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42화 (442/916)

442화. 이 층으로 옮기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보자 석목은 고개를 돌려 채아에게 말했다.

“채아, 이 일은 너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아.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해. 꼭 기억해. 절대 아무나 쉽게 믿지 말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가야 해.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신식으로 나에게 알려줘.”

채아는 처음으로 따뜻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석목이 조금 낯선 듯 대답했다.

“석두, 나 못 믿어? 네 옆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었지만 난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잖아. 이 세상에서 나만큼 잘 도망가는 새도 없을 거야!”

“그건 그래. 나도 너만큼 겁이 많고 먹을 걸 좋아하는 새를 본 적이 없어.”

석목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석두, 내 걱정은 하지 마. 내가 간 다음에 혼자 성지 이 층으로 갈 텐데, 꼭 조심해야 해!”

채아가 혀를 차며 말했다.

“뭘 조심해?”

석목이 물었다.

“하하, 이 층에는 전부 천년 제자일 텐데, 예쁜 여제자가 있다고 해도 다들 천 살이 넘는 늙은 여자뿐일 거야. 내가 옆에 없어도 꼭 조심해야 해!”

채아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석목은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말했다.

“됐어. 석두, 건강 잘 챙기고, 나 갈게!”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꾸물대지 말고 얼른 가.”

석목이 손을 들어 채아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면서 웃으며 말했다.

“아야, 석두! 아프잖아!”

채아는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몇 번 펄떡이더니 마당 밖으로 날아갔다.

그는 날아가다 말고 참지 못하고 다시 몸을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채아가 동부를 떠나자 석목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음속이 매우 허전했다.

채아는 조금 시끄럽고 놀고먹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의 옆에 있는 동안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마음이 잘 통했다. 비록 잠깐의 이별이라 해도 갑자기 떠나버리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동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영패 한 개를 꺼내들고 법결을 한 줄 넣었다.

잠시 후 제풍이 빠른 걸음으로 석목에게 왔다.

“부주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는 흥분된 기색으로 공손하게 말했다.

“나를 따라서 이 층으로 가겠다는 시종이 몇이나 되느냐? 명단을 만들어 가져오거라.”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제가 일일이 물어보니 모두가 이 층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제풍이 말했다.

“그럼 됐다. 너희가 알아서 준비하거라. 나는 근무당에 한번 들러야겠다. 그리고 며칠 뒤 너희를 데리고 이 층으로 갈 것이다.”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제풍이 기뻐하며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석목은 동부를 나서서 근무당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전과 똑같았다. 전당 중앙의 긴 탁자 뒤에 푸른 옷을 입은 하얀 수염의 노인이 눈을 감고 있었다. 바로 석목이 처음 성지에 왔을 때 만났던 후 장로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후 장로가 눈을 떴다. 그는 눈에서 빛을 뿜어내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몸에 닿자 석목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후 장로가 범상치 않은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제자 석목, 후 장로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가 손을 모아 인사하며 말했다.

“그래, 네가 환마도 통과에 성공한 석목이구나. 그렇군. 이십 년 전에 너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후 장로의 눈이 반짝이더니 석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후 장로님이 저를 기억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너는 지금 종문의 유명인사가 되지 않았느냐. 아마도 모든 사람이 너를 알고 있을 게다.”

후 장로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속으로 이번 일은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환마도에 도전하는 것 말고 이 층에 올라갈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후 장로님, 실은…….”

석목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후 장로가 손을 저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이 층 영지의 동부 때문이지?”

“네, 그렇습니다.”

석목이 새 현영벽을 꺼내며 대답했다.

후 장로는 현영벽 위의 천년계인을 한번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푸른색 두루마리를 한 개 꺼내 펼쳐들었다.

푸른빛이 두루마리에서 뿜어져 나왔고, 두루마리가 허공에 펼쳐지더니 빛들이 모여들어 지도 한 장이 나타났다.

석목은 이 광경이 낯설지 않았다. 지난번 영지를 선택할 때도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이번 지도는 일 층의 것보다 훨씬 컸다.

“이 층의 공간이 이렇게 큽니까?”

석목이 감탄하며 말했다.

“물론이다. 청란성지의 제자들이 거주하는 세 층 중 이 층이 가장 크지. 천년 제자의 수 또한 가장 많아서 수만 명은 된다. 우리 성지의 진정한 중심이라고 할 수 있지.”

후 장로가 말했다.

“네? 천년 제자가 수만 명이나 된다고요?”

석목이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일 층의 백년 제자는 천 명 정도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백년 제자는 십 년마다 새로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지만, 청란성지는 엄청나게 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뛰어난 실력으로 이곳에 남아서 천년을 수련하는 동안 제자들이 점점 많이 모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석목은 성지의 백년 제자 수가 적은 것 같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천년 제자와 만년 제자야말로 성지의 핵심을 이루는 사람들이었다.

후 장로는 석목을 한 번 바라보더니 법결을 시전했다. 그러자 지도가 천천히 커졌다. 지도 위에 나타난 영지는 밝은 곳도 있고 어두운 곳도 있었다.

“이 어두운 구역은 현재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곳이다. 네가 원하는 곳을 선택하여 영지를 정하면 된다.”

후 장로가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지도에는 중간 부분만 뚜렷하게 그려져 있을 뿐, 주변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꽤 많았다. 그 구역은 지도상에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았다.

