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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47화 (447/916)

447화. 공모오원삼(公母乌元参)

석목은 손을 들어 입가의 핏자국을 닦아내며 허공에서 내려왔고, 서원의 옆에 앉았다. 그는 안색이 창백했고 몸속의 진기를 전부 소진한 것 같았다.

서원은 복잡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푸른색 옥판 두 개를 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석 형,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갖췄군요. 제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방금 전에 시전한 것은 통천십팔곤이지요? 하지만 조금 다른 것도 같군요.”

“서 형, 혜안을 지니셨군요. 곤법을 조금 변형시켜서 제가 수련한 공법과 융합했을 뿐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렇군요.”

서원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서 형, 오늘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석목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머지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푸른 옥판을 거두어 날아가버렸다.

사실 그는 이 층에 이제 막 들어왔기 때문에 최대한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영폭을 가져다준다니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잘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산을 두드려 호랑이를 놀라게 하는 방법인 셈이었다. 일단 이렇게 해놓으면 흑심을 품은 기존 제자들도 함부로 찾아오지 못할 것이고, 폐관 수련을 하는 동안 방해도 덜 될 것 같았다.

석목이 도전을 신청한 세 명의 천년 제자를 혼자서 이겼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지 이 층 전체에 퍼졌다.

천년 제자들 사이에서 서로 도전을 주고받는 것은 원래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이 일은 그리 큰 파동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었다. 수련한 세월이 백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천년 제자를 연속으로 이기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석목은 이번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동부로 돌아가 제풍을 불렀고, 새로 얻게 된 세 곳의 영폭을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제풍은 걱정을 내려놓고 기뻐하며 그 명을 받들었다.

이틀 뒤, 석목은 주실의 원형 탁자에 앉아서 성지 이 층의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는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번천곤 속에서 얻은 백원왕의 보장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 했다.

잠시 후, 석목은 두 눈을 뜨고 손으로 지도 위를 여기저기 짚었다. 기억을 되새기던 그의 손이 지도의 가장 오른쪽, 즉 현계 구역의 가장 동쪽에 멈추었다.

그곳은 매우 외진 곳이었고, 탐색된 구역에 속하지 않고 여전히 미지의 구역이었다.

석목은 지도를 한참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의문이 풀렸다.

지도에 나와 있는 정보에 의하면, 그 구역은 비어 있는 다른 구역과 달리 전에 누군가가 탐색을 했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매우 큰 영폭이 자리 잡고 있는데다 면적도 상당히 커서 좋은 구역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오랜 기간 비어 있는 상태였고, 어떤 제자도 그곳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듯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석목은 한참 침묵에 잠겨 있다가 지도를 거두었고, 동부를 나서서 한줄기 빛이 되어 현영탑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그는 통류방의 큰 거리에 있었다.

통류방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서 다양한 소식이 오고갔다. 또 이런 소식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석목은 이 층에서는 별다른 인맥이 없다 보니 이곳에 와서 운이 좋기를 바랐다. 어쩌면 그 영폭에 관한 정보가 얻어 걸릴지도 몰랐다.

다행히 이전에 모아둔 영약이 있었기에, 그는 그것을 천보각의 뚱뚱한 관사에 맡겨서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석목은 샛길로 들어가서 천보각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직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이었는데 안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천보각의 대실에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얼굴이 붉어져서 뚱뚱한 관사와 다투고 있었다.

석목은 그 푸른 옷의 사나이를 훑어보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문 옆에 서서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보십시오, 수컷인지 암컷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오원삼을 상급 영석 백이십 개나 받으려 하다니,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선약재에 오원삼이 다 떨어져서 이 누추한 상점을 찾은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 오지도 않았을 거요. 내 급한 처지를 이용해서 가격을 더 높게 부르려는 수작 아닙니까?”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목이 찢어져라 고함쳤다.

“단목 선배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원삼이 수컷인지 암컷인지 분별하려면 그것을 잘라서 안쪽의 색을 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제가 제시한 가격은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이고, 절대 과하게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뚱뚱한 관사는 이마에 맺힌 땀을 옷자락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수컷이라면 약효도 확실해서 천원단을 제련하는데 매우 큰 효과가 있을 거요. 그렇다면 최상급 영석 백이십 개도 비싼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만약 암컷이라면 독성이 어느 정도 있으니, 공을 들여서 그 독성을 뽑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가치가 확 떨어집니다. 최상급 영석 오십 개도 아까워요.”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선배님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만, 시장 가격에 따르면 최상급 영석 백이십 개 이하는 안 됩니다. 아주 공정한 가격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석목은 상황 파악을 끝냈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오원삼을 사고 싶은데 가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뚱뚱한 관사는 시장가를 고집하고 있어서 다툼이 일어난 것이었다.

석목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랜만입니다.”

석목이 웃으며 관사에게 말했다.

“석 도우…….”

뚱뚱한 관사가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응? 당신은 석목?”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석목을 보더니 말했다.

석목이 그에게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하하, 천 년 만에 환마도를 통과해 천년 제자가 된 유명인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십년 대결에서도 당신의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다면 노름판이 아주 심심했을 것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석목도 비로소 그가 누군지 기억났다.

