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화. 세 그루
강수수가 푸른 장검을 꺼내며 가볍게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장검이 여러 갈래의 투명한 검광을 만들어내며 덩굴을 전부 잘라버렸다. 그녀가 다시 검을 거두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요수가 단번에 두 동강이 되었다.
이어서 강수수는 가볍게 발을 움직이며 덮쳐오는 요수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잘라냈다.
그때 석목의 등 뒤에서 둥근 달이 밝게 떠올랐다. 그는 몸을 번쩍이며 한쪽으로 물러나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꼭대기의 허공에 십 장 정도 되는 붉은 불의 구름이 나타나서 발밑의 땅을 전부 가렸다.
붉은 불의 구름에서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생겼다.
콰르릉!
불의 구름 사이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빛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계속 번쩍였다.
하늘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커다란 화염 덩어리가 별똥별처럼 불의 구름에서 쏟아졌다.
펑! 펑!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땅 위의 나무들이 전부 부서졌고, 수많은 잔해가 부서진 돌들과 섞여 흩날리며 주변으로 날아갔다.
숲속에서는 요수의 괴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고 하늘에서는 불의 비가 쏟아졌다.
석목의 법력이 강해지면서 이 술법의 위력과 지속 시간도 눈에 띄게 올라가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허공의 구름이 흩어졌다. 석목이 딛고 있는 땅에서 불이 타올라서 짙은 연기가 자욱했다. 그곳에는 크기가 각각 다른 수십 마리의 요수 사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는데, 모두 천천히 먼지로 변하고 있었다.
“석 사형, 대단하시네요. 술법에도 이렇게 조예가 깊으시다니요.”
강수수가 칭찬했다.
“강 사매, 과찬입니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으니 빨리 갑시다.”
석목은 빠르게 답하고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다시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십 리도 채 날아가지 않았을 때 석목의 머릿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공중에서 떨어질 뻔했다.
석목은 다급하게 의식을 보호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 그루의 자색 나무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그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가짜 나무가 세 그루?”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와악!”
자색 나무 세 그루 위에 있는 둥근 얼굴들이 동시에 입을 벌려 소리를 질렀고, 곧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기 중에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결이 나타나더니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왔다. 석목은 곧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두 눈에 핏줄기가 어렸다.
“강 사매, 큰일입니다. 우선 빨리 이곳을 떠납시다!”
석목은 큰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려 강수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앞이 희미해졌다.
갑자기 굵은 구렁이들이 빼곡히 하늘을 가리며 덤벼들었다. 구렁이들은 입을 벌려서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고 그를 물어뜯으려 했다.
청순한 강수수의 얼굴도 흉악하게 변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핏빛이 가득했다.
석목은 눈앞이 희미해지고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곤봉을 들어서 몸 앞을 막았다.
‘큰일이다!’
잠시 후 그의 시야가 회복되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석목은 안개가 자욱한 숲속이 아닌 망망대해에 놓여 있었다. 주변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코끝에 바다의 짠 내음이 밀려와서 그는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석목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그를 향해 덮쳐왔다.
하지만 그림자는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한 강수수가 아닌, 아홉 개의 커다란 머리가 달린 교룡이었다.
그 순간 석목의 의식이 흔들렸다. 두려움과 포악함이 뒤섞인 감정이 속에서 솟구쳤고, 이어서 강한 살의가 몰려왔다.
그가 손에 든 여의빈철곤에서 화염이 들끓었고, 그는 곤봉을 휘둘러서 교룡을 내리쳤다.
순간 석목의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고, 맑은 빛을 뿜는 작은 탑이 그 안에서 나와서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하얀 탑이 돌자 부드러운 빛이 줄줄이 뿜어져 나와서 석목의 몸을 감쌌다.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가 석목을 감싼 하얀 빛에 부딪혔다. 그리자 소리는 마치 투명한 거울에 부딪힌 듯 다시 밀려나갔다.
석목의 귓가에서 들리던 소리가 약해지자 의식도 점점 뚜렷해졌다. 눈에 어려 있던 핏빛도 사라졌다.
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머리 위에 떠 있는 작은 탑은 그가 얼마 전 창욱성에서 산 정신탑이었다.
사실 석목은 이 물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임무를 수행하다가 신혼의 금제에 부딪혔는데, 이 탑이 신혼을 막는데 효과가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계속 품속에 넣고 다녔는데 오늘 이렇게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기뻐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강수수의 푸른 뱀 머리카락이 그를 향해 몰려왔다.
석목은 등 뒤의 날개를 펼쳐서 수십 장 멀리까지 움직이며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가짜 나무 한 그루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곧이어 그의 등 뒤에서 바람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등 뒤의 날개에 하얀빛을 줄기줄기 섞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희미해지더니 빠르게 가짜 나무 옆으로 이동했다.
훅!
석목은 화염이 타오르는 여의빈철곤을 강하게 휘둘렀다.
펑!
폭발음과 함께 가짜 나무가 터져나가며 잔해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때 푸른 구렁이들도 석목의 등 뒤로 다가왔다. 석목은 몸을 돌리며 화염이 타오르는 곤봉을 휘둘렀다.
펑! 펑!
부딪히며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곤봉이 구렁들의 머리를 스치자 불꽃이 튀어올랐다.
