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62화 (462/916)

462화. 각자 찾아 나서다

다섯 명이 주문을 외우자 옥판의 빛이 점점 밝아져서 골짜기 앞의 허공을 환하게 비추었다.

허공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 십 장 정도 되는 오각진도(五角阵图)가 나타났다. 그 위에서는 현묘한 부문이 맴돌고 있었다.

“열려라!”

강수수 등 다섯 명은 동시에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하얀 옥판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하나하나 순서대로 오각진도의 한쪽에 스며들었다.

윙!

마지막 한 개의 옥판이 스며들자 진도가 빛을 발했고, 그 위에 있는 부문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허공에 파동이 일면서 점점 강력해졌다.

펑!

잠시 후 커다란 소리와 함께 허공에 물결이 한 줄로 세워졌다. 이어서 물결이 양쪽으로 밀려나며 중간에 한 장 정도 되는 검은 공간의 문이 나타났다.

강수수 등 다섯 명은 법결을 멈추었다. 그들은 살짝 지친 표정이었는데, 이 공간의 문을 만드는데 많은 원기가 소모되는 모양이었다.

곧이어 조극이 큰 소리로 웃으며 가장 먼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조극은 장문의 제자인데다 또 백년 제자 중에서도 일 위 자리에 있는 신분이라, 사람들은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럼 우리도 들어갑시다.”

능풍이 붉은 옷을 입은 여자와 함께 뒤이어 들어갔다.

석목 등 남은 여섯 사람도 따라서 들어갔다.

일행이 문을 지나자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그들의 발밑은 허공이었다.

석목은 자신이 숲의 상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급하게 진기를 부려 몸을 띄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강수수, 능풍, 조극 등 사람들도 전부 허공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뒤편에 공간의 문이 옅은 빛을 뿜고 있었다.

석목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봤던 수많은 비경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천지 영기가 매우 짙고 식물들도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것이 현계 구역과 비슷했다.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이곳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하얀 안개가 자욱하다는 점이었다. 마치 물안개 같았는데, 또 평범한 물안개와는 조금 달랐다.

석목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조금 전 신식을 보내 주위를 탐색해보려고 시도했지만, 하얀 안개에 닿으면 곧바로 막혀버렸다. 그의 신식은 매우 강한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장 밖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석 사형, 이 공간의 하얀 안개는 평범한 물안개가 아닙니다. 신식이 방해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강수수의 맑은 목소리가 석목의 귓가에서 울렸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은 확실히 비옥한 장소군요. 그러니 영영과라는 성물이 자라났겠지요.”

능풍이 말했다.

“당신들은 이곳에 와봤으니 영영과 나무가 어디 있는지 알겠지요? 빨리 가봅시다.”

계속 침묵하고 있던 조심뢰가 입을 열었다.

“조 형은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이 영영과는 매우 희귀한 것이라, 과일이 열린 나무는 영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토지의 속박을 벗어나 제멋대로 다른 곳으로 이주하죠. 지난번에 갔던 곳으로 다시 간다면 십중팔구 과수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능풍이 말했다.

조심뢰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붉어져서 다시 침묵했다. 자신의 짧은 식견이 창피한 듯했다.

“그렇다면 다들 흩어져서 그 나무를 찾는 건 어떻습니까?”

조심뢰의 옆에 있던 붉은 머리 청년이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검은 얼굴 청년이 찬성했다.

조극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두 사람씩 총 다섯 조로 나누어졌다.

석목과 강수수, 능풍과 붉은 옷을 입은 여자, 조심뢰와 그 옆에 서 있던 붉은 머리 청년, 그리고 검은 얼굴의 청년과 민머리 남자가 짝을 이루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영영과 나무에는 총 세 개의 영영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부 아홉 명이라 나눠 갖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검은 얼굴의 청년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석목 등 도움을 주기 위해 따라온 네 사람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보아하니 다들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듯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영과를 나눌 건가요? 대결로 승부를 내서 이긴 사람이 가지는 건 어떻습니까?”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말했다.

“석 사형의 제안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약속은 애당초 함께 비경에 들어오는 것이었지요. 영영과를 어떻게 쟁취할지는 각자의 실력에 달린 겁니다.”

조극이 눈빛을 반짝이더니 말했다.

“그건 좀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동문인데 영물 한두 개로 싸우는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 영영과를 찾지도 못했는데, 우선 영영과를 찾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검은 얼굴 청년 옆에 있던 민머리 남자가 말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조극과 석목이었다. 두 사람의 신분과 지위는 이미 능풍을 능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능풍도 천위 초기의 실력자였고, 게다가 평소에 실력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영영과를 처음 발견한 다섯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조합은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영영과가 세 개만 있다면 대결을 한다 해도 이 세 사람의 차지가 될 것이 뻔한데, 남은 사람들이 동의할 리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대결에 반대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지금 영영과가 비경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우리는 각자 찾아다녀야 합니다. 영영과는 먼저 그 나무를 찾은 세 사람이 가지는 것으로 하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걸 빼앗으면 안 되는 겁니다.”

