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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51화 (451/916)

451화. 영지의 이상한 움직임

일 각 후, 석목이 속도를 줄였고, 등 뒤의 날개도 다시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그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흑백의 날개는 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진기가 많이 소모되었다. 그래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그는 사람이 없는 산봉우리에 내려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최상급 영석을 하나 들고 진기를 회복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 석목의 얼굴에서 피곤해보이던 기색이 사라졌고, 금세 정신이 다시 맑아진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허공으로 올라가서 구름을 밟고 섰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두 손바닥을 마주하고 위아래로 받쳐 들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검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주위에 혼돈의 안개가 흘렀다.

석목이 한쪽 손을 구부려 안개를 쥐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 나가며 팔을 휘두르자 혼돈의 안개가 그의 주먹 끝에서 튕겨 나왔다.

그의 손을 벗어난 안개는 빙글빙글 돌더니 허공에서 머리만 한 흑백의 안개 공으로 변해서 산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안개의 공이 날아가자 석목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자칫 허공에서 떨어질 뻔했다.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진기가 전부 소진된 듯했다. 음과 양의 힘에 진기를 전부 빼앗긴 것 같았다.

이어 그의 두 팔에서 빛이 사라지더니 다시 평범한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그때 석목의 단전에서 혼돈의 안개가 천천히 흘러나와서 몸의 곳곳으로 퍼졌다. 그러자 진기가 소진된 후의 허한 느낌이 조금은 사라졌다.

그는 곧바로 회복 단약을 두 알 삼켰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흑백의 안개 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개 공은 날아가는 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진기 한줄기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얼핏 보면 속도만 조금 빠를 뿐이고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할 것처럼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이 흑백 안개의 공 속에서는 음양의 힘이 평형을 이루며 혼합되어 있었다. 그래서 절대 힘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을, 석목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한 손으로 먼 곳의 산 중턱을 가리켰다.

쿵!

그러자 안개 공이 산 중턱에 떨어지며 터져버렸고, 수많은 나무와 돌이 튕기며 산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공이 터진 곳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더니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끊어진 나무와 돌들이 전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었고, 이내 가루로 부서져버렸다.

연이어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산봉우리가 곧 무너져버릴 듯 아래로 주저앉았고, 전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밖으로 튕겨 나왔던 돌들마저 자석 같은 힘에 끌려 소용돌이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안개는 마치 산을 삼키는 거대한 짐승 같았고, 큰 입을 벌려서 남아 있는 산을 전부 삼켜버렸다.

주변에는 희미하게 먼지가 흩날렸다.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 같았다.

잠시 후, 흩날리던 먼지마저 전부 빨려 들어가고 나니 주변이 환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높이가 백 장 정도 되는 봉우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원래 산이 있던 자리에는 한 장 정도 되는 웅덩이만 만들어져 있었다.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석목은 이 먼 곳까지 와서 힘을 시험해본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엄청난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비록 먼 곳까지 와서 안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래 머무는 건 좋지 않았다. 그는 붉은 날개를 펼치고 동부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잠시 후, 그는 닫혀 있는 커다란 폭포 뒤의 동굴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손에 영석을 쥔 채 몸속의 진기를 천천히 회복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진기를 전부 회복한 듯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석목은 바로 일어서지 않고 천천히 적원화경을 시전했다. 그의 몸에서 짙은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붉은 빛은 눈부신 빛이 아닌, 은은하고 꽉 찬 느낌의 빛이었다. 그는 이미 원만의 경지까지 이른 상태였다.

삼 년 동안 석목은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를 수련하면서 적원화경을 수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결과 십이층 공법을 전부 수련해서 경지도 곧 지계 정상에 도달할 것이었다.

석목은 흡족해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석목이 적원화경 시전을 멈추자 몸에서 나오던 빛도 사라졌다.

잠시 후 그의 두 팔에서 검고 햐얀 빛이 뻗어 나와서 가슴에서 부딪혔다. 두 개의 빛이 서서히 융합되었다.

한참 뒤 흑백의 빛이 다시 사라졌다.

석목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백원왕이 전수한 멸선곤법과 구전현공은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아쉬워하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의 음양 합일이 만들어낸 혼돈의 힘은 강력했다. 그러나 그가 수련하는 구전현공은 개량된 것이라, 조극 같은 사람들이 수련한 순수한 구전현공과는 조금 달랐다.

결국 이번에도 문제는 혈맥이었다.

성지에 들어온 후 석목은 틈이 날 때마다 통류방과 성전각에 들러 성역의 천수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혈맥의 대물림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석목은 다시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버리려 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동부 밖으로 나갔다. 동부를 떠난 지 삼 년이 됐으니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잠시 후, 커다란 폭포 속에서 붉은빛이 뻗어 나와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 * *

한 시진 후, 석목의 동부 문 앞에 한줄기 빛이 날아들었다.

