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60화 (460/916)

460화. 영영과(婴灵果)

사흘 뒤, 동성성 북쪽에 있는 빙원.

석목은 눈을 뒤집어쓴 채 빙원의 낮은 언덕에 서서, 실눈을 뜨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얇은 옷 한 벌만 걸치고 있었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그 순간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커다란 그림자가 하늘에 떠 있는 먹구름을 뚫고 아래로 내려왔다.

커다란 솔개 한 마리가 기다란 주둥이를 내밀고 마치 창처럼 내려와서 석목의 머리를 찌르려 했다.

석목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가 오른손을 들자 차가운 음의 기운이 흉흉하게 솟아나왔다. 그러자 팔과 흩날리는 눈이 뭉쳐서 허공에 커다란 얼음 손바닥이 만들어졌다.

그 손바닥은 삼 장 정도 되었는데, 손가락을 접어서 주먹을 쥐자 솔개가 그 안에 꽉 잡혔다.

석목은 이 얼음 조각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고, 솔개의 눈알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북쪽의 극지에 있는 솔개의 신선한 혈액은 냉응단(冷凝丹)을 제련하는데 꼭 필요한 재료였다. 석목의 이번 임무는 살아 있는 솔개를 포획해오는 것이었다.

솔개의 시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니, 상당히 나쁜 편이었다. 그래서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솔개는 극도로 차가운 환경에 적응했기에, 빙원을 나가면 곧바로 죽어버리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임무의 보수는 계속 올라갔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수행하지 못한 관계로 만법각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석목이 만법각에서 처음 받아온 임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음의 힘은 조금의 조정만 거치면 이런 극한의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석목은 특별히 제작한 영수 주머니를 꺼내 커다란 얼음 조각을 넣어두었다. 그러고 나서 손을 흔들어서 영우비차를 불러 올라탔다.

비차의 표면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한줄기 푸른빛이 되어 눈 깜박할 사이에 빙원 언덕에서 날아올라 사라져버렸다.

* * *

석 달 뒤, 청란성지의 부속 행성 중 하나인 적운성(赤云星).

드넓고 황량한 돌 숲에 껍데기가 붉고 몸집이 한 장 정도 되는 화문천산수(火纹穿山兽) 사체 스무 개 정도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석목은 무릎을 꿇고 사체들의 뱃속에 손을 집어넣고는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중이었다.

잠시 후 그는 사체에서 손을 빼냈다. 그의 손에는 피범벅이 된 살덩어리가 쥐여 있었다.

살덩어리의 표면은 화염처럼 검붉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요수만의 독특한 기관인 화낭(火囊)이었다.

화문천산수가 이렇게 강력한 불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은 몸속에 이런 독주머니 같은 화낭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기를 제련할 때 부문을 새기는 단계에서, 화낭 속의 화장(火漿)은 그 성공률을 크게 높여주었다. 그래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물건이었다.

“이것까지 해서 드디어 백 개를 채웠군.”

석목은 화낭을 특제 나무 상자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영우비차를 불러 적운성의 주 성시를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는 동성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전송법진이 있었다.

* * *

반 년 뒤, 청엽성 야란성(夜阑城) 밖에 있는 어느 밀림.

석목은 등 뒤의 날개를 펴고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 밑에는 코뿔소만 한 몸집과 아홉 개의 눈을 가진 금강거미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금강거미는 아홉 개의 눈알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화가 나서 석목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금강거미의 몸에는 화상과 동상 자국이 수십 갈래 나 있었다. 강철로 만든 창 같은 여덟 개의 거미 다리는 이미 세 개가 부러져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윙윙!”

금강거미가 낮게 소리를 내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입속에서 하얀 빛이 뻗어 나오더니 허공에서 크게 부풀었고, 그물로 변하여 석목을 덮쳤다.

석목이 등 뒤의 날개를 펼쳐서 옆으로 반 장 정도 움직이자, 날아오던 망은 그의 날개 옆을 스쳐 지나갔다.

펑!

굉음이 울려 퍼지며 거미의 그물이 커다란 나무에 부딪혀 나무껍질이 부서져 가루로 변하여 흩날렸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아래의 거미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커다란 금색의 주먹 그림자가 굉음과 함께 거미의 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금빛이 터지며 거미의 등에 타버린 상처가 한 줄 더 생겼다.

석목은 공격할 때마다 힘을 적당히 조절하고 있었고, 그는 거미를 바로 죽이지 않고 조금씩 힘을 소모하도록 유도했다.

“어엉!”

금강거미의 입에서 절망적인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금색의 빛을 휘감고 있던 몸통이 검을 빛을 뿜기 시작했고, 이마에 박혀 있는 아홉 개의 눈알도 하나씩 빛이 흐려졌다.

그러자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도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급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금강거미는 몸속의 요단을 폭발시켜서 독소를 뿜어내 그를 독살하려 하고 있었다.

이번 임무는 만법각에서 받은 마지막 임무였다. 금강거미의 요단을 꺼내는 임무인데, 요력을 조금도 흘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석목이 날아서 내려오자 희미해지던 거미의 눈에서 다시 빛이 반짝이더니, 입을 크게 벌려서 거무칙칙한 그물을 뿜어냈다.

독에 침식된 그물이 날아오자, 석목은 곧바로 음의 힘을 시전하여 검은 오른손 주먹으로 금강거미를 내리쳤다.

석목의 주먹에서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고, 차가운 기운이 눈 깜박할 사이에 검은 그물과 금강거미를 얼음조각으로 얼려버렸다.

석목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의 왼손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면서 투명하게 변하더니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서 왼손을 칼날처럼 펴더니 거미의 머리를 그대로 갈라버렸다.

