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구영(九嬰)
반 시진 후, 두 사람은 숲을 지나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의 중심에는 십 장 정도로 퍼진 작은 물길이 있었는데, 중앙의 영천에서는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곳의 짙은 천지 영기도 바로 이 영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 영천……. 섬의 천지 영기가 짙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군요.”
석목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석 사형, 이곳을 보세요!”
강수수가 손으로 영천 근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평범한 나무 몇 그루 사이에 몇 장 정도 되는 나무가 자라 있었는데, 그 생김새는 조금 전에 본 가짜 영영과 나무와 매우 흡사했다.
나무에는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는 아기처럼 생긴 과일이 세 개 열려 있었다. 그 크기는 주먹만 했고 전체가 빨간색이었으며, 기이한 향기를 풍겼다.
잠시 후 아기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몇 차례 울렸다.
“영영과!”
석목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과일들은 기록에 있는 영영과와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영영과인 것 같습니다. 아직 아무도 안 왔어요!”
강수수도 흥분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 영영과에서 흘러나오는 아기 울음소리, 우리가 들었던 것과는 다르지 않나요?”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나무는 분명 진짜입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석목은 머리를 끄덕였지만, 움직이지 않고 신식을 날려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근처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영영과를 따려고 손을 뻗었다.
“석 사형, 조심하세요!”
강수수가 갑자기 놀라서 소리쳤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부신 하얀 빛이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석목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빛이 내뿜는 매서운 한기를 맞으면 절대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석목은 영영과는 신경 쓰지 않고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하얀빛은 석목의 옆을 스쳐 지나서 가까운 산봉우리에 떨어졌다.
쿵!
하얀빛에 의해 산봉우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구멍이 뚫린 곳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두꺼운 얼음이 나타나 산 전체로 퍼져나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산봉우리 전체가 얼어버렸다.
“엄청난 한기로군!”
석목은 비틀거리며 영영과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영영과 근처의 영천에서 물보라가 튀었고, 집채만 한 푸른색의 짐승이 나타났다.
이 짐승은 온몸에 부드러운 털이 자라 있는 푸른 사자 같았다. 다만 몸 위에는 구렁이 같은 목이 아홉 개나 있었는데, 그 위에 얹힌 머리의 색깔이 전부 달랐다.
짐승의 머리 아홉 개를 본 석목은 동공이 작아지며 섬뜩함을 느꼈다.
아홉 개의 머리는 얼핏 보면 교룡의 머리 같았는데, 흉악한 몰골에 뿔이 자라 있었다. 그중 네 개의 머리는 사람의 얼굴 모습이라 조금 특별해보였다.
석목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얼굴들은 각각 조심뢰, 검은 얼굴의 남자, 민머리 남자, 그리고 붉은 머리의 남자와 비슷했다. 그야말로 소름 돋는 모습이었다.
아홉 개의 머리는 각자가 따로 움직이며 이따금 입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냈다. 몸에서는 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엄청나게 흉악한 기운이 밀려왔으며, 경지는 천위 후기 정도였다. 석목이 만났던 금색 교룡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았다.
“구영흉수(九婴凶獸)!”
석목이 무엇인가 생각난 듯 소리를 질렀다.
구영흉수는 미양성역에서도 이름 있는 고대의 요수였다. 천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그 실력은 상당했다.
구영흉수가 울부짖는 소리는 아기 울음소리와 흡사했고, 아홉 개의 머리는 각각 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금속, 나무, 물, 불, 흙, 음, 양, 바람, 번개 등의 힘을 부릴 수 있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이 짐승은 목숨이 총 아홉 개라 절대 죽일 수 없는 불사신으로 불렸다.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강수수가 석목 옆으로 날아왔다. 그녀 역시 똑같이 놀란 표정이었다.
“강 사매, 이 흉수가 왜 이곳에 나타났을까요?”
석목이 손을 흔들어 여의빈철곤을 꺼내며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 짐승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겠지요.”
강수수가 말했다.
