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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55화 (455/916)

455화. 추한 용모를 가진 남자

날아오는 다리가 너무 많아서 석목은 다급하게 여의빈철곤을 들어 큰 풍차의 날개처럼 휘둘렀다.

“광용난무!”

탱! 탱!

수십 가닥의 다리는 전부 곤봉에 튕겨 날아가버렸다.

그때 폭발음과 함께 지네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세 개의 금제가 터져버렸다. 지네는 그 속에서 빠져나와서 사나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이 지네는 이 동굴에서 왕과 같은 존재였다. 광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한 인간 외에는 누구에게도 이런 치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이전에 수련 경지가 상당히 높았던 두 사람마저 결국 지네에게 목숨을 잃었다.

지네는 울부짖으며 석목을 덮쳤고, 입을 벌려서 또다시 푸른 독액을 뿜어냈다.

석목의 눈이 반짝인 순간, 그의 손에서 여의빈철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손을 흔들자 얇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지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이때 검은빛이 지네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서 석목에게 향했다. 다행히 석목은 그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뒤로 물러났다.

지네의 눈빛에서 기이한 빛이 스쳤다. 검은 독액이 터져버리면서 비처럼 쏟아졌다. 그 범위는 몇 장이나 되어 석목은 그 안에 갇혀버렸다.

석목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이어 파란 부적이 날아가서 폭발음을 내며 터졌다.

탱!

몇 장 크기의 파란 얼음벽이 허공에 나타나서 비처럼 쏟아지는 독을 막아냈다.

툭! 툭!

독비가 얼음벽에 떨어지면서 깊은 구멍을 여러 개 만들었다. 그러나 얼음벽은 다행히 독비를 끝까지 막아냈다.

지네는 이제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그 순간 얼음벽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커져라!”

지네는 입안에서 갑자기 통증을 느꼈다. 곧이어 그의 머리가 터져나가면서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고, 지네의 몸속에서 자라난 검은 곤봉이 머리를 뚫고 나타났다.

머리가 없는 지네의 몸이 무겁게 땅에 떨어졌다. 그 몸은 일 각이나 미친 듯이 허우적대다가 서서히 멈췄다. 마치 허무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석목이 얼음벽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고, 푸른 약을 바른 가슴의 상처는 이미 피가 멈추었고,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을 다시 거두었다. 그리고 지네의 요단을 꺼낸 뒤 시체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걸어갔다.

이후 몇 리를 걷는 동안 요충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석목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지네 요충이 두려워서 다른 요충들이 이곳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앞으로 걸어갔다.

한참 걷다보니 광굴의 천장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 끝인가…….”

석목은 기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순간 앞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백여 마리의 벌레가 함께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석목은 조심스럽게 벽에 몸을 붙인 채 천천히 전진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돈 순간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앞에서는 수천, 수만 마리나 되는 작은 벌레가 개미처럼 줄을 지어 빠르게 기어오고 있었다.

바닥과 벽뿐만 아니라 동굴 천장에도 파란색의 괴상한 벌레가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석목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왔던 길을 다시 되밟아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최대한 벌레들에게 들키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지네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지네를 보는 순간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갑자기 지네의 사체를 끌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한참 후 다시 벌레들과 마주치자, 석목은 지네의 커다란 사체를 앞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지네의 사체가 벌레들 사이에 떨어졌다. 벌레들은 지네의 기운을 느낀 데다 커다란 사체가 떨어지면서 일으킨 진동 때문에 깜짝 놀랐고, 삽시간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때 여러 개의 검은 공이 날아와서 벌레들 사이에 떨어졌다.

공은 땅에 닿자 터지면서 검은 화염으로 변했고, 곧 광굴 안에 빠르게 퍼졌다.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가 몰려왔다. 난장판이었던 벌레 무리가 더 어수선해졌다.

석목은 그때를 틈타 검은 연기 속을 뚫고 지나갔다. 그는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땅과 벽을 가볍게 짚으며 새처럼 앞쪽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석목은 벌레 무리를 벗어나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리고 처음에 벌레들을 만났던 곳까지 가서야 주위를 돌아보았다. 벌레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광굴은 점점 낮아져서 이제는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 걸었다.

앞에 뻗어 있는 동굴벽은 매우 평평했다. 땅도 평평한 걸 보니 누군가 인위적으로 다듬어놓은 것 같았다.

방가의 배신자가 이곳으로 도망친 후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열악한 환경이라 그는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석목의 눈앞에 또 다시 길모퉁이가 나타났다. 그는 몸을 벽에 붙이고 천천히 돌아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 앞은 동굴의 끝이었고, 십 장 정도 크기로 다듬어진 석실이 있었다. 그곳에는 투박한 돌 의자와 탁자도 몇 개 놓여 있었다.

돌 탁자 옆에서는 찢어진 옷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힘겹게 갉아먹고 있었다. 그는 뒤에 있는 석목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석실 안을 둘러보았다.

초라한 남자의 옆에는 검은색 잔검이 놓여 있었다. 모양을 보니 고궐잔검이 분명했다.

그때 초라한 남자가 갑자기 머리를 들었고, 그는 재빠르게 고궐잔검을 들고 몸을 돌리더니 석목을 공격했다.

펑!

희미한 검 그림자가 잔검에서 뿜어져 나와서 석목에게 향했다.

석목은 순간 당황했다. 이곳에서는 분명 진기를 시전할 수 없는데, 그 남자는 검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검의 그림자가 벽에 부딪혔다. 그것은 마치 두부를 뚫어버리듯 가볍게 벽을 뚫고 석목의 가슴으로 향했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몸을 굴렸고, 간신히 검을 피해냈다. 그리고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몇 장 떨어진 곳에서 멈춰섰다.

