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십 년의 약속
“영영과요?”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만약 오래 전에 영영과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그 역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러 임무를 받기 전, 수 차례 성전각에 드나들며 종문의 관련 기록을 읽으며 천위로 올라설 방법을 찾아보았다. 영영과도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영영과라는 과일은 원신을 단단하게 해주고 기복을 응결시킬 수 있도록 해서, 지계 정상의 무인이 금단을 응결시켜서 천위 경지에 들어설 확률을 일 할 정도 높여준다고 했다. 그러므로 영영과는 모든 지계 무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영물이었다.
석목이 영영과에 대해 유독 깊은 인상을 가졌던 이유는 그것의 기이한 특성 때문이었다.
영영과는 무르익을 때 아기의 울음소리를 낸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 과일의 나무는 영성이 있어서 영물처럼 등급에 따라 가짜 나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과일은 매우 까다로운 환경에서만 자라는 게 문제였다. 일반 약포에서는 절대 배양할 수 없었고, 자라는 주기도 매우 길어서 외부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청란성지의 백진곡과 선약재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귀했다.
그렇기에 석목도 이 과일을 찾으려 굳이 애쓰지 않았고, 대충 한 번 훑어보고 넘긴 참이었다.
“영영과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엽성에 그 귀한 물건이 있다는 말입니까?”
석목이 강수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맞습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강 사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하셔도 됩니다.”
석목이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강수수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을 그에게 알려준 또 다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영영과의 정보를 남에게 알려줄 리 없었다.
“석 사형,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실은 이 청엽성의 한 곳에 영영과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저도 찾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던 중 이곳에서 요수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다행히 석 사형이 도와주신 것이지요.”
강수수가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영과에 관련된 것은 십 년 전의 일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십 년 전 대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문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청엽성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은밀한 비경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영영과 나무 한 그루를 보게 되었습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 설레어서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그곳에는 저 말고도 동문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영과가 아직 익기 전이었고, 십 년 정도 기다려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 년 뒤에 다시 오기로 약속을 했고, 함께 비경을 뚫고 영영과를 따기로 했습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물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건가요?”
“다시 비경으로 갈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데려갈 수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다만 수련 경지가 지계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죠. 저는 사람을 사귀는 일에 능하지 않아서 종문에서 믿음이 가는 친구가 없습니다. 제가 석 사형에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함께 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지요?”
강수수는 석목을 보며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비경 속은 많이 위험한가요?”
“영영과 같은 영물이 자라나는 곳이라 당연히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석 사형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을 것입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좋습니다. 영영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석 사형, 동의하시는 건가요?”
강수수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바로 가도록 하시죠. 요수들 때문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이미 도착했을 것입니다.”
강수수가 손을 흔들어 영기를 불러내더니 그것에 올라탔다.
석목은 그 푸른 영기를 보더니 신식으로 살펴보았다. 그것은 중급 영기였다.
“강 사매, 혹시 괜찮다면 제 비차를 타는 건 어떤가요? 속도가 더 빠를 것입니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영우비차를 불러냈다.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강수수는 영우비차를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상급 비행 영기로군요! 석 사형, 천년 제자라는 신분은 정말로 저희 백년 제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네요.”
석목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이것은 제가 우연히 주운 신목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걸로 기존의 비행 영기의 등급을 올린 것일 뿐입니다.”
강수수는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비행 영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사양하지 않고 비차에 올라타서 석목의 뒤에 섰다.
석목이 법결을 시전하자 영우비차에서 푸른빛이 반짝였고, 아래쪽에 하얀 구름이 떠올랐다. 비차가 격하게 흔들리더니 푸른 별똥별로 변하여 날아갔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넘어갔고 점점 희미해졌다.
“상급 비행 영기는 확실히 다르네요.”
강수수가 감탄하며 말했다.
석목은 가볍게 웃었다. 그는 아직 최상급 영석을 비차에 끼워 넣지 않은 상태였다. 그걸 넣는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푸른 별똥별이 하늘에 빛을 그으며 멀리 날아갔다.
* * *
하루 밤낮이 흘렀다. 지세가 험한 청엽성의 커다란 골짜기 위에 푸른빛이 날아들었다.
푸른빛이 번쩍이며 비차가 하나 나타났다. 그 위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석목과 강수수였다.
석목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골짜기의 양쪽에는 기이한 산맥들이 있었는데, 영기가 매우 짙어서 수련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강 사매, 이 비경의 입구가 바로 여기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골짜기에 있습니다.”
강수수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산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산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골짜기의 안개는 마치 묶여 있는 듯 조금도 흩어지지 않았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시선이 한 골짜기에서 멈추었다. 그곳의 두 산맥은 기이한 형태로 구부러져서 패인 곳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골짜기의 입구에서는 간간이 옅은 파동이 흘러나왔다. 어떤 금제를 설치해 놓은 것 같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황상 이곳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한 차례 마주보았다. 이어서 석목이 법결을 부리자 영우비차가 한줄기 빛이 되어 골짜기 입구의 공터에 내려섰다.
