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방가보(方家堡)
반나절 후, 석목은 통류방의 천보각 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뚱뚱한 관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석목을 배웅했다.
“석 도우, 정말 죄송합니다. 천년 화삼은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보물이라……. 저희 천보각에서도 거의 백 년 동안이나 그 물건을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뚱뚱한 관사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석목이 천년 제자가 된 이후, 뚱뚱한 관사는 그를 한층 더 공손하게 대했다.
“아닙니다. 저도 그 물건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인장의 인맥이 넓으니 조금 더 신경 써서 살펴주십시오. 만약 천년 화삼을 들여오게 된다면 꼭 저에게 먼저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석목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석 도우를 위해 바로 수배해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뚱뚱한 관사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뚱뚱한 관사는 석목이 멀어져가는 것을 보자 바로 상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식을 전하는 하얀색 영패를 꺼내 들었다.
* * *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고 뒷짐을 진 채 통류방을 걷고 있었다.
통류방에 오기 전 그는 이미 종문의 백진곡과 선약재 등에 들렀다. 그러나 천년 화삼은 어디에도 없었다. 통류방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석목은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만법각에 천년 화삼을 찾는 임무를 의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는 꽤 많은 현영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음? 석 사제? 오랜만이군요.”
석목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이 어떤 상점 앞에 서서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석목과 요산 등의 대결에서 증인을 맡았던 천년 제자 서원이었다.
“서 사형,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석목이 다가가서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 사제, 통류방에 온 것을 보니 찾는 물건이라도 있는 겁니까? 내가 이 통류방에 상점을 몇 개 가지고 있는데,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서원의 말에 석목은 웃으며 답했다.
“서 사형은 대단하시네요. 천년 제자 신분으로 이 통류방에 상점을 몇 개나 갖고 계시다니요. 정말 제 처지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입니다.”
서원도 웃으며 대꾸했다.
“석 사제, 과찬입니다. 나도 가족의 힘을 빌려서 상점을 연 것이지요. 별 것 아닙니다.”
몇 마디 한담을 더 주고받은 뒤, 석목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말했다.
“실은 오늘 조금 희귀한 물건을 찾으려고 통류방에 왔습니다만, 몇 곳이나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그래요? 무슨 물건을?”
서원이 물었다.
“지금 천년 화삼 한 개를 찾고 있습니다. 오래되면 오래된 것일수록 좋습니다. 혹시 서 사형이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
석목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년 화삼!”
서원은 그 말을 듣더니 한참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석 사제, 혹시 바쁘지 않으면 내 상점에 들렀다 가는 게 어떤가요? 찾아볼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그가 말했다.
“좋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석목은 서원을 따라서 그의 상점으로 들어갔다.
서원은 시종에게 영차와 영과를 대접하라고 분부하고, 어디론가 다급하게 나갔다.
석목은 차를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편실에서 반 시진 정도 기다리니 서원이 들어왔다.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석목은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미안하게 됐군요. 방금 전에 물어봤는데 천년 화삼은 없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재고가 없다고 해요.”
서원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실은 꽤 오랫동안 찾았는데 아직 찾지 못했어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석목은 실망하는 기색을 억누르며 말했다.
“석 사제,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내 상점에는 없지만, 방금 몇몇 천년 제자에게 물어본 바로는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서원이 말했다.
“정말입니까? 찾을 수 있습니까?”
석목이 기뻐하며 물었다.
“나에게 동생이 한 명 있는데, 그는 종문의 만법각에서 당직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천년 화삼에 관해 물어봤는데, 얼마 전 누군가 만법각에 임무를 하나 올렸다고 하는군요. 그 임무의 포상이 바로 천년 화삼이라지 뭡니까.”
서원이 말했다.
“좋습니다. 바로 만법각으로 가겠습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석 사제, 그 임무를 맡으려고요?”
서원이 놀라서 물었다.
“맞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그 임무의 난이도가 꽤 높은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포상만 보고 임무를 수행하러 갔다가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왔다고 하는군요.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석 사제, 그 임무를 수행하려면 조심해야 합니다.”
서원이 당부했다.
“석 사형, 감사합니다.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서원이 담담하게 웃었다.
“오늘 서 사형이 도와주신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혹시 나중에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생기면 말씀하세요.”
석목은 진중한 태도로 손을 모은 뒤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 * *
잠시 후, 석목은 만법각에 있었다.
전과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조금은 썰렁했다.
석목은 순간 제풍이 말한 종문의 임무가 생각났다. 아마도 많은 종문의 사람이 전부 그 임무를 수행하러 갔을지도 몰랐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리며, 임무가 기록된 비석 앞으로 가서 빠르게 훑어보았다.
작은 글씨가 석목의 눈에 들어왔다.
그 임무는 광맥(矿脉)을 탐색하는 내용이었다. 그곳에 들어가서 물건을 하나 빼내오면 천년 화삼을 포상으로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영석도 주어진다고 적혀 있었다.
이를 의뢰한 사람은 벽파성(碧波星)의 방 씨 가문이었다. 그들이 탐색하려는 광맥도 벽파성에 있었다.
“벽파성이라…….”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벽파성은 동성성 근처에 있는 행성이었다. 청란성지의 부속 행성 중 하나이기도 했으며, 동성성과 가장 가까운 행성이었다.
