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뜻밖의 일
전송 대전 입구에 서 있던 석목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는 대전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구전현공?”
방금 전, 그는 비록 잠깐이었지만 순수한 구전현공의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그 기운은 매우 익숙했다.
석목은 안색이 변하더니 온몸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어딘가로 걸어갔다.
일 각 후 그는 객잔의 방으로 돌아왔다.
석목은 창문을 통해 전송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방금 전의 기운은 설마 조극인가?’
그런데 일전에 조극은 비경 속에서 강가 사람들에 의해 붙잡혀서 목숨이 위태로웠다.
‘만약 도망쳤다 해도 전송 대전에는 무엇 때문에 나타난 거지? 그가 아니라면 이 야란성의 또 누군가가 구전현공을 수련 중이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기운이 너무 낯익어.’
석목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전송 대전은 마치 안개에 뒤덮여 있어서 그 속에 수많은 비밀을 숨겨놓은 것 같았다.
‘채아가 있었더라면 투시 능력으로 이곳에서도 대전의 상황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눈빛을 반짝이며 이를 악물고 무언인가 다짐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벌써 어두운 밤이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시끌벅적하던 야란성도 고요해졌다. 곳곳에 밝혀졌던 등불이 하나하나 꺼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두웠던 성 안이 완전히 어둠에 휩싸였다.
어둠 속에서 전송 대전 입구 근처에 옅은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나타났다.
대전 입구 밖은 단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지계 초기의 경지인 두 사람은 경계를 하는 듯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자는 대전과 몇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곧 물결이 퍼져나가서 두 명의 파수꾼을 감쌌다.
그들의 눈앞이 희미해지자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지났고, 순식간에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시야가 회복된 두 파수꾼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계속해서 보초를 섰다. 둘 모두 어떤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림자는 대전으로 들어가서 계속해서 안쪽으로 날아갔다. 이 그림자는 투명 망토를 두른 석목이었다.
석목은 고민 끝에 그는 전송진 안쪽을 탐색하기로 결심했다.
대전 안쪽은 매우 큰 대실이었는데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안은 캄캄했고 벽에는 몇 장 정도 사이를 두고 하얀 원석이 놓여 있었는데, 옅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실 안쪽에는 통로가 몇 개 있었다. 다양한 장소로 향하는 통로 같았다.
석목은 청엽성에 올 때 야란성의 이 전송 대전을 이용했기에, 법진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장 왼쪽에 있는 통로로 조심스럽게 날아갔다. 통로는 매우 길어서 백 장 정도 되었다.
석목은 신식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일 주향이 지나서야 통로의 끝에 다다랐다.
그 끝에는 몇 장 크기의 돌문이 있었는데, 단단히 닫혀 있었다.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돌문 뒤가 바로 전송 법진이었다.
돌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석목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금제 때문에 안에 있는 전송 법진이 정말 망가진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절반쯤 돌아왔을 때 앞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깜짝 놀라서 그림자로 변하여 벽 속으로 사라졌다.
발걸음 소리는 다급한 듯했고, 총 세 사람이 걸어오는 중이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검은 옷에 금색을 두르고 있는 중년 남자였다. 그 뒤 왼쪽에는 푸른 옷을 입고 푸른 머리를 한 잘생긴 남자가 있었다. 나머지한 사람은 하얀 옷에 상투를 틀고, 이목구비가 반듯하며 단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순간 석목의 동공이 축소되었다. 뒤의 두 사람은 강능풍과 조극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전송 법진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이 길을 안내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강능풍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능풍 소주(少主)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영광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강능풍은 미소를 지으며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조극의 단정한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두 사람의 대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 사람이 석목이 숨어 있는 장소를 스쳐 지났다. 그들은 별다른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듯 빠르게 돌문 앞으로 다가갔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은 조극 등 두 사람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혼자 앞으로 몇 걸음 나섰다. 그리고 영패를 꺼내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푸른빛을 만들어냈다.
돌문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은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안에는 또 다른 대전이 있었는데, 상당히 넓었다. 바닥에는 살짝 튀어 올라온 석대가 하나 있었고 그 위에서 하얀 진법이 돌고 있었다.
석목이 숨어 있는 벽에서 검은 그림자가 앞으로 살짝 튀어나왔다. 그는 어둠 속에 두 눈만 내놓고 대전 안쪽을 훑어보고 있었다.
검은 옷의 중년 남자가 전송진 옆으로 다가가 중얼거리며, 두 손을 흔들어 법결을 몇 개 만들어냈다.
그러자 전송진이 더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고 짙은 빛을 뿜어냈다.
그것을 지켜보던 조극은 진법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조 형, 비경에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와 제 동생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강능풍이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는 매우 정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은 오해였으니 넘어갑시다. 저는 소인배가 아닙니다.”
조극이 덤덤하게 말했다.
