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화. 신분을 폭로하다
방정덕이 물꼬를 트자 방가의 사람들은 가짜 방박정에게 너도나도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들 역시 가주의 성향이 갑작스럽게 바뀌어버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온 것 같았다.
“하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건 실은 아주 간단합니다.”
금오귀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석목이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금오귀의 앞으로 다가가서 주먹을 날렸다. 또다시 금색 주먹의 그림자가 날아갔다.
금오귀는 곧바로 검을 들어 그림자를 막아냈다. 그러자 검의 빛이 어두워지더니 마치 무거운 철 덩어리처럼 주먹을 막아냈다.
탱!
고검이 금오귀의 손에서 뒤로 튕겨나갔다.
그러자 허공에서 방박정이 내려오더니 날아오는 고궐잔검을 받았다.
그가 잡자마자 검은 심하게 흔들렸고, 몇 갈래의 희미한 검 그림자가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방가의 혈맥도 없는 배신자 놈이 감히 고궐잔검을 휘둘러? 꿈도 야무지구나!”
방박정이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그가 검을 휘두르니 수십 갈래의 검 그림자가 뻗어 나왔다.
“천영검법! 가주님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가 금오귀라고? 그런데 왜 얼굴이…….”
그러나 차가운 검의 그림자가 급습해왔지만, 금오귀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금오귀가 두 날개를 펼치더니 금빛을 뿜어냈다. 그가 팔을 들자 소매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수십 갈래의 검 그림자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부서졌다.
“하하……. 삼 년 동안 거지 같은 모습으로 사느라 수고가 많았다.”
금오귀는 자신의 신분이 폭로되자 차갑게 말했다.
이어 그의 몸이 한 치 정도 더 커지더니 얼굴이 순식간에 회백색으로 변했고, 껍데기가 벗겨지며 원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음흉해보이는 중년의 얼굴이었는데, 이마는 튀어나왔고 눈은 깊게 패었으며 코는 높지만 구부러져 있지는 않았다. 볼에는 살이 없었고 턱은 유난히 뾰족해 보였다.
“파렴치한 놈! 감히 우리 방가의 가주 흉내를 내다니!”
엄숙한 얼굴에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웃기고 있네. 나라고 이런 보잘것없는 곳에 오는 게 좋았을 것 같나?”
금오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어서 그의 옷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무형의 기운이 밀려왔다. 그 기세는 점점 강해지더니 천위 중기까지 올라가서 멈추었다.
“천위 중기…….”
방정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자는 천위 중기의 무인이었어!”
방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가주 방박정도 고작 천위 초기 경지의 정상에 있는 무인이고, 가주 외에 천위 경지에 들어선 사람은 외부에 있는 장로 두 사람이 전부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운다 해도 이길 가능성이 미미했다.
방박정의 눈에서도 망설이는 기색이 보였다. 잠시 후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금오귀……. 이대로 떠나라. 우리 사이의 원한은 이대로 끝내도록 하자. 앞으로 다시는 우리 방가보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면, 나도 지난 일은 잊고 넘기겠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더니 전부 난감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목숨을 다해 싸운다면 상대를 어떻게든 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방가도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었다.
“하하하……. 그냥 가라고? 어림도 없지! 명수결이나 내놔라. 그럼 내 기분이 좋아져서 혹시라도 너희들을 살려둘지도 모르지.”
금오귀가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너…….”
방박정은 손에 든 검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씁쓸했다.
지난 삼 년을 그렇게 비참하게 보내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천위 초기의 정상에 도달했을 것이고, 잔검이 있다면 그와 한번 겨뤄볼 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은 만신창이었고, 식솔들의 목숨을 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가 아닌 또 누가 금오귀와 싸울 수 있겠는가?
그 순간 석목이 입을 열었다.
“방 가주님, 명수결은 저에게 주기로 약조하신 것,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석목에게 향했다.
“석 도우, 지금 상황이…….”
방박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석목이 손을 흔들어 끊어버렸다.
