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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459화 (459/916)

459화. 영우비차(灵羽飞车)

모든 빛이 사라진 뒤 석목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등 뒤의 붉은 원숭이 법상도 사라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 기쁨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이제 순조롭게 지계 정상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필요한 건 천년 화삼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단(假丹)이라는 건 이름 그대로 알처럼 생겼지만, 천위 경지의 단단하고 온전한 모양새의 금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부 속의 가단을 진정한 금단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공법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가단이 터져서 다시 응결시켜야 하는 정도는 가벼운 사고였다. 심각한 정도에 이르면 모든 수련 경지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성전각에서 천위 경지에 오르는 방법에 관련된 서적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평범한 무인은 충분한 자원이 있는 상황에서도 최소 백 년, 심지어 수백 년 이상 폐관 수련을 해야 돌파가 가능했다. 여러 번 시도하고, 또 가단 응결 과정에서 실패를 여러 번 거쳐야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또한 성지가 백년 제자에게 대량의 영지를 제공해서 조용히 수련에 몰두할 환경을 제공해주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찌됐든 자원을 모으는 것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일인 만큼, 하루아침에 달성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긴 숨을 내뱉었다.

단 한 번에 금단이 응결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천년 화삼보다 더 좋은 영재와 단약이 필요할 것이다. 선약재에는 영약이 많았지만, 전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석목은 백원왕이 남긴 보장으로 어느 정도의 선급 영석과 단약을 갖추게 되었다. 또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재물을 모으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했다.

그가 가진 영지에 심은 다양한 영초와 영화에서 나오는 수익은 일 층에 있는 백년 제자들보다는 훨씬 많았다 그래도 충분히 모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석목은 잠시 고민한 끝에 만법각에 가서 천년 제자의 임무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임무 포상금을 받을 수 있고, 또 운이 따르면 천년 화삼 같은 좋은 재료를 얻을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마음을 굳힌 그는 비밀 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동부로 돌아와 보니 제풍은 보이지 않았고, 일부 시종들만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채아가 없어지니 동부가 매우 휑했다.

석목은 성큼성큼 걸어서 동부를 나섰고, 한줄기 빛이 되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 * *

반 각 후, 석목은 통류방의 삼 층짜리 건물 앞에 있었다.

그는 높이 걸려 있는 편액을 바라보며 백년당이라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전당의 내부는 몇 년 전 그가 처음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다만 거래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아졌는데, 장사가 꽤나 잘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석목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키가 작고 귀가 긴 초록 피부의 관사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낯이 익은 분 같은데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저는 석목이라고 합니다. 용촉 대사를 만나려고 하는데 혹시 소식을 전해주실 수 있습니까?”

석목이 손을 모으고 웃으며 말했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누구라고 하셨죠?”

초록 피부의 관사가 물었다.

“석목이라고 합니다.”

석목이 재차 말했다.

“아, 석 도우시군요. 혹시 들르시게 되면 곧바로 모시라고 용촉 대사가 말씀하셨습니다.”

초록 피부의 관사가 말했다.

“그럼 갑시다.”

석목은 곧바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용촉 대사는 오늘 대전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 올라오시지요.”

초록 피부의 관사가 말하며 석목을 삼 층으로 안내했다.

나무문을 사이에 두고 관사가 안쪽을 향해 말했다.

“대사님, 귀빈 석목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래? 안으로 들라고 해라.”

방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석목이 문을 열자 꽤 넓은 접객실이 보였다. 탄탄한 몸을 가지고 키가 작은 남자가 한쪽의 의자에 앉아 손에 든 영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용촉 대사님.”

석목이 손을 굽혀 말했다.

“하하하! 너 이놈, 아주 좋아. 내 여의빈철곤을 욕되게 하지 않았더군. 천년 제자까지 되고 말이다. 아주 좋아!”

용촉 대사는 머리를 들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대사님, 저를 쭉 지켜보셨군요.”

석목이 말했다.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네놈이 빈철곤으로 성지에서 명성을 떨쳤잖아. 그 곤봉을 내가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체면이 좀 더 서게 된 거지.”

용촉 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셨군요.”

석목이 차분하게 답했다.

신물도 필요 없고, 심지어 통보도 없이 들어오라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럼 말해봐라. 이번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 혹시 여의빈철곤에 문제라도 생긴 거냐? 미리 말하는데. 내가 만든 그 상급 영기는 절대로 품질에 문제가 있을 리 없을 거다.”

용촉 대사가 말했다.

“여의빈철곤은 아주 잘 사용하고 있고,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만 이번에 대사님을 찾아온 것은 비행 법기 때문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래? 어디 보여줘 봐라.”

용촉 대사가 말했다.

석목은 접객실 가운데로 가서 손을 번쩍이며 청익비차를 꺼냈다.

용촉 대사가 다가와 청익비차 주위를 한 바퀴 빙 돌면서 부품과 새겨져 있는 부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비차를 몇 번 두드려보기도 했다.

“이 청익비차는 그런대로 신경을 써서 만든 것 같다. 부적도 공들여 고른 거라 전체적으로는 괜찮아. 다만 등급이 너무 낮아서 네가 원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

용촉 대사가 두꺼운 수염을 만지면서 말했다.

