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혹 떼러 갔다 혹 붙여온다
“석 형이 응했으니 그럼 그렇게 합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바로 대결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철탑 사나이가 물었다.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였다.
“석 형은 시원시원한 사람이군요. 근처에 넓은 공터가 있습니다. 대결하기에 딱 적당한 곳이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철탑 사나이는 그렇게 말하며 날아갔고, 다른 두 사람도 그의 뒤를 따랐다.
석목도 발밑의 하얀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 이곳은 현계 구역이라 그는 세 사람에게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편 제풍은 근처의 한 영폭에서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멀리 날아가는 네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석목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도전을 받았다니……. 하물며 그들은 백년 제자들과는 다른 천위 경지의 존재였다.
석목의 시종들은 그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석목이 이곳에서 버티지 못하게 되면 시종들도 입장이 곤란해질 게 뻔했다.
시종들은 전부 선천 경지이며, 지계 이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천년 제자의 시종으로서는 경지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만약 다른 천년 제자의 시종이었더라면 진작에 현계 구역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천년 제자의 시종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널렸다.
제풍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주님, 반드시 이기셔야 합니다…….”
* * *
네 사람은 석목의 영지에서 나와 산골짜기의 넓은 곳으로 향했다.
골짜기에는 얼굴이 하얀 한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석 형, 이분은 서원(徐元) 형입니다. 우리와 같은 천년 제자입니다. 오늘 우리 대결의 증인을 맡아주실 겁니다.”
철탑 사나이가 말했다.
얼굴이 하얀 청년은 세 사람을 한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매우 차가웠다.
“그럼 서 형,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이 청년을 향해 손을 모으며 말했다.
“당신이 석목인가요?”
서원이 궁금했다는 듯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석목이 답했다.
“천년 제자들 사이에 서로 도전은 가능하지만, 이제 막 천년 제자가 된 사람은 십 년 동안 도전에 응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혹시 규정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은 겁니까?”
서원이 말했다.
“아, 그 대목은 못본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목은 멈칫하며 말했다.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는 서원이라는 사람에게 약간 호감이 생기 시작했다.
철탑 사나이 세 명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석 형, 오늘 도전에 이미 응했으니 번복하는 건 곤란합니다.”
“하하, 제가 이미 수락한 도전이니 당연히 번복은 없습니다. 세 분 중 누가 먼저 시작하시겠습니까?”
석목은 서원을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감사를 전하고, 다시 세 명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검은 피부의 청년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그가 푸른 옥판을 꺼내 들자 그 위에 숫자가 일렬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저 녹청(鹿青)이 먼저 도전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육 품의 하급 영폭을 걸겠습니다.”
청년이 손을 흔들자 푸른 옥판이 하얀 얼굴의 청년 옆에 있는 큰 돌 위에 놓였다.
청란성지에서는 전문 인력을 배치해 이미 개발된 모든 영폭의 영기 농도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품질의 차이를 평가하고 번호와 등급을 매겨 관리했다.
대부분의 영폭은 하급이며 주위 백 리 내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중 천 리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급 영폭은 소수였고, 상급 영폭은 거의 없을 정도로 드물었다.
석목 명의의 아홉 개 영폭에도 전부 번호가 있었다. 그의 동부 근처에 있는 삼 품의 중급 영폭 외에 다른 것은 전부 하급 영폭이었다.
그때 서원이 갑자기 입을 열어 물었다.
“녹청,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네 영지의 영폭은 이제 두 군데밖에 남지 않았잖아? 정말로 육 품 영폭을 걸 생각이야?”
“맞아요. 그것을 걸려고 합니다.”
녹청은 그의 말을 듣자 얼굴이 어색하게 일그러지면서 답했다.
그는 다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무엇을 걸 것인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서원이 몸을 돌려 석목을 향해 말했다.
“석 형, 규칙은 이렇습니다. 가지고 있는 영폭이 전부 상대의 것보다 낮은 등급이 아닌 이상, 그것보다 더 낮은 등급의 영폭은 걸 수 없습니다. 이제 결정하시지요.”
“그렇군요. 그럼 저의 하급 칠 품 영폭을 걸겠습니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푸른 옥판을 꺼내 돌 위에 던져놓았다.
“하하, 좋아! 석 형은 역시 시원시원하군요. 그럼 이 영폭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녹청이 두 눈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몸에서 회색빛이 번지더니 이어 허공에 커다란 회색 사슴 법상이 나타났다.
사슴 법상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다시 회색빛이 되어 그의 몸에 드리웠다. 거대한 영기의 압박이 주위로 흩어졌는데 거기에는 차가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
석목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녹청이 풍기는 위압감은 능풍이나 용전야 같은 사람들보다 강했기에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도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손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여의빈철곤이 나타났다.
앞에 서 있는 녹청의 몸에서 회색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상반신은 근육이 단단하게 튀어나온 사람이고 하반신은 요수의 몸통을 가진 모습으로 변했다. 아래는 거대한 사슴의 하반신이었는데 튼튼한 네 다리가 땅을 묵직하게 밟고 있었으며, 머리의 두 뿔도 몇 배나 커져서 눈부신 회색빛을 뿜어냈다.
