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53화 (453/916)

453화. 검을 빼내는 일

석목은 조금 전 영목신통을 통해 안의 상황을 대충 훑어보았지만, 직접 들어와 보니 놀라웠다. 눈앞의 고보는 기세가 기이하고 웅장한 것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누추한 곳입니다. 석 도우, 양해해주세요.”

방정해가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평범하지 않아서 눈이 활짝 뜨이네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 도우,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지계 후기의 경지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군요. 지난 석 달 동안 수많은 성지 제자가 임무를 수행하러 왔었습니다.

그들 모두 천위의 경지였는데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돌아갔지요. 심지어 그중에는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임무를 완수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방정해가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그 말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정해, 이분은 성지에서 오신 귀한 손님이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방정덕이 말했다.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이 사람이 광굴에서 죽어버리면 저희 방가는 또 성지 쪽에 그 일에 대해 번거롭게 설명해야 합니다.”

방정해는 차갑게 웃더니 석목을 한번 바라보고는, 두 사람을 내버려두고 회색빛으로 변하여 고보 밑으로 날아갔다.

“석 도우, 죄송합니다. 동생의 성격이 좀 유별나서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방정덕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석목이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고보의 광장에 도착했다. 이어 기세가 범상치 않은 몇몇 사람이 다가왔다. 방정해도 그 속에 있었는데, 그는 내키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본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제일 앞에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기운을 숨긴 채 서 있었는데, 그는 천위 경지의 무인이었다.

몇몇 사람의 몸에서는 검의 기운이 흘러나왔고, 능풍이 풍기던 느낌과 비슷했다. 방정덕과 방정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부분에 대해 석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보아하니 방 씨 가문은 검수 신통을 수련한 듯했다.

“당신이 청란성지의 석 도우로군요. 저는 방가의 가주(家主)인 방박정(方博正)입니다. 방가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위 노인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방 가주님,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 또한 귀 가문의 임무를 맡으러 온 것이니 이렇게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방박정은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는 겸손한 태도로 석목을 근처의 한 고보로 안내했다.

석목은 곧바로 임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방박정이 담담하게 웃더니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석 도우, 정말 성격이 급하신 분이군요.”

석목도 자세를 바로잡고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이번 임무는 유월 철광을 탐색하여 물건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광굴 안의 상황은 임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천연 자기장이 깔려 있어서 수련한 자의 진기와 법력이 극도로 제한되지요. 그래서 저희 방가에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어서 성지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방박정이 말했다.

“그건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슨 물건을 가져오시려고 하는 것인지요?”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대실에는 방박정과 중년 남자 두 명, 그리고 석목을 맞이했던 청년 두 명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물러난 뒤였다.

사람들은 석목의 말을 듣더니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어서 방박정이 입을 열었다.

“부러진 검입니다.”

그는 옥간을 하나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석목은 신식을 사용해 옥간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부러진 검은 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매우 특이했다.

“이 검은 평범해 보이지 않는군요. 보아하니 가문의 보물처럼 보이는데, 어째서 이 광굴에 들어가 있는 건가요?”

석목은 신식을 거두며 물었다.

“그 일은 저희 방가의 비밀입니다. 석 도우가 성지의 제자라 할지라도 그것까지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코가 빨간 중년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

“저는 방가의 비밀을 캐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진실을 알아야 임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제가 그 보검을 꺼내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요?”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코가 빨간 중년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반짝였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흥! 그건 유월 광굴에서 고궐잔검(古阙残剑)을 꺼낼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서겠지요.”

방정해가 차갑게 말했다.

“정해, 예의를 지켜라!”

방박정이 그에게 훈계했다.

“방정해 도우는 처음부터 저에게 불만이 있으신 것 같군요.”

석목이 방정해를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는 진정으로 실력이 있는 사람만 믿습니다. 능력도 없이 끼어드는 사람들에게는 원래 이렇게 대합니다.”

방정해가 말했다.

“그렇군요…….”

석목은 그 한마디만 내뱉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어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순간 그의 오른쪽 팔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고, 대실 전체에 퍼졌다. 대실이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운 공간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뼛속까지 시려지는 추위를 느꼈다.

쩍!

대실의 허공에 두꺼운 얼음이 맺혔다. 방정해와 방박정,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얼음에 둘러싸였다.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각자 다양한 빛을 뿜으며 얼음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방박정 주변에 있는 얼음에만 균열이 생겼을 뿐,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얼음은 미동도 없었다.

석목이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자 오른손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방 안을 꽉 채웠던 단단한 얼음이 작아지더니 전부 녹아버렸다.

대실의 한기도 사라졌고, 탁자나 땅 위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마치 얼음이 처음부터 생긴 없었던 것 같았다.