석목이 오른쪽 팔을 거두었을 때, 그의 손에는 이미 자색 기운으로 둘러싸인 요단이 한 개 더 놓여 있었다.

석목은 흡족해하며 요단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날개를 펼쳐 야란성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곳은 야란성과 수백 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는 굳이 비차를 불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몇 리 정도 날아갔을 때, 멀리서부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무엇인가 생각난 듯 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석목은 깊은 숲속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는 몸집이 십여 장이나 되는 커다란 도마뱀 요수 몇 마리가 입에서 노란빛을 뿜고 있었다.

숲속에서 연이어 천둥번개가 치면서,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이 전부 터져버려서 가루가 되어 휘날리고 있었다.

석목의 눈빛이 굳어졌다. 세 마리 요수 사이에 푸른색의 사람 그림자가 있었는데, 어딘가 낯이 익은 모습이었다.

“강수수!”

석목이 멈칫했다.

강수수는 달걀 모양의 노란 모래바람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세 마리의 도마뱀 요수가 입을 벌리고 그녀에게 노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모래바람은 점점 더 두꺼워졌다.

그녀는 몸을 푸른빛으로 감싸고 머리카락이 구렁이로 변하는 비술을 시전하였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세 마리의 요수는 지계 정상의 경지였고, 몸 주변에 비늘을 촘촘히 두르고 있어서 방어력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강수수의 비술은 강하긴 했지만 지계 중기에 머물러 있었고, 게다가 이미 선제공격을 할 기회를 잃은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체되면서 진기를 많이 소모하여 위험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등 뒤에 있는 날개에서 하얀빛이 감돌면서 두어 번 펄럭이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도마뱀 요수들은 인기척을 느끼고 전부 머리를 들어 석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대로 보기도 전에 석목의 모습은 또다시 사라져 있었다.

이어서 석목은 그중 한 마리의 등 뒤에서 빛을 반짝이며 나타나더니 그가 든 여의빈철곤이 빛을 뿜어내 검은 줄을 한 개 그리며 도마뱀 요수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펑!

도마뱀 요수는 머리가 터지면서 그대로 죽어버렸다.

남은 두 마리의 요수는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다. 그중 한 마리는 노란빛을 뿜으며 강수수에게 향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석목을 덮쳤다.

석목에게 달려든 도마뱀 요수가 입을 크게 벌리고 물통만 한 노란 빛기둥을 뿜어냈다.

석목은 차갑게 소리를 지르며 여의빈철곤을 흔들어 주변에 하얀 기류를 만들어냈다. 기류는 소용돌이치더니 하얀 회오리바람으로 변하였다.

“영사출동!”

석목이 여의빈철곤을 짚자 회오리바람이 빠르게 줄어들더니 굵은 흰색 기류의 기둥으로 변했다. 그 기둥은 노란 빛기둥과 부딪히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양쪽의 힘은 엇비슷해서 한참 동안 허공에서 대치상태를 이루었다.

석목은 놀란 기색을 보이며 등 뒤에서 날개를 펼쳐 또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그는 다시 도마뱀의 뒤에 나타났고, 여의곤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강하게 내리쳤다.

“창응개정!”

여의곤이 눈부신 빛을 뿜으며 스친 곳마다 물결을 만들어냈다.

도마뱀 요수는 깜짝 놀라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몸에서 노란빛을 뿜어내더니 주변을 휘감고 있던 모래바람을 굵은 기둥으로 만들었고, 입을 크게 벌려서 기둥에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모래바람 기둥은 커다란 토룡으로 변신하여 여의곤을 덮쳤다.

이 모든 것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토룡은 화가 나서 울부짖더니 입을 벌려서 검은 곤봉 그림자를 물어버렸다.

석목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여의곤의 검은빛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쩍!

토룡의 입은 여의빈철곤에 닿자 곧바로 찢어졌다.

여의곤은 또다시 별똥별처럼 날아와서 토룡의 몸을 공격했고, 커다란 칼날이 되어 토룡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부숴버렸다.

이어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여의곤이 요수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두 번째 도마뱀 요수도 머리가 터지며 죽어버렸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세 번째 도마뱀 요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스쳤고, 팔에는 붉은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가 팔을 흔들자 여의빈철곤이 날아갔다. 도마뱀 요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가슴을 찔려버렸다.

“유성간월!”

곤봉이 요수의 등 뒤로 빠져나오자 도마뱀 요수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 속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이 흥건해졌다.

세 마리 요수의 눈빛은 빠르게 흐려졌고, 시체가 되어 땅에 널브러졌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을 거두었다.

노란 모래바람이 서서히 흩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강수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과도한 진기 소모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가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어려 있었다.

“석 사형, 어째서 이곳에 계십니까?”

그녀가 물었다.

“임무를 하나 맡았는데, 청엽성에서 물건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막 종문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강 사매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강수수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는 동문이지 않습니까? 서로 돕는 게 당연하니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참, 그런데 무슨 일로 이곳에 계신건가요? 혹시 종문의 임무를 수행 중이었나요?”

석목이 손을 흔들더니 화두를 돌리며 물었다.

강수수는 그의 질문에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치며 대답하지 않았다.

“불편하시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어보지 않은 걸로 치지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강수수는 석목이 몸을 돌리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짐이라도 한 듯 말했다.

“불편한 건 아닙니다. 저는 보물을 하나 가지러 왔습니다.”

석목은 그 말을 듣더니 눈썹을 치켜뜨며 놀라운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사형, 혹시 영영과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강수수가 눈을 반짝이며 깊은 숨을 내뱉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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