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49화 (449/916)

449화. 이곳을 지키는 요령(妖灵)

요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 석목을 향해 포효했다. 곧 그의 머리를 물어버릴 것 같았다.

석목은 깜짝 놀라 구전현공을 시전했다. 왼손은 하얗게, 오른손은 칠흑 같은 검은 색으로 변하여 음과 양의 기운이 동시에 폭발했다.

요수는 그 기운을 느끼고 순식간에 동작을 멈추었다. 그의 붉은 눈에서 의아한 기색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그 틈을 타서 두 팔로 땅을 치며 뒤로 미끄러졌다. 요수의 발에서 벗어난 그는 재빨리 땅에서 일어섰다.

곧이어 그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손의 하얗고 검은 빛이 교차된 곤봉이 강하게 휘둘러졌다.

펑!

곤봉이 요수의 머리에 떨어지자 정수리에서 검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요수는 머리가 터지고 몸이 땅속에 묻힌 채 네 다리를 파르르 떨었고, 곧 숨이 끊어졌다.

그러자 석목의 주위에서 공격하려던 네 마리의 요수도 전부 쓰러져서 하얀 안개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석목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가 곤봉으로 요수의 머리를 이리저리 뒤졌고, 그 안에서 약간 깨진 요단을 꺼내들었다. 요단에서 신광이 빛나는 것을 본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 순간 요수의 머리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순간적으로 십 장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곤봉으로 몸 앞을 막았다.

잠시 후 빛이 다시 희미해졌고, 이십 장 정도 되는 커다란 호랑이의 그림자가 석목 앞의 허공에 떠 있었다.

하얀 호랑이의 몸 크기는 삼 장 정도 되어 보였고, 몸 주변에 검은색과 하얀색 무늬가 교차되어 있었으며, 눈은 마치 번개 빛 같았다. 꼬리를 등 뒤로 계속 흔들고 있는 게 살아서 숨 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표면의 은은한 빛은 조금 어두웠고,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이 불안정해 보였다.

‘요수의 혼령?’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곤봉을 들어 하얀 요수를 내리치려 했다.

그 순간, 호랑이 요수의 혼령이 갑자기 사람의 말을 했다.

“젊은이, 놀라지 말고 그만 멈추게!”

석목은 그 말을 듣더니 동작을 멈추고 물어보았다.

“대체 무슨 괴물이기에 혼백의 힘으로 나타날 수 있는 거냐?”

호랑이 요령은 쓴웃음과 기쁨이 동시에 떠오른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백규(白奎)라고 한다. 조금 전 자네가 시전한 구전현공, 그리고 자네의 몸에 백원왕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자네가 그 하얀 원숭이의 후손인가보군. 자네를 기다린 지 오래다.”

“나를 기다렸다고?”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풀었다. 눈앞의 호랑이를 어디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무엇인가 생각난 듯했다.

오래 전 그가 아직 남해성에 있을 때, 백원왕을 본 꿈에서 이 하얀 호랑이 요수도 본 것 같았다.

“나는 백원왕이 설치한 사대요사(四大妖帅) 중 호랑이의 혼령이라네. 그의 명을 받고 이곳에서 보장을 지키며 그의 후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 수천 년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나타났구나…….”

백호의 눈에서 해방에 대한 기쁨이 떠올랐다.

석목은 그 말을 듣자 자신의 생각에 더 큰 확신이 생겼다.

“백원왕의 명을 받아서 이곳에서 나를 기다린 것이라면 어째서 공격했습니까? 나의 실력이라도 알아보려고 한 것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방금 전의 싸움에서 백호의 공격은 상당히 잔혹했다.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터라 단순히 시험해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다!’

석목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이 요령은 분명 백호 요수의 것이고, 조금 전 그와 싸운 것은 붉은빛을 내뿜는 호랑이 요수의 몸통이었다.

“방금 전 호랑이 요수가 자네를 공격한 것은 내 뜻이 아니다. 백원왕의 명을 받아 이곳을 지킨 뒤로 수천 년이나 지나서 내 수원은 이미 끝났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랑이 요수의 몸속에 들어가서 혼을 유지하려 했으나, 그 과정에 문제가 생겨서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리하여 혼이 손상되었고, 요수의 신혼과 같은 몸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나는 늘 잠이 든 상태로 있지만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늘 있었기 때문에, 그 호랑이 요수도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자네가 그 요수를 죽였기 때문에 내가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백호의 혼이 말했다.

“그렇군요.”

석목은 백호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선배님, 저는 석목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백원왕이 남겨둔 요령이라면 백원왕에 관한 것도 많이 아실 듯합니다. 저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자네가 석목이로군. 백원왕의 후손이니 궁금한 것들을 전부 물어보도록 해라.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말해줄 수 있다.”

백호가 말했다.

“백원왕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의 마음에 박혀 있는 질문이었다. 백원왕의 대물림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백원왕은 천원성(天猿星)에서 왔다. 자네가 이곳까지 온 것을 보니 그가 청란성지에 들어와 청란 성조를 스승으로 모신 직속 제자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테지. 그는 구전현공을 수련한 뒤로 어떠한 이유로 성지를 나와서 성역을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요족을 정복했지.”

백호의 눈이 아득해졌다.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전부 다 지나간 일이라 크게 의미는 없다.”

백호는 숨을 내뱉고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백원왕은 구전현공을 수련했는데 왜 죽음을 맞이했나요? 백원왕이 저에게 하늘의 선인들을 전부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요? 이 세상에 정말 선인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선인? 천정의 놈들이 허세를 떠는 말일 뿐이다.”

백호가 차갑게 말했다.