석목은 책에서 벽파성과 관련된 정보를 본 적이 있었다. 천지 영기가 매우 짙은 곳이고, 또 매우 특이한 토양이 존재했다.
그곳은 영초와 영재를 재배하기 좋으며, 자라는 시간까지 단축시킬 수 있어서 미양성역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은 청란약포(药圃)로도 불렸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 화삼 같은 귀한 물건을 포상으로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무슨 영문인지, 그곳의 흙은 벽파성을 떠나면 평범한 토양으로 변한다고 했다.
임무에 대한 설명도 그 뒤에 적혀 있었다. 광맥의 지하 깊은 곳에 특수한 금속이 숨겨져 있어서 땅속에 기이한 자기장이 존재하며, 그것이 진기와 법력 사용을 크게 제한한다고 했다.
석목은 그 이야기를 보고 조금 놀랐다. 진기와 법력을 제한하는 천연 자기장이 있다니……. 그것은 진법의 효과나 마찬가지였다.
서원의 말대로 이 임무는 절대 쉽지 않았다. 진기와 법력이 제한되면 수련자라 해도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었다. 실패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석목 입장에서는 꼭 해내야 했다. 다행히 그가 수련한 공법은 이 임무를 수행하기에 유리한 점이 꽤 많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현영벽을 꺼내들었다. 한줄기 푸른빛이 임무 비석에서 튕겨 나와서 그의 현영벽으로 들어갔다.
임무를 받은 그는 곧바로 만법각을 나왔다.
* * *
잠시 후, 석목은 현영탑 속의 커다란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은 다양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전송 법진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청란성지와 각 행성을 연결하는 곳이었다. 벽파성으로 가는 전송진도 있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회당 편도에만 오 점의 현영점이 필요했다.
석목은 지름이 몇 장 정도 되는 법진 앞으로 다가갔다.
법진 옆에 푸른 옷을 입은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녀의 수련 경지는 지계 초기 정도였다.
“사형, 벽파성으로 가십니까?”
석목은 여자의 질문에 머리를 끄덕였고, 현영벽을 꺼내 현영점을 지불하였다.
“사형, 천년 제자셨군요. 실례했습니다.”
여자가 공경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바빠서 그러니 서둘러 부탁드립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서 전송 법진 위로 올라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전의 전송 법진은 수십 개나 되었는데, 전부 미양성역의 각 행성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석목은 다시 한 번 청란성지의 영향력에 감탄했다.
여자가 영패를 한 개 꺼내 들어 주문을 외우자 하얀 빛 한줄기가 튕겨 나왔다.
그러자 법진이 격하게 돌기 시작했고, 눈부신 빛이 반짝였다. 곧이어 석목의 몸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또 다른 대전에 도착해 있었다.
대전의 한쪽에는 얼굴이 하얗고 머리에 뿔이 한 쌍 돋아 있는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석목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대전 밖에는 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리 넓지는 않아보였다. 동성성의 중간 규모 시장 정도였다.
시장은 시끌벅적했고 다양한 상점이 있었으며, 청란성지에서도 보기 드문 영재와 영초가 가득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석목도 이곳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샀을 테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천년 화삼뿐이라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시장에서 벽파성의 지도를 하나 산 뒤, 방 씨 가문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청익비차를 불러서 날아갔다.
벽파성은 동성성의 부속 행성으로, 동성성보다 훨씬 작았다. 석목은 이틀 만에 방 씨 가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그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 광맥을 여러 개 보았다. 그 광경을 보자 남해성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줄줄이 이어진 산들 사이에 큰 성보(*城堡, 성에 전투용으로 딸려 있는 보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오래된 보루는 면적을 꽤 많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삼십 리 정도는 되어 보였다.
고보 전체가 커다란 진법에 둘러싸여 있고, 진법은 환술 효과가 있어서 보통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도 뒤편에 있는 고보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신통이 있어서 진법도 뚫어볼 수 있었다. 고보 밖에서 멈춘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진법의 한 곳으로 붉은빛을 날려 보냈다.
쿵!
고보 밖에 있는 빛의 막이 흔들렸다.
잠시 후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면서 빛의 막에 틈이 생기더니, 푸른색 독수리가 그 속에서 날아 나왔다. 독수리는 날개를 펼친 폭만 칠팔 장 정도 돼 보였고, 눈에서 빛을 뿜고 있었다.
독수리의 등에는 회색 옷을 입은 청년 두 명이 앞뒤로 나란히 서 있었는데, 둘 다 인족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얼굴이 길쭉하고 눈썹과 눈이 얇았으며, 차가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고 얼굴이 둥그스름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부 지계의 경지였다. 얇은 눈을 가진 청년의 수련 경지는 지계 후기에 도달해 있었고 석목과 비슷한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희 방가보(方家堡)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얇은 눈을 한 청년이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퉁명스러운 투로 말했다.
석목은 멈칫하면서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청란성지의 제자 복장을 자주 착용하지는 않았기에, 이럴 때마다 번거롭게 설명을 해야 했다.
“저는 청란성지의 천년 제자 석목입니다. 방가에서 내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석목이 현영벽을 꺼내며 말했다.
“성지의 천년 제자!”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일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현영벽은 분명히 진짜였다.
미소를 띤 청년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석 도우로군요. 저는 방정덕(方靖德)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제 동생 방정해(方靖海)입니다. 석 도우, 성보로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날아갔다.
그러자 얇은 눈을 한 청년 방정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날개를 움직이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