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470화 (470/916)

470화. 방해하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푸른 진기 몇 개가 나타나서 방의 곳곳에 떨어졌다.

쓱!

진기의 표면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푸른 법진이 방 안에 흩어졌다.

석목은 침상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강가의 수색을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구전현공의 세 번째 법결에는 역골결(易骨诀)이 한 개 기록되어 있었다. 육신의 골격을 변형시켜 완벽한 변신을 할 수 있는 공법이었다.

역골결은 진기와 법력으로 원래의 용모를 숨기는 것이 아닌, 실제로 살과 골격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니 천위의 존재라 해도 그것을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석목은 이 비술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사용할 일이 없어서 따로 수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강가의 수색을 피하려면 이 역골결이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었다.

석목의 왼쪽과 오른쪽 팔에서 각각 검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두 손으로 주먹을 쥐자 검고 하얀 빛이 단전에서 융합되면서 몸에서 뼈마디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반나절 후, 석목은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스쳤다.

그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았지만 뼈가 꺾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키가 점점 줄어들었다. 얼굴의 근육마저 출렁였다.

순식간에 석목은 눈썹이 짙고 큰 눈을 가진 청년으로 변했다.

“좋아!”

그가 손을 흔들자 거울이 나타났다. 처음 보는 청년이 거울 속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어 석목은 몸속에서 흐르는 붉은 원숭이의 진기를 거두고, 오른팔에 있는 음의 힘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모습뿐만 아니라 풍기는 기운마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다급하게 비술을 익힌 탓에, 바꾼 모습은 한 시진 정도만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넘기면 몸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이었다.

석목은 다시 몸에서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 * *

같은 시간, 전송 대전에 있는 어느 방.

방에는 원형 돌 탁자 한 개가 놓여 있었고, 검은 옷을 입은 몇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야란성 야가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중간에는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있었지만 젊었을 때는 상당히 잘생겼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남자는 바로 야가의 가주인 야동(夜瞳)이었다.

야동 앞에는 젊은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고, 푸른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떨군 미모의 여자는 강수수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아직 창백했다. 이제 막 몸이 회복된 것 같았다.

“강 사매, 사매의 소식을 듣고 요청하신 대로 곧바로 전송진을 막았습니다.”

야동이 말했다.

“야 가주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가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강수수가 말했다.

“야가와 강가가 함께 보낸 시간이 있는데, 강 사매의 요구를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그리고 제가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청엽성에 있는 강가 사람들이 지금 야란성에 모여서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강 사매, 혹시 야란성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건가요?”

야동이 물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야가에 해가 되면 해가 됐지 득이 될 것이 전혀 없어요.”

강수수가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말했다.

순간 야동의 눈에 분노가 한줄기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평정심을 찾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강 사매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묻지 않겠습니다.”

강수수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럼 전송진 봉쇄는 최대한 며칠 더 이어질 수 있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야동이 강수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 사매, 비록 이 성의 전송진을 우리 야가에서 관리하지만,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청란성지에 있습니다. 저도 오랜 시간 봉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길어봤자 사흘이지요. 그 뒤에는 반드시 다시 열어야 합니다.”

강수수는 멈칫했다가 계속 걸으며 말했다.

“최소한 닷새입니다. 가주님이 도와주십시오.”

야동의 눈에 다시 분노의 빛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곧바로 표정을 관리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며 차오르는 분노를 눌렀다.

* * *

눈 깜박할 사이에 사흘이 지났다.

전송 대전 밖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이고 있었다. 전부 전송진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격앙되어 대전 안쪽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대전 문 앞에서 입구를 막고 있는 야가의 인원은 이미 사흘 전보다 두 배 나 더 많아졌다. 그중에는 천위 경지에 있는 무인도 몇몇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푸른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었다.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지고, 차가운 기운을 풍기고 있는 그 청년은 바로 변신한 석목이었다.

전송 대전 근처에는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강가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석목은 대범하게 서서 그들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용모와 기운은 전부 변해버렸기에, 강가 사람들은 이미 석목과 여러 번 마주치고도 티끌만한 의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강가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졌다.

‘흥! 사흘이나 지났으니 초조하겠지.’

석목은 속으로 웃었다.