녹청의 주변에 빛이 환하게 드리워졌다. 그는 손에 창을 들고 있었는데, 창 위에 부문이 감겨 있어서 파멸적인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녹청이 가진 회색 창은 분명히 법기였다.
“석 형, 받으시죠!”
녹청의 네 발이 움직이더니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귀신같이 석목의 뒤에 나타나서 손에 든 창을 흔들었다. 차가운 빛이 창 위에서 스치더니 그 끝에서 회색 꽃이 튀어나와서 석목의 가슴으로 향했다.
창의 꽃이 만들어지자 석목의 주변에 회색 안개가 피어올라서 그가 도망갈 수 없게 막아버렸다.
석목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회색 창이 만든 꽃에 의해 몸을 찔려버렸다.
“이겼다!”
녹청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어렸으나, 잠시 후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졌다. 창에 꿰뚫린 석목의 몸이 천천히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허영이었다.
이어 녹청의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났다. 석목이 그의 등 뒤에 있었는데, 그의 등에는 하얀빛이 섞여 있는 붉은 날개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말도 안 돼!”
녹청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빠른 움직임이 석목보다 느리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큰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렸고, 손에 든 회색 창을 흔들었다. 그러자 창꽃이 흩날리며 허공에 나타나서 검은 곤봉의 그림자를 막아냈다.
펑! 펑!
충돌음이 울려 퍼지며 검은 그림자가 부서져버렸다.
그때 석목이 다시 곤봉을 휘두르며 주위에 하얀 기류를 만들어냈다.
가볍게 웃으며 뒤로 날아간 그의 몸이 희미해지면서 두 개의 잔영으로 나뉘었다. 잔영도 손에 검은 곤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호시출압!”
“영사출동!”
두 잔영은 마치 별개의 두 사람 같았고, 각자 다른 통천십팔곤을 시전하였다.
촘촘한 하얀 호랑이와 코뿔소의 허영이 나타났다. 허공에 자욱하게 깔려 있던 두 갈래의 기류가 동시에 녹청을 향했다. 곤영이 지나간 자리의 허공에서 물결이 일렁였다.
녹청의 얼굴이 굳어졌고, 그는 손에 든 창을 마구 흔들며 지체하지 않고 앞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창 그림자가 두 개의 회색 회오리바람으로 변하여 튕겨 나갔다. 그와 동시에 번개 뱀이 나타나서 회오리바람 사이에서 번쩍였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색과 하얀색이 부딪히면서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빛이 두 사람 사이의 허공에서 터졌고 오색빛이 하늘에 가득했으며,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하지만 녹청이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고 생각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큰일이다!’
녹청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곧바로 몸을 돌렸다.
석목이 다시 한 번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의 여의곤이 커다란 곤봉의 그림자로 변하여 녹청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녹청은 도망가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고, 하늘을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머리 위의 외뿔에서 회색빛이 크게 번지더니 수많은 회색 줄기가 뿜어져 나와서 굵은 곤봉의 그림자를 감아버렸다.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몰려왔다.
순간 검은 곤봉의 표면이 회색 줄기에 의해 칭칭 감겨 허공에 멈췄다.
그러자 석목은 등 뒤의 날개를 거두고 붉은 화염이 타오르는 거대한 원숭이의 허영을 만들어냈고, 허영의 입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혼원진화!”
녹청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다.
그의 회색 줄기들이 혼원진화에 의해 흩어져 사라졌다.
펑!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회색 줄기가 사라지자 굵은 곤봉의 그림자는 마치 우리에서 도망 나온 야생말처럼 빠르고 무겁게 녹청의 등 위에 떨어졌다.
카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녹청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회색빛이 부서졌고, 그의 커다란 몸이 마치 별똥별처럼 날아가더니 땅 위에 떨어지면서 큰 웅덩이를 만들었다.
땅에 쓰러진 그는 입에서 피를 뿜고 있었고, 손에 들고 있던 회색 창도 튕겨져 나갔다.
이 모든 것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일계술사 청년과 철탑 사나이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도 석목이 환마도에 도전하기 전에 백년 제자 상위 세 명을 꺾었다는 소식은 전해 듣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백년 제자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백년 제자들은 성지에서 천 년 동안 고생하며 수련한 자신들의 실력을 절대 따라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서원의 눈에서도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 석목을 한번 바라보았다.
녹청은 허우적대며 일어섰다. 그의 오른팔이 덜렁이며 힘없이 몸에 붙어 있었다.
“계속하실 건가요?”
석목은 등 뒤의 법상을 거두었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여의빈철곤을 허공에 던졌다가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받아든 곤봉으로 녹청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석 형의 실력이 대단합니다. 제가 졌습니다.”
녹청은 석목의 눈빛을 보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다급하게 말했다.
“녹청 패배 인정! 영폭은 석목의 것이 된다!”
서원이 선포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서원을 향해 손을 모으더니 곧바로 그의 옆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돌 위에 있는 푸른색 옥판 두 개를 모두 챙겼다.
녹청의 몸에서 회색빛이 번쩍이며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석목이 푸른색 옥판을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며 쓰린 가슴을 부여잡았다.
녹청의 명의로 된 영폭은 하급 두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입에게서 한 개를 빼앗으려 했으나,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 셈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에게는 단 한 개의 영폭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