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68화 (468/916)

468화. 강 씨 오누이

“제 동생은 막지 못하겠지만, 저는 어떻습니까?”

그 목소리를 들은 석목과 조극은 동시에 고개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밀림 위에 퍼져 있던 안개가 갈라지더니 십여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섬 위로 내려왔다.

그들은 전부 푸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지계 후기의 경지였고 그중 세 명은 천위 초기 이상이었다.

“오라버니!”

강수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는 기뻐하면서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수고했다. 너무 잘해냈어.”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강수수를 향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의 동공이 축소되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능풍 사형…….”

푸른 옷을 입은 남자의 얇은 허리띠에 고리 장식이 걸려 있었다. 손에 부채를 들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사람은, 바로 능풍이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깔끔하게 묶고 다니던 검은 머리가 푸른색으로 변하여 어깨 위로 떨구어진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석 사제. 내 이름은 강능풍입니다. 백타성 강 씨의 후손이고 강수수의 오라버니 되는 사람이지요.”

능풍이 미소를 띠고 천천히 부채를 흔들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소탈하고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지만, 석목이 보기에는 어떤 광기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당신들 강 씨 가문에서 놓은 덫이란 말입니까?”

석목이 말했다.

“석 사제. 이 일은 원래 석 사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영영과에 욕심을 부린 데다 또 야만족 토템 비술을 지니고 있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참, 야만족이 아니라 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그냥 보낼 수는 없지요.”

강능풍이 말했다.

“이 와중에 돌려 말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솔직히 말씀하시죠.”

석목이 말했다.

“이 공간은 우리 와요족의 선조가 종족의 영수 구영을 키우기 위해 만든 장소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조극 같은 지계 무인은 구영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지요. 당신들을 먹기만 하면 신수의 머리 아홉 개가 완성될 것이고, 성계로 승급할 수 있습니다.”

강능풍이 말했다.

“흥, 강 씨 집안에서 꽤 오랫동안이나 벼르고 있었군.”

조극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 뒤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날개를 펼쳤고, 곧바로 떠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능풍 등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서로가 아무도 말도 하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 순간, 하얀 빛의 막 안에 갇힌 조극의 몸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두 눈에서 파란빛이 번졌다.

그의 눈은 강가 사람들이 아니라 그와 가까이에 있는 흉수 구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형의 물결이 일렁이며 구영의 머리 아홉 개가 파르르 떨리더니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얗고 투명한줄기가 나타나 구영을 묶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구영의 머리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화염이 뿜어 나왔다. 구영은 층층이 둘러싸인 투명한줄기들을 전부 부숴버려서 다시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조극에게는 그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는 앞으로 크게 한 걸음 내딛더니 구영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손에서 빛이 번쩍였고 손바닥에서 검은 고리가 하나 나타났다.

고리는 검은빛을 내뿜더니 뼈마디 모양으로 툭툭 튀어나왔고, 마치 검은 죽순으로 만든 팔찌 같았다. 그 속에서 심장까지 서늘해지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아마도 위력이 엄청난 법보 같았다.

“오용골환(乌龙骨环)!”

강능풍은 조극의 손에 있는 물건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살짝 놀란 듯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조극의 고리가 날아가서 허공에서 몇 바퀴 돌더니, 그 속에서 한 장 정도의 뼈 용이 튀어나왔다.

뼈 용의 몸은 칠흑 같았으며, 마치 살이 벗겨진 뼈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뼈는 없었고, 몸통 전체가 금색 같은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혼불처럼 어두운 용의 두 눈은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강력한 원한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곧 뼈 용의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빛을 번쩍이며 흉수 구영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것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사람들이 그 물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구영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한줄기 검은빛이 번개처럼 구영의 굵은 목을 스쳐 지났고, 단번에 여섯 개의 머리가 목 위에서 떨어져버렸다. 그중에는 조심뢰 등 사람들의 얼굴을 한머리도 있었다.

여섯 갈래의 핏줄기가 하늘로 솟아올랐고, 구영의 몸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남은 세 개의 머리가 울부짖었다. 그들의 입에서 각각 다른 세 가지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검은빛은 번쩍이며 다시 뼈 용으로 변하였다.

“안 돼!”

강수수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조극을 묶어둔 금제 빛의 막이 격하게 흔들렸고, 무형의 힘이 사방팔방에서 조극을 압박해왔다.

그때 강능풍의 뱀 머리카락도 하늘을 뒤덮었다.

그의 머리카락이 변신한 푸른 구렁이는 강수수의 것과는 매우 달랐다. 구렁이들의 머리에는 검 같은 외뿔이 자라 있었는데, 그것은 매우 날카로웠고 번개로 감싸여 있었다.

조극은 분노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의 왼쪽 반신이 하얀색으로 변하며 양의 기운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꽉 쥐여진 그의 왼쪽 손가락 사이에서 하얀빛이 새어나왔다.

그는 뒤에 있는 푸른 구렁이들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앞으로 크게 한 걸음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쿵!

번개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빛의 막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구영 흉수마저 진동 때문에 격하게 흔들렸다.

“푸흡!”