“누구냐!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찢어진 옷을 입은 남자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키는 컸지만 비쩍 말라 있어서 마치 해골을 거죽으로 감아놓은 것 같았다. 이목구비는 비뚤어진 데다 피부는 울퉁불퉁하고 칙칙했다. 얼굴은 평평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는데, 마치 불에 타버린 듯 추악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청란성지의 제자 석목입니다. 당신이 바로 방가의 잔검을 훔쳐간 배신자로군요?”

석목이 말했다. 남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언뜻 동정의 기색이 스쳤다.

돌 탁자의 한쪽에는 피범벅이 되어 있는 물체가 있었는데, 벌레의 다리 같았다. 이 추악한 남자는 조금 전 그 고깃덩이를 물어뜯고 있었던 것이다.그의 입가에는 아직 육즙이 묻어 있었다.

동굴에는 천지 영기가 하나도 없었기에, 지계나 천위 경지의 존재라 해도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어죽어 버렸을 것이었다.

“배신자라…….”

추악한 남자가 쉰 목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그는 아예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어 제쳤다. 비통함과 분노가 가득한 웃음이었다.

“고궐잔검을 방가에 돌려주도록 하십시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도 없을 터이니, 시체처럼 목숨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방가에 검을 돌려주고 용서를 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석목은 배신자를 만나면 죽여 버리라는 방박정의 말이 떠올랐지만, 왠지 그가 너무 가련해서 도무지 죽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추악한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바닷물로도 씻어내지 못할 정도의 깊은 원한이었다. 석목은 그 눈빛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추악한 남자가 큰소리를 지르더니 석목을 덮쳤다. 그의 손에 들린 잔검에서 다시 한 번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가 손을 흔들자 수많은 그림자가 연꽃 모양을 그리며 석목의 머리를 공격했다.

“대단한 검술이로군!”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고 있었다.

진기를 전혀 쓸 수 없는 공간에서 이런 정교한 검술을 시전하는 걸 보니, 그가 검을 다루는 실력은 석목의 통천곤법보다 한 수 위였다. 만약 밖에서 제대로 맞붙었더라면 석목도 그를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석목이 팔을 흔들자 여의빈철곤이 그림자를 흩날리며 연꽃 그림자와 부딪혔다.

쿵!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추악한 남자가 석목의 곤봉에 의해 멀리 튕겨 날아갔다.

석목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눈을 반짝였다. 남자는 검술은 뛰어났지만 힘은 전혀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석목의 강력한 한방에 크게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순간 남자와 몇 장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석목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추악한 남자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어 석목이 귀신처럼 그의 뒤에 나타나더니 여의곤으로 남자의 허리를 찔렀다.

추악한 남자는 순식간에 몸을 돌리더니 손에 든 검으로 곡선을 그리며 자신의 몸 앞에서 곤봉을 막아냈다.

그는 검을 든 채 멀리 튕겨나갔고, 벽에 부딪힌 뒤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푸흡!”

남자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해서 비틀거리며 손에 든 검으로 땅을 짚고 간신히 서 있었다.

“당신의 도법은 정말 탄복할 만큼 뛰어나군. 그런데 어째서 악당들을 도와서 나를 해치려 드는 거요?”

용모가 추악한 남자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동작을 멈추었다.

“악당들을 돕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자의 검술은 매우 뛰어났다. 능풍과 겨루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만한 실력이었다. 게다가 그는 용모가 추악하긴 했지만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이는 오랜 세월 높은 신분으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왜 방가보의 고궐잔검을 훔친 것입니까?”

석목이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허허……. 나는 방가보의 삼십사 대 가주 방박정이오. 고궐잔검은 우리 방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보물이지. 가주만이 이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데, 내가 훔쳤다니?”

추악한 남자는 고개를 들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당신이 방가의 가주라면, 고궐잔검을 찾아오라고 한 방박정은 가짜라는 말입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방박정의 진짜 이름은 금오귀(金吾归)요. 수십 년 전, 우리 방가보에 들어온 인족 수행자이지. 그의 자질과 수련 경지가 괜찮아서 우리 가문의 객경 장로로 들였는데, 그 자가 악한 마음을 품은 것이오. 늑대를 집으로 들인 내 잘못이지요. 나 원!”

추악한 남자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십시오.”

석목이 물었다.

추악한 남자는 석목의 눈빛이 누그러지는 걸 보고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군. 성지의 제자라면 진실을 가려서 나의 결백을 밝혀줄 수도 있겠군요. 먼저 수십 년 전 금오귀가 우리 방가에 들어올 때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소. 그때 나는 가주를 맡은 지 십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소. 그 자는 들어올 때 나를 공손하게 대했고, 가문의 일에도 최선을 다했지요.

물론 처음에는 그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적이 습격해서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가 목숨을 구해줬고, 그 뒤로 차차 믿음이 생겨서 심복으로 옆에 두고 중요한 일들을 맡긴 것이오. 그는 담력이 좋은데다 수련 경지도 낮지 않아서, 나를 도와서 가문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었소.”

남자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삼 년 전, 내가 비밀 석실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들어와서 급히 보고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들어오라고 했지요.”

“그 다음은요?”

추악한 남자가 말을 멈추자 석목이 재촉했다.

“비밀 석실에 들어온 그가 갑자기 나를 습격했지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안개의 공격을 받는 나는 움직임이 느려졌고, 그 자는 그 틈에 나를 결박해버렸소. 그리고 내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잡더니 처음 듣는 언어로 이상한 주문을 외웠소.

그러자 얼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고, 머리를 들어보니 그의 얼굴이 내 얼굴과 똑같이 바뀌어 있더군요.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귀신도 사람도 아닌 몰골 변해버렸지요.”

추악한 남자가 한 손으로 흉터투성이인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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