석목은 표정을 바꾸더니 낮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몸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금색 비늘을 두르자 기세가 한층 높아졌다.
“어찌되었든 이 짐승은 지금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영과를 따내려면 아마도 이 짐승을 쓰러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싸워야죠!”
석목이 천천히 말했다.
“이 흉수의 수련 경지는 천위 후기입니다. 아마도 저희 둘의 힘만으로는…….”
강수수가 망설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공격하여 이 짐승을 막고 있을 테니, 그 틈에 강 사매는 영영과를 따세요. 영영과만 손에 넣으면 바로 철수하는 겁니다.”
석목이 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구영흉수를 향해 날아갔다.
구영흉수의 머리들이 화가 난 듯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커다란 몸집으로 석목을 덮쳤다.
쿵!
한 머리의 뿔에 있는 표면에서 자색 번개가 터지더니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개가 뭉쳐지면서 사람 머리만 한 공으로 변했다. 그것이 눈부신 빛을 내뿜자 주변의 허공이 흔들렸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자색의 천둥 공이 별똥별처럼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서 공은 빠르게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석목은 이미 준비를 한 상태였기에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휘둘렀다. 그의 주변에서 곤봉 그림자가 나타나서 자색의 공과 부딪쳤다.
쿵!
공은 곤봉의 그림자에 닿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대로 터져버렸다. 주변 백 장 정도가 순식간에 굵직한 번개로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번개가 터지고 있었다.
석목은 번개 속에서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그의 몸에는 번개가 맴돌았고 옷은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몸에 돋아난 비늘이 금빛을 뿜어내며 번개가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앞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구영흉수가 귀신처럼 앞에 나타났다. 구영흉수는 커다랗고 뾰족한 발을 들어서 차가운 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런 거대한 몸집이 이렇게 날렵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황해서 곤봉을 앞으로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탱!
흉수의 커다란 발이 곤봉을 덥석 잡았고, 엄청난 힘이 곤봉을 통해 밀려왔다.
그대로 날아간 석목의 몸은 근처의 작은 봉우리 위에 부딪혀서 산에 박혀버렸다.
쿵!
구영흉수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커다란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환영으로 변신해 다가왔다. 아홉 개의 입에서 각자 다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수많은 푸른색의 구렁이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중 십여 마리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서 단번에 구영흉수의 네 발을 묶어버렸다.
머리카락이 전부 구렁이로 변한 강수수가 그 밑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구렁이들의 혀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쉭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영흉수가 울부짖더니 머리 중 한 개가 갑자기 뒤를 보았고, 입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입을 벌렸다. 흉수의 입에서 하얀 화염이 쏟아져 주변이 불바다로 변했다.
푸른 구렁이들은 화염에 닿자 전부 타버리면서 다시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강수수는 놀라서 다급하게 비술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반 정도 타버렸고,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구영흉수의 또 다른 머리 하나가 입을 크게 벌렸고, 이번에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더니 십 장 정도 되는 바람의 용이 강수수를 향해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 순간 강수수의 등 뒤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석목이 등 뒤의 날개를 펴고 나타났다.
“하!”
그가 팔을 흔들자 손에 든 여의빈철곤이 크게 부풀었고, 커다란 그림자로 변하여 바람 용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펑!
바람 용의 머리 부분이 터져나갔고, 기류가 잠깐 뒤죽박죽이 되더니 다시 놀라운 기세로 몰려왔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통천곤법을 시전하자 곤봉의 촘촘한 그림자가 바람용을 강타했고, 바람 용의 거대한 몸은 그제야 완전히 터져버렸다.
“석 사형, 괜찮으세요?”
강수수는 석목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석목은 구영흉수를 계속 노려보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끄덕이기만 했다.
그는 방금 전 흉수에 의해 튕겨 날아갔지만, 몸이 매우 단단한 데다 비늘로 보호받고 있어서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이 구영흉수는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로 빠를 뿐만 아니라 공격 수단도 다양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났던 적 중 가장 강한 상대였다.