“제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다시 방가를 찾아드리겠다고 말입니다. 저기에는 가짜 가주를 처치하는 문제도 포함되는 것이지요. 저 자가 죽기만 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이겠지요?”
석목이 물었다.
“그게……. 좋소. 우리 방가의 운명은 석 도우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방박정은 석목을 바라보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를 악물고 답했다.
“가주님, 저 자는 고작 지계 정상의 경지인데, 잘못된 판단을 하시면 안 됩니다. 이건…….”
“닥쳐라!”
방정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박정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저 놈, 무슨 망언을 지껄이는 거냐? 그렇지만 나도 너를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수십 년간 공들인 탑을 이렇게 무너지게 하다니. 목숨을 내놔라!”
금오귀가 차갑게 말하기가 무섭게 그의 손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얇고 긴 뼈로 만들어진 채찍이 나타나서 석목의 목으로 향했다.
석목은 그걸 마치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뿜어져 나온 금빛으로 몸을 둘러쌌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에는 날개가 펼쳐졌고, 손에는 여의빈철곤이 들려 있었다.
금색 채찍은 첫 공격이 실패하자 허공에서 몇 바퀴 돌더니 다시 날아왔다.
“하앗!”
석목이 기합과 함께 손목을 돌리자 여의곤은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서 채찍과 부딪혔다.
휙!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색 뼈 채찍의 끝부분이 회전하며 석목의 검은 곤봉을 칭칭 감았다.
석목은 힘으로 강하게 끌어보았으나 곤봉은 긴 채찍의 결박에 붙잡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석목의 콧볼이 벌렁거렸다. 은은한 향기가 곤봉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그는 머리가 멍해지면서 의식이 희미해졌다.
금오귀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자 채찍이 용처럼 꿈틀거렸고, 거센 힘이 석목을 향해 다가왔다.
석목의 몸이 가볍게 들리더니 허공으로 끌려갔다.
금오귀는 채찍을 거두었다가 다시 석목을 향해 내리쳤다.
휙!
날카로운 소리가 석목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는 채찍에 맞고 허공에서 떨어져서 땅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행히 몸에 금색 비늘을 두르고 있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석목이 이제 막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눈앞이 희미해졌다. 검은 채찍이 날아와서 단번에 그의 오른쪽 어깨를 내리쳤다. 석목은 그대로 다시 쓰러져버렸다.
석목의 어깨에서 금색 비늘이 찢어져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놈, 야만족의 토템 비술도 쓰다니. 내가 너무 얕잡아봤군!”
금오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뒤이어 채찍이 금빛을 뿜으며 날아들었다.
석목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며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더니 그의 몸 앞에 두터운 얼음벽이 나타났다.
펑!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얼음벽은 만들어지자마자 금색 뼈 채찍에 의해 부서졌지만, 그 바람에 채찍의 기세도 조금 꺾인 것 같았다.
석목은 그 틈에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서 수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손에 곤봉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뒤이어 석목은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천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던졌다. 그러자 그 안에서 불의 공이 튀어나왔다.
펑!
천 주머니의 표면에서 화염이 타오르며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화염에 닿자 타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환용연(幻龙烟)!”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방박정이 눈빛을 반짝이더니 작은 소리로 외쳤다.
“허허, 이런. 들켰군!”
허공에서 금오귀가 손에 채찍을 든 채 석목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이 환신연은 광굴에 있는 요충을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건만 충족되면 사람의 심신을 미약하게 하는 독안개로 변하는 것이겠지? 그 조건이라는 건 네가 손에 들고 있는 그 법물일 테고.”
석목이 말했다.
“그렇다! 이 환신연 자체는 문제가 없지. 다만 내 손에 있는 토용골(土龙骨)이 제련된 법보에 닿으면 환용연으로 변한다. 이 맛은 아마 방가 가주놈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걸?”
금오귀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파렴치한 놈! 그 독안개만 아니었어도 네놈한테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방박정이 분노에 치를 떨며 말했다.
“승자는 왕이고 패자는 도적일 뿐이다. 그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지. 석목, 너는 이미 중독되었으니 경지가 많이 떨어질 거야. 하지만 이미 늦었어! 괜히 발버둥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죽어라. 시체는 남겨주마.”