검은 얼굴 청년이 말했다.

“좋습니다. 이 제안은 훨씬 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럼 각자의 운과 비경을 탐색하는 능력으로 승부를 봅시다.”

조심뢰 옆에 있던 붉은 머리 청년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 한 번씩 마주보았고, 전부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규칙을 적용해야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리고 몇 년간 다들 준비를 많이 한 터라, 영영과를 찾는 데 자신만만해 있었다.

과반수가 의견에 동의하자 석목도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는 영목신통이 있어서 탐색 능력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렇게 합시다. 각자 움직이지요.”

붉은 머리 청년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잠시만요.”

석목이 뒤쪽에 있는 공간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입구는 진법을 통해 잘 막아둡시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가 비경 깊은 곳으로 들어간 후 또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석 사제는 역시 세심합니다. 그걸 깜박할 뻔했네요.”

능풍이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앞쪽에 수십 개의 푸른색 진기가 나타났다.

그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외우면서 두 손을 흔들어 법결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수십 개의 진기가 순서대로 날아가서 공간 입구를 꽉 막아버렸다.

“굳혀라.”

능풍의 말에 푸른색이 번지면서 얇고 작은 부문들이 수도 없이 나타나 그곳을 맴돌았다.

부문들은 눈 깜박할 사이에 푸른 법신이 되어 입구에 드리워졌다.

“여러분도 각자 금제를 치십시오. 그래야 다들 마음이 놓이지 않겠습니까?”

능풍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능풍의 말을 따랐다.

진법 금제는 봉인의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진법을 펼친 사람의 신식을 한 가닥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곳을 지나가게 되면 진법을 설치한 사람이 바로 알게 될 것이었다.

“흥, 고작 금제를 가지고……. 헛수고 아닙니까?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극은 뒷짐을 쥐고 내키지 않는 듯 한마디 내뱉은 뒤, 한줄기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입구에 금제를 쳤다. 오색영롱한 금제들이 모여 빛을 뿜어내면서 입구를 단단히 막아버렸다.

조심뢰와 붉은 머리 청년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모으고는 곧바로 멀리 날아갔다.

“그럼 우리도 갑시다.”

검은 얼굴 청년과 민머리 남자도 어디론가 날아갔다. 석목과 능풍 등 남은 사람들도 그 뒤를 이어 자리를 떴다.

* * *

하얀 안개 속에서 두 줄기 빛이 앞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조심뢰와 붉은 머리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방금 전 전음으로 말한 게 정말이야?”

조심뢰가 붉은 머리 청년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물었다.

“그래, 그때 이곳에서 영영과를 발견했을 때 나무에 몰래 표시를 해두었어.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표시가 남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기운만 따라가면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찾을 수 있을 거야.”

붉은 머리 청년이 말했다.

조심뢰는 밝은 얼굴로 뒤를 보았다. 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쳤다.

영영과를 가질 수만 있다면 천위 경지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더는 석목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치욕을 당했던 과거의 일을 되갚을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조심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였다.

하얀 안개 바다의 다른 한쪽에서는 검은 얼굴 청년과 민머리 남자가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좋아, 몇 년 동안 청란성지에서 열심히 수련하더니 꽤 똑똑해졌군. 이것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찾을 수 있어.”

민머리 사나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검은 얼굴 청년에게 말했다.

“숙부,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보시(布施)와 조심뢰도 급하게 가는 것을 보니, 아마 그때 잔머리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검은 얼굴 청년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금 전 먼저 찾는 사람들이 갖자고 했더니 바로 동의를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민머리 남자가 답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검은 얼굴 청년이 물었다.

“괜찮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죽여 버려야지. 걱정하지 마라. 그 조심뢰라는 놈은 내 상대가 아니야.”

민머리 남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마음 놓겠습니다.”

검은 얼굴 청년은 굳었던 얼굴을 조금 풀며 말했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날아갔다.

* * *

같은 시간 어느 산봉우리 근처, 두 갈래 빛이 멀리서부터 날아와서 내려섰다.

곧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조심뢰와 붉은 머리 청년이었다.

“그 표시가 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아.”

붉은 머리 청년이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심뢰는 머리를 끄덕이고 주변을 훑으며 찾기 시작했다.

이곳의 안개 농도는 다른 곳보다 훨씬 짙었다. 주위 십 장 이내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아주 작은 아기 울음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아기 울음소리다. 정말로 이곳에 있구나!”

조심뢰와 붉은 머리 청년은 그 소리를 듣더니 마주보고 기뻐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점점 더 뚜렷하게 들렸다. 다만 그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서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 소리에는 마치 기이한 마력이 있는 듯, 그들의 귓구멍을 뚫고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붉은 청년과 조심뢰의 몸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눈에서 핏빛이 번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