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63화 (463/916)

463화. 아기 울음소리

안개 속에서 석목과 강수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날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주위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서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들은 눈으로 꼼꼼히 주변을 훑고 있었는데, 하얀 안개 속에서 맨눈으로 백 장 거리까지 보였다. 오히려 신식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잘 보였다.

“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강수수가 깊은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전에 들어왔을 때와 많이 다른가요?”

석목이 물었다.

“그때도 하얀 안개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된 걸 보니 아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그렇군요. 조심해야겠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이렇게 넓은데 이런 속도로 어느 세월에 영영과 나무를 찾을 수 있을까요?”

강수수가 참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다들 같은 처지입니다. 강 사매,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석목이 웃으며 눈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금빛은 반짝이면서 앞으로 한 장 정도까지 뻗어나갔다.

“석 사형, 이건……”

강수수는 안색이 변해서 놀란 듯 말했다.

“제가 예전에 수련한 영목신통입니다. 본의 아니게 이곳에서 쓰게 되네요.”

석목이 말했다.

강수수가 매우 기뻐하며 물었다.

“석 사형의 영목은 어느 정도까지 볼 수 있나요?”

“이삼 리 정도입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볼 수 있나요? 그럼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강수수가 좋아하며 말했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지요.”

석목이 대답했다.

그가 영목신통을 시전하자 두 사람의 속도는 조금 더 빨라졌다. 그들은 계속해서 전방을 탐색했다.

어느새 반나절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강 사매, 제가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석목이 주위를 살피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강수수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냥 제 느낌입니다만, 강 사매가 조극에게 적의가 있는 것 같던데요. 혹시 예전에 원한이라도 있었나요?”

석목이 물었다.

강수수의 몸이 살짝 굳어지며 동공도 작아졌다.

“석 사형,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저와 조극 사형 사이에 원한이 있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말했다.

“그래요?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군요.”

석목은 강수수를 한번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날아갔다. 그의 눈에서 나오는 금빛이 더 짙어져서 주위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들은 울창한 숲속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하늘을 찌르는 커다란 나무가 자라 있었다.

강수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말했다.

“석 사형, 이곳은 지난번에 영영과 나무가 있었던 장소와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이곳에 없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래도 한번 둘러볼까요? 어떤 실마리라도 있을지 모르니까요.”

“좋아요. 그럼 강 사매가 앞에서 길을 안내해주세요.”

석목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사람은 공터에 내려서 앞뒤로 나란히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반 시진이나 걸었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나무뿐이었고, 안개가 자욱한 게 다른 곳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강 사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나요?”

석목이 물었다.

강수수가 그 말을 듣고 막 대답하려고 할 때, 숲속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기 울음소리입니다!”

강수수는 그 소리를 듣더니 기뻐하며 빠르게 걸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고 그 뒤를 따라갔다.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아기 울음소리는 점점 뚜렷해졌다.

그 순간 강수수가 멈춰섰다. 그녀의 두 눈이 붉어지더니 눈빛이 희미해졌다.

석목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오자 의식의 세계가 흔들리고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었다. 환마도에서 지금처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힘을 여러 번 겪은 적이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영력을 시전하여 의식을 보호했다.

“아!”

강수수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핏빛이 돌고 있었다. 신식의 침범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석목은 강수수 옆으로 다가가서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미간을 짚었다.

석목의 손가락 끝에서 빛이 나오면서, 순수하고 평온한 영력이 강수수의 신식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에 번진 핏빛이 점점 사라졌고 찌푸리고 있던 미간도 풀렸다.

“석 사형, 방금 전에…….”

강수수가 정신을 차리더니 말했다.

“조금 전에 숲속에서 울린 아기 울음소리가 심신을 교란해서, 강 사매가 의식을 빼앗길 뻔했습니다.”

석목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기 울음소리는 영영과가 익었다는 신호인데, 이 소리는 조금 이상하네요. 앞으로 가보도록 하죠.”

강수수가 안색을 굳히더니 무엇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고 강수수의 뒤를 따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열 걸음 정도 다가갔을 때, 강수수의 머릿속에서 또다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유혹하는 듯한 목소리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왜 그러십니까?”

석목이 그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물었다.

“석 사형, 제 머릿속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보아하니 저 아기의 목소리는 사람을 현혹하는 것 같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아마 완전히 의식을 빼앗길 것입니다. 우리 이렇게 하지요. 이곳에서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살펴보고 올 테니 이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석목이 말했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강수수가 깊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석목은 강수수를 한번 보고는 곧바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석목도 귀가 먹먹해졌다. 같은 소리가 계속 그의 귓가에서 반복해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열 걸음 정도 다가가자 눈앞이 훤해지며 공터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 공터의 중간에 모양이 기이한 자색 나무가 한 그루 자라 있었다.

나무의 높이는 십 장이 채 되지 않았고 나뭇잎도 듬성듬성 자라 있었으며, 몸통에는 수백 갈래의 덩굴이 대충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안으면 충분히 감쌀 만큼의 굵기였는데, 주변의 나무들과 비교하면 아주 가늘어보였다.

‘영영과 나무?’

하지만 그 자색 나무에는 아무런 과실도 달려 있지 않았다. 다만 나무줄기의 끝에 둥그스름한 얼굴이 달려 있었는데, 아기의 얼굴 모양이었다.

“아니야!”

석목은 미묘하게 웃는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다. 숲속에 울려 퍼진 아기 울음소리는 바로 그 얼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펑!

