영벽을 받더니 눈앞에서 한참을 관찰했다. 그리고 두 손가락을 내밀어 입으로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묵란의 손끝에 붉은빛이 반짝였다.

옥벽 안에 있던 붉은 나뭇잎이 움직이더니 두 개의 잎으로 변했다. 그것들은 잎이 풍성했으며,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했다.

두 개의 잎이 나타난 뒤에도 묵란은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뾰족하게 펴고는 현영벽 위에 무엇인가를 그렸다.

묵란이 손을 거두자 옥벽의 표면에 원형의 육망성(六芒星)이 새겨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문양이 기이한 부문도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능풍도 신기해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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