“백원왕의 죽음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는 나도 확실히 모르지만 천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백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 번쩍거리더니 어두워졌다. 그 흔들림은 점점 더 격해졌다.

“천정? 그곳은 어떤 곳인가요?”

석목이 다급하게 물었다.

“자네의 수련 경지가 아직 부족하니 이런 것들을 굳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다. 자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수련에 집중하는 것이야. 천정에 관련된 일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이니까.”

백호가 말했다.

그리고 석목이 더 물어보기도 전에 몸을 돌려 동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에게는 이제 시간이 없어. 신혼도 곧 사라진다. 어서 따라오너라. 보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겠다.”

석목은 아직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지만, 백호가 그렇게 말하자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잠시 후 그들은 동굴의 깊은 곳에 있는 평범한 푸른 옥벽 앞에 섰다.

“보장은 바로 이곳에 있다. 구전현공의 힘을 시전하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백호는 몸을 돌려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몸이 더 어두워졌다. 조금 전보다 더 투명해진 것 같았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다가가서 푸른 돌벽을 두어 번 훑어보더니, 몸에서 붉은빛을 뿜어냈다.

푸른 돌벽에 검고 하얀 빛이 모여서 빛의 막을 형성했다. 그 위에는 수많은 그림과 부문이 있었는데, 마치 하늘의 별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두 팔을 들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손바닥에서 두 갈래 빛덩어리가 나타났고, 빛의 막 위에 떨어졌다.

검고 하얀 빛이 떨어지자 수많은 부문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석목의 안색이 변하더니 몸속의 음과 양의 힘이 빛의 막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막의 두께가 천천히 얇아졌다.

석목은 기뻐하며 끝까지 잘 버텨냈다.

백호는 한쪽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도움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 반 시진이나 흘렀다. 검고 하얀 빛의 막은 이제 얇은 한 층만 남아 있었다.

그와 반대로 석목의 안색은 하얀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고, 몸속의 진기도 점점 고갈되어갔다. 두 손에서 나오던 검고 하얀 빛도 많이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이 빛의 막은 백원왕이 만든 것이군요. 제 실력을 보려고…….”

석목은 옆에 있는 백호를 한번 바라보고, 계속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됐을 때, 굉음과 함께 검고 하얀 빛의 막이 부서져 사라졌다. 푸른 돌벽이 있던 자리에 큰 구멍이 나타났다.

석목은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몸속의 진기는 전부 빠져나가서 텅텅 비어 있었다. 그는 한참 뒤에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보아하니 구전현공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를 제대로 수련했구나. 시간도 다 됐으니 따라오도록 해라.”

백호가 그렇게 말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석목도 깊은 숨을 내뱉고 그를 따라서 들어갔다.

동굴 속은 몇 장 정도 되는 크지 않은 석실이었다. 중앙에는 네모난 탁자가 놓여 있는 걸 빼면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하지만 탁자 위에는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

석목은 들어가서 탁자 위의 물건을 보는 순간 멍해졌다.

거기에는 일고여덟 개의 옥병이 있었고, 두 개의 옥합, 그리고 영석이 조금 있었다. 영초와 영재도 있었다.

옥병과 옥합은 둘째 치고, 영석들만 하더라도 전부 최상급 영석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모두 놀라운 영력의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것은…….”

석목은 영석을 한 개 집어들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예전에 오래된 책에서 본 바로는, 오랜 옛날에는 최상급 영석보다 더 등급이 높은 영석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선급 영석이었다.

“이 영석이야말로 진정한 선급 영석이다. 최상급 영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지. 백원왕이 성역을 백여 년이나 떠돌아다니며 모아둔 것이다. 이것들은 다른 것으로 바꿔서 쓰지 말게. 선급 영석은 영력이 매우 풍부하니, 경지를 돌파할 때 사용하면 성공 확률이 많이 높아질 것이다.”

백호가 말했다. 석목은 흥분된 얼굴로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있는 선급 영석은 십여 개 정도였다. 절반은 불의 속성이라, 그가 앞으로 천위 경지를 돌파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었다.

그는 다시 눈길을 돌려 옆에 있는 영재와 영초를 바라보았다. 그 물건들은 이곳에 수천 년이나 놓여 있었지만 영력 손실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지원과(地元果), 구엽야광지(九叶夜光芝), 비천학익신목(飛天鹤翼神木)…….”

석목이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이 영재와 영초는 전부 구하기 어려운 귀한 것이었다.

지원과는 수명을 늘리는 희귀한 영과로, 한 알만 먹어도 백 년 이상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구엽야광지는 복용 후 원기를 크게 보충할 수 있고, 최소 십 년의 수련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비천학익신목은 깃털같이 가볍지만 매우 단단해서 비행 영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신급 재료다. 다른 재료들도 전부 매우 귀한 영물이었다.

석목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옥병을 열어보더니 또다시 흥분에 빠졌다.

옥병 속의 단약은 전부 상급 단약이었다. 두 병은 빠르게 진기를 회복하는 단약이었으며,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 전해듣기만 했던 환혼단(还魂丹)도 있었다. 환혼단은 석목도 책에서만 본 것이었는데, 손상된 신혼을 회복시켜주는 단약이라고 했다.

석목은 옥병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옥합 두 개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상자를 여는 순간 멍해졌다.

첫 옥합에는 검고 하얀 명주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주먹 반 개만 한 크기였는데, 검고 하얀 빛을 뿜어내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었다.

다른 옥합의 물건은 손가락만 한 하얀 털이었다. 그것은 하얀빛을 뿜고 있었는데, 얇은 금줄기가 맴도는 것이 법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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