그 안에서 석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부주님, 인사드립니다!”

동부의 문 앞에서 두 시종이 석목을 보고 다급하게 인사를 올렸다.

석목은 두 사람을 슬쩍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제풍이 그가 돌아올 때까지 지키라고 명을 내린 것 같았다.

“제풍을 오라고 해라.”

그는 담담하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동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은 대실에 앉아서 방금 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동부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성지의 이 층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보였다. 많은 빛이 현영탑으로 날아갔는데, 다급하게 가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 층의 천년 제자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수련을 하느라 동부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밖에서 날아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잠시 후, 제풍이 들어왔다.

“부주님, 인사드립니다.”

제풍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인사는 필요 없다.”

석목은 담담하게 한마디 내뱉더니 제풍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수련 경지가 많이 늘었구나.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미 선천 정상까지 도달하다니, 곧 지계를 돌파하겠구나.”

석목의 말에 제풍이 기뻐하며 공손하게 답했다.

“전부 부주님 덕분입니다. 이 현계 구역의 천지 영기가 짙어서 수련 경지를 빠르게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계까지 돌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련 경지가 올랐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앞으로 조금 더 신경 써서 준비하거라. 단약도 갖춰 놓고, 장부에서 영석을 지출해도 좋으니 빨리 지계 단계까지 수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수련에 집중하는 동안 영지 관리를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

석목이 말했다.

“부주님, 감사합니다.”

제풍이 기뻐하며 큰절을 올렸다.

“그럴 필요 없다.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만큼, 절대 너희를 푸대접하지는 않을 것이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서 제풍을 일으켜 세웠다.

“부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지의 일은 제가 잘 처리해놓겠습니다.”

제풍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물어볼 일이 있어서 너를 부른 것이다.”

석목은 돌아오는 동안 길에서 본 이상한 광경에 대에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특별히 알아봤습니다. 부주님이 밖에서 수련하는 동안 종문에 어떤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현계 구역의 많은 천년 제자가 불려갔는데, 종문의 어떤 임무를 수행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제풍이 말했다.

석목이 그 말을 듣더니 머리를 끄덕였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 제풍은 석목에게 삼 년간의 영지 수익에 대해 보고했다. 현계 구역의 영지 수익은 황계에서보다 훨씬 많았다. 그리고 석목이 요산 등 세 사람에게서 받아낸 세 곳의 영폭까지 합치니, 삼 년 동안 영지 수입은 놀라울 정도로 늘어 있었다.

물론 석목은 지난 노름판에서 크게 한몫 벌었고, 또 백원왕이 남긴 보장으로 많은 자원을 갖게 되었다. 이미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영지의 수익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지만, 어쨌든 의외의 수익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영지의 시종들에게 톡톡히 포상을 하라고 제풍에게 분부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비밀 석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구전현공의 세 번째 단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한층 더 깊게 들어가려면 아마 수십 년의 고된 수련을 거쳐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급한 일은 수련 경지를 빨리 천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석목은 지계에서 천위로 올라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

그는 눈을 감고 신식으로 몸속을 훑어보았다. 영해의 진기가 수은처럼 뭉쳐 있었고, 진기 소용돌이는 공 모양으로 변했다.

지계에서 천위로 들어서면 영해의 진기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액체 진기에서 고체 금단 형태로 변해야 천위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성역에서는 천위경을 금단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금단의 단계로 들어가기 전에, 지계를 대원만 경계까지 수련해야만 가단경(假丹境)의 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

석목의 수련 경지가 가단경까지 가려면 뜸을 들일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다시 한동안 폐관 수련을 한 뒤에 시험해보려 했다.

그는 손을 흔들어 수많은 빛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밖이 밝아지더니 법진이 층층이 동부를 둘러쌌다.

석목은 양지단 한 알을 꺼내 삼켰다. 그리고 눈을 감고 몸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수련에 돌입했다.

* * *

그렇게 눈 깜박할 사이에 석 달이 지났다.

석목은 비밀 석실에서 눈을 떴고, 주변은 붉은빛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빛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으로 변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석 달 동안 수련해도 그의 경지는 아직 가단경에 도달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 시도를 했지만 계속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다.

“보아하니 가단경은 그렇게 쉽게 도달할 수 없겠군. 적원화경에 나온 대로 천년 화삼(火参)이라도 찾아봐야 하는 건가?”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적원화경의 마지막 부분에는 화경을 대원만까지 수련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귀한 화삼의 영액을 짜내서 사십구 일 동안 복용하면 그 힘으로 단번에 돌파할 수 있다고 했다.

석목은 처음에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가단경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영지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와서 현영탑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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