“과찬이십니다. 그때 노름판을 열었던 단목광 사형이시죠?”

“맞습니다. 나를 다 알고 있다니 놀랍군요.”

단목광이 머리를 끄덕였다.

“명성이 자자한 분이시잖습니까? 제가 들어오면서 듣기로는 오원삼 때문에 언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들어보실 의향이 있는지요?”

석목이 물었다.

“그래요? 말씀하십시오.”

단목광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뚱뚱한 관사도 그 말을 듣더니 의아한 듯 석목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저도 단 사형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습니다. 사형은 노름을 좋아하시는 분이니, 제가 도움을 청할 일을 걸겠습니다. 사형, 노름 한판 어떠십니까?”

석목이 눈알을 한 번 굴리더니 물었다.

“노름이요? 무슨 판을 어떻게 벌이려는 겁니까?”

단목광은 노름이라는 말을 듣자 바로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사형이 이 오원삼이 암컷일까 봐 의심하시니, 제가 이 오원삼은 수컷이라는 쪽에 걸겠습니다. 이 오원삼을 열어서 만약 사형이 이기면 최상급 영석 오십 개에 가져가시고 나머지 영석은 제가 내겠습니다. 만약 제가 운이 좋아 이기게 된다면, 사형은 제가 궁금한 문제에 답을 하나 해주시고, 이 오원삼은 최상급 영석 백 개에 가져가십시오. 물론 그 나머지 금액도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석목이 물었다.

“문제에 답해주면 된다고요? 무슨 문제입니까?”

단목광은 석목의 말을 듣더니 믿지 못한다는 듯 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지 내의 비어 있는 영폭에 대한 정보입니다. 사형이 만약 알고 있다면 답해주시고, 만약 모르신다면 저를 위해 한번 알아봐주십시오.”

석목이 말했다,

“아, 그 정도면 되는 겁니까? 소식이라면 천년 제자 중에서 나만큼 정통한 사람이 또 없지요. 그럼 어디 노름 한번 해봅시다. 주인장이 보증을 서주시지요.”

단목광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뚱뚱한 주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석목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좋습니다.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뚱뚱한 관사는 그들을 바라보더니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뚱뚱한 관사는 반 치 정도 되는 네모난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는 자색의 수정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네모난 상자 안에는 뿌리가 잘 자라고 무늬가 뚜렷한 검은 자색 원삼이 놓여 있었다.

뚱뚱한 관사가 뚜껑을 열자 대실에 기이한 약냄새가 풍겼다. 단목광은 그 냄새를 맡으며 얼굴에 기쁜 기색을 떠올렸다.

뚱뚱한 관사는 저장 반지에서 얇은 칼을 꺼냈다. 그리고 오원삼의 위쪽에 조심스럽게 작은 틈을 만든 뒤 가볍게 양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 있는 씨가 드러났다.

씨가 드러나자 단목광은 바로 그쪽으로 다가가서 미간을 찌푸리며 안쪽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한쪽에서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자색……. 수컷이군요. 석 사제가 이겼습니다.”

단목광의 말투에서는 조금의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이번 노름은 이기든 지든 그에게는 이득이 되는 장사였다. 그래서 비록 졌어도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럼 석 사제, 이야기해보세요. 무슨 문제입니까?”

단목광이 물었다.

“하하, 실은 제가 탐색 구역 범위 내에 있는 어느 영폭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별다른 요수가 거주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껏 아무도 차지하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었더군요. 그곳에 제가 모르는 위험이나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사형이 한번 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영폭이요? 어느 곳의 영폭입니까?”

단목광이 물었다.

석목은 더 말하지 않고 이 층 지도를 꺼내 단목광에게 보여주었다.

“아하, 나는 사제가 어디 좋은 곳이라도 봐뒀나 했는데, 여기는 외벽이네요. 제가 때마침 이곳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단목광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말하자면 좀 깁니다. 천 년 전, 어떤 제자가 이곳의 영폭 구역을 탐색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거기에는 강한 요수가 살고 있었지요. 그 요수는 영력과 지능도 낮지 않을뿐더러 모습을 감쪽같이 감추는 것도 잘해서, 몇 차례나 싸웠지만 끝내 죽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멀리 쫓아내는 정도가 최선이었지요. 하지만 그 요수는 계속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그 제자가 강제로 그 구역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 구역 관리를 하던 시종들이 습격을 받기도 했고, 영초 등을 심어도 요수가 전부 훔쳐 먹어버렸습니다.

그 요수는 평범한 진법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큰돈을 들여서 진법을 설치하기에는 아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후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지만 누구도 그곳을 차지하지 못했고, 영폭은 자연스럽게 방치되었습니다.”

단목광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그 영폭에 존재하는 위험은 그 요수라는 말인가요? 사형, 혹시 그 요수와 관련된 정보를 알고 계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 요수가 어떻게 생겼고, 또 수련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참, 사람들은 그 요수가 영폭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했어요. 그 속에 무슨 천재지보(天材地宝)인가 뭔가가 있다고들 하더군요.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제자들이 함께 그곳을 탐색했지요.”

단목광은 잠깐 생각을 되짚더니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척 느긋하게 물었다.

“아, 그럼 그 사형들은 천재지보를 찾았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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