순간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자색 나무의 꼭대기에서 갑자기 두 사람이 튕겨 나왔다. 한 사람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눈부신 붉은 빛을 뿜고 있었는데, 바로 조심뢰와 붉은 머리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허공에서 각각 양쪽으로 날아가더니 다시 서로 부딪혔다. 손에 들린 무기를 강하게 맞대더니 각각 떨어져서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붉은 핏빛이 어려 있었다. 이 자색 요수에 현혹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석목은 그들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심각한 표정으로 그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자색 나뭇가지 위의 둥근 얼굴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서로 죽일 듯 싸우던 두 사람이 갑자기 석목을 바라보았다.

“영영과는 내 것이야!”

석목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검은빛을 번쩍이며 여의빈철곤을 꺼내들었다.

조심뢰가 푸른빛을 뿜어내며 손에 긴 칼을 든 채 빠른 속도로 석목의 허리를 내리쳤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 갈래의 번개를 두르고 있는 푸른빛이 한 줄로 이어져서 석목에게 내리꽂혔다.

석목은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한 바퀴 몸을 돌리더니 검은 곤봉을 흔들어서 산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곤봉의 그림자가 떨어지기도 전에 뒤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석목은 고개를 숙이며 여의곤을 흔들어 그대로 뒤쪽을 쓸어버렸다.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커다란 곤봉 그림자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윙!

석목의 등 뒤에서 불꽃이 튕기더니 붉은 몸이 날아가서 땅에 떨어졌다. 붉은 머리 청년이었다.

붉은 머리 청년은 석목의 곤봉에 의해 수십 장 멀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는 손에 든 긴 창으로 땅을 짚더니 다시 붉은빛을 뿜어내며 허공에 섰다.

조심뢰도 석목의 곤봉 공격을 벗어나서 다른 한쪽에 서 있었다. 그는 석목을 중간에 두고 붉은 머리 청년과 각각 앞뒤로 섰다.

두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한 사람은 장도를 휘두르고 다른 한 사람은 긴 창을 꼿꼿하게 세우며 허공에서 소리를 질렀다.

온몸에 푸른 번개를 두른 푸른색 용과 화염을 감싸고 있는 붉은 구렁이가 동시에 나타났다. 용과 구렁이는 몸을 꿈틀거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석목에게 흉흉하게 덤벼들었다.

석목은 발을 빠르게 움직여서 수많은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하얀 기류가 그의 몸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불빛이 뿜어져 나왔고 온몸에 금색 화염을 두른 붉은 원숭이 법상이 나타났다. 법상의 손에는 화염 곤봉이 들려 있었는데, 석목과 함께 움직이며 허공에 수많은 금색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곤봉 그림자와 하얀 기류가 만나자 순식간에 합쳐져서 하늘과 땅을 잇는 커다란 회오리로 변하였다. 그것은 하늘의 구름까지 끌어들일 기세였고, 땅이 격하게 진동할 정도였다.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있던 강수수는 놀라운 위력을 뿜어내내는 금색 회오리를 보더니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 순간 회오리가 갑자기 흩어졌다.

“천지무극!”

석목 주변의 하늘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쿵!

수십 갈래의 하얀 번개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졌고, 땅 위에서는 검은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푸른 용과 붉은 구렁이는 눈 깜박할 사이 하늘과 땅을 가르는 천둥과 불바다 속에 묻혀버렸다.

석목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둥 번개가 꺼지기도 전에 손에 든 곤봉을 앞으로 던지며 발로 곤봉의 한쪽 끝을 걷어찼다. 그러자 빈철곤이 긴 창처럼 변하여 붉은 머리 청년에게 향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붉은 머리 청년의 몸에서 나오던 불빛이 순식간에 강렬해지더니, 등 뒤에서 커다란 화염 거인의 허영이 나타났다. 거인은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두 손바닥으로 날아오는 여의곤을 막아냈다.

퍽!

빈철곤의 표면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화염의 손바닥을 지나 붉은 머리 청년의 배를 뚫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청년은 힘없이 뒤로 날아가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여의빈철곤은 다시 석목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는 한 손에 곤봉을 든 채 꼿꼿이 허공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조심뢰를 바라보았다.

조심뢰의 두 눈에는 여전히 붉은 핏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흉악한 얼굴로 울부짖고 있었는데, 붉은 청년의 죽음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것 같았다.

조심뢰의 몸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등 뒤에서 푸른빛이 소용돌이치더니 온몸에 번개를 두르고 있는 거인 법상이 나타났다.

이 번개 거인은 마치 평범한 사람 같았는데, 이목구비는 괴상하게 생겼다. 눈은 텅텅 비어 있고 입은 위쪽으로 비뚤어졌으며, 이마에는 뾰족한 뿔이 한 개 자라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쇳덩이를 들고 있었다.

조심뢰는 멍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더니 손에 든 장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번개 거인도 손에 든 쇳덩이를 앞으로 휘둘렀고, 한줄기 번개가 그 속에서 튀어나왔다.

번개의 속도는 빨랐지만 석목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등 뒤에 날개를 펼쳐서 그것을 가볍게 피해냈다.

쿵!

번개는 석목의 등 뒤에서 터져버렸다.

석목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찰나, 번개 거인이 손에 든 쇳덩이를 여러 번 휘둘렀다. 그러자 번개가 줄줄이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흘렀다. 그는 등 뒤의 날개를 펄럭이며 잔영을 줄줄이 끌어내더니, 가볍게 거인의 공격을 피해냈다. 번개는 전부 그의 주변에서 터져버렸다.

이어 그는 몸을 숙인 채 번개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손에 든 곤봉으로 하얀 회오리바람을 만들어내어 앞에서 밀려오는 빛들을 막아내며 조심뢰에게 향했다.

조심뢰는 피하지도 않으며 두 손에 장도를 꽉 쥐고 앞을 향해 찔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