“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능풍이 그의 말을 듣더니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급하게 볼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극이 말하며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이 하얀빛을 전송 법진 속으로 보냈다.
퍽!
전송 법진의 표면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현묘한 부문이 수없이 날아올라서 조극의 몸을 둘러쌌다. 그의 몸은 몇 번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부문과 함께 사라졌다.
짙은 빛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조극의 모습이 사라지자 강능풍은 곧바로 몸을 꼿꼿이 폈다. 얼굴에서 정중한 표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앞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은 옷을 두른 중년은 조용히 한쪽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시다.”
강능풍은 한마디 하고 바로 몸을 돌려 바깥으로 향했다. 중년 남자는 다급하게 그를 따라 나가며 다시 돌문을 잠갔다.
두 사람은 복도의 다른 한쪽을 향해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석목은 벽에서 나왔다.
그는 두 사람이 걸어간 방향을 몇 번 바라보고는, 다시 몸을 숨기며 천천히 바깥으로 나왔다.
반 시진 후, 석목은 다시 객잔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방 안을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의 광경을 본 그는 적잖게 놀랐다. 그가 추측했던 것처럼 조극은 정말로 야란성에 있었다. 다만 생각지 못했던 것은 그가 강가와 화해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능풍의 표정을 보니 그를 매우 공경하는 것 같았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둘은 비경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을 했었다.
석목은 두 눈으로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둘 모두 절대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둘이 힘을 합쳐 공격했더라면, 그는 절대 도망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둘 사이가 저렇게 가까워졌다니, 놀랄 일이었다.
게다가 강능풍은 요족에 속하는 요와족 사람이고, 조극은 인족이었다. 미양성역은 요족이 판을 치는 곳이고, 그들은 인족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석목은 그가 떠난 뒤 무슨 일이 생겼기에 오늘 같은 국면이 초래됐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밖에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나 표정을 보니 뭔가 또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됐든 야가가 전송진을 닫은 일은 확실히 강가와 관련이 있었고, 석목을 잡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흥!”
석목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 * *
석목은 이틀 동안 아예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객잔에서 조용히 역골결을 수련했다. 어쨌든 이 비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과 안정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이틀 동안 야가의 전송진 앞에는 점점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야가에서는 계속 입장을 발표했고, 매번 어렵게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전송 대전의 안쪽 방에는 야가의 가주 야동과 강수수, 그리고 강능풍 세 명이 모여 있었다.
“밖의 상황은 두 분도 보셔서 잘 아실 겁니다. 우리 야가는 전송진을 계속 닫아둘 수 없습니다.”
야동이 말했다.
그러자 강능풍과 강수수는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야 가주님. 이제 전송진을 열어주세요. 다만 조건이 있으니 들어주십시오.”
* * *
이튿날 저녁 무렵, 전송 대전 밖에서 야가가 소식을 전했다.
총 닷새 동안 닫아두었던 전송진을 다음날 새벽에 다시 열기로 한 것이다.
야란성에는 수많은 인파가 빼곡히 모여들었다. 날이 밝기도 전에 대전 밖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모두 줄을 서서 전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파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많아졌다.
전송 대전 안에는 검은 옷을 입은 야가의 파수꾼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그들은 대전 내의 질서를 유지하는 듯 보였지만, 눈으로는 사람들을 훑고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명도 그냥 들여보내지 않았다.
대전 안쪽의 방에는 강수수와 강능풍이 있었다. 방 안에는 푸른 물거울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 전송 대전의 상황을 일일이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강수수가 물거울 속의 상황을 보며 초조하게 말했다.
“서두르지 마라. 석목은 꼭 올 거야. 너와 내가 여기서 탐색하고 있는데, 우리의 눈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어.”
강능풍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말씀이 옳습니다. 석목이 저를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오라버니는 절대 속일 수 없지요!”
강수수가 웃으며 말했다.
강능풍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의기양양한 기색이 스쳤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전으로 밀려들었다. 며칠 동안 모였던 인파가 이제 절반은 줄어든 것 같았다.
오후 즈음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대오의 가장 끝에 섰다. 그는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옅은 음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바로 석목이었다.
석목은 인파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가가 압박에 이기지 못해서 전송진을 다시 열었지만, 강가 사람들은 절대 그를 쉽게 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석목도 잘 알고 있었다.
석목이 드디어 대전의 입구까지 다다랐다. 그는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파수꾼과 시선이 마주치자 곧바로 눈을 피했다.
검은 옷을 두른 사람들은 야가의 옷을 입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를 속이지는 못했다. 그들은 강가 사람들이었다.
‘생각대로군. 그들이 절대 나를 쉽게 놓아줄 리 없겠지. 전송진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살펴보다니. 어디 내 역골결을 간파해낼 수 있는지 보자.’
석목은 속으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에는 어떤 기운의 파동도 없었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전부 대전속으로 들어갔고, 드디어 석목의 차례가 다가왔다.