금오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닥쳐라!”
석목이 소리쳤다. 그의 가슴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비늘이 사라지면서 몸 주위에서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금오귀는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 든 채찍을 흔들었다. 채찍이 꼿꼿하게 펴지더니 그대로 창처럼 석목의 목을 찌르려 했다.
그때 석목은 이미 화염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화염으로 만들어진 맹수처럼 보였다.
석목은 손을 들어서 목 앞으로 날아오는 금색 채찍을 꽉 잡았다.
훅!
화염이 석목의 손끝을 스치며 퍼져나갔다.
“주제를 모르는군!”
금오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화염에 하얀빛 몇 갈래가 섞였고, 뻣뻣해진 금색 채찍이 가볍게 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렸다.
금오귀는 깜짝 놀라 다급하게 채찍을 거두었다. 그는 반 토막만 남은 채찍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석목이 화염을 두른 검은 곤봉을 들고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는 거대한 산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금오귀를 공격했다.
그 광경을 본 금오귀는 몸을 희미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방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이에 방가 사람들은 깜짝 놀라 도망가 버렸다.
금오귀의 얼굴에 흉악한 기색이 떠올랐고, 그는 손에 든 채찍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방가 식솔의 몸을 찔렀다.
“아!”
방가 사람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의 몸은 눈에 보이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더니 뼈와 피가 없는 빈껍데기로 변해버렸다.
사람의 뼈와 피를 빨아들인 금색 뼈 채찍은 다시 잘려나간 토막이 생겨나며 원래 모양으로 회복되었다.
그 금색에서는 이제 핏빛이 흐르고 있었다.
이 기이한 광경을 본 사람들은 전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들 내 뒤로 와라!”
방박정이 손을 들어 사람들을 자신의 등 뒤에 두고 보호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면서 원한의 기색이 더 짙어졌다.
금오귀의 핏빛 채찍이 허공에서 소리를 냈다. 그는 음흉하게 웃더니 고개를 돌려서 멀지 않은 곳의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채찍이 파르르 떨리더니 굵은 용 한 마리가 그 속에서 튕겨 나왔고, 엄청난 기세로 석목을 향했다.
이 핏빛 용은 평범한 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범벅이 된 교룡 같았는데, 한 쌍의 뿔은 반쪽만 남아 있었다. 또 눈구멍에는 눈알이 없었는데, 그 자리에는 붉고 짙은 피 안개의 소용돌이만 맴돌고 있었다.
석목이 피 안개의 소용돌이와 마주하자 엄청난 피비린내가 몰려왔고, 그의 눈앞이 온통 붉은색이 되었다. 마치 시체더미와 피바다 속에 놓인 것만 같았다.
석목은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원한이 가득한 강렬한 기운에 휩싸여서 자칫 살육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할 뻔했다.
“하!”
석목이 기합을 지르며 진혼주를 외웠다. 그의 두 눈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갔다.
먹구름 위에 햇빛이 쏟아지며 붉은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면서 답답했던 석목의 가슴도 뚫렸다.
하지만 핏빛 용이 눈 깜박할 사이에 석목의 눈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용은 입을 크게 벌리고 그를 삼켜버리려 했다.
석목은 다급하게 뒤로 반 걸음 물러나면서 동시에 붉은 화염을 두른 왼쪽 팔에서 하얀빛을 뿜어내면서 주먹을 쥐고 앞으로 강하게 내질렀다.
훅!
화염에 둘러싸인 커다란 주먹이 날아가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용의 머리를 강타했다.
펑!
허공에서 화염 부스러기가 비가 내리듯 쏟아졌다.
화염으로 둘러싸인 주먹은 하얀 줄기가 섞인 채 용의 몸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용은 눈 깜박할 사이에 부서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금오귀가 고함을 지르며 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크기가 삼십 장 정도 되는 금색 갑옷의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은 온몸이 금색이었는데, 눈에서 핏빛을 뿜어내고 있어서 매우 흉악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