“대사님, 정확히 보셨습니다. 얼마 전 임무를 수행하러 갔을 때 조금 느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등급을 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만, 지금 내게 적당한 재료가 없다. 그래서 아마 한동안은 기다려야 할 거야.”

용촉 대사가 말했다.

“대사님, 혹시 어떤 재료가 필요하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이 청익비차를 제련할 때 주재료로 청을목(青乙木)이라는 영재가 사용됐다. 따라서 등급을 상승시키려면 같은 나무 속성의 고계 영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지.”

용촉 대사가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석목은 잠깐 생각하더니, 손에서 빛을 번쩍이더니 깃털처럼 가벼운 푸른 나무토막을 꺼냈다.

“혹시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

석목이 물었다.

용촉 대사는 그 물건을 살펴보더니 눈이 반짝였다.

“비천학익목? 너 이 녀석, 이렇게 귀한 물건은 어디서 갖고 온 거냐?”

용촉 대사는 그 신목을 건네받으며 놀라는 한편 기뻐하며 물었다.

“제가 임무를 수행할 때 우연히 얻게 된 것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좋아! 이 물건만 있으면 이 청익비차를 중급 영기로 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

용촉 대사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비용이 얼마나 되나요?”

석목이 손을 모으며 물었다.

용촉 대사는 비천학익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대충 손을 흔들며 말했다.

“최상급 영석만 오십 개만 줘.”

“오십 개…….”

석목이 멈칫했다.

“적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 대신 지난번처럼 쓰고 남은 신목은 내 거야.”

용촉 대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한 달 뒤 백련당에 와서 가져가라.”

용촉 대사가 말했다.

석목은 기분 좋게 대답하고 바로 그곳을 떠났다.

그는 통류방을 나와서 다시 만법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이도가 높고 보수도 좋은 임무를 한꺼번에 몇 개나 받았다. 만법각을 담당하는 제자는 그걸 보고 놀라서 한참 동안이나 혀를 내둘렀다.

그가 받은 임무들은 동성성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해야 했고, 심지어 그중 몇 개는 동성성 밖으로 나가야 했다. 가장 먼 곳은 청란성지의 부속 행성 중 하나인 청엽성(青叶星)이었다.

하지만 석목은 아무 생각도 없이 이렇게 많은 임무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금단을 응결시키고 천위 경지를 돌파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보물들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 * *

한 달 뒤, 석목은 관사를 따라 백련당 뒤편의 한 대실에 도착했다.

용촉 대사가 차를 마시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용촉 대사가 일어서서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빛이 반짝이더니 전체가 푸른색인 비차 한 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 비차는 세 장 정도의 크기로 기존의 것보다는 조금 작았다. 표면에는 현묘하고 복잡한 푸른색 영문이 새겨져 있었고, 양쪽에는 날개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상당히 정교했다.

“넋 놓지 있지 말고 몰아봐.”

용촉 대사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다가가서 손을 비차의 몸통에 댔다. 그리고 영력을 천천히 불어넣어 보았다.

훅!

비차의 표면에 있는 푸른색 영문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제련하는 도중에 더 자세히 파악하게 되어서 원래 있던 부문을 전부 지워버리고 새로운 풍령부와 보호 금제를 새겼다. 속도가 훨씬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성신 혼돈의 침습까지 막을 수도 있다.

이 비차는 이제 진정한 상급 영기야. 만 리 길을 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보 등급의 거대한 배처럼 성역에서 날아다닐 수도 있지. 다만 아직 그 정도의 속도는 따라가지 못할 거다. 나는 이것을 영우비차라고 부르기로 했다.”

용촉 대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는 단지 청익비차의 등급을 올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용촉이라는 사람은 연기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이것을 상급 영기로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석목은 앞으로 훨씬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었다. 동성성의 극도로 외진 곳도 빠른 시간 내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대사님, 여기 패인 부분은…….”

석목은 비차의 머리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일곱 개의 국자 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아, 그곳에 바람 속성의 영석을 끼워 넣으면 비행 속도가 빨라질 거다. 만약 일곱 개 전부를 끼우면 잠깐이지만 최상급 영기의 등급까지 도달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속도는 세 배나 더 빨라질 것이고.”

용촉 대사가 말했다.

“대사님, 연기 능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전에 약속드린 보수입니다.”

석목은 영석 주머니 한 개를 건네며 말했다.

“괜찮다.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쓴 건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용촉 대사는 영석을 받아서 확인도 하지 않고 저장 반지에 넣으며 말했다.

“대사님, 편하게 말씀하십시요.”

석목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허허, 긴장할 필요 없다. 나는 일평생 연기만 한 사람이라 딱히 어려운 요구는 아니다. 앞으로 지금정백(地金精魄)이나 기린혈정(麒麟血晶) 같은 최상급 영재가 생긴다면 꼭 나에게 가져와야 한다. 내가 시장가에 맞춰 사도록 하마. 물론 너도 영기 등급을 올린다거나 제련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거라.”

용촉 대사가 말했다.

석목은 그의 말을 듣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석목이 전에 운성현철과 비천학익목을 가져온 것을 보고 그에 대한 오해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석목이 어떤 특수한 경로로 최상급 영재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대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석목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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