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69화 (469/916)

469화. 진압하다

석목은 영우비차를 타고 반 시진 정도 날아가다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비차에 박혀 있는 바람 속성 영석 여섯 개는 이미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칠흑 같은 공간의 문이 먼발치에 보이기 시작했다.

더는 따라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석목은 긴장을 조금 풀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능풍이 강 씨 가문의 사람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석목은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있었는데, 앞으로 성지의 그 누구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석목은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자세히 보니 공간의 문에서 갑자기 강한 빛이 흘러나왔고,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석목은 그들이 강능풍이 데려온 제자 중 수련 경지가 가장 높은 두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두 사람도 석목이 비차를 타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푸른 옷을 입은 강능신이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석목을 덮치려 했지만, 강능야가 그를 말렸다.

“성급하게 굴지 마라. 우선 이 공간의 문부터 막아버려라. 그리고 천천히 놀아주면 돼!”

강능야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네, 능풍 사형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이놈은 오늘 틀림없이 죽을 겁니다, 감히 우리 종족의 성과를 훔치고 성수를 훼손하다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강능신이 머리를 끄덕이었다.

두 사람은 석목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 장 정도 되는 하얀 옥판 한 개씩을 꺼내들었다.

그 옥판은 강수수 등 사람들이 공간의 문을 열 때 사용했던 열쇠와 비슷해보였다. 하지만 그 위에는 복잡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이 입으로 주문을 외우자 옥판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서서히 떠오르더니 공간의 문을 향해 날아갔다.

십 리 밖에서 지켜보던 석목은 칠흑 같은 큰 문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공간 속에 갇히게 되면 도망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흔들어 영우비차를 거두어들였다.

퍽!

석목의 등 뒤에서 날개가 펼쳐졌고,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왼쪽 팔에서 순식간에 하얀빛이 흘러나오더니 검은 무늬가 줄줄이 그어졌다. 이와 함께 오른쪽 팔도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마찬가지로 하얀 무늬가 줄줄이 나타났다.

석목의 팔에 나타난 복잡한 무늬가 밝아졌고, 양팔의 검고 하얀 빛이 각각 등 뒤로 퍼졌다.

훅!

검고 하얀 빛은 단번에 붉은빛을 묻어버렸다. 석목의 왼쪽 팔에 번진 화염은 순식간에 맑은 하얀 색으로 변했으며, 오른쪽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한데 섞인 안개가 두 팔에서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이어 석목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고, 그는 두 날개로 허공에 잔영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날개 색이 변하자마자 그는 어느새 곧바로 공간의 문 앞까지 날아가 있었다.

강능야 형제는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석목이 귀신처럼 옆을 스쳐간 것이다.

옆을 스치는 순간 석목의 두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고 하얀 빛이 폭발했고, 커다란 두 손이 양쪽으로 뻗어나가서 두 사람을 덥석 잡았다.

강능신이 몸에서 푸른빛을 이제 막 뿜어내려는 순간, 그는 이미 검은 손에 의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투명한 얼음조각으로 변해버렸다.

강능야는 머리카락을 허공에 흩날리며 수백 갈래의 자색 눈을 한 푸른 구렁이를 만들려 했지만, 그 순간 석목의 다른 한 손에 붙잡혔다. 그의 온몸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구렁이들도 하얀 화염에 휩싸였다.

“하!”

석목은 큰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쿵!

허공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검은빛과 하얀빛이 섞여 회색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하얀 화염에 둘러싸인 강능야와 얼음 조각상이 되어버린 강능신은 회색 소용돌이 속에 삼켜지더니, 그 속에서 가루로 부서져 사라졌다.

석목은 신식을 보내서 소용돌이를 살펴보았다. 음과 양의 힘이 합쳐지자 두 사람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음과 양의 힘을 사용한 흔적마저 사라졌다.

그는 처음으로 구전현공 세 번째 단계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력은 역시 대단했다.

석목은 아무도 이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미 많이 좁아진 공간의 문 옆으로 비집고 나왔다.

* * *

청엽성의 어느 산골짜기 상공에 한 장 정도 되는 검은 공간의 문이 떠 있었다.

문 속에서 문득 공간의 파동이 일렁였다.

쓱!

칠흑 같은 공간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튀어나와서 근처 산봉우리 위에 떨어졌다. 바로 석목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공간의 입구를 슬쩍 바라보더니, 곧바로 영우비차를 불러 올라탔다.

비차의 부문에서 눈부신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심하게 흔들렸다. 이어서 비차는 한줄기 푸른빛으로 변하여 하늘에서 사라져버렸다.

석목이 떠나고 일 각 정도 지난 뒤, 푸른 머리의 사람 몇 명이 그 속에서 튕겨져 나왔다.

“큰일이다! 벌써 도망갔어!”

“능진, 능야가 쫓아갔는데 왜 잡지 못한 거지?”

“저 놈이 타고 있는 영기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잡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어찌됐든 놈은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야란성으로 갔을 것입니다. 전송진을 통해 동성성으로 향할 게 틀림없으니 빨리 잡으러 갑시다.”

대춧빛 얼굴을 한 청년이 말하며 새처럼 생긴 비행 영기를 꺼냈다.

사람들이 위에 올라타자 영기는 날개를 펼쳐서 어디론가 멀리 날아갔다.

* * *

사흘 뒤, 청엽성 야란성 밖.