가장 앞에서 덮쳐오던 푸른 구렁이들은 곤봉에 의해 멀리 튕겨 날아갔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구렁이들이 빠르게 다가와 곤봉을 깨물었다.
석목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곤봉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 사매, 실례하겠습니다.”
석목이 왼쪽 팔을 들자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하얀 화염이 섞인 채 들끓더니 곤봉으로 퍼져나갔다.
곤봉을 물고 있는 푸른 구렁이들이 화염 속에서 활활 타오르며 밀물처럼 물러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흉흉하게 물러나는 구렁이들을 쫓아서 강수수 앞에 섰다. 강수수의 두 눈에서는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허공에서 꿀렁이던 구렁이들은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석목의 등 뒤를 습격했다.
석목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손에 빛을 뿜으며 손가락으로 강수수의 미간을 짚었다.
윙!
영력의 파동과 함께 물결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석목에게 향하던 푸른 구렁이들이 힘없이 무너지더니 다시 강수수의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강수수는 석목에게 몸을 기댄 채 허공에서 내려왔다.
석목은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부문이 촘촘하게 새겨진 붉은 깃발을 여러 개 꺼냈고, 그것을 재빨리 그녀의 주변에 꽂아서 임시로 금고법진을 쳤다. 이렇게 해야만 강수수가 다시 깨어나도 그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강수수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뒤이어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 몸에서 날개를 펼치더니 또 다른 가짜 나무에게 다가갔다.
그가 나타나자 가짜 나무 위에서 또다시 울음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아까의 나무보다 절박하게 들렸다.
하지만 하얗고 작은 탑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석목은 아기 울음소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석목은 웃는 듯 아닌 듯한 동그란 얼굴을 바라보자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의 여의곤에서 또다시 화염이 타올랐고, 석목은 크게 한 바퀴를 돌면서 나무를 내리쳤다.
쿵!
자색 나무가 단번에 터져버렸고, 수많은 잔해가 여기저기 날리며 활활 타고 있었다.
그 순간 석목은 이미 세 번째 가짜 나무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든 곤봉을 흔들자 나무는 곧바로 화염에 타버렸다.
석목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몸을 둘러쌌던 화염과 여의빈철곤은 이미 거두어들인 상태였다.
그가 한 손을 흔들자 머리 위의 하얀 빛도 사라졌고, 작은 탑은 빙글빙글 돌더니 손에 떨어졌다.
석목은 손에 놓인 하얀 탑을 한참 훑어보더니 다시 품속에 넣었다.
나무 세 그루가 전부 부서지자 심신을 흐려지게 했던 아기 울음소리도 사라졌다.
석목이 설치한 금제 속에서 강수수의 두 눈에서 핏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맑은 눈으로 돌아온 그녀는 거칠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강 사매, 괜찮으세요?”
석목이 다급하게 내려와서 강수수 주변의 금제를 해제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몇 번이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수수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강수수는 의식은 돌아왔지만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보아하니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 같지는 않았기에 조용히 회복해야 할 것 같았다. 이곳은 기이한 현상이 너무 빈번하게 나타나서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었다.
“석 사형,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우선 이곳을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앞으로 가죠. 벌써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찾을 수도 있어요.”
강수수가 말했다.
“그래요. 우선 비차에서 잠깐 쉬고 계셔요. 주변의 상황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석목은 머리를 끄덕이며 영우비차를 불러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석 사형.”
강수수가 말했다.
두 사람은 영우비차에 올라탔다. 강수수는 앉자마자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했다.
석목은 비차를 조종하며 주변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앞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에는 요수나 괴물 나무가 나타나지 않았다.
반 시진 정도를 날자 눈앞이 환해지며 파란 호수가 나타났다. 크기는 이삼십 장 정도 되어보였다.
석목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호수 가운데 작은 섬이 있었다. 그곳은 식물들이 무성했고 생기가 넘쳤다.
짙푸른 호수 주변에는 하얀 안개가 들끓어서 호수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호수 위의 하늘까지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석목은 기이한 광경에 감탄했다. 호수 위에만 안개가 피어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는 비차를 섬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공기 속의 천지 영기가 점점 짙어졌다. 이미 현계 구역보다 밀도가 훨씬 높았다.
그때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지며 이내 정신탑을 꺼내 공중에 띄웠고, 그 속에서 하얀빛이 쏟아졌다.
“석 사형, 왜 그러세요?”
강수수는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석목은 현재 상황을 그녀에게 재빨리 설명하며 작은 섬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기 울음소리는 섬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강수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서 뿌리쳤다. 조금 전 가짜 나무에서 울려 퍼진 소리와는 뭔가 달랐다.
“석 사형, 이 소리는 가짜 나무의 소리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혹시 진짜 영영과 나무일까요?”
강수수가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가봅시다.”
두 사람은 전속력으로 섬의 중심을 향해 다가갔다. 비차는 눈 깜박할 사이에 섬에 도착했다.
“섬의 깊은 곳에서 소리가 흘러나온 것 같습니다. 강 사매, 저를 바싹 따라오세요. 이 정신탑은 신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다만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요.”
석목은 비차를 거두고 주변의 무성한 식물을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강수수가 머리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가는 동안에는 울창한 식물들과 짙은 천지 영기 말고는 별다른 생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는 가끔 들려왔으며, 연속적으로 들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