방박정 등 사람들은 놀란 기색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가 펼친 한빙(寒冰) 신통도 대단했지만, 그가 한빙의 힘을 장악해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석목은 공기 중의 물 원소에 대한 감응력, 그리고 구전현공 두 번째 단계의 음의 힘으로 물을 순식간에 응고시켜 이런 효과를 냈을 뿐이었다.

이 정도 힘을 썼다고 해서 성지의 삼대 조화 신통 중 하나인 구전현공을 수련했다는 사실을 들킬 걱정은 없었다.

“여러분, 저의 실력이 만족스러우신가요? 혹시 더 시험해볼 필요가 있을까요?”

석목은 일부러 방정해를 보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 방박정과 또 다른 중년 남자 두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박정은 얼굴이 붉어진 채 아부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그는 공손한 척하고 있었지만, 암암리에 방정해를 시켜서 석목의 실력을 시험해보려 했던 것이다.

“석 도우,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방박정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방 가주님, 과찬입니다. 그럼 임무의 자세한 내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석목이 말했다.

방박정이 손을 흔들자 방정해와 방정덕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대실에는 이제 네 사람만 남았다.

“그 검은 고궐잔검이라 합니다. 부러진 검이지만 저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입니다.”

방박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여러분이 검도 신통을 수련하신 것이 느껴집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방박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이건 저희 가문의 불행입니다. 몇 년 전 방가에서 배신자가 나타나서 고궐잔검을 훔쳐갔습니다. 모든 식솔이 그를 찾아다니다가 유월 광굴 근처까지 쫓아갔는데, 더 도망갈 곳이 없게 되자 그놈이 광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지 뭡니까. 이후 몇 년간 그 광굴에 들어가서 고궐잔검을 찾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성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고요.”

방박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두 남자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가문의 수치를 외부 사람들이 아는 것이 부끄러운 듯했다.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방가에서 여러 번 시도했으니 유월 광굴 안쪽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요?”

“광굴에는 자기장 법력 금제가 있습니다. 그건 별 것 아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안에 기이한 요충이 많이 생겨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련 경지가 금제된 것은 큰 일이 아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방박정이 또 다른 옥간을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이것은 저희 방가가 몇 년에 걸쳐 유월 광굴 안쪽을 탐색하며 모은 자료입니다.”

석목은 그것을 건네받고 신식으로 탐색했다. 순간 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옥간에는 몇몇 기이한 요충에 대한 묘사가 있었고, 방가에서 탐색한 광맥의 지도도 있었다.

잠시 후 석목은 신식을 거두었고,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요충들에 대응할 방법은 찾으셨나요?”

방박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요충들은 전부 광굴 속의 유월 철광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몸이 매우 단단합니다. 술법이나 부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습니다만 그것들을 처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금제 종류의 부적으로 그것들을 잠시 묶어두는 건 가능했지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습니다.”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그 요수들은 환신등이라는 약재 냄새를 많이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 약재로 환신연을 만들어냈는데, 그것들을 잠시 동안 쫓을 수 있습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였고,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방박정은 석목에게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유월 광굴로 가라고 권했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기에 석목도 사양하지 않았다.

* * *

깊은 밤, 석목은 방에서 탁자 앞에 앉아 부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파란 부적의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파란 부적은 매우 복잡하게 생겼으며, 강력한 한기를 뿜어내는 상급 부적이었다.

잠시 후 부적이 완성되자 석목은 그것을 한쪽에 놓았다. 부적은 이미 십여 장이나 쌓여 있었다.

그는 손에 든 파란 부적을 보며 속으로 한탄했다.

사실 석목은 청란성지에 들어온 후에는 수련에 집중하느라 부적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상급 부적밖에 그릴 수 없었다.

물론 성전각에는 최상급 부적에 대한 서적도 많았지만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일 광굴행에 더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었다.

석목은 이 임무가 끝나면 꼭 시간을 내서 부적을 연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 *

방가보의 어느 방에는 방박정과 두 중년 남자, 그리고 방정해와 방정덕이 모여 있었다.

“가주님, 그 석목이라는 자가 정말 내일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요?”

코가 빨간 중년 남자가 방박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사람의 수련 경지가 지계 후기밖에 되지 않지만, 실력은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오늘 보지 않았소? 실전에서 상대를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을 수 있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큰 효과가 있지요.”

방박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초록색 머리의 남자가 말했다.

“그 자의 한빙 신통은 확실히 대단합니다. 다만 유월 광굴에 들어가면 진기 법력을 시전할 수 없으니, 신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코가 빨간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초록색 머리의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공법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산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세히 관찰했는데,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매우 특별했습니다. 수련한 공법도 육신의 강화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광굴 속에서 유리한 점이 많지요. 그리고 저도 따로 수소문해봤는데, 저 석목이라는 사람은 몇 년 전 환마도를 통과해서 지계의 경지로 천년 제자가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방정덕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방정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덕이 말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를 한번 믿어보는 것도 좋겠지.”

가주 방박정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주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서로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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