빛의 막은 강수수와 연결이라도 되어 있었던 듯, 그녀의 입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공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조극은 곧바로 몸을 돌려 검은 뼈 용을 타고 아래쪽에 있는 영영과 나무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막 몸을 돌렸을 때, 차가운 검날이 뒤에서 날아와서 뼈 용의 몸을 공격했다.

뼈 용은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속도만 줄었다.

이어서 조극의 몸 옆에서 번개가 터지면서 외뿔의 푸른 구렁이들이 다가왔다. 조극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쫓아오는 강능풍을 맞이했다.

그 순간 실눈을 뜨고 지켜보던 석목의 눈에서 한줄기 빛이 스쳐 지났다.

‘바로 이때다!’

그의 등 뒤에 있는 날개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날개가 단 한 번 펄럭였을 뿐인데 석목의 몸은 이미 허공으로 올라가 있었다.

“큰일이다! 석목이 도망가려 한다! 빨리 막아!”

땅에 주저앉아 있던 강수수가 그 모습을 보더니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조극과 능풍을 보고 있던 강가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전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어 천위 경지의 고수 두 명이 석목의 뒤를 쫓아갔다.

석목은 아까부터 곁눈으로 그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석목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석목의 날개 속에 있는 하얀 줄기가 반짝이더니, 그는 곧바로 방향을 돌려서 아래에 있는 영영과 나무를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강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과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방금 전 머리 여섯 개가 잘린 흉수 구영이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뒷발로 땅을 짚고 앞발로 허공을 긁으며 석목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탓에 속도가 매우 느렸다.

석목은 날개를 펄럭이며 구영의 발을 피했다.

구영의 머리 한 개가 입에서 자색의 번개를 뿜어냈다. 이어 번개는 전부 머리만 한 공으로 변하여 석목의 등 뒤로 우르르 밀려왔다.

석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에 든 여의곤에 힘을 끌어 모아서 등 뒤로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 맹수 허영이 촘촘하게 뿜어져 나갔다.

쿵!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얀 맹수는 자색 공과 부딪히더니 터져버렸다.

석목은 그 틈에 다시 앞에 있는 영영과 나무로 향했다. 그는 한 손을 흔들어 가장 아래에 있는 과실 한 알을 땄다. 그리고 몸을 허공으로 날리며 다른 한 손을 흔들자 불의 공이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그가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자색의 나무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강가 사람들은 석목이 순식간에 나무를 태워버린 것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은 전부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석목을 쫓았다.

석목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날개를 퍼덕이며 섬에서 벗어나더니 영우비차를 불러 올라탔다.

그는 곧장 손을 흔들어서 저장 반지 속에서 푸른색 최상급 바람 속성의 영석을 꺼냈고, 그것을 비차의 움푹 팬 곳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촘촘한 부문이 순식간에 빛을 뿜어냈고, 영우비차가 격하게 흔들렸다.

윙!

가벼운 소리와 함께 비차의 꼬리 부분에 고리처럼 생긴 물결이 층층이 생겨났다. 비차는 별똥별처럼 하늘에 하얀 줄을 그으며 순식간에 백 리 밖으로 날아갔다.

강가 사람들은 석목이 멀리 도망가는 것을 보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각자 영기 법보를 꺼내 그 뒤를 쫓아갔다.

“능신(凌晨), 능야(凌夜)! 너희 둘은 석목을 쫓아라! 다른 사람들은 우선 성수부터 다시 살리고!”

허공에서 조극과 격렬하게 싸우면서 능풍이 큰 소리로 외쳤다.

강가 사람들은 다급하게 허공에서 내려와서 영영과 나무를 둘러쌌다. 그리고 가장 앞에 있던 두 갈래 빛은 석목이 도망간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석목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허공에 희미한 하얀 선만 남겨두었다.

그를 쫓아가던 두 사람은 십 리 정도 날아가더니 천천히 속도를 줄여 멈추어섰다.

“능신, 이제 그만 쫓아라.”

자색 옷을 두른 강능야가 먼 곳까지 이어진 하얀 줄을 바라보며 말했다.

“큰형님, 그 말씀은…….”

강능야와 똑같이 생긴 강능신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강능야는 쌍둥이 동생의 말에 답하지 않고, 곧바로 하얀 마름모꼴 옥부(玉符) 한 개를 꺼내들었다.

“만리둔광부(万里遁光符)? 큰형님, 이건 가문에서 물려받은,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물건이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강능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쩔 수 없다. 놈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대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어. 어찌되었든 저놈을 놓칠 수는 없으니.”

강능야가 말했다.

“하지만…….”

강능신이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강능야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시끄럽다. 빨리 와서 잡기나 해라.”

그러자 강능신은 더 망설이지 않고 다가가서 강능야의 팔을 잡았다.

강능야가 복잡한 주문을 외우며 주먹을 꽉 쥐었다.

퍽!

파열음과 함께 하얀 옥부가 두 조각으로 부러졌고, 부러진 부위에서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하얀빛이 맴돌더니, 지름이 한 장 정도 되는 하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가자!”

강능야가 소리를 지르자 하얀빛이 사라졌다. 이어 두 사람도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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