“후 장로님, 이 비어 있는 구역은 어떤 곳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이 층의 공간은 조금 특이한 곳이지. 워낙 드넓은 공간이라 종문에서도 아직 전부 탐색하지 못했다. 지도에 나타난 부분은 이미 탐색이 끝난 구역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비어 있는 구역은 요수들이 살고 있는 원시 황야 구역이다.”

후 장로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백원왕의 보장이 있는 곳이 떠올랐다. 아마도 지도에서 비어 있는 땅의 어느 한 곳에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백원왕이 이미 파악된 장소에 보장을 두었더라면 이미 천년 제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것이다.

석목은 더 묻지 않고 신식을 통해 자신의 영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신식이 어두운 구역에 닿자 지도의 그림이 더 뚜렷하고 자세하게 머릿속에 나타났다.

산과 하천, 호수 등이 마치 실제로 눈앞에 있는 듯했고, 영지의 특징을 소개하는 정보도 나타났다.

석목은 대충 훑어본 뒤 이 층의 지형은 일 층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 층은 대부분이 숲이었는데 이 층은 산과 하천으로 둘러싸인 곳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폭포가 대부분이었다. 폭포는 영지마다 여러 개가 있었고, 평범한 폭포와는 달랐다.

“후 장로님, 영지에 왜 폭포가 이렇게 많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것들은 전부 평범한 폭포가 아닌 영폭(灵瀑)이다.”

“영폭이요?”

“이 층의 다른 곳과 달리 이 구역의 영맥은 물 속성에 가깝지. 영기가 모인 곳에는 오랜 세월을 거쳐 영폭이 만들어진다. 영폭이 있는 구역은 영기가 매우 짙어서 동부를 짓기에도 적합하고, 영전을 만들어 영초를 심기에도 좋지. 즉, 이 층에서 그 영지가 좋은지 나쁜지는 영폭의 개수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후 장로가 설명했다.

석목은 알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일 층의 영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영지를 확장할 수 있다. 원래 영지에 있던 영폭 외에 확장을 원한다면 황야 구역으로 가면 되는 것이지. 그곳에도 영폭이 존재하니까. 다만 대부분은 요수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을 죽이기만 하면 그곳의 영폭을 얻을 수 있다.”

후 장로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군요…….”

석목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종문이 그것을 허용하는 이유는 너희가 저 황야 구역을 더 많이 개발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다만 요수가 있는 영폭을 빼앗으려면 조심해서 행동해야 할 것이야. 황야 구역에 있는 요수들은 전부 만만치 않고, 그중에는 성계 경지도 있으니까 말이다.”

후 장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계 경지의 요수!”

석목이 찬바람을 들이마셨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 그곳에 간다면 결과는 죽음뿐일 것이다.

“그리고 천년 제자들 사이에서 영폭은 일종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제자들은 영폭, 혹은 영폭을 포함한 영지 일부를 걸고 대결을 펼치기도 하니까.”

후 장로가 덧붙였다.

“네, 이제 이해했습니다.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신식을 통해 이 층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반 시진이나 지나서야 그의 시선이 황야 구역 근처의 한 영지에 멈췄다.

“후 장로님, 결정했습니다. 저는 이곳으로 하겠습니다.”

석목은 영폭이 아홉 개 있는 영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도의 정보에 의하면 그 영지는 어느 천년 제자가 만년 제자로 승급하면서 비운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 다만 이곳은 황야 구역과 매우 근접해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 황야 구역의 요수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시에 영지로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후 장로가 귀띔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이 이 영지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황야 구역과 인접해 있는 곳이라 백원왕이 남긴 보장을 찾기에도 적합했고,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층에서 영지를 갖게 되었으니 규정에 따라 일 층의 영지는 종문이 다시 회수하도록 한다.”

후 장로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였다.

후 장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법결을 펼쳤다. 그러자 어두웠던 지도 위의 구역이 순식간에 밝아지면서 그 위에 석목의 이름이 나타났다.

이어서 푸른빛이 튕겨 나오더니 석목의 현영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일 층 동부의 흔적이 사라지고 새로운 영지의 증명이 나타났다.

동부를 선택한 석목은 오래 머물지 않고 후 장로에게 인사를 올린 뒤 그곳을 떠났다.

* * *

보름 뒤, 성지 이 층의 현영탑 입구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가장 앞에는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금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허리에 놓인 하얀 두 손은 엄청난 힘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석목이었다.

그의 뒤에는 제풍 등 삼백여 명의 시종들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이 층의 풍경이 그들 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허공에는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녔고 높은 산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었으며, 산은 온통 푸른색이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는 긴 강이 구불구불 흘러내리고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는 커다란 은색 폭포가 은은하게 보였는데, 마치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것 같았다.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도 들렸는데, 그 주위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게 매우 웅장한 광경이었다.

이곳의 영기는 일 층보다 몇 배나 더 짙었다. 산봉우리 사이의 자욱한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오색 빛은 영기가 극도로 짙을 때만 만들어지는 영무(灵雾: 안개)였다.

“이곳이 이 층의 현계 구역이구나. 영기가 이렇게 짙다니…….”

“저 영무를 봐.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 것 같아.”

“이곳이야말로 선자들의 성지잖아…….”

시종들은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지라 다들 흥분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석목은 이미 이 층을 본 적이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니, 구경은 나중에 하고 우선 동부로 가자.”

석목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기운술을 시전하며 말했다.

그러자 수십 장 정도의 하얀 구름이 나타나더니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태웠다. 구름은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어디론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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