푸른빛이 멀리서 날아오더니 몇 번 반짝이다가 근처에서 멈추었다. 그것은 푸른색 비차였다.

비차가 사라지자 석목이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사흘 동안이나 쉬지 않고 날아오느라 체력이 많이 소진된 것 같았다. 다행히 야란성에는 별 탈 없이 도착했다.

야란성은 청엽성에서도 큰 성에 속했다. 천 리나 되는 땅을 차지하고 있어서 동성성의 큰 도시와 비슷했는데, 매우 번화한 곳이었다.

야란성에는 동성의 주성으로 오갈 수 있는 전송진이 있었기에, 두 행성의 사람으로 가득했다. 동성성의 사람들도 청엽성으로 오려면 대부분 야란성의 전송진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이곳은 자연스레 번화할 수밖에 없었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아마 별일 없을 것이었다.

다만 그는 강수수 등 강가 사람들의 목적을 여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조심뢰 등은 그렇다 쳐도 조극은 성주의 직속 제자였다. 만약 강 씨 일가에서 그를 죽여 버린다면 이 또한 성지를 뒤흔들 만한 큰 사건이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적잖은 풍파가 일어날 게 분명했다.

석목은 이 모든 일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그러니 강 씨 집안에서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강 씨 집안이 아무리 큰 가문이고 세력이 막강하다 한들, 야란성에서만큼은 조심스러워 할 것이다.

그리고 석목이 성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는 어깨 근육을 몇 번 풀고 야란성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건물 특징은 동성성의 청란성 건물들과는 조금 달랐다. 모든 건물은 나무로 지어졌으며, 심지어 건물 자체가 나무 안에 들어가 있었다.

성 안에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그래서 일 년 내내 볕이 들어오지 않고 밤처럼 캄캄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야란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 청엽성에는 비가 잦아서 풀로 뒤덮인 땅이 많았고, 성 안을 걸어 다니다보면 특유의 냄새가 몰려왔다.

석목은 시끌벅적한 큰길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다급하게 걸어서 서쪽에 있는 전송진으로 향했다.

반 시진 후, 그는 푸른색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은 매우 높았는데, 수십 장은 되어 보였고, 외형은 마치 커다란 돌 같았다.

이 건물은 야란성의 전송 대전이었다.

석목은 그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이내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전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복장을 보니 다양한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대부분은 요족이었다.

이곳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시끌벅적했다.

석목은 조용한 구석으로 가서 모자를 꺼내서 쓰고 옷을 갈아입은 뒤, 유유히 전송 대전 쪽으로 다가갔다.

전송 대전 입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입구를 막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중이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서 있는 노란 옷을 입은 남자에게 물었다.

“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매우 시끌벅적하네요.”

그러자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부터 이곳의 전송진을 갑자기 닫아버렸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할 수가 없어요.”

순간 석목의 눈에서 빛이 스쳤다. 그가 다시 물었다.

“갑자기 닫아버리다니요? 왜 그런 거죠?”

“이곳은 성시의 야가(夜家) 사람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전송진에 문제가 생겼다고 공지했습니다. 지금 수리 중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아이고, 빨리 동성성으로 가야 하는데!”

노란 옷을 입은 남자는 대답을 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다시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말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전송진 근처에서는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 몇몇이 사람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풍기는 기운은 강수수 등과 매우 흡사했다. 그리고 똑같이 푸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강가 사람들이었다.

‘저 자들이 야란성까지 쫓아오다니!’

석목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리고 인파 속에 묻혀 조용히 전송 대전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재료를 파는 상점으로 들어갔다.

몸을 숨겼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들켜버릴 뻔했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전송 대전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전송진을 갑자기 막은 것이 강가 사람들의 짓인가? 나를 동성성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석목은 안색이 굳어졌다.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보였다. 강가의 세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막강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간신히 이곳까지 피해왔는데 이미 소식을 보내 잠복을 시키다니, 보아하니 이 야란성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석목은 상점에 잠깐 더 머물러 있다가 곧바로 나왔다.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길을 돌아 동쪽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외진 방을 달라고 했다.

석목은 방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로 봤을 때, 야란성의 전송진이 닫힌 일은 그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강가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야가와 연합하여 전송진을 닫은 사실만 놓고 봐도, 이곳에서 동성성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청엽성의 전송진이 있는 다른 성으로 가야 하나?”

석목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청엽성에서 동성성으로 가는 전송진은 몇 군데 있었지만, 야란성과 전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려 해도 닷새는 걸렸다.

“그건 안 돼. 다른 성으로 가는 건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그곳 역시 강가가 지키고 있을지도 몰라.”

석목은 머리를 흔들며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온갖 방법을 생각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았다.

그는 갑자기 일어서서 창가 쪽으로 다가가서 창문을 살짝 열었다. 먼 곳에 있는 전송 대전이 희미하게 보였다.

“좋아. 이렇게까지 날 가둬두려 한다면 등잔 밑에서 놀아주지.”

석목이 차갑게 웃었다. 그의 눈에서 금빛이 돌고 있었다.

동성성 근처의 거의 모든 전송진은 성지에서 담당하는 것이었다. 행성 사이의 자원 운송, 사람들의 이동과 무역을 위한 중요한 경로였다. 그리고 전송진은 그 자체로도 청란성지에 대량의 영석을 벌어다주었다.

강가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한들 이 전송진을 영원히 막아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