대전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야가 가주가 나와서 해명하라고 해라! 내 물건이 지금 이곳에 사흘이나 묶여서 최상급 영석 수백 개를 손해 봤단 말이다! 왜 전송진을 아직도 안 열고 있는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최소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은 해야 할 것 아니야?”

“계속 이렇게 진을 막으면 다른 방법으로 청란성지를 연결해서 이 일을 해결하라고 할 거야!”

사람들은 전부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막무가내로 대전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성내에는 싸움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각 행성을 오가는 상인이거나 자율수행자였다. 그중에는 큰 세력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서 파급력이 상당했다.

야가는 애당초 충분한 이유 없이 전송진을 막아버린 터였기에, 사람들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일이 커지면 야가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전 입구를 막고 있던 파수꾼들의 안색은 점점 심각해졌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석목의 눈에 의기양양한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때 대전 안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늙은이가 걸어 나왔다. 그는 천위 경지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생기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야가는 함부로 전송진을 닫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전송진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여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야가의 진법 대사들이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고치고 있으나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인은 오랫동안 성내에서 야가의 사무를 총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노인을 알고 있었다.

노인이 말하자 대부분의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송진이 망가졌다고요? 그 말이 진짜인지 어떻게 압니까?”

“맞습니다. 우리 눈으로 직접 봐야 믿을 수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천위 경지의 방대한 위압감을 주변으로 퍼트리자 대전 앞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여러분, 제가 한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야가도 여러분을 속일 이유가 없습니다. 전송진을 하루라도 열지 않으면 우리 야가도 큰 손해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죄송하지만 여러분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가할 수 없습니다. 안에서 진법 대사들이 수리하고 있으니 방해가 되면 곤란합니다. 관계자가 아니면 저를 포함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것을 보자 노인은 그제야 눈에서 긴장을 풀었다.

그때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야분(夜焚) 장로님, 전송진은 대체 언제 수리가 끝나나요? 최소한의 기한을 약조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은 천위의 기운을 숨기고 있었는데, 옷에는 붉은 새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화황상회(火凰商会)의 금 도우시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어야 이틀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말했다.

“아직도 이틀이나 더 걸린다니요?”

“우리 물건은 이미 며칠이나 지체됐습니다. 매일 손해를 보고 있다고요.”

“그래요! 닷새나 걸릴 줄 알았더라면 이미 다른 성으로 갔을 겁니다!”

조용해졌던 인파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노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참 동안 설득에 나섰고, 그제야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야분 장로님, 그럼 딱 이틀만 더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며칠 뒤에 열리는 경매에 꼭 참석해야만 합니다. 만약 이틀 뒤에 동성성으로 전송되지 못한다면, 저는 최소 최상급 영석 천 개에 달하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틀 뒤에도 전송진을 열지 못하게 된다면 여러분의 손해는 우리 야가에서 전부 배상하겠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장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마음을 놓겠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돌아갔다. 몇몇 사람도 그 뒤를 따라 함께 대전을 떠났다. 노인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한편 전송 대전 꼭대기의 창문을 통하여 입구의 상황을 훤히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있는 강수수와 강능풍이었다.

“보아하니 이틀 이상 전송진을 막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군.”

강능풍이 말했다.

강수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사흘이나 지났는데 석목의 소식은 눈곱만치도 없어요. 혹시 이 성에 없는 건 아닐까요?”

강수수가 말했다.

“아니야. 석목이 비경에서 도망간 후 강봉(江峰) 장로가 곧바로 쫓아갔어. 그분은 추격하는 비술이 뛰어나지. 석목은 확실히 야란성에 있을 거야. 우리 강가 사람들이 밤낮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어서 절대 성을 나갈 기회가 없었을 거야. 아직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해. 다만 야란성이 너무 큰 데다 우리 인원은 한계가 있고, 석목은 절대 나오지 않겠지. 그렇다고 한 집씩 뒤지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강능풍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오라버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강수수가 물었다.

강능풍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잠시 후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석목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동성성으로 돌아가는 전송진을 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이틀 뒤 전송진이 열리면 꼭 이곳에 다시 나타나겠지. 그때를 기다렸다가 잡으면 돼.”

강능풍이 차갑게 말하자 강수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키가 큰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하얀 옷을 두르고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사람은 바로 조극이었다.

“조 형, 오셨습니까?”

강수수와 강능풍은 조극이 들어오자 아부하는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