“석 사형, 이 흉수는 너무 강합니다. 우리 이제 도망가도록 하죠. 이곳에서 영영과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쫓아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석목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금단을 응결시켜 천위 경지를 돌파해야 하는 그에게, 눈앞에 있는 영영과는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그는 절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강 사매는 비술도 상했고 상처도 입었으니, 일단 비켜서서 기회를 살펴주십시오. 제가 다시 한 번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도망가는 걸로 하죠.”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수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날개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날아갔다.
구영흉수는 이미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홉 개의 머리가 동시에 울부짖으며 그중 세 개가 입을 크게 벌렸고, 각각 화염, 회오리바람, 물의 용을 뿜어내어 석목을 공격했다. 그것들은 하늘 전체를 덮으며 석목이 도망갈 수 없게 막아섰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여의빈철곤에서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미친 듯이 휘날렸고, 주변에 하얀 기류들이 잔뜩 생겨서 그의 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백수진황!”
주변에서 맴돌던 기류들이 수천 마리의 짐승 모양이 되어 구영흉수의 공격에 맞섰다.
콰르르!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각양각색의 빛이 반짝이며 허공이 흔들렸다. 진동 때문에 물결이 계속 일렁이며 파도처럼 주위로 퍼져나갔다.
잠시 후 구영흉수가 뿜어낸 광풍과 화염, 물의 용은 전부 터져버렸다. 백수진황이 만들어낸 수천 마리의 짐승들도 함께 터진 것으로 보아 양쪽의 힘은 엇비슷해보였다.
구영흉수의 눈에서 흉악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머지 머리들도 각양각색의 빛을 뿜어내며 번쩍이는 게 각자 다른 비술을 시전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조심뢰 등 사람 머리 모양을 한 네 개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들이 질서 없이 번쩍이더니,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나머지 얼굴들에서도 고통스러운 기색이 엿보였다.
석목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약간 놀랐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주문을 중얼거리며 몸에서 붉은빛을 뿜어냈고, 곧 커다란 붉은 원숭이 법상을 만들어냈다.
붉은 원숭이 법상은 나타나자 곧바로 입을 크게 벌려 하얀 화염을 뿜어냈다. 화염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서 구영흉수의 몸을 강타했다. 바로 혼원진화였다.
가장 순수한 화염인 혼원진화는 구영흉수의 기운을 죽이는데 무엇보다 적합했다.
구영흉수는 혼원진화의 화염을 덮어쓰더니 아기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고, 그 거대한 몸집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머리 중 한 개가 뒤로 돌아가더니 입에서 물을 뿜어내어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손에 든 여의빈철곤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곤봉의 그림자가 주변에 나타났고 수많은 기류가 하늘의 구름처럼 흘러나왔다.
붉은 원숭이 법상도 똑같이 화염 곤봉을 흔들어서 수많은 붉은 구름을 만들어냈다.
이어 석목은 곤봉을 갑자기 멈추더니 허공을 찔렀다.
주변에 번지던 하얀 기류와 허공의 붉은 그림이 융합되어 들끓는 물처럼 번지고 있었다.
“천지무극!”
붉은 구름이 순식간에 찢어져 굵은 번개가 허공에서 줄줄이 떨어지며 구영흉수의 몸에 쏟아졌다.
그때 땅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찢어졌고, 검은 화염이 수도 없이 흘러나와 구영흉수를 감쌌다.
훅!
하얀 번개와 검은 화염이 구영흉수를 휘감았다.
구영흉수가 계속해서 울부짖었고 석목의 엄청난 곤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석목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치더니 등 뒤의 날개에서도 화염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몸이 번쩍이더니 곧바로 번개 화염 속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처절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번개와 화염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그대로 찢어져버렸다.
구영흉수는 안쪽에서 튀어나와서 근처에 추락했고, 머리 한 개가 날아가서 그 자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머지 여덟 개의 머리는 흉흉하고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