석목은 비차를 거두고 강수수와 함께 큰 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도착했는지 모르겠네요.”
강수수가 말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번에 전부 몇 명이 오기로 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그 해에 이 비경에는 총 다섯 명이 있었습니다. 각자 한 명씩 더 데려오기로 했으니 아마 열 명이 모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모양입니다.”
강수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 방향에서 붉은빛이 날아왔는데, 속도가 엄청 빨랐다. 석목의 영우비차와 비슷할 정도였다.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붉은빛이 반짝이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을 본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하얀 옷을 두르고 단정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조극이었다.
조극 역시 석목을 보더니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조 사형, 오랜만입니다.”
석목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조극이 뿜어내는 기운은 예전보다 훨씬 강력해져 있었다.
“석 사형이군요. 오랜만입니다. 석 사형이 환마도의 시험을 통과해서 천년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이 자자합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조극이 석목에게 말하며 그의 눈에서 읽기 힘든 기색이 스쳤다.
“조 형은 이미 성조의 직속 제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또 마지막 대결에서 바로 일 위에 오르셨으니, 저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지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 사형, 강 사매와 함께 있는 것을 보니 영영과를 위해 오셨겠군요?”
조극이 옆에 있는 강수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맞습니다. 조 형은 혹시 혼자 오셨나요?”
석목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이 정도의 비경은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석 사형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조극은 덤덤하게 한마디 하고는 옆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은 시선을 돌려 옆을 살짝 바라보았다. 강수수가 조극을 바라보는 눈빛에 적의가 섞여 있었다.
‘음? 강수수가 조극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
석목은 혼자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있으니 직접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한 시진이 흐르자 두 무리가 더 도착했다.
앞서 온 두 사람은 석목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명은 검은 얼굴의 청년이었고 지계 중기의 경지였으며, 청란성지의 백년 제자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석목의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와 강수수보다 몇 기 앞서 들어온 백년 제자인 듯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도착한 무리 중에는 석목이 잘 아는 사람이 있었다. 매부리코에 음흉한 얼굴을 가진, 일전에 석목과 시비가 붙었던 조심뢰였다.
조심뢰는 석목을 보자 안색이 굳어지면서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함께 온 사람과 한쪽에 조용히 앉았다. 그러나 석목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또 한 시진이 지나자 푸른빛이 멀리서 날아왔다.
“드디어 다 모였군요.”
사람들이 전부 일어섰다.
푸른빛은 가까이 온 뒤에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정교한 비선이었다.
빛이 반짝이더니 비선이 사라지면서 두 사람이 내려왔다.
한 사람은 아름다운 붉은 옷을 입은 젊은 여자였고, 얼굴은 면사포를 걸치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한 명은 귀공자의 자태를 지니고 손에 하얀 부채를 든 남자였다. 그는 다름 아닌 능풍이었다.
“여러분, 제가 일이 좀 있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모으며 말했다.
“능풍 사형, 지난번에 뵙고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여기서 만났네요.”
석목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 웃으며 인사를 했다.
“석 사제도 왔군요.”
능풍은 석목을 보더니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머리를 끄덕였다.
“다들 도착했으니 지체하지 말고 비경으로 가봅시다. 영영과가 이미 익어 있을 것입니다.”
조극이 덤덤하게 말했다.
“조 형 말이 맞습니다. 저희 둘 때문에 다들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제 시작합시다.”
능풍이 말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석목 말고는 전부 백년 제자였다. 일이 위에 있는 두 사람이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이견 없이 따랐다. 아홉 명은 몸을 털고 일어서서 움푹 팬 산골짜기로 다가갔다.
석목은 앞에 있는 골짜기를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뿜어냈다.
그는 조금 전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산골짜기를 자세히 바라보았는데, 이 입구는 보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내재하고 있는 영력의 파동이 매우 격렬했다. 어떤 힘에 의해 금제가 된 것 같았는데, 만약 그것을 터트려버리면 아마도 큰 파문이 일어날 것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이곳의 금제는 절대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이곳의 비경 입구는 어떻게 여나요?”
석목이 골짜기 앞의 허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석 사형,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다섯 명이 이 비경을 발견했을 당시 이미 여는 방법을 깨우쳤습니다.”
검은 얼굴을 한 청년이 말했다.
이어 그는 강수수와 능풍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다섯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가더니, 한 치 정도 되는 하얀 옥판을 한 개씩 꺼내들었다.
그들은 한 손으로 옥판을 골짜기 입구의 허공에 가져다 대고 주문을 외웠다. 그들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서 다른 한 손을 스치고 옥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하얀 옥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표면에서 부문이 맴돌았다. 이어 동시에 다섯 개의 손에서 튕겨 나와 산골짜기 앞에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